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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쎈이 찾아간 심야식당 深夜食堂]

이태원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

On October 02, 2013

이름도 어렵고 찾기도 어렵다.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지나 잿빛 창고 벽 앞에서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쯤 작은 철창문 사이로 재잘재잘 즐거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비밀의 화원, 아니 비밀의 맥주 낙원이다

맥주 사막의 오아시스

맥주 애호가들에게 우리나라는 ‘목마른’ 곳, 거대 브랜드 2곳의 맥주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그나마도 세계적인 맥주 평가 사이트에서 북한의 ‘대동강맥주’만 못하다고 평가한 것들이다. 물론 대동강맥주가 훌륭한 맥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소주 ‘말아 넣은’ 김빠진 소맥 앞에서 우리는 온통 물 천지인데도 마실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 조난당한 돛단배에 올라탄 듯한 기분이다. 묵직할 때는 묵직하고 청량할 때는 청량한, 각종 아로마 향이 잔 가득 일렁이는 ‘제대로 된’ 맥주에 대한 갈망.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직접 만든, 혹은 독자적인 소규모의 양조장에서 제조한 수제 맥주를 판매하는 곳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는 것.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도 그중 하나로 맥주 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곳이다.

캐러멜빛, 황금빛, 레몬빛 맥주가 넘쳐흐른다

이태원 경리단길의 작은 시장 골목에 맞닿은 대규모 빌딩, 그 뒤편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만든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의 초저녁 어스름은 낮 동안 쏟아져 내린 초여름 태양의 열기로 아직 뜨겁다. 야외 테라스와 실내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게 뚫린 오픈형 구조는 마치 해외 어딘가의 광장 노천카페에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시끌벅적한 주위를 둘러보면 이국적인 느낌은 한층 강해진다. 사장과 직원 모두 외국인, 손님들도 반 이상이 외국인인 이곳은 한국인지 외국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주문도 영어로 해야 하지만 ‘영어 울렁증’이 있는 이들이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술’ 앞에서는 모두가 친구가 되는 것이 우리 아니던가? 준비할 것은 오직 맛있는 맥주를 호기롭게 즐길 마음의 여유뿐! 바에도 테이블에도 황금빛, 캐러멜빛 맥주가 젖과 꿀처럼 흘러넘치는 이곳. 해는 어둑해지고 초여름 밤공기는 청량하다. 지금부터 맥주 타임의 시작이다.

1 초리소가 들어간 샌드위치는 진하고 섬세한 풍미로 크래프트 맥주와도 잘 어울린다. 너무 배부르지는 않게, 적당히 입맛을 돋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2 이 곳 주방장은 브런치로 유명한 ‘수지수’출신 답게 햄버거 굽는 솜씨가 좋다. 치포틀레 마요네즈 사이로 진한 육즙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정통 수제 버거에 이곳만의 크래프트 맥주 한 잔은 없었던 식욕도 돋게 한다

직영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8가지 크래프트 맥주

생긴 지 2년여, 이곳은 누가 뭐래도 ‘크래프트 맥주’로 유명하다. 크래프트 맥주란 소규모 양조장에서 직접 제조한 품질 좋은 독립 맥주를 뜻하는 말로 그 맛이 신선하며 각 브루어리마다 개성이 뚜렷해 해외에서는 이미 하나의 문화로 정착 중에 있다. 최근 홍대와 가로수길 근방의 카페와 퍼브에서 유행하는 일본의 ‘히타치노 네스트’도 크래프트 맥주 중 하나, 국산 크래프트 맥주로는 ‘세븐 브로이’가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크래프트 퍼브’ 혹은 ‘수제 맥줏집’은 가게나 가게의 양조장에서 직접 크래프트 맥주를 제조해 생으로 내는 곳을 지칭한다.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는 가평에 위치한 소규모 브루어리 카파와 협업해 OEM 방식으로 8가지의 크래프트 맥주를 내놓는다. 카파 브루어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하수로 맥주를 만드는 곳으로 ‘맛있는 술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물맛을 살려낸다. 다른 첨가물 없이 물, 보리(몰트), 홉, 효모로만 만드는 것이 크래프트 맥주의 룰, 그 때문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같지만 만드는 방식이나 비율에 따라 맥주의 종류가 달라진다. 다크 에일과 인디언 페일 에일, 필스너 등 다양한 맥주의 맛을 하나씩 음미하고 있자면 이제까지 마시던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맥주는 뭐였던가 싶을 정도다.
이곳의 시그너처 메뉴로 가장 명성 높은 것은 ‘지리산 반달곰 IPA’. 귀여운 이름과는 다르게 상당히 복합적이고 깊은 맛을 낸다. 국내에서 IPA(인디언 페일 에일)를 맛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기에 더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잘 만든 IPA, 아니 IPA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맥주다. 톡 쏘는 첫 모금은 복합적으로 풍기는 아로마의 풍부한 향에 놀라고 약간은 무거운 보디와 입안에 남는 여운이 인상 깊다. 이곳의 맥주에는 모두 우리나라의 명산 이름이 붙어 있는데 크래프트 맥주 초보자라도 산의 이름을 보고 대충 어떤 맥주인지 어림잡아 주문해도 될 만큼 꽤나 절묘하고 위트 있는 네이밍이다. 크래프트 맥주를 처음 맛보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남산 필스너’, 필스너 종류는 대개 청량하고 가벼운 보디로 산뜻하게 즐길 수 있는데 서울을 대표하는 남산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나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금강산 다크 에일’은 미스터리하고 약간은 어두운 듯한 카리스마의 이름답게 몰트 향이 강하고 스모크 향이 진한 맥주, ‘한라산 골든 에일’은 몰트의 달달하면서도 씁쓸하고 구수한 맛이 조화되어 있다. 이 밖에도 상쾌한 밀맥의 ‘백두산 헤페바이젠’, 에일로는 특이하게 라거와 같은 황금색을 띠는 ‘관악산 쾰쉬’ 등이 메뉴에 올라 있다.

3 그 양에 한 번 놀라고 맛에 또 한 번 놀라는 이곳만의 특제 립, 친구 여럿이 가서 안주로 먹기 좋다.
4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의 맛을 모두 보고 싶은데 배의 용량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할 필요 없다. 미니어처 맥주잔에 7종류의 맥주가 조금씩 담긴 ‘테이스팅 메뉴’가 있다. 처음 방문하는 이라면 일단 이 샘플러로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가장 선호하는 맥주를 본격적으로 마시면 된다.
5 캐나다인이지만 한국에 반해 13년째 서울에서 거주 중인 사장. 누구보다 맥주를 사랑해 직접 크래프트 맥주 하우스까지 내게 되었다는 그는 지금 자신의 가게와 일이 그렇게도 즐겁고 좋단다.

사랑스러운 유월의 밤

입안 가득 톡 쏘는 향을 내는 맥주의 기포가 올라오는 초여름 밤, 자유롭게 바람이 넘나드는 야외 테라스 바에 앉아 있자면 쓴 인생도 달콤하게 느껴진다. 카리스마 넘치는 동양계 외국인 셰프가 내놓는 푸짐한 아메리칸 캐주얼 디시에서 요리 하나를 먹어도 걸고 ‘찐’하게 먹는 그들만의 푸짐한 정서가 담겨 있는 듯해 웃음이 난다. 거푸 맥주 들이켜며 접시 가득 립 뼈다귀 쌓아 올리는 호방한 밤도 좋고 입가에 소스 가득 묻혀가며 햄버거 먹는 퇴근길도 좋다. 맥주 마시기 좋은 이 계절, 즐거운 밤을 보장하는 ‘약속의 장소, 우리들의 참새 방앗간’이 하나 더 늘었다.

메뉴 지리산반달곰 IPA 7천5백원, 남산 필스너 6천원, 7가지 맥주샘플러 9천5백원, BBQ폭립 2만 4천원, 초리소샌드위치 1만2천원, 써로인버거 1만1천원
영업시간 오후 2시~자정
위치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651
문의 02-794-2537

이름도 어렵고 찾기도 어렵다.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지나 잿빛 창고 벽 앞에서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쯤 작은 철창문 사이로 재잘재잘 즐거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비밀의 화원, 아니 비밀의 맥주 낙원이다

Credit Info

포토그래퍼
김나윤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