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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홍차

On October 07, 2014

쌀쌀한 가을바람이 따뜻한 차 한 잔을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다. 티폿에 찻잎을 우려내 미리 데운 찻잔에 조심스럽게 따른 맑고 향기로운 홍차 한 잔이 우아한 시간을 선물한다.

영국의 홍차 이야기

영국에 차 문화의 씨를 뿌린 사람은 포르투갈 출신의 왕비 캐서린이다. 그녀가 1662년 영국으로 시집올 때 지참금으로 홍차와 관련이 깊은 두 가지 물건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인도의 식민지 영토이고, 하나는 대량의 설탕이다. 동양에서 들어온 귀한 차에다가 또 하나의 귀한 식품인 설탕을 함께 마시는 행위는 영국 귀족들이 다소 사치스러운 홍차 문화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18세기 중반부터는 새로 발견한 아메리카 신대륙이 차 소비지로 등장한다. 신대륙 사람들은 영국인과 마찬가지로 차를 무척 좋아했다. 영국이 어려운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신대륙으로 가는 차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 신대륙 사람들이 차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이 발생한다. 사태가 더욱 악화되자 결국 차 상자를 바다에 집어 던지는 일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양국 간에 전쟁이 발발하는데 그것이 1773년에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이다. 신대륙 사람들은 이 전쟁을 계기로 급기야는 미국의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19세기 중엽에는 미국과 영국 범선들이 중국 푸젠 성에서 런던으로 차를 싣고 가는 경쟁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중국과 차 무역을 하는 데 있어서 영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차 대금으로 해마다 엄청난 돈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결국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을 싸게 재배해서 중국에 몰래 팔아 차 무역으로 인해 빚어진 재정 적자를 메웠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아편을 금지했고 영국은 아편을 팔기 위해 ‘아편전쟁(1840)’을 일으켰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870년경까지 차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했다. 양도 엄청났지만 그 무역으로 생기는 이윤도 엄청났다.

여유가 생기자 영국은 다른 나라에서 차를 만들 궁리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낙점된 곳이 바로 인도다. 실론 섬(지금의 스리랑카)은 원래 커피가 많이 나는 곳이었으나 1869년 이후에 병충해로 커피 농장이 전멸했고 그 후 인도 아삼 지역의 차나무를 옮겨 심었다. 그것이 실론티다.

어떻게 고를까

홍차는 카멜리아 시넨시스(동백나무과)라는 차나무에서 채취된 찻잎을 발효해 만든 차다. 하지만 발효나 제다 과정에 따라 수많은 종류로 나뉜다. 발효를 할수록 녹차→백차→황차→청차(우롱차)→홍차→흑차 등 전혀 다른 풍미의 차가 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조되다 보니 브랜드마다 홍차 맛이 신기할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홍차 종류는 크게 스트레이트 티, 블렌디드 티, 플레이버 티 등 3가지로 나눈다. 스트레이트 티는 보통 원산지에 따라서 구분하는데 보통 본래 차의 색상과 향을 즐기면서 마신다. 세계 3대 홍차라는 인도의 다르질링, 실론의 우바, 중국의 기문이 이에 속한다. 블렌디드 티는 제조 회사별로 여러 산지의 찻잎을 섞어 만든 것으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오렌지 페코 등이 있다. 플레이버 티는 찻잎에 향을 가미한 것인데 얼그레이티, 망고티, 레몬티 등이 해당된다. 고산지대에서 나는 다르질링과 함께 인도산이지만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자라고 향이 강한 아삼티는 주로 밀크티를 마시는 데 이용된다.

제대로 즐기려면…

질 좋은 홍차를 샀다면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차는 온도와 습도, 빛 등에 의해 변하기 쉬우므로 캔이나 유리병, 도자기에 담고 밀봉해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홍차를 더욱 맛있게 즐기려면 티폿과 찻잔은 반드시 미리 데워 예열하는 것이 좋다. 또 홍차를 우리는 물은 팔팔 끓여야 하는데, 물이 끓으면 물의 산성 성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차가 지닌 고유의 향과 색이 가장 잘 우러날 수 있다. 그리고 신선한 물, 즉 산소를 많이 함유한 물을 사용하면 차 맛이 좋다.

홍차를 만드는 물에서 중요한 것은 산소 포화도이다. 산소가 많이 함유된 물이어야 차를 우릴 때 찻잎이 티폿 안에서 점핑해 맛있는 성분이 더 많이 나온다. 때문에 흐르는 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고 정수기 물을 사용할 경우엔 물을 병에 담고 흔들어서 산소를 넣어주면 좋다. 또 갓 끓인 물을 사용하되 반복해서 끓인 물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홍차 잎을 너무 짧은 시간 우리면 홍차 본연의 맛이 다 나오지 못한다. 3분 이상 우리는 게 좋다. 보통 3분에서 5분 정도가 마법의 시간으로 불리며 홍차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홍차 종류별로 우리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간혹 홍차 속 카페인을 우려해 꺼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홍차의 카페인은 폴리페놀이라는 성분 때문에 인체에 흡수되지 않고 몸 밖으로 모두 빠져나간다. 또한 홍차 한 잔에는 사과 여섯 개 분량의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다.

홍차의 주성분은 타닌, 카페인, 아미노산과 각종 비타민이다. 특히 타닌은 쓴맛을 내는 폴리페놀 일종으로, 중성지방을 분해시켜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며, 콜레스테롤과 혈당치를 낮춰준다. 또 홍차에 함유된 아스파라긴산, 알긴산, 글루타민 등 아미노산은 감칠맛을 내는데, 장염 비브리오균 등의 병원균을 격퇴하며 바이러스를 억제하므로 감기에도 좋다. 여기에 찻잎과 함께 각종 허브와 향신료, 과일을 블렌딩해 마실 수 있기 때문에 개인 취향에 맞춰 차를 즐길 수 있다.

애프터눈 티

영국 사람은 하루 7~8회 티타임을 갖는다. 그중 점심과 저녁 식사 중간에 즐기는 애프터눈 티는 홍차 문화가 발달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애프터눈 티는 각종 빵과 케이크, 샌드위치 등 3단 트레이에 담아낸 간식과 함께 즐기는데, 음식을 담는 위치, 먹는 순서가 있다. 가장 밑에서부터 먹기 시작해 맨 위에 있는 접시의 디저트를 먹는다. 보통 1단에는 스콘과 샌드위치, 2단에는 케이크 등 베이커리류, 3단에는 쿠키와 마카롱, 설탕에 절인 과일 등 달콤한 과자류가 놓인다.

전통적으로 홍차에 곁들여 먹는 음식 중 스콘은 옥수숫가루를 반죽해 삼각형 모양으로 구운 것으로 입안에서 부스러지는 부드러운 맛이 독특한데,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 케이크도 홍차에 잘 어울린다. 홍차는 원래 약간 떫고 쓴맛이 나는데 케이크의 단맛이 이를 감싸준다. 그러나 단맛이 강하거나 크림이 많은 케이크보다는 가벼운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머핀이나 파이가 티타임에는 더 잘 어울린다. 건포도, 무화과, 바나나 등 과일을 넣어 구운 스콘이나 머핀이면 홍차의 향긋함과 잘 어울린다. 또 티타임에는 쿠키나 비스킷보다 길쭉하고 달지 않은 비스코티가 주로 사용된다.

영국식으로 3단 트레이의 격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홍차 한 잔과 함께 과일이나 빵, 떡 한 조각으로 오후의 출출함을 달래보자. 홍차 외에 허브티나 꽃차를 준비하면 아이와 함께 애프터눈 티를 즐기기에도 손색없다.

홍차를 마시는 데 필요한 도구
처음부터 다구를 모두 갖추고 홍차를 즐기기란 쉽지 않다. 필요한 다구를 전부 갖추려다 보면 홍차를 즐기기 전에 질려버릴 수 있다. 집에 흔히 있는 머그컵에 간편한 티백 홍차를 즐겨도 그만이다. 단, 홍차를 좀 더 다양하게 즐기고 싶다면 기본 도구를 갖춰두는 것이 좋겠다.

스트레이너
다 우려낸 찻잎을 걸러 내는 거름망과 같은 도구이다. 티폿에 우려낸 차를 찻잔에 따를 때 찻잎이 딸려 들어가는 것을 방지해준다. 구멍이 작고 촘촘한 것이 자잘한 찻잎까지 잘 걸러줘 좋다.

티 메이저
일반적으로 티스푼이라 부르지만, 홍차의 계량만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티메이저 또는 캐디스푼이라 한다. 기본적으로 용량이 작은 것은 찻잎 3g을 계량할 수 있으며, 큰 것은 5g을 계량할 수 있어 1,000cc 정도의 용량을 갖는 티폿에 홍차를 우려내는 경우에 사용된다. 티 메이저가 없다면 티스푼을 이용할 수도 있는데, 소복하게 세 번 뜬 분량이 3g 정도 된다.

온도계
홍차를 우리는 물의 온도를 맞출 때 사용한다. 홍차는 섭씨 100℃의 펄펄 끓는 물로 우려야 한다. 홍차는 녹차나 커피와는 달리 고온의 물이 필요하다. 홍차 향미의 주요 성분인 폴리페놀류는 물이 뜨거워야 잘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이 식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티폿
홍차를 우려낼 때 필요한 찻주전자로 유리 계량컵이나 용량이 큰 머그컵 또는 가정에서 물을 끓일 때 쓰는 주전자로 대체할 수 있다. 제대로 갖추고자 한다면 홍차를 우려내는 용도의 티폿과 우린 홍차를 걸러 담는 티폿, 두 개가 필요하다.

찻잔
홍차를 마시는 찻잔은 주로 입구가 벌어져 있다. 이는 커피와는 다르게 향을 느끼며 마시는 것이 홍차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주로 보온성을 위해 도자기로 만든 것이 많고 홍차의 물빛을 즐기려면 유리잔이나 흰 도자기 찻잔이 용이하다.

가을에 어울리는 홍차를 추천해주세요
가을에는 강한 향에 개운한 맛과 감칠맛이 있는 실론티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노란 국화꽃차를 추천합니다. 또 북스쿡스의 인기 메뉴이기도 한 랍상소우총은 솔잎을 태워 만들어 스모키한 소나무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 쌀쌀해진 날씨에 딱입니다. 가을에 마시기좋은 홍차를 직접 음미하며 가을을 느끼길 권합니다.

티백 홍차를 맛있게 우려내는 방법이 있을까요?
홍차를 우려내는 시간에 관해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자신에게 맞는 맛의 홍차를 즐기기 위해서는 우려내는 시간 또한 스스로 여러 번 시도를 거쳐 찾아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티백 홍차를 즐긴다면 찻잔에 끓는 물을 부은 다음 티백을 넣는 것이 순서예요. 티백을 넣고 물을 부으면 떫은 성분이 지나치게 우러나옵니다. 티백을 넣은 뒤에는 뚜껑을 덮어 향과 열이 날아가지 않게 1~2분 우립니다. 대부분 홍차 티백 뒷면에는 우리는 시간이 3분이라고 표시돼 있지만 우리나라 물은 차가 빨리 우러나는 편이기 때문에 1~2분이면 적당합니다. 떫은 성분이 우러나올 수 있으므로 티백은 절대 꾹 누르거나 흔들어 짜내지 마세요.

홍차를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요?
홍차에 우유나 레몬을 넣어 마시면 색다르게 즐길 수 있어요. 우유는 약간 따뜻할 정도로 데우고, 레몬은 향기가 없는 아이스티에 넣는 게 좋습니다. 사과 맛 나는 홍차를 만들고 싶다면 잘 씻은 사과 껍질을 물에 넣고 끓여 그 물로 홍차를 우려내면 됩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위스키 몇 방울을 떨어뜨려 마시면 좋고 홍차에 계피를 넣어도 독특한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홍차의 상미 기간이 지났는데 마셔도 될까요?
홍차는 밀봉 포장과 낮은 상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유통기한은 통상 3년으로 보는데 밀봉이 잘된 경우라면 기간에 상관없이 마셔도 됩니다. 차로 마시기 꺼려질 경우에는 찻잎을 넣고 달걀을 삶거나 찻물을 우려 화초에 뿌려주는 것도 좋습니다.

도움말을 준 정영순 대표는…
티 카페 북스쿡스 정영순 대표는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을 따라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영국 차와 음식을 공부했다. 그 영향으로 티와 티 푸드, 티 웨어 모두 정통 영국식을 고수하고 있다. 요리에 관심이 많아 요리연구가 한복려 원장에게 궁중 음식, 떡 등을 사사했고 전통주, 약선 등 다양한 요리 분야를 섭렵했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외국 요리 서적과 찻잔, 식기 도구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북스쿡스에서 애프터눈 티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따뜻한 차 한 잔을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다. 티폿에 찻잎을 우려내 미리 데운 찻잔에 조심스럽게 따른 맑고 향기로운 홍차 한 잔이 우아한 시간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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