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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편지 Q&A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고민을 <우먼센스>에 보내주세요. 심리학자 장근영과 소설가 백영옥이 서로 다른 솔루션을 제안해 드립니다.

On February 06, 2017

 


Q 결혼 후 바로 육아를 시작해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저 자신을 잃게 된 것 같아요. 마음 터놓을 친구는 없고 늘어난 뱃살을 봐도 그냥 무덤덤해질 뿐이에요. 바쁜 생활 속에서 잠이라도 잘 자자 싶은 마음에 누워보지만 그 시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뒤척여요. 스스로를 사랑하며 가꾸고 싶지만 무덤덤해진 결혼 생활에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자연스럽게 사는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저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요?

장근영

그렇게 많은 변화가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면 몸과 마음이 지치고 고통스러운 것이 정상입니다. 문제는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3자가 보기에는 모두 ‘기쁜 일’에 해당하니까요. 따라서 그것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건 옳지 않거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런 일로 힘들어한다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이거나, 아이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스트레스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이나 임신, 출산은 단시간에 해결되는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뭔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의욕이 떨어지고, 자신감도 줄어들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일 때는 천천히 시간을 주면서 변화에 적응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죠.

즉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지금보다는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거대한 스트레스의 파도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배우자와 협력해야 합니다. 일단 자신이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배우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비록 육아에 적극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인생의 측면에서는 똑같은 삶의 변화를 겪고 있을 테니까요.

재미있는 건, 몸의 질병과 달리 마음의 고통이나 스트레스는 그것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드러내고 공유할수록 더 가벼워진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일단은 배우자와 함께 지금까지 겪은 삶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에게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먼저 상대방이 느낄 스트레스에 대해 알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배우자 역시 경보 상태였던 마음의 방어벽을 조금은 내려놓고, 어깨와 미간에 들어간 힘을 뺀 채 상황을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을 겁니다. 그제야 아내가 지금 얼마나 힘들지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겠지요. 그러니 지금은 함께 어려움을 인정하고 서로 도우며 극복해가는 경험을 쌓을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백영옥
언젠가 강연회장에서 독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에 대기업까지 들어가 완벽한 스펙을 자랑하는 30대 중반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사표를 내야 할지, 유학을 가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는데 어째서 자신의 삶이 온통 틀린 답처럼 느껴지는지 답답하다면서요. 무척 지친 얼굴이었고 그래서 더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저는 이런 분들을 의외로 자주 만나게 됩니다. “제가 뭘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 혹은 “저는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할까요?” 같은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질문이 있어요.

“본인이 원하는 게 뭐예요?” “사람들 보기 창피한 게 아니라, 본인 마음은 어때요?” 이 질문의 핵심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뭔지 철학적으로 느껴지죠. 하지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질문을 구체적으로 바꿔보면 이래요.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무엇이 날 기분 좋게 만드는가? 나는 언제 가장 불행한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무엇인가?… 등등. 한국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로 살아가는 데 익숙한 것 같아요. 학창 시절부터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부모님의 욕망’을 자기 욕구라 착각하는 친구가 많은 탓에 30대 중반, 혹은 40대에 이르러서 불현듯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는 분도 많습니다.

안타까운 경우죠.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세요. 하루 30분이라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힘들다면 주말 몇 시간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세요. 좋은 입욕제를 사서 목욕도 하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사거나, 자신만을 위해 작은 사치에 투자해보세요. 그렇게 남편이나 아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보세요.

나를 어루만져주세요. 잘 보일 사람이 없다는 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나’를 소외시키는 일입니다. 아이와 남편에게만 눈길을 주지 말고 거울 속의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일에도 시간을 쓰시면 좋겠습니다. 카페에 가서 30분이라도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나만을 위한 그 시간에 내가 언제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무엇을 했을 때 힘들어지는지 곰곰이 질문해보기 바랍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오롯이 자신만 할 수 있어요. 10개의 질문에 10개의 답이 완성되는 동안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Q 가족과의 소통이 어렵게 느껴져요. 내 인생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 더 위로를 하고 응원을 해주면 좋을 텐데 오히려 서로 상처주는 말만 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서로 관계를 끊자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하게 됐어요. 진심은 그렇지 않지만 가족 앞에서 속마음을 드러내는 게 너무 어렵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장근영
가족과의 관계가 어려운 건 당신만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힘든 존재이기도 하죠. 그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사람은 변하는데 가족 관계는 잘 변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님 말을 잘 듣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자기만의 생각과 주장이 생깁니다. 당연히 부모와 다른 의견을 말할 수도 있고 자기가 예전의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바라게 되죠. 하지만 많은 부모님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고 오해도 생깁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부모와의 관계도 새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부모 앞에서 증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관계가 오래될수록 감정도 더 깊어집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어떤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 문제가 만들어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에 비례해 길어진다고 말합니다. 가족 간의 오해나 갈등은 아주 오랜 시간 만들어진 것이 많습니다. 그만큼 더 풀기 어렵고 해결하는 데 오래 걸립니다. 정말 가족을 사랑한다면 문제를 찾고 해결하기 위해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족 간의 문제 중 당장 해결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셋째, 서로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신은 가족들이 자신을 응원해주길 바라지만, 어쩌면 가족들은 당신에게 전혀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그동안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나 응원을 해주었나요? 혹은 가족들이 그동안 당신에게 해준 위로나 응원을 얼마나 고맙게, 혹은 가치 있게 받아들였나요?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서 당신이 가족에게 기대하거나 받을 수 있는 것이 결정됩니다.

결론은, 가족 앞에서 속마음을 드러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족이라고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내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는 그 사람과 얼마나 오랫동안 신뢰와 존중의 관계를 쌓아왔느냐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백영옥
위로가 될지, 오히려 낙담이 될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모님의 사랑조차 ‘당연한 것’이 되지 못해 불행을 겪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가족 간의 이해나 사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죠. 인정하기 싫지만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음을 우리는 살면서 아프게 깨닫게 되니까요.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합니다. 잘 알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 가장 뼈아픈 말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아는 그들이 나를 위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준다”는 말은 자신의 입장에서 하는 얘기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랑의 형식이나 본질이 고슴도치처럼 우리를 찌르기도 한다는 걸 아프지만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죠. 대부분 갈등은 속 깊은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걸 ‘대화’로만 풀려는 시도는 오히려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서로에게 오랜 시간 지쳐 있을 때는 더 그렇죠. 이런 경우 대화는 특정 패턴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다가 대화의 초점이 달라지는 경우도 종종 생기죠.

이럴 때는 얼마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서로를 꽉 껴안고만 있다면 상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그가 우는지 웃는지, 그녀가 슬픈지 기쁜지는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볼 때라야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세요. 가능하다면 혼자 떠나는 여행을 추천합니다. 달라진 환경에서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흥미로운 건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쓰는 일기는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갈등의 ‘대상’을 향한 편지 형식이 되기 쉽다는 것이죠.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일기를 쓰다 보면 문득 가족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글’은 ‘말’보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치유 효과죠.

※ 고민이나 사연을 ha1423@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

심리학자 장근영씨는…

심리학자 장근영씨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심리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아내와 고양이 세 마리와 동거 중. 
저서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심리학 오디세이> <팝콘 심리학>

소설가 백영옥씨는…

소설가 백영옥씨는…

패션지 피처 에디터로 일하던 중 소설가가 되고자 과감히 퇴사 감행. 2006년 소설가로 등단 후 글 노동자라 자처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 <소울 푸드> <다이어트의 여왕> <스타일>

CREDIT INFO

기획
김안젤라 객원기자
장근영, 백영옥
2017년 01월호

2017년 01월호

기획
김안젤라 객원기자
장근영, 백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