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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신 교수의 음식과 윤리

새해, 밥상 윤리 끌어올리기

On January 21, 2015

 

2015년 새해다. 새 마음을 가져볼 시기, 헌 마음은 집어넣고 새 마음을 꺼낼 때다. 어렸을 적 모래집 지으며 부르던 노래가 떠오른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무너지고 무너져도 짓고 또 짓던 모래집처럼 새해는 새 마음으로 시작해야겠다. 첫 마음은 다시 갖기 어렵지만, 그래도 항상 새 마음이 기다리고 있는 법. 첫사랑만 사랑은 아니니 말이다.지난해 6월부터 반년 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마셔도 될 듯하다. 술에 대한 나의 새 마음은 이젠 마셔도 좋고 안 마셔도 좋은 것. 취해도 좋고 안 취해도 좋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고 미련도 없다. 이젠 내가 주체고 술이 객체다. 


술이 나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술을 마신다는 말이다. 배부르면 밥을 남기듯 술도 한두 잔만 즐겨도 충분하다. 술 때문에 불행할 일은 없어야지. 사람에게는 욕구와 욕망이 있다. 둘 다 무언가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 데서 생긴다. 종일 굶은 이에게 먹을 것을 주면 금세 행복해지는 것도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구와 달리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깨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것이 욕망이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먹는 밥은 배부르면 숟가락을 놓게 되는데 술은 한두 잔만 마시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한 병이 두 병, 두 병이 세 병, 또 자리를 옮겨 2차에서 3차로…. 밥이 욕구의 표상이라면 술은 욕망의 표상이다.물론 음식도 술처럼 욕망 차원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초콜릿은 배고픔의 욕구를 채우려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먹고 또 먹어도 자꾸 유혹을 받는다. 굳이 초콜릿이 아니라도 이미 배부른데도 자꾸만 음식을 먹는 것은 욕구가 아니라 욕망 때문이다. 뷔페에 가서 처음엔 ‘적당히 먹어야지’ 하다가도 누군가 ‘한 바퀴 더 돌지?’ 하면 충분히 배가 불러도 한 접시를 더 먹는다. 고깃집에서도 자꾸 ‘고기 한 접시 더!’를 외치게 된다. 이 같은 욕망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우리 행동을 종 모양의 정규분포곡선처럼 그려보자. X축이 윤리의 정도, Y축이 행동 빈도의 정도라 하자. 중앙의 높은 부분은 우리가 자주 하는 행동들로 이는 ‘배고플 때 밥 먹기’처럼 대부분 욕구 차원의 행동이다. 윤리적으로는 중립에 가깝다. 그래프의 왼쪽, 낮은 부분에는 우리가 자주 하지 않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 위치한다. 지나치게 많이 먹는다든지 많이 마시는 행동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행동은 욕망 차원의 행동이다.

이 행동들은 비윤리적이거나 윤리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이 많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래프의 오른쪽에는 우리가 자주 하지 않지만 바람직한 행동이 위치한다. 식습관으로 보면 음식이나 술을 절제하여 먹고 마시는 행동이 이에 속한다. 이 행동들 또한 그래프의 왼쪽처럼 욕망 차원의 행동이지만, 욕망을 좋은 쪽으로 잘 다스린 결과라 할 수 있다. 오랜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성인들은 오른편 끝에 서서 인간 사회를 이끌어왔다. 윤리도 우리 행위를 오른쪽으로 가도록 이끈다. 욕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스리는 것을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승화’라 표현한다.

새해는 새 학기에 책과 공책에 정성껏 이름을 적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좋겠다. 기왕이면 성적도 끌어올리겠다는 각오도 새기고. 그래서 좀 더 행복하고 평화로운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찬가지로 밥상도 바람직한 쪽으로 끌어올리면 좋겠다. 음식 윤리도 결국 먹는 행위의 점수 끌어올리기가 아닐까?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식품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 분야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 윤리를 대중에 알려 우리 사회에 올바른 식문화가 정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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