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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사카모토 류이치는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흐른다. 3월 28일. 사카모토 류이치의 1주기를 앞두고, 그를 보며 듣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오래된 서랍 속 편지 같은 이야기들이 돌아왔다.

UpdatedOn March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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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O는 순위 프로그램에서도, CF에서도,
심지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만담하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 세대는 운동회에서 그들의 음악으로 창작 춤을 추기도 했고요.”

1 하세가와 요헤이

뮤지션

가장 처음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들었을 당시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Technopolis>나 ‘Rydeen’(다카하시 유키히로가 작곡했지만) 등 초기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음악을 접하면서 그의 존재를 알았어요. 우리 세대에겐 굉장히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었고, 무언가 장난기 있는 그들의 사운드는 어린이에게도 흥미로운 음악이었습니다.

저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뮤지션들이 느끼는 ‘YMO’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YMO는 순위 프로그램에서도, CF에서도, 심지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만담하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 세대는 운동회에서 그들의 음악으로 창작 춤을 추기도 했고요. 지금이야 전설적인 유닛이 됐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친근한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하세가와 요헤이의 도쿄 레코드 100>을 출간하셨죠.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사카모토 류이치 앨범 중 가장 아끼는 앨범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책의 콘셉트는 ‘희귀 음반을 자랑하듯 소개하지 않고, 음악적인 면에서나 가격 면에서 누구나 언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앨범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이유로 YMO와 관련된 앨범은 거의 다 제외했는데, 시티팝 느낌이 많이 배어 있는 <Summer Nerves>를 넣지 않은 것은 후회합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솔로 앨범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 (음악도감)>이었던 것 같네요.

사카모토 류이치 앨범 중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구하기 어려운’ 혹은 ‘정말 소장 가치가 높은’ 앨범은 어떤 작품인가요?
‘소장 가치’라는 말은 ‘금전적인 가치’를 곧바로 연상하게 하기 때문에 저는 이런 관점으로 앨범을 고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구하기 어려운’ 앨범에 한정해서 생각해보자면 아마도 1976년 인디 레이블에서 발매한 <Disappointment-Hateruma>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즉흥 연주가 수록되어 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곡을 3개만 꼽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Behind the Mask’. 천천히 우주까지 올라가는 로켓을 보는 듯한 다이내믹하고 동양적인 리프가 고양감을 증폭시켜줍니다. 그 멜로디의 마법은 에릭 클랩튼, 마이클 잭슨 같은 아티스트까지 매료시켰고요.
‘Taiso’. 개그맨과 협업을 하거나 앨범에 코미디 트랙을 넣는 등 음악 외적으로도 사람들을 빠져들게 했던 그룹이 바로 YMO였습니다. 이런 ‘진지함 속에 숨은 위트’ 때문에 그들의 매력이 더 빛났던 것 같습니다.
‘Ikenai Rouge Magic’. 사카모토 류이치와 일본 로큰롤의 전설적 인물인 이마와노 키요시로가 함께 짙은 메이크업을 하고 TV에 나와 연주하고 노래하고 또 키스를 하기도 중독적인 후렴 때문에 잊지 못할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야마시타 다쓰로, 미나미 요시타카, 오오누키 다에코의 세션으로 활동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그의 연주가 돋보인 앨범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오오누키 다에코의 <Sunshower>, 릴리의 <Auroila>, 야노 아키코의 <Gohan Ga Dekitayo>, 기사라기 고하루의 <Tokai No Seikatsu>, 나카타니 미키의 <Shiseikatsu>를 고르고 싶습니다.

하세가와 님께서는 영화 <사생결단>에서 음악 프로듀서로 참가하셨죠. 영화음악은 일반 음악을 작곡할 때와는 또 다른 고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작곡한 ‘영화음악’의 탁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건 영화다’라고 현실을 인식시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 그의 음악 때문에 깨어난 사람들이 ‘아, 좋은 영화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힘이 아닐까요.

사카모토 류이치는 커리어 초창기부터 민속음악과 전자음악을 결합하는 등 실험적인 음악을 꾸준히 만들어왔습니다. 그럼에도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팬도 많고 음악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지만, 과연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할 수 있을까?”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건 사실 나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그렇다면 앞으로 1위를 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묻자 “네, 음악을 대중의 귀에 맞게 만들면 되죠.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답한 그가 얼마 후 ‘Energy Flow’로 실제로 1위를 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후 다른 인터뷰에서 “이 곡이 왜 그렇게 사랑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고도 하지요. 본인도 모르는데, 제가, 또 우리가 어떻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모든 음악이나 예술에서 느낄 만한 거부감에 항체를 만들어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세가와 님이 바라본 사카모토 류이치는 어떤 음악가입니까?
수많은 사람이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 가득한 ‘예술’이라는 산꼭대기에서 뒤덮인 구름 위에 앉아 삼각김밥을 먹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그맨과 협업을 하거나 앨범에 코미디 트랙을 넣는 등
음악 외적으로도 사람들을 빠져들게 했던 그룹이 바로 YMO였습니다.
이런 ‘진지함 속에 숨은 위트’ 때문에 그들의 매력이 더 빛났던 것 같습니다.”


“모든 예술의 한복판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지만 결코 예술에 갇히지 않았던,
한 명의 능동적 시민이자 사유하는 인간이었다고 생각해요.”

2 황국영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번역가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죽음을 앞두고 삶을 돌아보며 쓴 책이죠. 책에서 그가 회고한 시절 중, 가장 흥미롭게 느껴진 때가 있습니까?

아직 창작하는 쪽이 아니라 예술을 찾고 즐기던 소년 혹은 청년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특히 좋아해요. 화집 속 그림을 따라 그리던 초등학생 때. 백남준을 아이돌로 여기며, 교복 차림으로 고다르 영화를 보고, 신주쿠 재즈 카페를 드나들던 10대 시절의 에피소드들이요. 우리가 목격한 적 없는 그의 한때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 나이 때 사카모토의 작품을 좇고 즐겼었거든요. 거기에서 오는 묘한 감흥이 있었어요.

책에서 ‘인간 사카모토 류이치를 가장 잘 보여준다’라고 느낀 에피소드나 문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책에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다른 매체에 기고했던 <‘고작 전기’ 발언의 진의>라는 글이 있는데요. 해당 매체의 맥락 없는 편집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원자력발전 관련 연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연설 원고가 실려 있습니다. 글에 담긴 가치관과 논리, 주변의 반응에 대한 대처 등에서 그를 이루는 커다란 뼈대를 엿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글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침묵은 곧 야만이다. 이것이 제 신조입니다.’

일본 작가들의 책을 다수 번역하셨죠. 글을 쓰는 작가로서 사카모토 류이치에 대한 번역가님의 개인적인 감상이 궁금합니다.
감히 제가 평가할 수는 없지만, 글의 의도가 명확하고 문장의 구조와 흐름이 자연스러워서 작업하는 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철학적이고 까다롭더라도 문장 자체가 난해하거나 어색해서 다듬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제 기준에서 ‘좋은 글’이었죠. 이 일을 하다 보면 이것이 생각만큼 당연하지 않다는 걸 절감하게 되거든요. 그분의 다양한 재능에 새삼 놀랐습니다. 책을 탐독하셨던 분이라 그럴까요?


죽음을 앞두고 쓰는 자서전은 자칫 비관적이거나 자기 연민적인 태도가 깃들 수 있겠습니다만, 이번 책에서는 그런 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어떤 심정과 태도로 글을 써내려갔다고 생각하셨나요?
본인이 자연의 일부임을 깊게 인지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법으로 그 순리를 따른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치료에 힘쓰기도 하고 끝까지 음악적 열정을 쏟기도 하지만, 크게는 흐르는 시간을 살듯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흘러가려 했던 것 같아요. 그가 오래도록 자택 마당에 놓아뒀던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피아노’처럼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번역하시는 동안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워낙 깊고 넓게 세계를 탐구하고 관찰했던 분이라 여유만 있다면 좀 더 자세히 공부하고 옮기고 싶은 부분이 많았어요. ‘노가쿠’나 ‘아이누족’ 이야기처럼 전통문화와 역사에 관한 글에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철학적 관점이나 사회적 발언이 그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 그 생각이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며 작업했습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 추천사를 남겼어요. 번역가님께서 추천사를 쓰신다면 어떻게 쓰실지 궁금했습니다.
‘전부인 줄만 알았던 음악은 어쩌면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광활한 우주의 한 조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경이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오래도록 듣고 싶은, 글자로 남겨진 그의 테마곡.’ 이 책에 대한 제 감상이 너무 거대해서 어떻게 써도 거창한 말이 되네요. 하지만 결국 이게 제 진심 같아요.

책을 번역하면서 알게 된 사카모토 류이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질문으로 가득 찬 사람? 어쩌면 그의 머릿속에는 음표보다 물음표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온 세상을 직접 만지고, 알고, 전하고 싶어 했던 예술가. 모든 예술의 한복판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지만 결코 예술에 갇히지 않았던, 한 명의 능동적 시민이자 사유하는 인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병과 싸우고 사회에 저항하는 순간에도 세상에 대한 애정만큼은 버린 적 없었으니까요.


3 강상욱

영화 수입사 ‘미디어캐슬’ 대표

상업적인 이유 외에도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꼭 한국에서 상영하고자 하셨던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님과의 인연은 2017년부터 시작됐어요. 당시 저는 총괄 프로듀서로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라는 작품이었는데요. 작품의 전체적인 정서가 ‘종족을 초월한 우정과 사랑’이었기 때문에 음악감독으로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선생님께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음악감독을 기쁜 마음으로 수락해주셨습니다. 결과물은 말할 것도 없었죠. 부모님이 안 계신 제게는 마음속의 아버님과도 같은 분이셨어요. 그렇기에 선생님의 죽음이 더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선생님을 추모하는 심정으로 ‘반드시 내가 이 작품을 소개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그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에서도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이번 작품의 특별한 지점은 무엇인가요?
죽음을 직감하신 순간부터 자신을 사랑했던 팬들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셨던 게 느껴져요. 실제로 그 생각이 낳은 결과물이 스크린으로 완벽히 옮겨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연주 녹화 비디오에 가까운 형태로 완성됐죠.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말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가 쏟아졌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요?
‘페달 밟는 소리, 숨소리 모두 음악이 된다. 흑백 화면은 음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라는 짧은 후기가 있었어요. 저는 영화를 수입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이러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점과 일치하는 후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데요. 저의 마음을 정말 잘 대변해준 글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에서 총 20곡을 연주했죠. 그중 단 한 곡의 장면만 골라 예고편으로 만든다면 어떤 곡을 고르시겠습니까?
‘Solitude’. 당시 선생님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음악 감독으로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이 된 <괴물> 한국 수입도 담당하셨죠. <괴물> 영화음악이 특별했던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괴물>에 수록된 모든 곡들이 훌륭하지만,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Aqua’입니다. 사실 ‘Aqua’는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든 곡이 아니에요. 이미 있었던 곡이지만 <괴물>이라는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됐죠. 선생님이 늘 한결같은 에너지로 자리를 지키며 음악을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표님이 기억하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어떤 음악가입니까?
천재성, 집요함, 열정. 그 안에 숨어 있는 한없는 따뜻함. 제게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천재 음악가’였습니다.

“사실 ‘Aqua’는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든 곡이 아니에요.
이미 있었던 곡이지만 <괴물>이라는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됐죠.
선생님이 늘 한결같은 에너지로 자리를 지키며 음악을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탁월했던 것은 ‘음악적 탐구’라고 생각합니다.
YMO의 핵심 멤버로서 전자음악의 가능성을 탐구했고,
그 장르를 대중음악의 전면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으니까요.”

4 고남수

정화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뮤직테크놀로지 전공 교수

사카모토 류이치의 활동은 크게 작곡가와 연주자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작곡가와 연주가로서 지닌 탁월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작곡가로서의 탁월함은 다양성과 혁신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물론, 다양한 나라의 음계를 사용해 재즈, 팝,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를 창조했으니까요.
연주가 사카모토의 탁월함은 해석에 있다고 봅니다. 정교하면서도 ‘자신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감성과 해석을 연주에 담아냈어요. 자신이 작곡한 곡은 물론,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사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탁월했던 것은 ‘음악적 탐구’라고 생각합니다. YMO의 핵심 멤버로서 전자음악의 가능성을 탐구했고, 그 장르를 대중음악의 전면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그를 개척자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사카모토 류이치는 ‘일본 출신 영화음악가’라는 점에서 히사이시 조와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음악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음악가의 공통점은 전통적인 서양 음계뿐 아니라 일본 전통음악에서 영감받은 음계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곡에 독특한 색채와 분위기가 깃들 수 있었죠. 또 다른 공통점은 리듬에서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인다는 것인데요. 전통적인 리듬 패턴을 넘어서 다채로운 시간 척도와 리듬 구조를 탐구해 독창적인 음악으로 완성했습니다.
차이점도 꽤 명확해요. 사카모토 류이치는 전자음악과 결합해 음계를 파괴하는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표현을 탐구했어요. 반면 히사이시 조는 보다 전통적이면서 멜로디에 중점을 둔 음계와 악기 구성를 선호했습니다.

만일 한 학기 동안 사카모토 류이치에 대해 가르친다면 어떤 강의명으로 진행하시겠어요?
사실 저는 지금도 학교에서 강의할 때면 사카모토에 관련된 부분을 학생들에게 곧잘 이야기합니다. 그가 작업한 여러 곡의 멀티 레코딩 트랙 시트(Multi Recording Track Sheet)를 분석하면서 음악과 음향적인 내용의 수업을 했습니다.
강의명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전자음악:혁신과 실험’으로 짓고 싶네요. 사실 지금도 사카모토 류이치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그는 정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어요. 특히 전자음악에서는 실험적인 접근 방식과 혁신적인 사운드에 집중했죠. 커리어 초반의 작품들을 통해 음악의 미래 방향성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하는 내용으로 수업을 꾸려보고 싶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아시아 최초의 오스카 음악상 수상’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오프닝 곡 작곡’ 등 많은 업적을 남겼죠. 그의 가장 큰 음악적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사람들은 위 두 가지로 사카모토의 업적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1970년대 후반 일렉트로닉 밴드 YMO의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YMO는 전자음악을 단순한 팝 음악이나 춤곡의 영역을 넘어서, 예술적이며 실험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음악적 성과는 전자음악이 기계적이고 냉정한 것이 아닌,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담는 깊이 있는 예술 형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데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앨범과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궁금합니다.
YMO 멤버로 1979년 발매한 앨범 <Solid State Survivor>를 가장 좋아합니다. 동시에 가장 뛰어난 앨범이라고 생각하고요. 이 앨범에 수록된 ‘Behind the Mask’는 마이클 잭슨과 에릭 클랩튼이 리메이크하면서 더욱 인정받았어요. 해당 곡의 레코딩 트랙을 보면 ‘보코더(Vocoder)’라는 악기에 코러스를 걸어 스테레오로 만들어 사용한 기록이 있어요. 1979년도 당시의 녹음 기술과 환경을 생각하면 굉장히 과감한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전자음악이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고, YMO의 음악적 비전과 재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앨범입니다.

‘포스트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할 수 있는 음악가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이슬란드 출신의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lafur Arnalds)를 꼽고 싶습니다. 그는 멀티 악기 연주자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사카모토 류이치가 생전에 실험적인 요소를 음악에 결합한 것처럼, 그 역시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있어요. 클래식 악기와 전자음악 기기를 사용해 시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곡을 만들죠. 그 중심에는 감성적인 피아노 선율과 현악 편곡이 있고요. 여기에 섬세한 전자음이 더해져서 독특한 색깔을 냅니다. <Eulogy for Evolution> <For Now I am Winter>가 그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앨범입니다. <Re:member> 앨범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스트링 어레인지먼트 실험으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보여주었고요. 음악으로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섬세하게 탐구하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바라본 사카모토 류이치는 어떤 음악가였습니까?
사카모토 류이치에 대한 조사를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후배 음악가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구나.’ 사카모토 류이치는 생전에 자신이 악보에 낙서처럼 적었던 사소한 내용까지 모두 보관해서 책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어요. 처음 작곡을 할 때 주제에 접근하는 과정 역시 세밀하게 기록했고요. 그걸 볼 때면 후배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기 위해 뭔가 열심히 끄적이고 있는 다정한 선배의 모습이 떠올라요. 그런 점에서 사카모토 류이치는 ‘음악을 하면서 멋지게 늙어가는 방법’을 알려준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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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Illustration 최재훈

202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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