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소란한 불면의 밤, 차가운 코끝을 녹이는 오뎅 한 그릇이 여기 있다. 굽이굽이 언덕길을 올라간 도심 속 산 중턱에 작은 오뎅집 하나가 노란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1 심야오뎅의 불을 밝히는 대표 김슬옹 씨.
2 손재주가 있는 사장은 자잘한 것을 만들기 좋아한다. 덕분에 가게도 아기자기한 프린트와 소품이 한가득하다.
3 자취방의 한 면을 차지했던 책장을 그대로 남겨놓았다.
4 맛 좋은 심야오뎅은 테이크아웃도 된다. 예쁜 종이 상자에 육수와 오뎅을 따로 담아주는데 위트 넘치는 일러스트 레시피도 함께 담긴다.
자취방에서 시작된 심야의 회동
언덕 꼭대기의 작은 집, 창밖으로 새파랗게 어두운 밤의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던 청년이 있었다. 검도 소년으로 청년기를 보내고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체육인이었지만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근육 아래에는 낭만이 꾸물대는 로맨티스트기도 했다. 그의 손에서는 아기자기한 편지지가, 위트 넘치는 그래픽디자인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회사에 취업했지만 세상이라는 것이 젊은 열기와 낭만으로 달뜬 청년의 마음과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하릴없이 밤을 지새우며 보냈다. 그가 발품을 팔아 얻은 자취방이 위치한 부암동 언덕은 원래 적막하리만큼 고요한 곳이었다. 고즈넉한 동네에서의 삶을 동경하며 부러 고른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동네가 시끄러워졌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집으로 나왔던 인근 카페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다. 워낙 풍경이 좋은 곳이라 그런지 교외로 나들이하듯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어떤 날은 흡사 미사리를 방불케 했다. 가뜩이나 섬세한 청년의 밤은 더 많은 불면으로 채워졌다. 여기까지는 감수성 풍부한 청년의 그저 그렇고 그런 자취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주인 할아버지가 청년에게 지나가듯 말을 건넨다. “동네에 사람도 많아지고, 세들어 사는 방이 목도 좋은데 뭐라도 팔아봐.” 그러고는 자취방이 뚝딱 뚝딱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하얗게 지새운 어두운 밤, 혼자만의 시간을 깨고 스스로 불을 밝혔다. 외로운 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그런 손님들이 와주기를 바라며 심야의 술집을 열었다.
1 문 여는 시간이 들쑥날쑥하다. 일주일에 평균 3~4일 정도만 열고 문 여는 시간은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혹은 오후 10시부터 새벽 4시 정도다. 문 여는 날짜와 시간은 트위터에 미리 공지된다.
2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로 깊은 맛을 낸 국물에 생선 함량 높은 오뎅이 그득하다. 종류도 다양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이곳의 맥주와 사케는 시원하기로 유명하다.
3 미식가 클럽이라고 적힌 까만 종이를 들추면 그날의 특별 메뉴가 보인다. 항상 있지는 않고, 산지 직송한 물 좋은 연어 등이 들어올 때가 있다.
4 아주 작은 공간이라서 사람과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5 그가 직접 만든 편지지에 단골손님의 사연을 타이핑해 편지로 부쳐주었다. 이 외에도 작은 이벤트가 많다.
밤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
그의 직업은 플로리스트다. 매주 국회 의정실에 꽃을 납품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일주일에 3,4일은 새벽까지 오뎅을 끓인다. 그가 플로리스트로 인정받는 동안 자취방에서 시작한 심야오뎅집도 입소문을 타며 꽤나 많은 단골이 드나드는 건실한 동네 술집이 되었다. 별도의 테이블은 서너개밖에 되지 않고, 가장 큰 테이블이 세로로 길게 늘어져 있어 이곳 심야오뎅집을 드나드는 이들이라면 으레 서로 눈인사는 물론 말까지 트게 된다. 호기심에 이끌려 왔다가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해야하는 어색함에 몸서리치는 사람들은 저절로 떠나갔다. 그가 오뎅을 파는 이유는 ‘자신이 있어서’다. 체육인이지만 손끝이 살아 있던 그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했다. 하릴없는 밤이라면 육수를 내어 국수를 말아 먹는 것만큼 딱 들어맞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국물이라면 자신이 있다. 부산에서 해산물 함량 높은, 신선한 오뎅을 만든다는 업자를 소개받았다. 깊은 국물에 탱글탱글하고 쫀득한 질 좋은 오뎅, 이렇게나 축축하고 다정한 음식이라니…. 뜨끈한 오뎅에 차갑게 ‘히야시’된 사케와 맥주를 훌훌 들이켜는 밤, 얼굴은 불콰해지고 마음에는 애수가 넘친다. 그렇게 열리는 밤의 새로운 문에 그도 못 마시는 술을 마시며 빠져들었다. 자기 단골집이라며 한창 작업에 열을 올리던 여자를 데리고 왔던 단골 배우는 결국 그 여자와 이뤄지지 않았다. 그게 분해 지인들과 악단을 만들어 노래를 만들었다. 제목은 ‘심야식당’ 이었다. 이제 그 악단은 매주 금요일 밤마다 이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물론 분위기는 유쾌하다. 밤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간다.
- 위치 서울 종로구 부암동 97-12
영업시간 오후 8시~새벽 2시, 또는 오후 10시~새벽 4시, 여는 날짜 수시 변동
문의 twitter.com/royalsketch, 02-379-0996 (가급적 트위터로 문의)
메뉴 심야오뎅 1만5천원, 야끼소바 9천원, 스팸과 달걀후라이 1만원, 사케 도쿠리 7천원, 맥주 7천원
마음이 소란한 불면의 밤, 차가운 코끝을 녹이는 오뎅 한 그릇이 여기 있다. 굽이굽이 언덕길을 올라간 도심 속 산 중턱에 작은 오뎅집 하나가 노란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