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법(如法)이란 종교적 의미 외에 ‘바른 도리에 들어맞음’을 뜻한다. 음식에 있어 여법이라 함은 바른 도리에 들어맞는 음식일 것이다. 자연 순리에 맞춰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니 당연히 몸에 이롭고 별다른 조리법도 필요 없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법한 사찰 음식이고, 법송 스님의 음식 또한 그러하다. 열두 달 제철 음식 중 이달에는 들깨송이, 버섯, 마, 산초, 애동고추로 사찰 밥상을 차렸다.
들깨송이부각
곡식이 영그는 계절에는 들깨송이에도 깨가 단단히 여뭅니다. 들깨는 벌레가 달려들지 않아 어느 곳에서든 제 스스로 잘 자라나 고마울 따름입니다. 깨가 꽉 들어차면 들깨송이를 탈탈 털어 깨를 받아 기름도 짜고 깨소금도 만들지만, 빡빡하게 쑨 찹쌀풀을 들깨송이에 살짝 묻혀 가을 햇살에 말려두기도 합니다. 귀한 손님 오셨을 때 기름에 파르르 튀겨 내면 귀하디귀한 들깨송이부각이 되지요. 눈송이가 앉은 듯 모양은 얌전하지만, 한입 바삭 베어 물면 향긋한 들깨 내음을 박력 있게 뿜어 냅니다.
모둠버섯밥
공양 중에 유일하게 사치하는 것이 차와 버섯입니다. 일 년에 한 번 먹는 절집의 보양식인 모둠버섯밥은 송이버섯이나 능이버섯, 싸리버섯처럼 귀한 버섯도 구비해 짓습니다. 능이버섯이 영선사에 들어오는 날이면 열 일을 마다하고 밑 손질을 합니다. 능이버섯에는 애벌레가 살기 마련인데, 냉장고에 두어도 능이버섯을 먹고 통통하게 자라기 때문에 수확하자마자 곧바로 데쳐놔야 합니다. 능이버섯은 절대 물로 씻으면 안 되고 흙만 털어서 끓는 물에 데쳐 냉동실에 두었다가 먹을 만큼 꺼내 요리하지요. 능이버섯을 끓인 물은 버리지 않고 환절기에 감기 국을 만듭니다. 능이버섯이 나올 즈음에는 싸리버섯 또한 제철입니다. 싸리버섯은 독성이 있기 때문에 끓는 물에 데친 뒤 물에 하루 정도 담가 두었다가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정성 들여 밑 손질한 능이버섯과 싸리버섯, 새송이버섯, 표고버섯 등을 가늘게 찢어 불린 쌀 위에 올리고 말린 표고버섯 우린 물을 부어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으면 숲에 온 듯 신선한 향이 그득합니다.
마구이
산속에서 수행할 적에는 아침과 점심에만 공양하는데 아침에는 죽을, 점심에는 마를 쪄서 배를 채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를 쪄서 먹거나 가루 내어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흉년에도 배가 고프지 않게 지낼 수 있다고 <동의보감>에 적혀 있는 것을 보아 예로부터 기특한 구황식으로 애용된 듯합니다. 마는 속을 든든하게 해줘 스님들은 식사 대용이나 반찬으로 즐겨 먹지요. 마의 끈적끈적한 성분인 ‘뮤신’은 단백질 흡수를 도울 뿐 아니라 위궤양을 방지해줘 속에 탈이 나면 생마를 먹지요. 하지만 차가운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스님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조리해서 먹습니다. 또 마의 차가운 성질을 보완하기 위해 항상 따뜻한 기운을 지닌 음식을 곁들이지요. 마를 노릇하게 구운 뒤 곱게 채 썬 대추를 올리면 보기에도 좋고 따뜻한 기운을 더해 건강에도 이롭습니다.
산초표고버섯전
새파랗게 잘 익은 산초 열매를 따는 날이면, 말린 표고버섯을 불려둡니다. 전을 굽기 위해서지요. 졸깃한 식감 때문에 꼭 말린 표고버섯을 쓰는데 부드럽게 불린 표고버섯은 모양을 살려 얇게 썰고, 산초 열매는 빻지 않고 알갱이 그대로 떼어 넣습니다. 산초는 미리 뜨거운 물에 데친 뒤 4시간 이상 물에 담가 강한 맛과 향을 빼내야 합니다. 전 반죽에 감자도 채 썰어 넣고 통깨도 함께 넣어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졸깃하고 향긋한 표고버섯 맛과 알싸하게 톡 터지는 산초의 맛의 조화가 일품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귀한 맛입니다.
애동고추볶음
여름내 실한 열매를 맺던 고추나무는 가을이 되면 기력이 쇠해지면서 작은 고추를 맺게 됩니다. 이것을 애동고추라고 합니다. 호박, 가지, 고추는 여름과 가을의 맛이 다릅니다. 여름에는 껍질이 얇아 야들야들하고 수분이 많지만 약간 싱겁습니다. 초가을의 것은 껍질이 두꺼워지고 수분은 줄어들지만 맛이 응축되어 더 짙은 맛과 향을 내지요. 애동고추도 마찬가지입니다. 껍질이 단단하고 맛이 제대로 들어 볶음용이나 부각용으로 제격이에요. 애동고추를 기름에 달달 볶아 노릇할 때까지 두었다가 센 불에 양념장을 부어 바글바글 끓이면 아삭아삭 짭조름한 맛이 식욕을 돋웁니다.
산초장아찌
산초는 잘 익은 것으로 따야 장아찌가 맛있습니다. 추석 전후로 채취하는데, 산초 열매는 선명한 초록빛을 띠고 씨가 오독 씹히는 정도가 적당히 익은 것입니다. 익지 않은 것으로 장아찌를 담그면 산초의 맛과 향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고, 너무 오래 둔 것은 기름이 많아 장아찌용으로 좋지 않습니다. 산초와 초피가 다른 점은 산초는 열매를 먹고 열매 껍질과 나뭇잎은 먹지 않습니다. 반면 초피는 열매 껍질과 나뭇잎을 먹지요. 싱싱한 산초로는 따는 즉시 산초장아찌를 담그고, 새까맣게 말린 산초로는 기름을 짭니다. 산초기름으로 지글지글 구운 두부구이는 정말 일품이지요. 10월 보름날부터 1월 보름날까지 동절기 기도 기간에는 아침 공양을 다양한 죽으로 합니다. 흰죽이 나올 때에는 항상 산초장아찌가 곁들여지는데, 알싸한 산초 맛이 정신을 깨우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며, 흰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대전에 위치한 영선사에서 수행 중인 법송 스님은 16년 전부터 모시던 고 성관 큰스님에게 음식을 배웠다. 전통 사찰 음식에 조예가 깊은 성관 큰스님은 제대로 손맛이 나지 않으면 그 맛이 날 때까지 다시금 시켜 호된 수련 과정을 겪게 했다. 법송 스님은 현재 동국대, 영선사,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운영하는 사찰음식교육관 향적세계에서 강의를 통해 숨겨진 사찰 음식과 그 의미를 알리고 있다.
산초장아찌
에쎈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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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산초 150g, 생강 80g, 고추 5개, 간장 ½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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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
물 3컵, 무말랭이 150g, 다시마 50g, 말린 가죽 2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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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초는 바글바글 끓는 물에 데친다.
- 2
데친 산초는 찬물에 2시간 정도 담가두었다가 물을 버리고 다시 2시간 정도 더 담가둔다.
- 3
채수 재료를 모두 냄비에 넣고 끓여 30분 정도 우린 뒤 건지는 건져 낸다. 채수에 생강, 고추, 간장을 넣고 10분 정도 끓인 다음 건지를 건져 낸 뒤 식힌다.
- 4
산초의 물기를 없앤 뒤 간장물에 담근다.
- 5
3일간 산초를 간장물에 담가두었다가 간장물만 따로 끓여 산초에 다시 붓는다. 이 과정을 1번 더 반복한 뒤 서늘한 곳에 둔다. 1달 정도 두었다 먹는다.
애동고추볶음
에쎈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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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애동고추 100g, 깨소금·들기름 1큰술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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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
집간장 1큰술, 물 3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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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는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센 불에 볶는다.
- 2
볶는 동안 집간장과 물을 섞는다.
- 3
애동고추가 노릇노릇해졌을 때 양념장을 붓는다.
- 4
한소끔 끓으면 불을 끈다. 고추에 깨소금을 뿌려 섞은 뒤 접시에 담는다.
산초표고버섯전
에쎈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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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산초 100g, 마른 표고버섯 7개, 느타리버섯 70g, 감자 1개, 밀가루·통들깨 2큰술씩, 간장 1큰술, 소금 1작은술, 들기름·식용유 적당량씩
- 1
산초는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쳐 찬물에 2시간 정도 담가두었다가 물을 버리고 다시 2시간 정도 더 담가둔다.
- 2
마른 표고버섯은 미지근한 물에 불린다.
- 3
불린 표고버섯은 곱게 채 썬다.
- 4
느타리버섯은 곱게 찢는다.
- 5
감자는 곱게 채 썬다.
- 6
물기를 없앤 산초와 버섯, 감자, 밀가루, 통들깨, 간장, 소금을 볼에 한데 넣고 고루 버무려 반죽한다.
- 7
들기름과 식용유를 동량으로 섞어 팬에 두르고 반죽을 한 숟갈씩 떠 올린 뒤 눌러 노릇하게 굽는다.
마구이
에쎈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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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마 300g, 대추 3개, 들기름·깨소금 1큰술씩, 굵은소금 1작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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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는 껍질을 벗겨 가로 3cm, 세로 4cm 크기로 도톰하게 썬다.
- 2
대추는 돌려 깎아 씨를 발라내고 곱게 채 썬다.
- 3
팬에 들기름을 두른 뒤 마를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 4
대추, 깨소금, 굵은소금을 고루 섞는다.
- 5
마를 접시에 담고 대추, 깨소금, 굵은소금 섞은 것을 올린다.
모둠버섯밥
에쎈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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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
쌀 1컵, 새송이버섯 80g, 능이버섯·싸리버섯· 마른 표고버섯·느타리버섯 50g씩, 집간장·들기름 2큰술씩, 마른 표고버섯 불린 물 1½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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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장
고추 3개, 물 3큰술, 집간장 2큰술, 참기름·통깨 1큰술씩
- 1
쌀은 밥 짓기 1시간 전에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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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송이버섯은 반으로 자른 다음 얇게 손으로 찢는다.
- 3
능이버섯은 흙만 털어 내고 끓는 물에 데친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찢는다.
- 4
싸리버섯은 뜨거운 물에 데친 뒤 하루 정도 물에 담가 두었다가 얇게
손으로 찢는다.
- 5
마른 표고버섯은 물에 충분히 불린 뒤 모양을 살려 얇게 썬다.
- 6
느타리버섯은 먹기 좋은 크기로 찢는다.
- 7
새송이버섯, 마른 표고버섯, 느타리버섯은 볼에 담고 집간장, 들기름을 넣고 양념이 배도록 조물조물 무쳐 볶는다.
- 8
새송이버섯, 마른 표고버섯, 느타리버섯은 볼에 담고 집간장, 들기름을 넣고 양념이 배도록 조물조물 무쳐 볶는다.
- 9
냄비를 불에 올려 센 불에 7분 정도 끓이다가 중간 불로 줄여 5분 정도 둔다. 약한 불로 줄여 충분히 뜸을 들인 다음 불에서 내린다.
- 10
고추를 곱게 다진 뒤 양념장 재료를 모두 섞는다. 버섯과 밥을 고루 섞어 그릇에 담고 양념장을 곁들인다.
여법(如法)이란 종교적 의미 외에 ‘바른 도리에 들어맞음’을 뜻한다. 음식에 있어 여법이라 함은 바른 도리에 들어맞는 음식일 것이다. 자연 순리에 맞춰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니 당연히 몸에 이롭고 별다른 조리법도 필요 없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법한 사찰 음식이고, 법송 스님의 음식 또한 그러하다. 열두 달 제철 음식 중 이달에는 들깨송이, 버섯, 마, 산초, 애동고추로 사찰 밥상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