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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당한 건가요?

젠더 이슈에 새로운 불씨가 된 ‘설거지론’. 여성을 폄훼하는 표현을 이용한 남성 간 갈등이 이어진다.

On December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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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론이 뭐길래?

작은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남성 회원이 많은 커뮤니티에 일부 기혼 남성을 가리켜 이른바 “설거지를 당했다”는 설이 올라왔다. 내용은 즉, 이렇다. 기혼 남성 중 아내의 의지에 따라 섹스리스가 된 부부, 외벌이인 남편이 전업주부 아내에게 경제권을 빼앗긴 사례, 아내의 SNS에 남편의 사진이 없다면 사랑을 토대로 한 결혼이 아닌 ‘설거지 결혼’을 한 것이란다. 해당 글이 게재된 후 남성들은 공감의 뜻을 표했다. 급기야 기혼이라고 밝힌 남성 네티즌 중에서 자신이 설거지를 당한 케이스인지 판단해달라며 고민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설거지론’을 정리해보면 연애 경험이 적고 경제 능력이 뛰어난 남성이 자신보다 연애 경험이 많고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여성과 결혼한 뒤 경제적인 주도권은 물론 정서적인 부분까지 아내에게 맞춘 상황을 설거지에 비유한 것. 여성에게 조건을 따져 결혼한 뒤 편하게 산다는 프레임을 씌워 ‘설거짓거리’라고 비아냥대는 동시에 기혼 남성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퐁퐁남’, ‘퐁퐁단’, ‘퐁퐁시티’라는 키워드까지 파생됐다. 퐁퐁남은 한 주방 세제 브랜드 이름에서 비롯된 은어로 설거지론에 부합하는 남성을 지칭한다. 퐁퐁단은 설거지론에 해당하는 가정을 말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로켓단에 빗댄 표현이다. 퐁퐁시티는 신혼부부를 비롯해 젊은 부부가 포진된 신도시를 가리키며 설거지론 요건에 충족하는 부부가 살림을 꾸린 도시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설거지론에 부합하는지 테스트해볼 수 있는 알고리즘과 문진표까지 등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떠도는 ‘설거지론 알고리즘’을 살펴보면 20대 초반에 연애를 한 경험이 있는지, 성공해 번듯한 직장이 있는지, 오랜 기간 연애를 거쳐 결혼했는지 등 다수의 질문과 답변에 따라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인지 퐁퐁단인지 판단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퐁퐁 설거지남 자가문진표’라는 이름의 체크리스트가 등장했다. 해당 리스트에는 ‘아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아내와 짧은 연애를 거쳐 결혼했다’, ‘아내의 낭비벽이 심하다’, ‘자신에게 경제력 이외의 메리트가 없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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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남 vs 도태남’ 남적남 갈등 구도

설거지론은 남성과 여성으로 불거졌던 젠더 갈등에 새로운 구도를 양산했다. 기혼 남성과 미혼 남성, 20대 남성과 30~40대 남성, 좋은 직장을 가지지 못한 미혼 남성과 대기업에 종사하는 기혼 남성이 설전을 벌이는 ‘남남 갈등’으로 번진 것. 주로 연애와 결혼관에 변화가 일면서 연인 간 데이트 비용을 절반으로 나눠 부담하는 ‘데이트 통장’, ‘더치페이’에 친숙한 일부 20대 남성들이 자금을 동등하게 부담하는 ‘반반 결혼’을 하지 않은 기혼 남성을 폄훼하며 설거지론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를 바라보는 기혼 남성들의 반발도 이어지는 상황. 결혼하지 못한 미혼 남성을 가리켜 ‘도태남’이라는 별칭을 붙여 갈등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도태남은 연애, 결혼을 하지 못한 남성이 제짝을 만나 결혼한 남성들에게 열등감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쓰인다. 여성들의 반발도 거세다. 부부관계에 있어 여성을 하나의 설거짓거리로 조롱하는 데 대한 분노와 이에 맞서는 ‘짬(음식 쓰레기) 처리론’으로 대응한다. 이는 젊을 때 유흥업소에 다니면서 문란한 생활을 이어온 남성이 어리고 순진한 여성과 결혼한 뒤 아내에게 독박 육아를 강요하는 상황을 음식 쓰레기에 빗댄 것. 논쟁이 거세지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설거지론이 뭐예요? 여기저기 논쟁 중이네”라며 궁금증을 드러냈다.

한편 설거지론에 과하게 몰입해선 안 된다는 게 네티즌의 중론이다. 끊이지 않는 젠더 균열과 성역할에 피로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잖다. 대학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네이트 판 등에는 설거지론이 다소 억지스럽다는 입장과 함께 사실이 검증되지 않은 사연들로 인한 젠더 갈등을 중단해야 한다는 글이 잇따라 게재되고 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2021년 12월호

2021년 12월호

에디터
김연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