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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식탁의 감초 같은 식재료

맛있는 파 이야기

On April 02, 2015

한국인의 국민 반찬 김치에 꼭 넣고, 각종 양념에 빠지지 않으며, 라면에 송송 썰어 넣고, 고기를 먹을 때 없으면 섭섭한 그것! ‘파’. 어릴 적 갈비탕에 떠 있는 파만 골라 버리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지만, 특유의 쌉싸래한 단맛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제는 파구이에 사족을 못 쓴다. 늘 식탁 위에 존재하는 파에 대해 얕지만 꼭 알아야 할 것들.


“국물이 달구나.”
“달걀을 풀어야 해. 파만 넣으면 단맛이 뒤가 날카로워.”
“달걀을 넣으면 어떤데?”
“달걀이 들어가면 날카로운 게 포근해져. 둥글어지지.”
“그래? 거참…. 그렇겠구나. 그렇겠어. 맛이 둥글다.”
“파는 달걀과 잘 어울려. 뜨거운 국물 속에서 달걀이 파 맛을 끌어당겨서 달래는 것 같아.”

김훈 소설 <공무도하> 속 대화 내용이다. ‘달걀이 파 맛을 끌어당겨 달랜다.’ 머릿속에 글귀가 새겨진다. 맑은 달걀국 위의 파, 달걀말이 속 파, 쇠고기움파전…. 파와 달걀이 만난 음식들로 이미지가 채워진다. 그러고 보니 서양 파인 리크와 달걀, 파르메산치즈를 갈아 넣어 오븐에 구운 키슈, 리크를 삶아 식초로 맛을 내고 달걀노른자를 얹어 내는 음식 등 프랑스 가정 요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6세기 풍속화의 대가 안니발레 카라치의 ‘콩을 먹는 남자’에서는 밀짚모자를 쓴 남자가 ‘파졸로’라고 하는 까치콩을 삶은, 극히 서민적인 음식을 먹고 있다. 그리고 왼편 앞쪽에는 빵이, 그릇 옆에는 파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파는 콩, 양파, 마늘, 순무 등과 마찬가지로 농민이나 서민의 음식이었다. 파는 다년생이고 온대기후 지역에서 잘 자라지만, 비교적 냉량한 기상 조건에서도 생육이 왕성해 서민까지 파를 아낌없이 먹게 되었을 테고, 맛을 돋우는 감초 같은 식재료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2200년의 생명을 이어온 파

현재 파의 야생식물이 발견되지 않아 원산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인도, 아프가니스탄 접경 카라코람 산맥 속 산악지대인 파미르 고원이라는 주장이 있다. 파미르 고원을 뜻하는 총령(蔥嶺)의 총(蔥)이란 글자가 식용(食用)하는 ‘파’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총(蔥)’의 의미가 지금의 ‘파’를 지칭한다면 신화집이자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이나 오경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 등장하므로 2200년 전에 이미 채소로 사용했다는 의미다. 또한 <예기>에 각종 요리법이 기록되었고, <본초경>, <제민요술> 등에 기록된 바로는 품종과 재배법이 상당히 발달되었다. 

 


술자리에 안주로 그만이고 고깃국에 파가 들어가니 맛이 더해진다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파가 도입된 시대는 문헌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재배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고려 인종 9년(1131)에 <음양회담소>에서 ‘승도가 酒(술)를 팔고 蔥(파)을 팔며…’라는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파가 술안주로 이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고종 시대에 이규보의 저서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중 가포육영에서 ‘섬섬옥수 같은 많은 파 잎들을 아이들은 잎으로 피리 소리를 내는구나, 술자리에 안주로 그만이고 고깃국에 파가 들어가니 맛이 더해진다’라는 구절을 보면서 웃음이 나온다.

역시 술안주로는 파전이 제일이요, 고깃국에는 파를 송송 썰어 넣어야 제맛이라는 불변의 법칙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것이었다. 한국에서 파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오래전부터 김치에 빠져서는 안 될 재료였고, 겨울에는 움파에 밀가루와 달걀을 씌워 얇게 부쳐서 고명으로 올려 단아한 담음새를 뽐내었다.

자충이(쪽파 뿌리) 다진 것과 쇠고기 다진 것을 양념해 밀가루와 달걀물을 입혀 자그마하게 지져낸 자충이전유어를 손님상에 차려내고, 쇠고기와 움파를 꿰어 달걀물을 입혀 구운 움파산적은 부모님 생신상에 올려냈으며, 물에다가 간장과 초로 간을 맞춰 고춧가루와 깨소금을 약간 치고 잘게 썬 실파를 넣은 파찬국을 김치 대신 놓기도 했다. 입춘 절식인 오신반(다섯 가지 매운 나물을 얹은 비빔밥)에 움파를 빠지지 않고 올려 겨우내 소진한 기력을 충전했다.

 

때로는 약으로 사용된 파

파의 약리 작용을 알아본 선조들은 감기나 오한이 들 때 파 뿌리는 끓여 먹고, 신경통이 있을 때 파의 흰 부분을 가늘게 썰어 식초와 섞어 볶아 환부에 갖다 대는 등 다양한 민간요법을 사용했다. 매운맛과 따뜻한 성질이 있고 속이 비어 있는 대파는 <동의보감>에 따르면 땀구멍을 열어준다고 적혀 있다. 땀구멍을 열어 땀을 나게 해서 찬 기운을 몰아내 막힌 코를 뚫어주고 변비가 있을 때 속을 뚫어준다.

하지만 땀구멍만 열어 주고 보충하는 효과는 없기에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너무 땀을 흘리게 하고 뼈마디를 열어서 사람을 허약하게 한다. 따라서 김장을 할 때 대파가 아닌 쪽파로 파김치를 담그는데, 이는 대파보다 파 속의 구멍이 훨씬 작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찬 기운에 상하기 쉬워 땀구멍을 너무 열어버리면 병이 나기 쉽다. 참고로 부추도 파처럼 매운맛과 따뜻한 성질을 갖고 같은 백합과이지만 속이 비어 있지 않고 납작하므로 약성이 반대로 나타난다.  

 

파의 맛

중국과 한국 옆에 있는 일본 또한 파를 즐겨 먹는 나라 중 하나다. ‘네기’라는 일본 명은 냄새가 강하다는 의미에서 옛 이름을 ‘氣’라고 칭하였고, 후에 ‘네기’라는 발음은 똑같지만 하얗고 길게 뻗어 자라는 것에서 연유하여 ‘蔥’ 자가 되었다. 파가 전 인류에게 사랑을 받게 된 열쇠는 바로 ‘냄새’다.

그 냄새는 동물이 자신을 먹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생성하는 자극적인 황 성분으로 사유된다. 생것을 먹으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든 강한 냄새를 풍기지만, 열을 가하면 방어용 화학물질인 ‘황’ 화합물들이 맛있는 분자로 바뀌어 맛의 깊이를 더해준다. 스페인의 카탈루냐 사람들은 ‘칼솟’이라는 파를 겉이 완전히 타도록 구워 탄 부분을 벗겨내 녹진한 단맛이 응축된 부분을 먹는다.

칼솟 축제가 열릴 정도로 카탈루냐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파채처럼 생것으로 먹을 경우, 찬물에 담그는 것이 좋다. 파를 써는 순간 손상된 표면에 붙어 있는 황 화합물들이 쓰고 아린 맛을 폭풍우처럼 쏟아내기 때문이다. 이 휘발성 화학물질은 공기 흐름을 타 파를 써는 사람의 눈과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 신경 말단을 공격해 눈물이 난다. 따라서 찬물에 30분 정도 담가두면 황 화합물을 제거할 수 있어 쓴맛이 줄어든다.

지방에 넣고 고온에서 파를 익히면 다른 방법을 썼을 때보다 더 강한 맛을 생성한다. 리크를 버터에 달달 볶아 생크림을 넣고 뭉근하게 수프를 만들면 김훈 작가의 표현처럼 날카로운 게 포근해져 맛이 둥글둥글해진다. 파는 재배시기에 따라 봄에 파종하는 춘파와 가을에 파종하는 추파로 나뉜다. 춘파를 재배하면 김장철 즈음에 수확하기 시작해 3~4월 정도까지 수확 및 출하가 된다. 지금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에 가면 마지막으로 즐길 수 있는 파릇파릇한 춘파의 잎이 꼬리를 친다. 그 꼬임에 못 이기는 척, 한 단을 구입해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는 파 요리를 이 봄에 즐겨보시길. 

 

좋은 파 고르는 법

대파는 연백부(하얀 잎줄기)의 길이가 30cm 이상인 것이 특상품이다. 잎과 줄기가 시들지 않고 단으로 묶었을 경우 묶음이 균일한지를 본다. 파 뿌리 부분이 휘지 않고 곧은 것과 잎줄기 부분이 너무 딱딱하지 않은 것을 고른다. 쪽파나 실파의 경우 잎의 짙은 녹색이 균일하며 연하고 깨끗해야 하며 줄기 부분이 여러 갈래로 가늘게 나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래 흰 부분이 윤기가 있고 크기가 균일한 것이 좋으며 보기에 힘차게 뻗는 것이 신선한 쪽파다.  

 

보관 방법

단기간 보관할 경우 파를 신문지에 싸서 냉장 보관한다. 만약 물에 닿았을 경우 빨리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사용하고 남은 파는 송송 썰어 밀폐용기에 넣어 냉동 보관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오래 보관할 필요가 있다면 햇빛이 들지 않는 화분 등에 묻어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데, 파 줄기가 굵은 것일수록 좋다.



알고 먹으면 더욱 맛있는 파의 종류와 특징


대파

길이가 40cm 이상으로 길고 굵은 것을 대파라고 하는데 외대파라고도 한다. 파는 분얼(分蘖) 특성에 따라 구분 짓기도 하는데, 대파는 분얼이 잘 되지 않고 곧게 자란다. 대파 산지로 유명한 전남의 진도, 신안, 영광이나 부산의 명지에서는 겨울 대파(11월~이듬해 4월)가 출하된다. 겨울 대파가 없을 때에는 경기의 고양, 남양주, 구리에서 출하되는 가을 대파(9월 하순~12월 상순)와 여름 대파(5월~10월)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대파를 듬뿍 넣은 쇠고깃국, 대파라면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쪽파

뿌리 부분이 둥근 쪽파는 분구형 양파와 비슷해 파와 양파의 중간적인 특징을 보인다. 쪽파의 원산지는 아시아로 여겨지지만 아시아 내에서도 계통이 다르며 콜롬비아, 이집트, 프랑스에서 유사한 계통이 발견되어 잡종 내지 변종으로 여겨지고 있다. 쪽파는 김장철이 원래 제철이지만, 비닐하우스에서 키워 9월 하순~이듬해 5월까지 출하된다. 쌉싸래하지만 시원한 맛도 느껴져 김치로 담가 먹으며, 굵지도 가늘지도 않아 전으로 구우면 적당히 씹는 맛과 단맛을 내어 파전용으로 사용된다.
 


움파

움 속에서 자란 파로 예부터 재배해 먹어온 방식이다. 잎집부(땅속에 있어 흰색을 띠는 부분)에 햇빛이나 바람을 차단해 잎 부분을 연하게 재배해 부드럽고 맛이 단 것이 특징이다. 겨울이 추운 중부 지방부터 시작하여 이북 지역에서 재배했으며, 흰 부분이 짧고 잎 부분이 발달된 조선파나 서울 백파 등의 품종을 많이 이용한다. 맛이 달고 진이 많이 나와 구이 요리나 국에 많이 넣어 먹는다.
 


리크

재배 리크는 ‘Allium ampeloprasum porrum’ 품종으로 대파와 다른 품종이다. 리크는 내한성이 뛰어나 겨우내 수확할 수 있다. 대가 굵으며 상당히 크게 자라는데, 흰색 부분을 먹는다. 잎사귀 윗부분은 먹을 수 있지만, 흰색 부분에 비해 질기고 특유의 매운맛이 덜하다. 흰색 부분에 열을 가하면 미끌미끌한 질감의 물질이 나오는데 냉각시키면 젤처럼 변해 수프나 스튜를 걸쭉하게 만든다. 국내에서 기르는 리크는 지금 우보농산에서 판매하는데 수프, 스튜, 키슈 등에 넣어 먹는다.
 


풋마늘

잎마늘이라고도 부르는 풋마늘. 보통 덜 익은 과일이나 채소에 접두사 ‘풋’을 붙이는데, 풋마늘은 여물기 전에 먹는 몇 안 되는 작물이다. 마늘통이 굵어지기 전에 어린 잎줄기를 수확해 먹는데, 얼핏 보면 쪽파와 비슷하게 생겼다. 고깃집에 가면 가끔 된장에 찍어 먹으라고 상추, 고추와 함께 풋마늘이 담겨 나오기도 한다. 3~4월이 제철인 풋마늘을 생것 그대로 겉절이해서 먹거나 고추장무침, 전, 튀김 등으로 즐길 수 있다. 실파 실처럼 가늘어 실파라고 불린다. 남부 지방의 대파가 4월 이후에는 출하가 어렵고, 가을에 씨를 뿌려 월동한 파도 추대(꽃대가 올라오는 현상)로 인해 상품 가치가 떨어져 일시적으로 대파의 출하량이 줄어드는 5~6월경이 제철이다.  

 

실파

실파는 대파나 쪽파에 비해 쓴맛이 덜해 송송 썰어 양념장에 섞거나 겉절이에 넣어 고기와 곁들여 먹기에 좋다. 그 외 파와 관련해 사용하고 있는 용어 가랑파(길이가 30cm 정도로 잎이 가는 파), 당파(쪽파를 지칭함), 냉이파(제주도산 대파), 조선파(파의 연백부 길이가 짧고 뿌리 부위가 굵은 파), 호파(대파를 말하며 혼자 큰다는 뜻)

한국인의 국민 반찬 김치에 꼭 넣고, 각종 양념에 빠지지 않으며, 라면에 송송 썰어 넣고, 고기를 먹을 때 없으면 섭섭한 그것! ‘파’. 어릴 적 갈비탕에 떠 있는 파만 골라 버리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지만, 특유의 쌉싸래한 단맛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제는 파구이에 사족을 못 쓴다. 늘 식탁 위에 존재하는 파에 대해 얕지만 꼭 알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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