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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의 서울 맛집 이야

송정식당 돼지불꼬지

On October 03, 2013

청계천 복원 당시, 필자는 모 잡지사에서 청계천 복원일에 맞춰 내보낼 특집 기사로 기획된 주변 맛집 취재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청계천 일대의 숨은 맛집을 찾아 소개하자는 취지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나 힘든 작업이었다.

청계천 복원 당시, 필자는 모 잡지사에서 청계천 복원일에 맞춰 내보낼 특집 기사로 기획된 주변 맛집 취재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청계천 일대의 숨은 맛집을 찾아 소개하자는 취지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나 힘든 작업이었다. 청계천 일대의 맛집은 대부분 인근 상인들이나 근처 회사원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이렇다 할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인터넷 블로거의 활동이 활성화되기 이전이고 몇몇 유명 식당 외에는 언론 매체에 소개된 집이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동아일보 사옥에서부터 시작해 광교 일대와 종로, 을지로 일대, 그리고 동대문과 황학동 주변을 중심으로 탐문 작업을 시작했다.
주당으로 유명한 기자 선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숨은 맛집의 정보를 묻기도 하고, 생긴 지 오래되었다는 약국이나 부동산을 찾아가 무작정 맛집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보를 입수하면 곧바로 찾아가 맛을 봤다. ‘진짜다’ 싶으면 체크해두었다가 다음번에 또 찾아갔다. 처음부터 곧바로 취재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렵게 찾은 맛집에서 자칫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골을 상대로 하는 작은 식당 주인들은 매체에 소개되는 것을 꺼린다.) 나는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볼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찾아가는 것을 반복했다. 이렇게 주인아주머니와 안면을 튼 다음, 갑자기 포토그래퍼와 찾아가 배시시 웃으며 취재를 부탁하곤 했는데 이 방식은 꽤나 성공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 방법마저 통하지 않는 지역이 있었다. 바로 동대문종합상가 먹거리 골목이었다.

이 골목은 인근 상인들의 식사나 회식 모임 장소로 각광받던 곳이었다. 대부분의 식당이 상인들을 상대하다보니 가격은 저렴하고 양은 푸짐했다. 하지만 지방에서 물건을 떼러 올라온 뜨내기손님도 많아서 테이블 회전율이 높아 주인아주머니와 안면을 트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안면을 트기는커녕 한 자리 차지하고 식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호황을 누리는 식당들에서는 생선구이가 주메뉴였다. 생선구잇집이 입구에서부터 안쪽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식사 때가 되면 연탄불에 일제히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그때 생선을 구우며 생기는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골목을 메우는 광경이 가히 압권이었다.
송정식당은 이 같은 생선구잇집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돼지불꼬지’를 메인 메뉴로 하고 있다. ‘돼지불꼬지’는 사전에도 없는 단어로 송정식당에서만 사용하는, ‘돼지불고기’를 일컫는 말이다. 매콤하게 초벌 양념한 돼지고기를 연탄불에 석쇠를 이용해 굽는데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하다. 양념한 돼지고기를 연탄불에 직접 구워내는 식당은 이제 서울 시내를 통틀어 손꼽을 정도로 그 자취를 감췄다. 웬만큼 숙련된 사람일지라도 구워낼 수 있는 양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돼지불고기 한 끼 가격 또한 일정 선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는 말이다. 송정식당은 1, 2층을 합쳐서 테이블이 딱 아홉 개다. 그렇기 때문에 입구에서 주인아저씨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기를 구우면서 간신히 서비스를 유지한다. 최고급 고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산 돼지고기다. 가격에 비해 그 양도 푸짐해 이곳을 찾았던 식도락가들 사이에서는 서울 시내 돼지불고깃집 중 으뜸으로 회자된다.
연탄불에 석쇠를 이용해 구워낸 돼지불고기. 이는 맛의 평가를 떠나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주인에게 감사하며 찾아가야 하는 품목이다. ‘이익’을 생각하거나 ‘욕심’을 부리면 절대로 운영할 수 없는 품목이다. 실제로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 부부는 표정만 봐도 선하디 선하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는다. 시간 들여 정성껏 말아내는 계란말이 반찬이나 깨끗하게 손질한 상추, 깔끔하게 끓여 서비스로 내오는 순두부찌개를 보면 이 집은 정말 ‘이윤’을 떠나 마음으로 음식을 만드는 곳이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info
위치 서울 종로구 종로5가 443
영업시간 10:30~20:00
문의 02-2267-2817
메뉴 돼지불꼬지 1인분 6천원

전우치
음식칼럼니스트, 에디터, 신문기자, 방송작가, 여행기자, 영상 디렉터, 프로젝트 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콘텐츠 제작 전문가다. 클럽컬처매거진 , 패션 매거진 의 편집장을 거쳐 현재 크리에이터스 매거진 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호화대반점> <포장마차프로젝트>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음식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 당시, 필자는 모 잡지사에서 청계천 복원일에 맞춰 내보낼 특집 기사로 기획된 주변 맛집 취재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청계천 일대의 숨은 맛집을 찾아 소개하자는 취지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나 힘든 작업이었다.

Credit Info

글&사진
전우치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