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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쎈이 찾아간 심야식당 (16)

안국동 산체스 막걸리

On October 03, 2013

넉살 좋지만 허풍밖에 없고 초라하지만 초긍정적 성격의 남자 주인공 병운(하정우)이 등장하는 영화 <멋진 하루>. 병운의 마지막 로망은 열정의 나라 스페인에 한국의 막걸리 가게를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화 속 허황된 그 꿈을 실현시킨 듯한 막걸릿집이 서울에 나타났다. 이상한 기운에 먼저 취하는 흥겨운 막걸리의 나라로.

이곳이 산체스로구나!

오픈 시간 6시, 너무 이르게 찾아가 굳게 닫힌 작은 문 앞에서 기다릴 때만 해도 ‘산체스 막걸리’가 무슨 뜻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평화로운 안국동 골목을 서성이다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남자를 보고 알아챘다. ‘산체스다!’ 그 남자가 산체스 막걸리의 사장이라는 것을, 가게 이름의 ‘산체스’는 사장을 가리키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적어도 안국동 골목에서는 그 사람이 가장 멕시코와 가까워 보였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이힝~’ 연신 사과를 하며 문을 여는 사장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벌써부터 즐거운 기분이 든다. 키치하지만 너무 어설프지는 않고, 멋을 냈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이다. 누구하고라도 편하고 거리낌 없이 술 마시기 좋아 보이는 곳이다. 이곳 사장은 본래 영화판에서 미술 스태프로 일했다. 처음으로 참여한 영화가 <스캔들>이었고 마지막으로 참여한 영화는 <가비>였다. 영화 일이 없을 때에는 레스토랑에서 임시직으로 일했고 거기에서 음식을 배웠다. 그러다 막걸리 가게를 냈다. 사장의 성격을 담아 즐거운 공간으로 꾸몄다. “아 뭐 대단한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죠?” 술집에 대단한 이유나 포부를 가지고 갈 일이 얼마나 있나, 일단 즐거우니 좋다.

8개의 테이블과 바,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은 이른 저녁부터 단골손님들로 꽉꽉 들어찬다. 저녁 7시까지만 갈 수 있다면 미리 예약해도 좋다.
2 사장의 별명이 ‘산체스’라 산체스 막걸리다. 보기와는 다르게 손맛이 있다.
3 ‘갓 시집온 필리핀 시댁의 마음’으로 요리하는 사장이 만드는 안주가 일품이다. ‘손이 느리니 이해해 주세요’라며 미리 메뉴판에 적어놓는 마음 씀씀이는 센스.
4 매운 토마토 홍합찜과 모주. 푸짐하고 개운한 맛에 여럿이 나눠 먹어도 좋다.

막걸리계의 아메리카노

단골들이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어서이다. “막걸리 뭐 있어요?” 하고 물어보면 사장이 자신의 몸만 한 칠판을 들고 와 떡하니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 칠판에 적힌 막걸리의 종류가 끝도 없다. 청주 고택 찹쌀 명주, 영광 대마 할머니 막걸리, 막걸리계의 아메리카노 정읍 송명섭 막걸리… 근데, 막걸리계의 아메리카노? “아 그게 하나도 달지 않거든요” 아하!
청순한 맛이 일품인 ‘막걸리계의 손예진’ 개도 막걸리,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 원주 옥수수 막걸리, 공주 알밤 막걸리… 기자는 이 집을 막걸리계의 ×××라빈스라 부르고 싶었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무슨 맛일까 짐작하기 어려운 부산 토마토 막걸리를 먼저 땄다. 핑크빛이 의심스러웠는데, 먹으니 의외로 산뜻한 맛이 좋다. 영광 대마 할머니 막걸리는 시골에서 먹는 친근한 맛이다. ‘막걸리의 아스파탐은 싫다!’고 하는 이들이라면 ‘아스파탐 무첨가’가 표시된 것을 고르면 된다. 사장은 느림마을 양조장 막걸리를 추천한다.
최근 고급화된 막걸릿집에서 20% 부족한 친근함을 느낀 이라면, 이곳의 부담 없는 메뉴가 더 즐거울 것이다. 부담 없고 친근한 정서는 막걸리만이 지닌 매력이니까 말이다.

5 부산 토마토 막걸리와 100% 감자전. 솜씨 좋은 엄마가 부쳐주는 비 오는 날의 감자전만큼이나 맛있다.

오늘 밤 즐거운 일을 벌이자

이곳 음식은 어떨까? 분위기도 즐겁고 막걸리 종류도 다양하니 안주는 어느 정도만 나와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뒤통수를 친다. 안주가 정말 맛있다.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감자를 갈아 구워내는 감자전은 이 집에서 꼭 먹어봐야 할 메뉴. 얼핏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얇게 채 친 감자가 살아 있다. 살아 있는 감자의 결이 입 안에 착 달라붙어 술이 절로 넘어간다. 매콤한 토마토 홍합찜은 배부를 때 하나씩 까먹기 좋은 안주다. 두 가지 메뉴를 맛보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곳의 안주가 맛있는 이유를 알았다. 감자전에는 청양고추 외에 방금 채 썬 감자만 들어갔고 토마토 홍합찜에는 실해 보이는 홍합이 가득이다. 우애 깊은 친구가 왔을 때 내주고 싶은 질 좋은 음식들이다. 서로 싱거운 농담이나 주고받아도 그 뒤로 꼼수는 부리지는 않는다. 주인 마음속에 맛난 음식을 먹이고 싶은 정이 한가득하다. 맛있는 음식과 술, 경쾌한 웃음, 넘치는 정. 오늘 밤을 즐길 준비는 이미 끝났다. 친구들아, 오늘 밤 이곳에서 즐거운 일을 벌이자
.
info
메뉴 칼칼한 산체스 토마토 홍합찜 1만5천원, 오리고기 숙주나물 볶음 1만원, 감자전 1만원, 정읍 송명섭 막걸리 6천원, 영광 대마 할머니 막걸리 7천원
영업시간 오후 6시~새벽 2시(일요일 휴무)
위치 서울 종로구 안국동 85 지하 1층
문의 02-735-0723

넉살 좋지만 허풍밖에 없고 초라하지만 초긍정적 성격의 남자 주인공 병운(하정우)이 등장하는 영화 &lt;멋진 하루&gt;. 병운의 마지막 로망은 열정의 나라 스페인에 한국의 막걸리 가게를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화 속 허황된 그 꿈을 실현시킨 듯한 막걸릿집이 서울에 나타났다. 이상한 기운에 먼저 취하는 흥겨운 막걸리의 나라로.

Credit Info

포토그래퍼
강태희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