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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쎈>이 찾아간 심야식당

상수동, 무명집

On December 27, 2013

검은 허공 빽빽이 하얀 눈발 날리는 밤, 멀리서 그리운 이가 오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밤에 희뿌연 막걸리를 탁자에 올린다. 구수하고 달달하고 시금털털한 한 모금이 배 속을 달군다.

1 작은 테이블과 넓은 테이블이 모두 있어 단체 모임을 하기에도, 친구와 오순도순 술잔 기울이기에도 좋다.
2 빈티지한 인테리어에 젊은이들도 부담 없이 모여든다.

긴 창 앞에 앉아 막걸리를 따르면

겨울 어스름,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탁배기 한 잔 걸치던 작은 주막은 외로운 이들의 사랑방이었다. 이름도 없이 모여들던 곳이지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자리였다. 무명집 역시 이름 없이 손님들을 맞는다. 겨울밤이 길기만 한 달뜬 청춘들이나 하루 장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드는 주위 사장들까지, 모두 테이블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막걸리를 마신다. 쨍하니 차가운 막걸리는 왜인지 추운 겨울에 더 어울린다. 김치 한 보시기면 막걸리 한 주전자가 달다. 실제로 이맘때는 가을에 탈곡한 햅쌀로 빚은 술이 나올 때라 술맛이 더 좋다. 이곳에서는 전국 각지의 막걸리 장인들이 빚은 꿀맛 같은 막걸리를 판매한다. 종류가 그리 많지 않지만 품질로 승부한다. 가장 인기가 높은 막걸리는 전통술 담그기 무형문화재 장인이 만든 송명섭막걸리,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씁쓸함이 오히려 깔끔하다. 아직은 인생의 시금털털함이 어색한 이들은 대대포막걸리로 손을 뻗는다. 담양의 생대나무 잎을 넣고 빚어 은은한 단맛이 난다. 유난히 새금한 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금정산성막걸리를 찾는다. 막걸리를 찾는 이들은 다양하다. 빈티지하지만 적당히 깔끔한 인테리어에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들은 물론 젊은이들의 출입도 잦다.

3 자개상에 오른 안주는 홍어삼합. 코를 톡 쏘는 홍어는 심하게 쿰쿰하지 않아 깔끔하게 즐길 수 있고, 된장과 각종 한약재를 넣어 구수하게 푹 삶은 수육은 야들야들 부드럽다.
4 가장 인기 많은 안주인 모둠전. 주문이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바로 부쳐 기름 전내 없이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5 자희향 생탁주와 대대포막걸리, 송명섭막걸리, 금정산성막걸리 등 맛 좋기로 유명한 것들만 모아놓았다.

도톰한 호박전에 막걸리 한 모금

이곳의 주인장은 전라도 출신, 30여 년 넘게 음식점을 꾸려온 손맛 좋은 어머니 밑에서 남도의 맛을 체화하며 자랐다. 본업이 칼럼니스트로 감수성이 남다른 주인장은 자신이 자라며 맛본 풍성한 전라도의 맛과 그와 어우러져 달게 녹아내리는 막걸리의 맛을 많은 이들에게 내어주고 싶어 가게를 열었다. 역시 전라도 출신인 주방 실장의 내공 있는 손끝에서는 고소한 안주가 야무지게 쏟아져 나온다. 달걀옷 여러 번 입혀 단정하게 모양 잡아 기름에 지진 도톰한 전은 달고 고소하며, 코를 톡 쏘는 홍어와 된장약초물에 구수하게 삶은 수육이 올라간 홍어삼합은 꽉 찬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곁들인 묵은지는 주인장의 어머니가 직접 담가 올린 것, 이것만 있어도 얼마든지 막걸리를 마실 수 있을 듯하다. 양도 넉넉해 곡기인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배가 꽉 들어차지만 손님들의 젓가락은 밤새 멈출 생각을 안 한다. 여럿이 왔다면 전과 찌개, 달걀프라이 등이 나오는 가정식 술상을 시켜도 좋다. 겨울밤은 길고 술은 달다.

  • 메뉴 송명섭막걸리 8천원, 자희향 생탁주 1만 8천원, 모듬전·가정식 술상 2만원씩, 홍어삼합 2만 3천원
    영업시간 17:00~02:00
    위치 서울 마포구 상수동 329-7 2층
    문의 02-323-2016

검은 허공 빽빽이 하얀 눈발 날리는 밤, 멀리서 그리운 이가 오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밤에 희뿌연 막걸리를 탁자에 올린다. 구수하고 달달하고 시금털털한 한 모금이 배 속을 달군다.

Credit Info

포토그래퍼
김나윤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