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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슈마허는 무엇이 특별했는가

F1의 황제로 군림했던 미하엘 슈마허. 올해는 그가 자신의 마지막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지 20년째 되는 해다. 여전히 그를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로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가 슈마허가 쌓아 올린 금자탑을 되돌아봤다.

UpdatedOn May 02, 2024

“슈마허는 아주 어두운 터널 속에서 페라리를 끄집어내
화려하게 부활시킨 드라이버로 항상 기억될 것입니다.”

1 안드레아 이옵

피렐리 코리아 대표


대표님께서는 이탈리아 출신이죠. 슈마허가 페라리와 함께하던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인에게 그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페라리 팬들에게 슈마허는 F1에서 오랜 기간 부진을 겪던 페라리의 부활과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1996년 슈마허가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 느꼈던 흥분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기대감은 매우 높았고, 곧장 상위권에서 페라리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꿈꿨죠. 비록 다른 팀들과의 기술적인 격차를 따라잡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슈마허의 합류는 페라리 팀과 팬들의 신뢰를 재건하는 데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처음 슈마허 경기를 보았던 당시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1990년대 초반 페라리는 챔피언십 경쟁에서 다소 밀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관심이 베네통 팀에 쏠리던 시기였죠. 슈마허가 베네통 팀의 드라이버로 1991년도 데뷔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루키 드라이버로서 이탈리아 몬차 그랑프리에서 팀메이트보다 앞선 5위로 레이스를 마쳤어요. 1992년 벨기에 스파 그랑프리에서 첫 승리를 했던 레이스도 기억납니다. 새로운 챔피언의 탄생을 지켜본 순간이었죠.

F1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가 바로 타이어 관리죠. 매년 타이어 관련 규정도 바뀌고 있고요. 피렐리는 매년 F1 타이어를 어떻게 제작하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규정 변화는 F1 경기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드라이버의 안전과 차량의 성능 향상은 물론 F1의 쇼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규정 변화가 이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다양한 조건과 환경에 대처해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F1에서 2022년 타이어 크기를 기존 13인치에서 18인치로 결정했을 때, 피렐리는 1만 시간 이상의 실내 테스트, 5000시간 이상의 시뮬레이션, 70개의 프로토타입에 대해 가상으로 대규모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트랙에서는 실제 드라이버의 도움을 받아 30여 가지의 스펙 관련 테스트를 진행했고요. 최종적으로 4267바퀴의 랩을 돌았습니다. 2만km 이상 되는 거리죠.
레이싱카의 센서와 115개 이상의 원격 채널로 얻은 각종 데이터에 기반한 가상화 작업은 신형 타이어의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효과적으로 절감시켜주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F1 레이스뿐 아니라 일반 도로에 사용되는 타이어에도 적용되는 기술로서 피렐리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인 ‘트랙에서 도로까지(Track to Road)’를 완벽히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레이싱카와 마찬가지로 타이어 역시 드라이버의 피드백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데이터 분석, 가상화, 시뮬레이션 등과 더불어 드라이버의 피드백은 타이어 개발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피렐리와 F1 팀들은 프리 시즌부터 전 시즌 내내 전반적인 성능은 물론 타이어와 자동차의 신뢰성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며 교류합니다. 일반 도로용 타이어를 개발할 때도 비슷한 방식이 적용됩니다. 퍼펙트 핏(Perfect Fit)이라는 전략하에 자동차 제조사 엔지니어와 협업해 개별 차량의 특징에 맞춘 솔루션을 개발합니다.

F1 타이어와 다른 모터스포츠 대회(혹은 일반 공도용 타이어) 사이에는 재료, 디자인 등에서 여러 차이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F1 타이어에 적용되는 특별한 점이 궁금합니다.
모터스포츠는 타이어의 성능 향상에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피렐리는 초창기부터 레이싱 세계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F1은 그중에서도 타이어에 적용되는 빠른 스피드, 토크, 중량과 횡력 등 가장 혹독한 조건을 갖춘 경기죠. 피렐리가 혁신적인 솔루션과 절차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한 이러한 결과는 일반 도로용 타이어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피렐리는 F1의 지속가능성 목표를 공유하고 지원하는 분야의 선구자로서,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방향의 일환으로 2024년 올해부터 피렐리는 FSC 인증 타이어를 공급합니다. 이는 트랙 및 도로용 타이어 생산을 위한 피렐리 전략의 핵심 축입니다.

레이싱카만큼 새 타이어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한 실력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하엘 슈마허가 특별했던 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슈마허와 직접 일해본 엔지니어들에 따르면, 그의 많은 장점 중 하나는 머릿속에서 ‘드라이빙 모드’로 운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실제 경기가 시작되면 랩마다 최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위해 그가 어떤 식으로 주행할지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팀원과 소통했다고 해요. 차량과 타이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팀 엔지니어에게 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그만의 특별한 점입니다.

이탈리아인에게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어떤 의미입니까?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1950년 월드 챔피언십이 시작된 이래로 매 시즌 경쟁하고 있는 유일한 팀입니다. 이탈리아인에게 페라리는 F1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죠. 저 역시 티포시의 한 사람이고요.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기술적 탁월함과 우아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산업 역량을 잘 보여주죠. 이탈리아 스타일의 완벽한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아는 아이코닉한 브랜드고요. 이탈리아에서는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팀입니다.

슈마허는 F1 역대 공동 최다 월드 챔피언(7회), 역대 2위 포디움(155회)과 폴 포지션(68회)을 기록했죠. 미하엘 슈마허의 수많은 업적 중 가장 대단한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탈리아인으로서 2000년 일본 스즈카 레이스가 여전히 기억납니다. 역사상 가장 스펙터클한 경기는 아니지만, 그 그랑프리에서 페라리는 21년 만에 F1 드라이버 챔피언을 이뤄냈습니다. 해당 경기에서 중요한 장면은 첫 번째와 두 번째 피트스톱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약하게 비가 내리는 조건 속에서 슈마허는 미카 하키넨과의 4초 간격을 메우고, 되려 간격을 벌려 나갔습니다. 슈마허의 특징은 대범함, 기술, 결단력 그리고 팀워크라 할 수 있죠. 이후 F1에서는 슈마허와 페라리의 5년 연속 독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전 세계 페라리 팬들에게 열광적인 반응과 소속감을 고양시킨 시대였죠.

지금까지 활동한 F1 드라이버들과 비교했을 때 미하엘 슈마허의 특별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매년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는 드라이버였습니다. 다양한 조건과 규정에 자신만의 드라이빙 스타일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죠. 슈마허는 선천적인 재능을 겸비했고, 경기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태에 대비하면서, 레이싱카의 성능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드라이버였습니다. 그는 경기가 없는 겨울 시즌에도 매일 훈련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신체적 능력이 F1의 승리 조건임을 증명한 드라이버 중 한 명입니다.

대표님께서 바라본 미하엘 슈마허는 어떤 사람입니까?
슈마허는 아주 어두운 터널 속에서 페라리를 끄집어내 화려하게 부활시킨 드라이버로 항상 기억될 것입니다. F1 전체에 열기를 불러일으킨 스타였고요. 이러한 이유로 그는 항상 제 마음 한편에 뛰어난 스포츠맨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슈마허는 한 인간이 목표를 정하고 전념할 때 어떤 것을 이뤄낼 수 있는지 보여준 훌륭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모터스포츠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죠. 슈마허는 수많은 성과를 국적을 넘어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보여준 아이콘, 레전드, 영웅이 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슈마허는 좋은 차만 타면 우승할 수 있던 시대의 챔피언이 아니에요.
시련과 편견을 극복하며 월드 챔피언이 된 인물이죠.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트랙으로 돌아와 많은 이들을 열광케 하기도 했고요.”

2 이창우

람보르기니 슈퍼트로페오 드라이버

F1 드라이버는 전 세계 20명뿐이죠. F1 드라이버가 되는 건 얼마나 어렵습니까?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단순 실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요. 일단 돈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많이요. 보통 F1 레이서가 되려면 F4부터 F2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모든 드라이버가 연봉을 받으면서 차를 모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돈을 써가면서 차를 타야 합니다. F1 드라이버가 되려면 국제자동차연맹(FIA)에서 지정한 슈퍼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해요. 각 대회에 출전해 3년 동안 40포인트를 쌓아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F2에서 챔피언이 된다고 모두 F1 드라이버가 되는 것도 아니죠. 기존 F1 드라이버 시트에 공석이 생겨야 하고, 만일 시트를 얻어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한 시즌도 못 채우고 방출될 때도 많으니까요.

F1은 르망 24시,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과 더불어 ‘세계 3대 모터스포츠 대회’로 손꼽힙니다. 그중에서도 F1이 가장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빠릅니다. 단순히 최고속도만 놓고 본다면 F1보다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레이싱카가 더 빠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랩타임에서는 F1 레이싱카가 앞섭니다. 그 이유는 공기역학에 있습니다. 공기역학 성능이 올라가면 직선 코스보다 코너에서 그 차이가 커져요. F1은 전 세계 모든 모터스포츠 대회 중 공기역학 수준이 가장 높은 대회입니다. 숫자도 중요하죠. F1 레이싱카의 시트는 단 20개뿐입니다. 그만큼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선수 연봉도 높아질 수밖에 없고요.

F1 현역 선수 중에서 슈마허와 가장 비슷한 커리어와 실력을 갖춘 선수는 누가 있습니까?
슈마허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우승하던 당시 페라리의 레이싱카 성능이 가장 탁월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슈마허가 레이싱카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운전까지 잘했다는 뜻이죠. 지금은 20년 전보다 레이싱카가 더 중요해졌어요. 아무리 차를 잘 알고, 운전 실력이 좋아도 차의 성능이 받쳐주지 않으면 우승을 하기 힘듭니다. 그 와중에 빛을 발하는 건 페르난도 알론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알론소의 나이가 마흔둘입니다. 맥라렌에서 뛰고 있는 오스카 피아스트리보다 스무 살이나 많죠. 슈마허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드라이버인데 여전히 포디움에 오르고 있어요. 슈마허와 알론소의 공통점은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이라고 봅니다. 두 사람 모두 각 트랙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완벽하게 수행해내죠. 단순히 기술보다 본능적인 영역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슈마허가 추월하는 데 능했다면, 알론소는 수비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드라이버에 가깝죠. 현재 F1 챔피언 막스 페르스타펀이 슈마허의 공격적인 드라이빙 스타일과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드라이버의 성적은 경주차의 성능과 직결되죠. 레이싱카를 만들 때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영역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022년부터 레이싱카 설계 규정이 대규모로 바뀌었습니다. 이때부터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죠. 2021년까지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와 레드불 레이싱이 1위를 치열하게 다퉜다면, 2022년부터 지금까지 레드불이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어요. 가장 큰 이유는 에어로 다이내믹에 있습니다. 오늘날 공기역학의 최정점에 서 있는 사람은 애드리언 뉴이입니다. 현재 레드불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는 인물이죠. 실제로 2022년부터 DRS 존에서 레드불 레이싱카는 다른 차원의 차가 됐어요. 직선 코스에서 다른 팀을 완전히 압도합니다. 마치 다른 체급의 차인 것처럼요.

프로 드라이버에게는 어떤 기술과 신체적 능력이 요구됩니까?
여느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근력과 근지구력이 필요합니다. 빠른 속도에서 코너를 돌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면 평소에 느끼는 중력의 4~5배에 달하는 힘이 온몸에 쏟아집니다. 실제로 F1 드라이버를 보면 몸은 날씬하지만 하나같이 목이 두꺼운 걸 볼 수 있어요. 중력가속도를 목으로 버텨내기 때문입니다. F1 경기는 보통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안에 끝납니다. 2시간 가까이 엄청나게 집중하다 보면 순간적인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어요. 그 때문에 동물적인 순발력을 위한 훈련도 필수입니다. 기계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차에 관련된 공학적 지식도 반드시 겸비해야 하고요. 그래야 엔지니어에게 제대로 된 피드백을 하고 문제를 개선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운전 실력’은 공도와 트랙 위에서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닐 것 같습니다.
공도에서는 흐름을 잘 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뒤 수많은 드라이버와 함께 운전하는 게 핵심이니까요. 모두가 천천히 갈 때는 천천히, 빠르게 갈 때는 빠르게 갈 줄 알아야죠. 넓은 시야각을 가져야 합니다. 트랙에서 운전을 잘한다는 건 훨씬 많은 뜻을 내포합니다. 단순히 랩타임이 빠르기만 한 건 의미가 없어요.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트랙을 78바퀴나 돌아야 해요. 실제로 퀄리파잉은 기가 막히게 하지만, 그에 비해 우승을 거의 못 한 드라이버도 많습니다.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가 그렇죠. 단순히 드라이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드라이버의 지구력과 집중력만큼 피트스톱 전략도 중요하니까요.

F1 역사를 통틀어 슈마허의 우승 기록을 뛰어넘은 건 루이스 해밀턴뿐입니다. 두 드라이버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천재적인 타이어 관리라고 생각합니다. 슈마허도 해밀턴도 어렸을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카트를 타지 못했어요. 슈마허는 어린 시절 부잣집 아이들이 버린 타이어를 달고 카트를 몰았다고 해요. 해밀턴 역시 레이싱 팀의 지원을 받기 전까지 이민자 출신 아버지가 밤낮없이 일해 번 돈으로 카트를 몰았고요. 그런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드라이버 모두 트랙 위에서 타이어 관리 실력이 대단히 뛰어납니다. 슈마허는 타이어 한쪽이 터진 상태로 4위를 기록한 적이 있고, 해밀턴 역시 타이어 한쪽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우승을 차지했어요. 차이점이라면 인종과 국적이겠네요. 백인과 흑인, 독일과 영국.

선수께서 평가하는 미하엘 슈마허는 어떤 사람입니까?
신화 같은 인물입니다. 슈마허는 좋은 차만 타면 우승할 수 있던 시대의 챔피언이 아니에요. 시련과 편견을 극복하며 월드 챔피언이 된 인물이죠.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트랙으로 돌아와 많은 이들을 열광케 하기도 했고요. 한때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었던 슈마허가 지금은 식물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위대한 챔피언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슈마허는 ‘긍정적 의미의 독일인’의 기준이 아닐까 합니다.
꽉 막힌 딱딱한 독일인이 아니라,
정확성을 바탕으로 드라이빙 테크닉 개선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경주차를 개선했으니까요.”

3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20년 넘게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응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일명 ‘티포시’로 불리는 페라리 팬들은 팬심으로도 유명하죠. 다른 팬들에 비해 티포시 문화가 남다르거나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티포시(Tifosi)는 고대 그리스어로 연기를 뜻하는 ‘Typhos’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고대 올림픽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우승했을 경우 모닥불 주변에 모여 축하하던 일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이후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 국가대표 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깃발, 배너 불꽃과 연기, 드럼 등을 써 원정을 다닌 열정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습니다. 물론 지금은 F1의 스쿠데리아 페라리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도 티포시라는 명칭이 붙습니다. 전 세계 어디라도 F1 경기가 열리면 빨간색 페라리 옷과 모자를 쓰고 깃발을 흔들며 응원하는 사람을 볼 수 있지요. 티포시는 페라리 드라이버라면 국적을 따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탈리아 드라이버라도 다른 팀 소속이라면, 페라리의 경쟁자로 밖에 안 보는 거죠. 다른 예로 한 프랑스 출신 드라이버가 선두를 이끌던 드라이버와 사고를 일으켜 페라리 선수가 1, 2위를 차지하자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했어요. 그야말로 스쿠데리아 페라리 팀에 도움이 된다면 모두 좋아하는 셈입니다.

미하엘 슈마허의 수많은 라이벌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아일톤 세나입니다. 두 선수가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주었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1960년 3월생인 세나와 1969년 1월생인 슈마허는 한 세대 정도 차이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카트로 모터스포츠를 시작해 F1에 진출했고, 1980년대와 1990년대 엄청나게 출력이 높아진 경주차를 천재적인 운전 실력으로 다뤘다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하지만 부유한 브라질 가정에서 태어나 비교적 늦은 13세에 카트를 경험한 세나는 영국으로 이사해 본격적인 레이싱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슈마허는 집에 돈이 부족해 카트 엔진을 마련할 수 없어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경기에 나갔습니다. 흔히들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랄까요. 물론 두 선수 모두 재능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훈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 이를 도입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둘 다 경주차 개선 방법을 찾고 조언하는 것도 뛰어나 팀을 키우는 실력도 있었고, 같이 경기에 출전하는 경쟁자이자 동료인 드라이버의 안전과 권익을 위해 일한 것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하엘 슈마허가 마지막으로 월드 챔피언이 된 2004년과 비교하면 2024년의 F1 경주차는 디자인도 성능도 완전히 다를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엔진입니다. 2004년이 포함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F1 레이싱카의 엔진 배기량은 3L였습니다. 제조사에 따라 V10과 V12가 있었죠. 자연흡기 엔진을 고회전으로 돌려 최고출력을 높이는, 개인적으로는 내연기관 기술의 최고점이라 여기는 시절입니다. 2004년 우승한 페라리 경주차는 예선 기준 무려 1만9000rpm으로 회전하며 900~940마력을 냈습니다. 트럼펫과 같은 금관악기의 화려하고 시원한 사운드가 최고였지요.
당시 나왔던 F1 경주차는 제조사마다 판이한 회전 한계와 특성에 따라 소리도 달라 눈을 감고 특정 코너를 지나가는 경주차의 팀을 맞히고 심지어 코너에서 제동과 변속 과정에서 나는 소리로 드라이버 구분도 가능했거든요. 지금의 경주차는 2014년부터 적용된 V6 1.6L 터보 하이브리드 엔진을 씁니다. 전기차가 회생제동을 하듯 에너지를 회수해 씁니다. 배기량이 줄어들고 터보차저가 달리며 회전수를 최대 1만5000rpm 이하로 제한하는 것까지 더해지며 사운드가 확 변했지요. 또 2008년부터 전자식 트랙션 컨트롤의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2018년부터 의무화된, 드라이버 주변에 두른 헤일로 바도 차이점입니다.

루이스 해밀턴을 제외하고, 현역 F1 선수 중 ‘포스트 미하엘 슈마허’라고 부를 수 있는 드라이버는 누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레드불의 막스 페르스타펀이 막강한 경주차와 뛰어난 실력으로 우승을 이어가고 있으나 슈마허처럼 인간적이거나 정을 주고 싶은 모습은 없거든요. 더욱이 올 시즌 팀 내에 불화설까지 겹치며 좋은 인상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또 페라리의 르클레르는 F2 시절과 달리 결과를 내고 있지 못하고요. 아이러니하게도 내년 페라리에서 방출이 결정된 카를로스 사인츠가 실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아 지켜보는 중입니다.

슈마허가 빠듯한 비행기 시간 때문에 직접 택시를 몰고 공항에 간 이야기는 유명하죠. 가장 기억에 남는 슈마허의 에피소드 혹은 인터뷰가 있다면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엄청난 빗속에서 열린 1998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선두를 달리던 슈마허는 한 바퀴 뒤처진 맥라렌 팀의 데이비드 쿨사드와 추돌하며 리타이어하게 됩니다. 슈마허는 피트로 돌아온 후 경주차에서 내리고 헬멧을 벗으며 맥라렌 팀의 피트로 돌진합니다. 페라리 팀 대표였던 장 토드를 비롯해 여럿이 슈마허를 말리느라 난리가 나지요. 지금도 그 영상을 볼 수 있답니다.

아직까지 한국인 F1 드라이버는 단 한 명도 없죠.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유럽 및 일본과 비교했을 때 한국 모터스포츠계의 한계점과 개선이 필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부분이 그렇습니다만, 모터스포츠의 기반이 약하고 개인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모터스포츠는 경기장 운영은 물론 개인이 참가하는 데도 비용이 꽤 큽니다. 제대로 배우자면 해외에 나가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그나마 현대자동차의 N 페스티벌처럼 많은 사람이 참가해 즐기고 알릴 수 있는 경기가 호황이고, 모터스포츠를 해보겠다는 자녀를 지원할 경제력도 어느 정도 갖춘 부모님이 있다는 건 희망적입니다.

미하엘 슈마허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슈마허를 알게 된 것은 ‘세계 최고 연봉의 스포츠 선수’라는 타이틀과 앞서 말한 택시 에피소드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동차 마니아들은 2009년 6월 방영된 영국 BBC의 자동차 프로그램 <탑기어>에서 ‘스티그’로 출연했을 때를 더 기억합니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렸던 그 프로그램에서 엄청난 운전을 보여준 스티그가 누군지 모두가 궁금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헬멧을 벗었을 때의 짜릿함과 편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면모를 느낀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또 픽사의 애니메이션 <카>에서 F430으로 분해 목소리 출연한 것도 유명하지요.
개인적으로 슈마허는 ‘긍정적 의미의 독일인’의 기준이 아닐까 합니다. 꽉 막힌 딱딱한 독일인이 아니라, 정확성을 바탕으로 드라이빙 테크닉 개선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경주차를 발전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그랑프리 드라이버 협회의 회장으로 일하며 다양한 자선 활동에도 참여하는 따뜻함이 있었으니까요. 알려진 바로 슈마허는 2013년 스키 사고 이후 ‘집에서 TV로 F1을 볼 수 있는’ 건강한 상태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잘 회복되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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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주현욱
Illustration 최재훈

202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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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내러티브 속 클리셰

    한국형 서사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다양한 클리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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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토피아에서 아이 낳기

    급여가 농담처럼 들리는 시대. 부동산 막차와 주식시장, 코인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에게 현세는 연옥이다.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는 데 몇 해가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박탈감만 주어진 시대에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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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전시

    예술적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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