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여행을 떠났다. 아내가 준비해둔 밑반찬도 떨어지고 큰 냄비 가득하던 곰국도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았다. 이 라면 저 라면 돌려 먹기도 지쳤는데 아내가 돌아오려면 아직도 며칠은 더 있어야 한다. 갑자기 간절히 밥이 먹고 싶어졌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갓 지은 밥에 사각사각 신선한 김치를 얹어 먹고 싶었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김치냉장고에서 김치도 꺼냈다. 평소 하지 않아 서툰 김치 썰기마저 즐거웠다. 갓 지은 쌀밥에 김치만으로도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이 부족하거나 없을 때 생기는 것이 욕구(need)이고, 이것이 우리 행동의 동기가 된다. 즉, 밥을 먹고 싶은 욕구가 쌀을 씻고 김치를 써는 행동의 동기가 되고, 욕구를 만족시키면 비로소 우리는 행복해진다. 매슬로는 이런 사람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감에 대한 욕구, 자기 존중 욕구, 자기실현 욕구 등 5단계로 분류하였다. 매슬로의 이러한 욕구이론은 교육, 심리치료, 사회복지 서비스, 직무 동기와 리더십, 광고, 마케팅 등 넓은 영역에 적용되고 있는데 특히 사람에 대한 음식의 역할과도 직결된다.
첫째, 생리적 욕구는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욕구다. 사람은 태어나마자 어머니 젖을 찾고 배고프면 보채고 배부르면 잠든다. 생리적 욕구는 포만감과 미각의 쾌락으로 충족되므로 사람들은 음식의 양과 맛을 중시한다. 군대에서 먹는 초코파이, 가난하던 시절 고봉 밥 한 그릇 등이 생리적 욕구를 잘 설명해준다.
둘째, 생리적 욕구가 만족되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등장한다. 이것은 걱정 없고 편안한 상태를 원하는 욕구다. 아기가 불안하면 빈 젖병을 빨아대지 않는가. 또 무언가 편치 않으면 잘 먹다가도 괜히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가. 사람들은 음식 섭취로 생리적 욕구가 만족되면 음식을 통한 안전한 삶, 또 그것을 넘어 무병장수를 기대한다. 그래서 위생적으로 안전한 음식, 기왕이면 영양 성분과 기능성 성분을 두루 갖춘 음식을 바라게 된다.
셋째,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집단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우호적 관계를 확인하려는 욕구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밥상 공동체에서 가족이라는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어른이 되면 가정을 꾸려 새로운 밥상 공동체에서 소속감의 욕구를 채운다. 특히 학교나 직장에서 식사나 회식 때 왕따를 당한다면 견디기 어려워진다. 음식은 통한 소속감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식, 장례식, 동창회, 직장 회식 등에 열심히 쫓아다니며 함께 더불어 먹지 않는가.
넷째, 자기 존중 욕구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것은 집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칭찬이 자기 존중 욕구를 채워준다. 무언가를 잘했을 때 선사되는 특별식이나 케이크 등이 그 물증이 된다. 어른이 되면 진급, 사업 번창 등을 통해 주위 사람의 인정을 얻어 이 욕구를 채우려 한다. 취임식, 수여식, 기념식 등은 자기 존중 욕구의 충족을 확인하는 행사이고 이때 음식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은 자기 존중 욕구의 충족을 상징하는 셈이다.
다섯째, 자기실현 욕구는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욕구로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다. 음식을 하는 이가 임금의 대령숙수 자리에 올랐다 해서 음식 연구를 게을리하겠는가? 대중의 인정을 받았다 해서 작곡가가 음악을 성의 없게 만들겠는가? 자기실현 욕구는 흔히 어린 시절에 동기가 부여되고 특히 음식이 그 매개체가 되기 십상이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누군가 한 어린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교감하고 격려해주었다 하자. 그 누군가가 선생님이라면 어린이는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고, 신부나 목사라면 훌륭한 성직자가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5단계 욕구는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나타날 수 있으며 그 어떤 욕구도 결코 완벽하게 충족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음식은 욕구의 각 단계마다 사람과 함께한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빵을 먹는다고 해서 빵에 만족하는 단계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빵은 빵에 머물 수도 있지만 자기실현 욕구의 동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5단계 욕구에 대한 음식의 귀중한 역할이다. 사람의 행복을 위한 음식, 그 음식의 윤리적 역할에도 단계가 있는 듯하다.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식품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 분야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 윤리를 대중에 알려 우리 사회에 올바른 식문화가 정립되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