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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전문 변호사 이명숙의 사랑과 전쟁|서른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

On June 15, 2014

아무리 가까운 부부지간이나 친구에게도 다 말할 수 없는 자기만의 추억이나 비밀 한두 가지는 있게 마련이다.
A씨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는 자기만의 비밀 세계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상상이나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만의 추억이나 비밀을 간직하는 구체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A씨의 서재에 있는 커다란 책상이었다. 그런데 책상 서랍이 늘 잠겨 있어 그의 아내는 물론 자녀들도 누구 하나 책상 서랍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일정한 직업은 없지만 넥타이에 정장 차림이 아니면 잠시라도 집 밖을 나가지 않는 단아하고 가지런한 모습의 A씨는, 집에 있을 때는 항상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메모하고 일기를 쓰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였다.

온 가족이 늘 궁금해한 것은 A씨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책상 서랍 안이었지만, ‘무직으로 한평생을 살면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자존감’과 관련된 기록이나 메모가 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지나치곤 했다. 비록 직업도, 수입 활동도 없었지만 아내와 자녀 모두 그런 A씨를 ‘성실하고 가지런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인정하고 존경했다.

아내는 하루에 3~4시간씩 자면서 혼자 식당일 등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면서도 남편이 밖에 나가 기죽거나 무시당하지 않게 몸에 좋은 음식과 보약은 물론 용돈도 잊지 않고 챙겨주었다. 그렇게 20여 년을 고생한 끝에 힘들게 상가 딸린 집을 마련하면서 생활이 안정되고 자녀들도 모두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한 딸이 친정에 놀러 왔다가 우연히 외출한 아버지의 책상 서랍을 당겨보았더니, 평생 잠겨 있던 책상 서랍이 쑥 열리는 것이었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했기에 서랍 잠그는 일을 소홀히 한 듯했다. 30년 넘게 잠겨 있던 아버지의 책상 서랍이 열린 것도 기적처럼 놀라운 일이었지만, 더 경악스러운 것은 서랍 안의 내용물이었다.

서랍 안에는 아버지가 수십 년간 사귀어온 수많은 여성과 찍은 사진이 일시와 장소, 당시의 느낌이나 감정이 빼곡히 적힌 채 수십 개의 작은 앨범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진보다 더 진솔한 내용이 담긴 수십 권의 일기장, 만난 여성들과의 전화 통화 내용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지출한 영수증을 정리한 메모지와 노트, 상대 여성들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 온갖 개인 정보까지… 방대한 내용의 불륜 흔적이 서랍 안에 정리돼 있었다.

얼마 전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은 날에는 “내 인생에서 최고의 찬스이다”라며 환호를 지르는가 하면, 교제 중이던 여성에게 받아 온 떡을 아내가 몰래 다 먹어버렸다는 이유로 “나쁜년, 00씨가 내게 준 떡을 계집년이 다 먹어버렸다. 나는 하나밖에 못 먹었는데…”라며 마구 분통을 터뜨리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새로 들어온 세입자가 수년 전부터 교제해온 여성이었고, 그 여성과의 미래를 위해 몰래 다른 재산까지 처분해 은닉한 사실이며 구구절절한 애정행각이 적나라하게 다 적혀 있었다.

수십 년간 잠겨 있던 A씨의 책상 서랍이 열린 순간 평온하던 집안엔 그야말로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버린 것이다. 남편이자 아버지의 수십 년에 걸친 은밀한 외도는 온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 ※이혼·가사 법률 어드바이스
    아내는 남편의 외도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이혼은 물론 현재 교제 중인 여성들과 헤어진 지 3년이 안 된 모든 여성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있다. 아울러 평생을 무위도식한 남편을 상대로 아내는 자신이 마련한 재산의 대부분을 재산분할로 받아올 수 있고, 몰래 처분한 부동산 또한 남은 이익이 있다면 돌려받을 수 있다.

글쓴이 이명숙 변호사는…
24년 경력의 이혼·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현재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CREDIT INFO

기획
장은성
일러스트
배선아
2014년 04월호

2014년 04월호

기획
장은성
일러스트
배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