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세계 곳곳에서는 올해의 트렌드로 아시아 퀴진, 그중에서도 한식의 돌풍을 예견하고 있다. ‘웰빙’과 ‘발효’ 등 최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푸드 트렌드에 걸맞은 음식이 바로 한식이기 때문.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뿌리인 한국의 식문화를 체험하고 세계로 나가 그것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꿈을 지닌 데이비드 강이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윤숙자 교수를 만나 한식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데이비드 강 한국의 식문화를 접하고 놀란 것이 궁중 음식과 사찰 음식, 각 지방의 향토 음식과 가양주 등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카테고리가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이것들을 ‘한식’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어떻게 합치고 무엇에 포커스를 맞추어 세계에 내놓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윤숙자 ‘한식’을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는 궁중 음식이나 향토 음식, 발효 음식, 명절 음식 등을 모두 아우르고 때와 상황에 맞춰 홍보하고 있습니다. 궁중의 복식을 갖추고 궁중 음식을 재현한다든가 건강을 주제로 해 전통 약선 음식을 선보인다든가 혹은 민속놀이와 함께 명절 음식도 선보일 수 있고요. 유구한 전통의 한식은 그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고 홍보할 수 있지요. 전통이 깊은 만큼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데이비드 강 그렇다면 풍부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 한식을 알리는 것이 도움이 되겠군요.
윤숙자 물론입니다. 다른 나라에 한식을 알리는 행사를 할 때에도 음식뿐 아니라 의복이나 음악, 무용 등 다양한 문화를 활용해 함께 보여주면 효과가 더욱 크다는 것을 느낍니다. 드라마 <대장금>이 크게 인기를 끈 동남아 지역에서는 드라마에 나오는 의복을 그대로 재현해 입고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한식에 다가옵니다.
데이비드 강 한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그 안에 자연의 이치와 철학이 담겨 있다고 배웠습니다. 이를테면 한식의 오방색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이런 것들은 우리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세세하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윤숙자 그래서 저는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이야기할 때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를 말하곤 합니다. 첫 번째로 한식이 자연식이며 건강식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철마다 나는 식재료와 음식도 뚜렷하게 달라지는 매우 특수한 나라입니다. 제철 재료를 활용해 만드는 음식은 자연스럽게 건강식이 될 수밖에 없지요. 두 번째로는 발효 음식에 관한 것입니다. 한식 맛의 기본은 발효입니다. 각종 장류와 김치, 술 등 모두 숙성과 발효를 거쳐 그 맛과 영양이 배가되는 음식들이지요. 이렇게 다양한 발효 음식을 즐기는 나라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더 흥미를 끄는 것이기도 하고요. 세 번째로 이야기하는 것은 오방색의 철학입니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하양 5가지 색을 골고루 먹어야 오장육부가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잡채를 만들 때에도 구절판을 만들 때에도 재료들을 자세히 보면 오방색이 고루 들어가 있지요. 새하얀 국수에도 고명을 활용해 오방색을 섭취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입니다. 편식하지 않고 균형 잡힌 영양소를 섭취하는 선조의 지혜입니다. 네 번째는 약식동원 사상입니다. 음식은 기본적으로 약이며 음식과 약은 뿌리가 하나라는 이야기입니다. 조상들은 몸에 탈이 나면 일단 음식을 사용해 탈을 다스렸지요. 궁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460년도에 어의 전순의가 지은 <식료찬요>를 보면 많은 질병을 다양한 음식으로 다스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정이 들어간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을 이가 성인인지 어린아이인지, 혹은 노약자나 임산부인지 등을 먼저 생각해 만든 음식이 바로 한식입니다.
데이비드 강 교수님이 한식 세계화를 위해 가장 중점을 둔 사업은 무엇입니까?
윤숙자 이제까지 한식 메뉴 레서피가 계량화되지 않은 점을 큰 문제로 보았습니다.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면 반드시 그 나라의 서점에 가서 요리 서적 코너를 보는데 일본, 태국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요리책이 영문으로 번역되어 있는 데 반해 한식을 소개하는 제대로 된 요리책이 없는 것을 보고 개탄했습니다. 간혹 한식을 소개하는 영문판 책을 보아도 레서피가 아주 엉망이에요. 그래서 십여 년 전부터 한식 레서피를 계량화해 다양한 언어로 출판하는 것에 매달렸고, 정부와 손잡고 그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강 한식의 레서피는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와 각 지방, 혹은 집안마다 제각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한식 레서피를 표준화, 계량화했는지 궁금합니다.
윤숙자 일단 책에 소개될 메뉴 선정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국가별, 연령별 오피니언리더들에게 다양한 한식을 시식하게 한 후 가장 맛이 좋다고 느끼는 메뉴를 점수 매기게 해 국가별로 소개할 한식 메뉴를 선정하였습니다. 그 후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조리법을 바탕으로 식품을 전공하는 교수들을 모아 시식을 하며 레서피를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수십 차례 거쳐 모두가 맛있다고 느끼는 평균의 맛으로 그 양을 계량하였습니다. 사실 한식 레서피는 재료를 ‘적당량’ 집어넣는다든가 국을 ‘한소끔’ 끓인다든가, 계량화되지 않은 서술이 많아 만드는 이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한식을 접해보지 않을 이들이라면 도저히 감이 안 오는 점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레서피 표준화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지요. 한식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이더라도 불편함 없이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해 양념 재료 하나까지 매우 세심하게 계량하였고 각각의 조리 시간이나 불의 세기까지도 기록해두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8개의 언어로 번역된 한식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강 전통적인 조리법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셨는데 요즘 한국에서도 전통 그대로의 방법을 사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지는 않습니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음식은 변하기 마련이고요.
윤숙자 물론입니다. 전통 음식은 전통 음식 그대로 보존, 계승해 후손에게 알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만 고집해서는 무리가 있습니다. 뿌리는 전통을 지키되 현대의 트렌드와 각 국가별, 지역별, 먹는 이들에 따라 충분히 변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지극히 주관적인 거고 먹는 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문제니까요. 같은 잡채를 소개할 때에도 베트남이나 싱가포르 등 매운맛을 선호하는 더운 지역에는 고추를 많이 넣은 잡채를, 홍콩과 같이 해산물을 즐겨 먹는 나라에는 해물잡채를 소개합니다. 일본에는 우엉을 많이 넣은 잡채를 소개하기도 하고요. 다양한 식재료로 변형 가능한 것이 우리나라 음식의 장점이기도 하니까요. 꼭 한 가지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퓨전화된 한국 음식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단, 국적 불문의 한식이 아닌 우리 식재료나 조리법, 양념 등을 사용해 전통에 근간을 둔 것이 기본이 되어야겠죠.
데이비드 강 최근 한식 세계화의 경향을 보면 특히 비빔밥과 불고기, 김치 등의 몇 가지 메뉴가 집중적으로 홍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한식의 메뉴는 굉장히 다양한데 왜 몇 가지 메뉴만을 보여주는지, 실제로 그 음식들이 전 세계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인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윤숙자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다보니 나라별로 선호하는 메뉴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미국이더라도 뉴욕에서는 호박죽에 대한 호응이 굉장히 높았고 LA에서는 매콤한 맛의 볶음 요리에 반응이 좋았습니다. 흔히들 ‘서양인들은 찹쌀떡의 쫄깃하면서도 매끄러운 점성을 싫어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의외로 찹쌀떡을 맛있게 먹는 이들도 많았어요. 아시아 국가에서는 마늘이나 생강, 고수 등 향채와 젓갈을 듬뿍 넣은 김치를 맛있게 먹기도 하고요. 결국 국가와 인종, 연령대 등에 따라 선호하는 음식이 다양하게 나타나니 각 상황에 따른 연구가 필요하고 거기에 맞춰 홍보하는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우리의 전통 식문화와 세계의 트렌드를 두루 파악하고 있는 유연하고 재능 있는 인재 육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식에 열정을 지니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젊고 전문적인 인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입니다. 현재 정부와 국민들의 노력으로 우리 한식이 이제 막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데이비드 강 같은 젊은이들이 해외 곳곳으로 뻗어 나가 우리의 음식을 제대로 홍보해주길 바랍니다.
재미교포 데이비드 강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수학과(Economics-Mathematics)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내 프랑스요리전문대학(FCI)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뉴욕과 뉴저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한식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한국 음식·문화·사회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 재단에 신청하게 됐다. 지난 7월에 한국에 온 그는 한국에서 한식을 연구할 수 있는 장학금을 지원받아 한국의 전통 음식을 배우기도 하고 지방을 내려가 향토 음식을 직접 맛보는 등 한식에 관련된 모든 것을 경험 중이다.
윤숙자 교수는…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와 떡박물관의 소장이자 ‘한국 음식 조리법 표준화 연구개발사업’의 책임연구원으로 우리 전통 음식을 연구, 개발, 계승하는 한편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배화여자대학교의 전통조리학과의 교수를 역임하고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발한 강좌와 저술 활동을 펼치며 한식의 대중화와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남한 측 답례만찬을 책임지고 2008년부터 런던 템스 페스티벌의 한식홍보관을 운영하는 등 각종 국가 행사에서 한식 홍보대사 역할을 맡고 있다.
2013년 세계 곳곳에서는 올해의 트렌드로 아시아 퀴진, 그중에서도 한식의 돌풍을 예견하고 있다. ‘웰빙’과 ‘발효’ 등 최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푸드 트렌드에 걸맞은 음식이 바로 한식이기 때문.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뿌리인 한국의 식문화를 체험하고 세계로 나가 그것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꿈을 지닌 데이비드 강이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윤숙자 교수를 만나 한식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