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설날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보면 집 안 가득 전 부치는 기름 냄새와 그날에만 먹을 수 있기에 손꼽아 기다린 음식들이 생각난다. 떡국에 전과 나물 등 어느 집이나 설상에 올리는 음식이 비슷하지만 어머니나 할머니의 손끝을 거쳐야 반드시 그 맛이 나는 내림 음식은 두고두고 기억 속에서 새롭다. 한식 대가들이 기억하는 특별한 맛의 추억에 관하여.
한복선 선생은
궁중 음식의 대가인 고 황혜성 선생의 둘째 딸로 태어나 어머니에게서 궁중음식을 사사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이며 한복선식문화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복선의 추억의 설음식 유자화채
“어린 시절, 설날이 되면 새하얀 푼주에서 노랗고 빨갛게 피어나는 유자화채의 모습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고 황혜성 선생)는 명절만 되면 한희순 상궁이 물려준 백화푼주에 향긋한 유자화채를 가득 담아 모두에게 나눠주었지요. 초겨울 담가둔 유자청에다 단물이 흐르는 귀한 배, 그 시절에는 겨울에나 볼 수 있었던 석류알까지 옆옆이 담아 살얼음 낀 꿀물 부어 내면 온 집 안에 향긋한 내음이 가득 찼습니다. 기름진 명절 음식으로 더부룩해진 속에 시원한 유자화채 한 보시기가 더없이 꿀맛이지요.”
이종임 선생은
식품공학 박사로 어머니인 요리연구가 하숙정 선생의 뒤를 이어 잡지,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서 한식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현재 대한식문화연구원 대표이사이며 수도조리제과전문학교 학장을 맡고 있다.
이종임의 추억의 설음식 조랭이떡월과채
“월과는 원래 박과의 담담한 맛이 나는 채소로 예전에는 말려서 나물로 흔히 해 먹었는데 요즘에는 보기 힘들어 주로 애호박으로 대신합니다. 여기에 쇠고기, 표고버섯, 찹쌀 부꾸미를 채 썰어 각각 양념해 볶은 뒤 버무린 궁중 음식이 바로 월과채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찹쌀 부꾸미를 부치는 수고 대신 떡국에 넣는 조랭이떡을 월과채에 활용해 손님상에 내곤 했습니다. 쫄깃하게 씹히는 조랭이떡과 짭조름하게 양념한 쇠고기와 표고버섯 등이 절묘하게 맛의 조화를 이루지요. 빛깔 고운 파프리카를 넣으면 화려한 모양새가 더욱 예쁘답니다.”
박종숙 선생은
황혜성 선생과 한복려 선생에게서 궁중 음식을, 강인희 선생에게서 반가 음식을 사사했다. 현재 전통 음식연구가로 TV, 잡지 등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경기음식문화원 박종숙 Cooking Academy’를 운영하고 있다.
박종숙의 추억의 설음식 북어껍질만두
“명절 음식을 하다 보면 북어 껍질이 많이 남게 돼요. 저희 집에서는 그 껍질을 오려 만두피 삼아 북어껍질만두를 만들었어요. 설날 늦은 점심 할아버지 친구분들이 오시면 약주상에 올라 늘 환영받던 음식이었답니다. 북어 껍질에 만두소를 돌돌 만 뒤 달걀물을 입혀 지지면 구수한 맛이 좋습니다. 그렇게 만든 만두를 떡국 끓이고 남은 양지머리 육수에 살짝 끓여 내면 속이 꽉 찬 만두와 시원한 국물 맛이 별미랍니다.”
윤혜신 선생은
친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소박한 밥상 차리는 법을 배웠고, 외할머니의 어깨너머로 잔칫날 음식을 배웠다. 시어머니에게는 반가 밥상과 궁중 요리 비법을 물려받았다. 지금은 서울 생활을 접고 충남 당진에 내려가 산과 들에 널려 있는 제철 재료로 만든 건강한 한식을 ‘미당’에서 선보이고 있다.
윤혜신의 추억의 설음식 사태편육
“궁중 음식을 배운 시어머니는 명절 손님상을 차릴 때면 사태편육을 꼭 준비했습니다. 오랜 시간 끓여 기름이 쏙 빠진 담백한 사태편육에 아삭한 파채를 곁들여 내면 속이 든든하면서도 기름진 명절 음식에 물린 손님들이 부담 없이 술과 함께 즐겼지요. 어머니 솜씨를 따라 하다 보니 담백하고 깔끔한 그 맛이 제법 비슷해진 것 같아 뿌듯하고 지금도 종종 만들어 손님상에 올리곤 합니다.”
장향진 선생은
전통 음식연구가이자 약선연구가로 주식부터 후식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의 슬로푸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다미재’를 운영하고 있다.
장향진의 추억의 설음식 북어전
“명절 때면 큰어머니는 제사상에 올렸던 북어를 방망이로 두들겨 달걀물을 입혀 노릇하게 지져주곤 하셨습니다. 비린 음식을 아직도 잘 못 먹는 저는 북어전만큼은 즐겨 먹어요. 오랜 기억 속의 맛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북어를 물에 불린 뒤 물을 꼭 짜서 두어 시간 두었다가 머금었던 물기를 내뱉으면 다시 꼭 짜서 보들보들하게 만들어야 제맛이 납니다. 식어도 비린 맛이 전혀 없고 살캉살캉 씹히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
김윤자 선생은
TV와 잡지를 통해 맛깔난 남도 음식을 선보이는 전통 음식연구가로 인천재능대학교 호텔외식조리과 교수와 한국의맛연구회 부회장을 역임 중이다. 현재 안양요리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김윤자의 추억의 설음식 닭고기북어찜
“저희 집에서 명절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해 먹는 음식이 닭고기북어찜입니다. 미리 만들어두었다가 갈비찜이나 전이 지겨워질 때쯤 내놓으면 환영받는 별미랍니다. 간장과 조청을 넣은 양념장이 달콤 짭조름해 특히 주안상에 올리면 그만이죠. 북어 머리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 깊은 맛이 나고, 닭에 북어와 호두, 밤, 은행까지 넣어 영양도 풍부합니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좋아하는 재료를 하나씩 골라 먹는 재미가 각별하지요. 친정어머니에게 배운 닭고기북어찜을 우리 며느리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어요.”
어릴 적 설날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보면 집 안 가득 전 부치는 기름 냄새와 그날에만 먹을 수 있기에 손꼽아 기다린 음식들이 생각난다. 떡국에 전과 나물 등 어느 집이나 설상에 올리는 음식이 비슷하지만 어머니나 할머니의 손끝을 거쳐야 반드시 그 맛이 나는 내림 음식은 두고두고 기억 속에서 새롭다. 한식 대가들이 기억하는 특별한 맛의 추억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