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가장 큰 달이 차오르면 이웃들과 별식을 나눠 먹으며 두둥실 희망을 띄어 올리던 대보름날 이야기
일 년 중 가장 큰 달이 차오르면 이웃들과 별식을 나눠 먹으며 두둥실 희망을 띄어 올리던 대보름날 이야기.
오곡으로 찰밥 지어 연잎에 담아내니 복이 한가득
오곡밥과 복쌈
대보름 전날에는 쌀, 팥, 콩, 조, 수수를 넣고 오곡밥이나 찰밥을 지어 이웃과 나눠 먹으며 한 해의 풍농과 안녕을 기원한다. 다른 성을 가진 세 집 이상의 이웃집 밥을 먹어야 그해 운이 좋다는 풍속이 전해져 여러 집의 오곡밥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보름날 아침에는 ‘세성받이 밥’이라 하여 아이들이 소쿠리나 조리를 들고 보름밥 한 숟갈씩 얻으러 돌아다녔다. 봄을 타서 살빛이 검어지고 야위는 아이는 대보름날 백 집의 밥을 빌어 와 절구 위에 개와 마주 앉아 개에게 한 숟갈, 자기도 한 숟갈 먹으면 다시는 그런 병을 앓지 않는다 믿기도 했다. 열나흗날 저녁에는 아이들이 몰래 빈집에 들어가 오곡밥을 훔쳐 먹기도 하는데 오곡밥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야 일꾼이 많이 생겨 풍년이 든다 믿었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부러 모른 척하고는 했다. 배춧잎이나 김, 혹은 참취나물 이파리를 넓게 펴서 쌈을 싸 먹는 복쌈은 김으로 밥을 싸 먹으며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던 풍습에서 유래한다. 흰쌀밥이나 찰밥을 김에 싸 볏섬 모양을 만들어 그릇에 볏단 쌓듯 높이 쌓아 올리면 풍년이 들고 복이 온다 믿었고 이것을 복쌈, 혹은 볏섬이라고도 불렀다. 김쌈을 하나 먹을 때마다 볏섬을 하나씩 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김에 찰밥을 싼 김주먹밥을 만들어 문지방이나 아궁이 밑, 볏단 등에 숨겨두고 이를 찾아 먹으면 복이 온다 해 아이들이 보물찾기 놀이하듯 김주먹밥을 찾아 먹는 풍습이 전해진다.
더위 파는 맛이 고소하다
아홉 가지 나물
정월에는 오곡밥과 함께 ‘진채식’이라 부르는 9가지 묵은 나물을 먹었다. 아침 일찍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 가라’며 더위팔기를 하는데 묵은 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 한다. 9가지의 나물은 오곡밥과 함께 하루 종일 9번 먹어야 좋다는 미신이 전해진다. 여기에는 일 년 내내 부지런히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아홉 차례’라고 해서 보름밥은 아홉 번 먹고 나물은 아홉 광주리에 캐며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은 경을 아홉 번 반복해 읽고 남자들은 나무 아홉 짐을 하면 일 년 내내 건강하고 복이 찾아온다 믿었다.
달 뜨고 눈꽃 진 청명한 춘정월
상원절식과 달맞이
정월 대보름날의 교자상은 오곡밥, 곰국, 아홉 가지 나물, 너비아니구이, 가리찜(갈비찜), 저냐, 잡채, 김구이, 나박김치, 굴깍두기, 약식을 기본으로 했다. 아침에는 오곡밥과 함께 흰밥을 해 김에 밥을 싸 먹으며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약식은 대보름의 대표적인 절식으로 그 유래가 <삼국유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라 소지왕이 정월 15일 천천정에 행차했을 때 까마귀가 날아와 왕이 위기에 처했음을 일깨워줘 왕을 모반하려던 신하와 궁주를 활로 쏘아 죽여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이다. 이때부터 정월 15일을 까마귀를 기리는 오기일로 정해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냈고 약식이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보름 상에서 약식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약식에 들어가는 대추와 밤 등은 일반 백성은 구하기 어려운 귀한 식재료였기 때문에 약식을 해 먹을 수 없는 백성들은 오곡밥으로 만족하기도 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학자이자 정치가 이색(李穡)의 시문집 <목은집>의 ‘점반’에는 “찰밥에 기름과 꿀을 섞고 다시 잣·밤·대추를 넣어서 섞는다. 천문만호(千門萬戶)의 여러 집에 서로 보내면 새벽빛이 창량(蒼凉)하매 갈까마귀가 혹하게 일어난다.”며 대보름 약식을 노래한 시가 있다. 약식을 쪄 차례상에 올리고 상원절식을 차려 이웃과 나눠 먹은 뒤에는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달맞이를 하며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겼다. 대보름날 달빛이 노랗고 환하면 풍농이 들고 한 해 운수가 좋다고 믿었다.
잡귀는 물러가고 귓가에 좋은 소식만
대보름 다과상과 부럼 깨기
대보름 새벽에는 눈을 뜨자마자 날밤과 호두, 은행, 잣, 땅콩 등을 깨무는 ‘부럼 깨기’를 하였다. 이렇게 하면 일 년 열두 달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해 ‘부스럼 깨기’가 ‘부럼 깨기’가 되었다. 부럼을 깰 때 ‘딱’ 하는 소리가 잡귀를 물리친다고 해 ‘작절’이라고도 하였다. 어른들은 아침부터 데우지 않은 청주를 한 잔씩 마셨는데 그렇게 하면 어른들의 귀가 밝아진다 하여 ‘귀밝이술’이라 불렀고 여기에는 일 년 내내 좋은 소리만 듣기를 기원하는 마음 또한 담겨 있다. 대보름 다과상에는 부럼, 귀밝이술과 함께 원소병, 두텁떡, 약과, 부꾸미, 강정이 올랐다. 원소병은 중국 대보름의 절식이 전해진 것으로 둥글게 빚어 익반죽한 찹쌀가루를 삶아 꿀물이나 오미자물에 띄우며, 둥근 반죽이 동전을 의미해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일 년 중 가장 큰 달이 차오르면 이웃들과 별식을 나눠 먹으며 두둥실 희망을 띄어 올리던 대보름날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