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출출하여 무언가 뜨끈하고 얼큰한 것이 먹고 싶은 추운 가을 저녁, 옷깃을 여미고 중국집에 들어가 앉아 짬뽕을 주문한다. 코끝을 찌르는 익숙한 향, 길게 썬 해산물과 돼지고기 몇 점 올려 빨간 고추기름 묻은 면을 후루룩 들이켜다보면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배 속까지 내려간다. 배 속이 얼큰하게 꽉 들어찬 포만감, 원래는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든 ‘이걸로 됐다’. 익숙한 동네든 초행길의 낯선 외곽 도로이든, 낮이건 밤이건 관계없이 마음의 궁핍함과 날 선 기분을 무디게 만드는 음식 ‘짬뽕’ 이야기.
목란의 굴짬뽕. 탱글탱글한 굴과 신선한 해산물을 부추와 함께 불맛 나게 볶았다. 딱 적당한 농도의 닭 육수 국물이 얼큰하게 입에 착 붙는다. 캡사이신을 넣어 맵기만 한 짬뽕과는 비교 불가.
중식도 일식도, 한식도 아닌 ‘한국식’ 면 요리
얼큰한 국물에 실한 건더기와 술술 넘어가는 굵은 국수 가락, 짬뽕은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중국집에서 팔지만 막상 중국 본토에는 없는 우리네 음식이다. 짬뽕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것은 ‘나가사키 유래설’로 나가사키 지방에 살던 화교들이 고향의 음식을 변형해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항구도시인 나가사키에는 중국 푸젠 성 출신 화교들이 다수 거주했는데 그중에는 가난한 중국 유학생들과 항구 노동자가 많았다. 그들에게 중국인 조리사 ‘진평순’이 해물이나 고기, 채소 등 있는 재료를 웍에 볶아 육수를 붓고 면을 더해 팔며 유명해졌고, 진평순의 고향인 푸젠 성의 ‘밥 잘 먹었냐’는 인사인 ‘샷폰’이 ‘차폰’으로, 이것이 일본어 ‘잔폰’이 되어 나가사키 지방의 명물 음식인 ‘나가사키 잔폰’이 되었다. 짬뽕이라는 말도 이 ‘잔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설로는 ‘인천항 독자 발생설’로 20세기 초, 산둥지역 중국인들이 대거 인천항에 몰려들었는데 당시 화교들이 국내에 있는 재료를 사용해 중국의 ‘초마면’과 비슷한 음식을 만들었고, 여기에 일본의 ‘잔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산둥지방의 가정식 초마면은 집에 있는 재료를 웍에 볶은 뒤 육수를 붓고 끓여 면을 넣어 먹는 음식으로 그 자체로도 정형화된 레서피가 없다. 어느 설이 맞든지 짬뽕은 중국과 일본, 한국의 식문화가 모두 ‘짬뽕’된 음식인 것만은 확실하다. 중국의 요리에서 파생되어 일본어 명칭이 붙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완성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짬뽕이다.
얼큰한 짬뽕, 해물이냐 돼지고기냐
초마면이나 일본의 나가사키 짬뽕은 국물이 하얗다. 국내에서도 1960~1970년대 전까지는 하얀 국물이었던 것이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어 고춧가루를 넣고 빨갛게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인기를 끌면서 ‘짬뽕=매콤하고 얼큰한 국물’이라는 공식이 세워졌다. 중국의 초마면은 국물이 자작하다 싶을 만큼 많지 않고, 일본에서는 면 요리를 먹을 때 국물보다도 면 자체를 중시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독 국물을 중시하는 문화다. 우동 광고의 카피도 ‘국물이 끝내줘요’일 정도다. 짬뽕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주로 면보다는 국물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짬뽕은 정해진 레서피가 없기 때문에 무엇으로 육수를 내든 만드는 사람 마음이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닭 육수를 베이스로 한다. 여기에 고춧가루나 청양고추로 매콤한 맛을 내고 홍합이나 오징어 등의 해산물과 몇 가지 채소를 볶아 함께 끓여 불맛과 복합적인 감칠맛을 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짬뽕에 해물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지만 처음에는 해물을 넣지 않는 곳도 많았다. 그 대신 닭 육수를 베이스로 하여 돼지고기를 얇게 썬 것이 고명으로 들어가 국물 맛을 한층 진하고 묵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옛날 짬뽕이라고 하면 돼지고기 고명을 추억하는 이들이 많다. 아주 가끔 닭 육수 대신 멸치로 육수를 내는 특이한 곳도 있었다.
채소의 경우에는 철에 따라 들어가는 종류가 바뀌었는데 여름에는 부추, 겨울에는 배추 등 그때그때 있는 것을 넣어 만들었다. 짬뽕의 원류라고 불리는 중국의 초마면 자체가 정해진 재료가 없고, 지금은 어디가 원조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네 식으로 변형된 것이 짬뽕이기에 ‘원조 짬뽕은 ××다’라거나 ‘해산물 건더기가 많아야 진짜 맛집 vs. 돼지고기가 들어가야 진짜 맛집’ 등의 짬뽕을 둘러싼 논쟁도 무의미하다.
오죽하면 무엇이든 비벼서 섞는 것을 표현할 때 ‘짬뽕한다’고 하고 어처구니없이 이것저것 뒤섞인 상황일 때 ‘웃기는 짬뽕’이라 할까.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의 입맛, 하지만 그 강도와 선호하는 맛은 제각각인 것처럼 짬뽕도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만큼 ‘짬뽕’은 우리네 삶과 살을 부비며 발전했다.
진짜 짬뽕 맛집을 둘러싼 논쟁
영원히 풀리지 않을 한국인의 고뇌,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기로 앞에서 최근에는 짬뽕에 손을 들어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짬뽕만을 전문으로 다룬다는 짬뽕 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짬뽕 맛집’이라 소문난 가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그렇게 온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 보니 다양한 논란도 함께 따라온다.
몇 년 전 미디어의 맛집 선정 기준에 대한 불신이 사회적으로 불거졌을 당시, 대표적 사례가 ‘전국 짬뽕 5대 맛집의 진실’이었다. 한 매체에서 ‘전국 5대 짬뽕’을 소개한 뒤 해당 가게들에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알고보니 어느 맛집 블로거가 별생각 없이 주관적으로 추천 가게를 적으면서 ‘5대’라 붙인 것을 매체에서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었다. 물론 소개된 그곳들도 많은 사람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집이기는 했지만 마치 절대적인 기준인 것처럼 소개된 것이 논란을 일으켰다.
재미있는 것은 그 후에도 ‘짬뽕 맛집’의 인기가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만의 베스트 짬뽕을 찾아 ‘짬뽕 순례’를 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짬뽕의 최강자를 가리는 데 절대적인 기준은 있을 수 없겠지만, 한 그릇 자체로의 완성도를 논할 수는 있거니와 그만큼 ‘맛있는 짬뽕’을 향한 국민의 열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맛있는 서울 짬뽕을 찾아서
70년 넘은 노포의 맵지 않은 옛날 굴짬뽕, 안동장
1948년에 문을 열어 전국에서도 오래된 음식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안동장, 화교 출신이 운영하는 이곳은 처음에는 청요릿집으로 시작했으나 짬뽕과 군만두 등이 유명세를 타며 지금은 식사 위주의 중식당으로 바뀌었다. 서울에서 굴짬뽕을 제일 먼저 팔기 시작한 곳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명성을 지닌 곳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안동장 짬뽕은 국물이 하얗고 맵지 않다. 사람들이 얼큰한 빨간 짬뽕을 원해 빨간 국물의 매운 버전도 판매하지만 그마저도 요즘 짬뽕의 평균치보다는 덜 맵다. 굴 혹은 해산물과 함께 배추 건더기가 눈에 띄게 많고 기름기가 많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을 바라는 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배에 ‘기름칠’ 좀 해야 잘 먹었다고 느꼈던 옛날식 별미다. 자극적이지 않은 고기 육수에 굴 내음이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가득 들어간 배추가 삼삼한 단맛을 낸다. 추운 날 더 생각나는 한 그릇이다. 시간대에 따라 요리의 퀄리티가 약간 들쑥날쑥하다. 중국식의 심심한 물만두도 추천한다.
-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3가 315-18
영업시간 12:00~15:00, 17:00~21:00(일요일 휴무)
메뉴 굴짬뽕·삼선짬뽕 8천원씩
문의 02-2266-3814
돼지고기와 해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진한 맛, 영빈루 홍대 직영점
짬뽕 한 그릇을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던 송탄 ‘영빈루’의 첫째 아들이 홍대에 직영점을 냈다. 바로 인근에는 셋째 아들이 운영하는 ‘초마’가 짬뽕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며 매일같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장 상인이나 노동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짬뽕을 팔며 사랑받던 영빈루는 20여 년 전부터 급격히 유명세를 타더니 전국 5대 짬뽕의 열풍과 함께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곳 짬뽕의 특징은 얇게 채 썬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올린 옛날식 돼지고기 짬뽕이라는 점이다. 닭과 오리 날개 등으로 우린 육수에 돼지고기, 홍합, 꼬막, 오징어 등의 맛이 더해진 진하고 칼칼한 국물이다. 옛날처럼 철에 따라 콩나물이나 부추 등 들어가는 채소가 달라지기도 한다.
홍대 직영점은 기본적으로 본점과 비슷한 조리법을 사용하지만 만드는 이가 다르다 보니 맛도 약간 다르다. 더 깔끔하다.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굳이 먼 길 갈 필요 없고 매장도 쾌적하니 서울 사는 짬뽕 마니아라면 가볼 만하다. 본점이 식사 위주라면 홍대점에서는 더 다양한 요리와 함께 술을 즐기기에도 좋다.
- 주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4-4 2층
영업시간 11:00~02:00
메뉴 짬뽕 6천원, 찹쌀 탕수육 1만6천원
문의 02-322-8884
신선한 재료로 내는 탄탄한 기본기의 맛, 목란
연희동은 중국 음식 좀 좋아한다는 이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오랜 세월을 지닌 차이나타운으로 화상들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규모의 중식당이 줄지어 있다. 우리나라에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중국 본토의 메뉴를 내놓는 곳이 많다. ‘목란’은 본래 서대문의 작은 골목길에 위치해, 아는 사람만 찾는 마니아들의 가게였는데 최근 연희동으로 이사했다.
연희동은 짬뽕 중에서도 굴짬뽕으로 유명하다. ‘매화’나 ‘이화원’ 등이 명성을 얻고 있다. 목란도 역시 굴짬뽕으로 유명하니 이제 연희동에서 굴짬뽕으로 유명한 집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목란의 짬뽕은 개성보다도 좋은 재료와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높은 완성도로 인정받는다. 질 좋은 해산물과 채소를 웍에 솜씨 좋게 볶아 적당히 불맛을 내고 제대로 우린 닭 육수로 깊은 맛을 낸다. 얼큰하고 매콤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맛, 대중적으로 누구나 맛있다고 할 만하다. 여기에 중국에서 공수한 부추를 넣는 것이 목란만의 강점인데, 우리 부추보다 향과 맛이 강해 국물 맛을 더 개운하게 한다. 최근에는 부추 수급에 문제가 있어 국산 부추를 넣을 때도 있다. 동파육이나 유린기, 군만두 등 거의 모든 메뉴가 수준 이상이다.
-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32-28
영업시간 11:30~15:00, 17:00~22:00
메뉴 짬뽕 8천원, 팔보채 4만원
문의 02-732-0054
컬트 와인이 아니라 컬트 짬뽕, 경발원
허름한 외관의 작은 중국집 경발원. 여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낡은 가게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울에서 가장 개성 강한 중식을 내는 곳 중 하나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백짬뽕과 깐풍기. 빨갛지도 새하얗지도 않은 백짬뽕 국물은 언뜻 보기에 싱거워 보이지만 막상 한 입 먹어보면 깜짝 놀랄 만큼 맵다. 고춧가루로 기름을 내는 대신 말린 청양고추씨를 넣어 매운맛을 내기 때문에 입안이 화끈거리지만 속은 맵지 않은, 휘발성이 강한 칼칼하게 매운맛이다. 닭 육수의 감칠맛은 살아 있되 농도 자체는 무겁지 않아 시원하게 얼큰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해산물과 채소 등의 재료도 제대로 볶아 불맛도 살아 있다. 다른 집보다 다소 굵은 면발은 탄력이 살아 있으면서도 국물을 잘 머금고 있어 면과 국물이 제대로 어우러진다. 또 다른 유명 메뉴인 깐풍기를 주문하면 주인장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바로 생닭을 손질한다. 튀김옷 없이, 손질한 닭 그대로 튀겨 부추와 마른 홍고추씨, 청양고추 다진 것을 잔뜩 넣어 웍에서 볶은 깐풍기는 이제껏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튀김옷을 입히지 않은 닭은 그 자체로 바삭하고 부드러우며, 소스는 없지만 다량 들어간 마른 고추가 입안을 화끈하게 만든다. ‘맛있게 맵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 주소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261-1
영업시간 12:00~15:00, 17:00~21:00(일요일휴무)
메뉴 백짬뽕 5천원, 깐풍기 2만5천원
문의 02-2244-2616
착한 짬뽕, 신성각
중국 음식이 MSG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실 MSG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까지 나온 마당에 문제는 MSG 양을 얼마나 잘 조절해(무식하게 때려 붓지 않아) 균형 잡힌 음식을 내는지다. 중식을 먹으면서 MSG는 절대 먹지 않겠다는 이는 드물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중국집이 있다. 허름한 외관에 한곳에서 30년을 이어온 뚝심 있는 중국집 신성각, 이 집의 짬뽕은 집에서 끓인 듯한 맛이 난다. 안 좋게 표현하자면 ‘무언가 하나 빠진 듯’하다. 기존의 짬뽕 국물을 기대하고 간다면 틀림없이 실망하고 만다. 하지만 꾸준히 단골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MSG를 넣지 않아서가 아니다. 자꾸만 끌리는 맛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이건 짬뽕이건 주문이 들어가면 이곳 주인이 그 자리에서 바로 면을 치기 시작한다. 최근 서울 시내에서는 보기 힘든 수타면이다. 짬뽕 국물은 김칫국처럼 멀건 색이다. 고추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말간 육수에 우리 식으로 고춧가루를 풀어 끓이기 때문에 그렇게 맵지도 진하지도 않다. 탄력 없이 풀어지는 밀가루 면과 멀건 국물이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난다. 곱게 썬 채소만 보아도 한 그릇에 담은 정성이 느껴진다. 춘장을 충분히 볶은 빡빡한 간짜장과 심심한 우동도 인기다.
- 주소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2-463
영업시간 오전 11시 37분~오후 8시 30분
메뉴 짜장면 4천원, 짬뽕·우동 4천5백원씩, 탕수육 1만3천원
문의 02-716-1210
몹시 출출하여 무언가 뜨끈하고 얼큰한 것이 먹고 싶은 추운 가을 저녁, 옷깃을 여미고 중국집에 들어가 앉아 짬뽕을 주문한다. 코끝을 찌르는 익숙한 향, 길게 썬 해산물과 돼지고기 몇 점 올려 빨간 고추기름 묻은 면을 후루룩 들이켜다보면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배 속까지 내려간다. 배 속이 얼큰하게 꽉 들어찬 포만감, 원래는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든 ‘이걸로 됐다’. 익숙한 동네든 초행길의 낯선 외곽 도로이든, 낮이건 밤이건 관계없이 마음의 궁핍함과 날 선 기분을 무디게 만드는 음식 ‘짬뽕’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