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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말아요 그대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위한 한창수 전문의의 위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당신에게 보내는 <우먼센스>의 위로.

On September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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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당신 편'은 당신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창수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미국 듀크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고려대학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최근 마음의 힘을 기르는 '외상 후 성장'의 심리학 <무조건 당신 편>을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Q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보통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실제 언어보다는 목소리나 표정, 손짓과 같은 비언어적인 활동이 더 많은 작용을 한다고 하잖아요. 진료실에서도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다 보니 이러한 부분을 활용해 환자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가 힘들어졌어요.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택이'를 데리고 중국에 갔을 때 과장해서 손짓, 발짓을 하며 대화를 하듯 저 역시 어르신들께는 동작을 크게 하며 대화를 하고 있죠. 예전에는 표정만 봐도 바로 이해되던 것들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고 비언어적인 측면을 더 신경 쓰게 됐달까요? 심리적으로는 정신과 의사도 일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답답하고 갑갑하고 재빠른 세상의 변화들이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최근에는 신간 발간에 정신이 없었어요. 내담자들에게 미처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책을 한 권 썼거든요.


Q 책에서 '외상 후 성장'이라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홍수환 4전5기'의 신화를 아세요?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1970년대에 남미에서 권투 세계챔피언을 하신 분이에요. 상대방에게 4번이나 다운을 당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5번째에 KO를 시킨 대단한 선수죠. 그분이 지금은 자기 계발 강사로 활동 중이시더라고요. "좌절하지 말고 자기 할 일을 계속하면 결국은 되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시죠. 피터 드러커의 자기 경영책에도 비슷한 말이 나와요. 어떤 사람은 발에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인데 어떤 사람에겐 세상을 향해 딛고 일어나는 계단 역할이 된다고요. 자연재해나 커다란 비극 이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떤 이들은 그런 일을 겪고도 무너지기보다 극복을 하고 더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들을 '외상 후 성장'을 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Q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나요? 우선 외상 후 성장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인간관계를 재조정한다는 거예요. 우리 마음의 병은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학대나 폭력까진 아니더라도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죠. 이들에게 우리가 왜 스트레스를 받냐면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에요. 5cm 거리에서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20cm 거리가 적당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거든요. 여성들의 경우 더 그래요.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모두에게 친절해야 하고 상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 살잖아요. 부부 관계도요. 한 몸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피곤한가요? 그냥 같이 사는 친한 나의 편 정도로 생각하면 편할 것을요.


Q 또 있나요? 인생은 불합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거예요. 우리는 정치인이나 사회나 달달한 책을 통해 열심히 노력하면 다 된다고 배우지만 사실 그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고, 나보다 못한 놈이 훨씬 더 잘될 때가 있다는 거 모두 알고 있어요. 사주팔자는 없어도 운은 있는 게 인생이니까요. 그걸 받아들이는 능력이 바로 외상 후 성장을 한 이들의 특징이에요. 그리고 흔히들 '근자감'이라고 하죠? 심리학자들은 자존감 혹은 자기 효능감이라고도 하는데 자기 성취감이 높은 사람들이 외상 후에도 성장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왜 못 해? 난 당연히 잘하지'라 믿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내 주변에 대해 너그럽게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외상 후에도 성장을 하는 거죠.


Q 아무나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같은 러닝 코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스스로 외상을 극복하거나 성장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러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긴 마라톤을 하는 거거든요. 약물을 쓰면 그 거리가 절반 이상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잖아요. 정신과 의사나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분들을 치료하는 치료자라기보다 헬퍼에 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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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음의 병이 병원에 가야 할 정도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요즘은 우울 증상 자가 척도를 검색만 해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잖아요. 검사 후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오거나 주변에서 치료를 권유할 때 병원 방문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어요.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스스로가 우울함에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때예요. 직장이나 학교에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일이 제때 처리가 안 될 때, 도무지 가라앉은 기분이 회복이 안 될 때, 주변 사람들과 트러블이 잦아질 때 정신과 상담을 한번 받아보는 걸 추천해요.


Q 마음의 병도 완치가 가능한가요? 완치라는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병원에 안 가고 약을 안 먹어도 되는 수준이 완치라고 정의한다면 가능한 경우도 있고 가능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신적 질환에 약을 복용하는 이유는 우리 신경계에 경한 염증이 생기기 때문이거든요. 신경호르몬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신경이 회복 될 때까지 약을 복용하게 되는 거죠. 심리 상담, 명상, 운동 등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겠지만 약은 그걸 더 빠르게 이뤄주는 거예요. 물론 약물 치료 없이 완치되는 분들도 많아요. 가벼운 스트레스 증후군이나 월경 전 증후군, 산후우울증 등으로 오신 분들 중에는 증상이 만성화되지 않고 상담만으로 전두엽 기능이 강화되면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아주 심한 우울증이 있거나 또는 그러한 증상이 반복됐거나 조울증, 조현병 등이 생긴 사람들은 달라요. 어느 정도 증상이 완화됐다고 하더라도 약을 완전히 끊어버리면 재발할 수도 있으니 장기간 적은 양이라도 꾸준히 복용하는 걸 권해드리죠. 왜 보통 갑상선저하증이나 당뇨병, 고혈압도 그렇잖아요. 증상이 심할 땐 약을 많이 먹다가 증상이 완화된 후에도 반 알은 먹으라고 하는 것처럼요.


Q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많습니다. 종교인들이 친목을 위해 모인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사람에게 한 신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그건 그 사람의 몫이다"라고요. 그러자 옆에 있던 스님께서 "건방지게 혼자 어떻게 다 잘해. 적당히 살고 나머지는 상대방이 해결하는 거지"라고 말씀하시더군요.(웃음) 저 역시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말을 합니다. 모든 사람과 관계가 좋을 필요는 없다고요. 막대기 들고 쫓아가서 고기를 잡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한자리에 앉아서 나에게 다가오는 고기만 낚는 낚시꾼도 있잖아요. 안달복달하는 것 자체가 오래되면 문제가 되고 질병이 되는 거예요. 이미 충분합니다. 막말로 혼자 지내도 보기 좋은걸요.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친구가 있어요.


Q 교수님께 가장 힘이 되는 존재는 누구인가요? 아내와 대화하고 감정적인 교류를 하면서 위안을 가장 많이 얻습니다. 아내는 제게 주유소 같은 존재예요. 제가 방전되고 힘들 때 늘 에너지를 채워주는 감사한 존재죠.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는 신일 수도 있고,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럴 땐 내 안에 스스로 그런 존재를 만들어놔야죠. 제 책 제목이 <무조건 당신 편>이잖아요. 사실 제목 옆에 괄호 친 제목은 "나는 당신 편인데 그것만큼 당신 스스로도 당신 편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또 한 번 뒤집어서 말하자면 굉장히 냉정한 이야기지만 "세상에 믿을 사람 없어요. 당신이 당신 편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 편이 돼주지 않습니다"예요. 내 가족이 아프면 속상해하면서도 그들이 너무 오래 아파하고 힘들어하면 짜증을 내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예요. 결국 온전히 내 편에서 날 보듬어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거죠.


Q 무섭기도 한데요. 제가 성당에서 결혼식을 했어요. 신부님께서 주례를 해주셨는데 "이제 부부가 됐으니 한 몸이 돼서 살라"고 하시더군요. 그날 밤 신혼여행지에서 아내에게 "한 몸이 되어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가 아내가 엄청 섭섭해했던 기억이 나요. 전 부부 관계에서도 각자의 삶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은행나무처럼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편이 되어 사는 게 가장 이상적인 부부라고요. 그땐 섭섭해했던 아내도 지금은 그 말에 백 프로 공감하며 지내고 있답니다. 지금은 유행하지 않지만 한때 2인 1조의 레슬링 경기가 인기 있었던 적이 있어요. '태그매치'라고도 하는데 2명이 한 팀이 되어 적당히 교대도 하고 지지도 하면서 경기를 치르는 거죠. 지금 저와 아내의 관계는 '태그매치'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 사람이 나고 내가 그 사람이라기보다 서로의 삶을 살며 서로가 필요한 순간에 교대해주는 그런 파트너예요.


Q 현대인들에게 한마디. 저희 집 가훈이 "각자 행복하게 잘 살자"예요. 각자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면 모여도 행복함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내 삶을 누군가에게 기대고, 상대방이 안 해주면 섭섭해하고, 그것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로 인해 갈등이 생긴다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생각하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한 매직 워드는 '기대하지 마라'예요. 본인 스스로 본인의 마음을 건강하게 잘 유지하면서 열심히 살면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분명 생기더라는 거죠. '밴드 왜건 효과'라고도 하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잘되는 데다 숟가락을 얹고 싶어 해요. 누군가 잘 살고 건강하게 사는 것 같으면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싶어 한다는 말이에요. 마냥 도움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가 먼저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두리
사진
지다영, 김재경
2020년 09월호

2020년 09월호

에디터
김두리
사진
지다영, 김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