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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

나카가와 히데코의 맛있는 식탁

On October 17, 2013

일본 태생의 귀화 한국인으로 한국 생활 19년째인 나카가와 히데코. 수줍은 미소를 하얗게 짓는 그녀가 꾸리고 있는 요리교실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셰프의 딸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행복을 온몸으로 체득한 그녀에게서 나오는 따뜻한 에너지 가득한 곳. 연희동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의 맛있는 이야기.

음식으로 기록된 추억

한국 이름 중천수자, 나카가와 히데코는 대사관 소속의 프렌치 셰프였던 아버지를 따라 해외 각국에서 지낸 어린 시절을 거쳐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와 국문과 석사과정을 밟으며 한국어를 습득했다. 그 후 대학교와 관공서 등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번역 일을 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마음에는 항상 ‘사람들에게 요리하는 기쁨을 전달하고 싶다’는 바람이 가득했다. 학창 시절 방 한 칸짜리 자취방에서도 친구들을 불러 모아 밥을 해 먹이던 그녀는 결혼 후에도 볕 좋은 날이면 옥상에서 바비큐를 구워 다 같이 나눠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편안한 아파트를 버리고 구불구불 골목길을 올라야 하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얼마전까지 일본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가벼운 안줏거리를 만들고 술 한잔을 곁들여, 바빠서 챙기지 못한 저녁 식사를 대신했다. 어두운 부엌에서 아버지가 만든 소박한 요리가 오른 밤의 식탁은 평화로웠고 젓가락 하나 들고 따라 앉으면 기분 좋은 안락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플로리스트이던 어머니는 단정하면서도 행복한 느낌을 전해주는 플레이팅을 준비했다. 딸인 그녀도 식탁보를 다리고 커틀러리를 닦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정성 어린 마음을 배웠다. 그런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에게 있어 행복을 나누는 일이란 곧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녀가 ‘요리 선생님’이 된 것은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

요리 수업의 첫 번째 음식, 파에야

그녀가 운영하는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은 6~8명의 인원이 한 그룹을 이뤄 모두 한 달에 한 번씩만 수업을 받는다. 현재 개설된 그룹 수만 20여 팀. 어떤 그룹은 일본 가정식을, 어떤 그룹은 스페인 요리를, 또 어떤 그룹은 안주 요리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하지만 그룹의 성향이나 배우는 요리와 상관없이 첫 수업의 메뉴는 언제나 파에야. 이것은 ‘구르메 레브쿠헨’의 규칙이자 상징처럼 되었다. 스페인에서 낑낑대며 가지고 온 커다란 파에야 팬에 쌀과 육수, 갖가지 채소와 고기, 해산물을 듬뿍 넣고 사프란으로 향을 낸 파에야는 보는 것만으로도 모두를 군침 삼키게 한다. 이국적인 맛에 익숙하지 않아 정통 이탈리아 파스타, 또는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동남아 요리 앞에서는 고개를 갸웃하던 이들도 파에야라면 언제나 맛있다며 잘 먹는다. 낯을 가리거나 무뚝뚝하거나, 혹은 구성원이 모두 초면이라 대화 거리를 찾지 못할 때에도 파에야는 잠긴 입을 해제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혹자는 스페인에 놀러 갔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볶음밥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고기를 꺼리는 이는 해산물만 먹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채소만 골라 먹는다. 큰 팬 하나에 담긴 요리를 자기 취향에 맞게 덜어 담아 나누다보면 어느새 분위기가 훈훈해진다. 이국적인 요리지만 맛있고, 낡은 프라이팬 하나 가지고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요리 배우기에 대한 호기심도 높아진다. 다 같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을 배우는 것, 그녀의 요리교실이 특별한 이유다.

1. 미니코스와 홈메이드 드라이드토마토 샐러드
2. 대파감자크림수프

건강하게, 그리고 맛있게

어린 시절을 독일과 스페인 등지에서 보내며 아버지 어깨너머로 프랑스 요리를 배웠고 어머니로부터 일본 가정식을 배웠으며,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한식을 배웠기에 실로 넓은 요리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그녀. 최상의 신선한 재료로 건강하게 조리한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신념만은 국적 불문하고 모든 요리에 해당된다. ‘오늘은 맛있는 음식으로 뭘 먹을까’를 매일 고민하는 그녀는 자신의 요리교실이 무엇보다 ‘맛있다’고 느껴지길 원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수업을 했지만 새로운 메뉴를 낼 때는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수강생들의 입을 바라보며 “맛있다!”는 말을 기다린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수업은 그날 만든 요리를 다 함께 나누는 자리로 마무리되는데, 실은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요리 배우기에는 심드렁하면서 맛있는 요리를 먹을 생각에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요리를 먹기 위해 수업을 듣는 수강생도 있을 정도다. 구르메 레브쿠헨은 맛있는 음식을 함께 차려놓고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속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깔깔깔 웃어젖히고,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는, 한 달에 한 번 스스로에게 내리는 소중한 선물이다. 그래서 이곳 요리 수업의 클라이맥스는 음식을 차려두고 모두 함께 “건배!”를 외치는 순간인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추억이 차곡차곡

많은 이들이 이곳을 거쳐 갔고, 또 지금 이곳을 들른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얼마 못 배우고 그만두는 이, 2년 동안 착실히 배워 클래스를 마무리 짓는 그룹, 더 배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도 5년이 넘게 꾸준히 수강하는 만년 수강생까지, 그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요리교실 에 담겨 있다. 요리교실의 반항아였던 ‘차도녀’가 어느 날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생치즈를 들고 와 겸연쩍어하면서도 모두에게 시연해 보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옛이야기를 하다 펑펑 울기도 한다. 또 모두가 술꾼인 그룹은 각자 술을 한 병씩 준비해 와 저녁에 시작된 수업이 점점 취기로 달아오르며 자정이 넘어서야 끝나는 날도 있다. 처음 요리교실을 열었을 무렵에는 수십 잔에 달하던 와인 잔이, 다양한 사연에 깨지고 부서져 이제는 8잔만 남았다. 이곳의 수강생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 선현경 씨와 히데코는 그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글과 그림으로 묶어 책 <맛보다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올 9월에는 그녀의 요리를 담은 책 2권이 추가로 출간될 예정이다. 아직 풀어놓지 않은 맛과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는 그녀의 양 볼이 설렘으로 발갛게 빛난다.

1. 프로방스식 닭고기 오븐구이
2. 다양한 요리를 덜어 담아 모두 함께 나눠 먹는다

‘오늘은 맛있는 음식으로 뭘 먹을까’를 매일 고민하는 그녀는 자신의 요리교실이 무엇보다 ‘맛있다’고 느껴지길 원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수업을 했지만 새로운 메뉴를 낼 때는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수강생들의 입을 바라보며 “맛있다!”는 말을 기다린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수업은 그날 만든 요리를 다 함께 나누는 자리로 마무리되는데, 실은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요리 배우기에는 심드렁하면서 맛있는 요리를 먹을 생각에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요리를 먹기 위해 수업을 듣는 수강생도 있을 정도다.

일본 태생의 귀화 한국인으로 한국 생활 19년째인 나카가와 히데코. 수줍은 미소를 하얗게 짓는 그녀가 꾸리고 있는 요리교실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셰프의 딸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행복을 온몸으로 체득한 그녀에게서 나오는 따뜻한 에너지 가득한 곳. 연희동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의 맛있는 이야기.

Credit Info

포토그래퍼
김나윤
어시스트
최지은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