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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que

오픈런 하느라

5월 말 ‘프라다’가 제품 가격 인상을 선언했고, 곧바로 실시했다. 일요일 자정부터 인상한다고. 정확히 자정이 지나자 특정 인기 제품은 품절되었고, 가격은 인상됐다. 타 브랜드들의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곧 ‘샤넬’은 또 한번 인상하겠다고 했단다. 그럼 가방 하나가 1천만원을 호가하게 되려나? 그럼에도 품절 대란이다. 심지어 유튜버들은 ‘매장에서 가장 저렴한 제품 사기’ 같은 콘텐츠를 올리기도 한다.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의 가격이 ‘넘사벽’ 수준이 되어도 곧바로 품절되고, 가장 저렴한 물건이라도 사고 본다. 꼭두새벽부터 백화점 앞에서 텐트 치고 밤을 샌다. ‘오픈런’이라고 하던데. 가격 인상에도 굴하지 않고 반차 쓰고 오픈런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본다.

UpdatedOn July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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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나 프라다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국에서만’ 값을 올린다고 한다. 시장경제 논리에 따르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더 비싸지기 전에 이들 제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그 브랜드 매장에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나마 매장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야 시간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고, 여유 부리며 영업시간에 가면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걸 오픈런이라고 부른단다. 어째서일까? 물론 경제적으로 그런 고가의 제품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인 모양이다. 해외여행을 2년째 못 가고 있으니 누군가의 통장에는 그 돈이 쌓여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유가 그것뿐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런 현상을 설명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나름 물욕 충만한 인간이지만 게으름 또한 엄청나서 오픈런을 할 정도의 의욕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제임스 트위첼은 <럭셔리 신드롬>에서 사치품에 대한 열망은 그 형태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있다고 했다. 이 욕망의 본질은 결국 자기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욕구, 다시 말해서 자아 성장과 발전의 욕구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욕망을 값비싼 가방으로, 다른 누군가는 한정판 클래식 자동차나 희귀 서적 초판본으로 드러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값비싼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이 자아의 향상이라는 심리적 기능을 발휘하려면 다른 조건도 필요하다.

우선 물건의 등급이 있어야 한다. 비싼 브랜드에서는 최고급품만 내놓지 않는다. 초급, 중급, 고급, 최고급 +알파까지 여러 등급의 물건으로 단계를 나눈다. 그 결과 물건 자체의 내적 가치가 만들어진다. 지금 이 물건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초급 대비 얼마나 비싸거나 귀한지로 측정되는 거다. 두 번째는 내 소유물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청중의 존재다. 물론 진성 마니아라면 자기 혼자만 아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청중은 물건의 수준이나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이 청중이라는 조건은 사치품의 역학을 뒤집어 생각하게 만든다. 내 삶의 향상을 위해 소유하려는 물건이 사실은 타인의 인정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말이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사는 건가, 아니면 남들 부러우라고 사는 건가? 이럴 때 20세기 말 철학자 라캉이 내놓은 “인간의 모든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말을 인용하게 된다. 어쨌거나, 어떤 물건의 가치는 그 물건이 얼마나 희귀한지, 그리고 값비싼지뿐만 아니라, 그 물건을 원하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내 주변에 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제 오픈런의 이유는 설명이 된다. 어떤 귀한 물건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 지금도 귀하지만 갈수록 더 귀해진다는 얘기다. 살 거라면 지금 사는 게 이득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줄을 선다.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걸 사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진다. 값을 올릴수록 매장에는 사람이 몰리고, 매장 앞에 줄이 늘어날수록 소유의 욕구는 더 커지는 순환이 완성된다.

한국이니까 더욱 그렇게 된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매우 좁은 사회다. 넓은 사회에서는 남과의 비교 자체가 상당히 드문 일이다. 하지만 좁은 사회에서는 거의 언제나 나와 비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주변에 보인다. 이를 ‘접촉과 영향’이라고 부른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다. 장점은 전반적으로 세련되어진다는 거다. 참조물이 많아질수록 한 번이라도 더 평가하고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지기 마련이다. K-코스메틱이나 K-패션의 성공은 그렇게 서로서로 참조하며 단련된 한국 여성들의 화장 기술이나 패션 감각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획일성이다. 외국에서 한국 관광객을 한 명씩 따로 보면 상당히 세련돼 보인다. 그런데 여러 명이 모여 있으면 어딘가 같은 회사 직원들처럼 보인다. 머리 모양도, 옷이나 신발도 다들 비슷하니까. 가장 큰 단점은 개인이 되기 어렵다는 거다. 나만의 감정, 나만의 생각, 나만의 취향이라는 게 모이고 쌓여야 개인으로서의 ‘자아’라는 게 만들어지는데 그럴 기회가 충분치 않다. 이렇게 모두가 비슷한 옷이나 가방을 걸치고, 가장 인기 있는 곳에서 밥을 먹으려 드는 세상에서 사치품 소비는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경쟁이 된다. 누가 더 비싸고 희귀한 것을 차지하느냐의 끝없는 경쟁 말이다.

내가 사는 세종시에서는 ‘투미’ 가방을 메거나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투미 배낭과 서류가방 둘 다 가지고 있다. 면세점에서 살 수 있는 남성용 가방 브랜드 중에서는 싸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비싸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브랜드다. 최소한 일부 청중은 알아주는 거다. 그리고 재질이나 설계가 꽤 실용적이다. 덕분에 단지 비싸서 산 게 아니라 스마트한 선택처럼 보인다. 만약 이보다 더 비싼 브랜드를 들면? 그때는 아마 인정보다는 비판의 비중이 높아질 거다. 어쨌거나, 그렇게 구매한 내 투미 가방들은 지금 옷장 속에 처박혀 있다. 배낭은 주머니가 많아 1박 이상의 출장을 다닐 때 유용했지만 코로나 시대라 출장 자체가 거의 없고, 서류가방도 갈수록 필요한 상황이 줄어들었다. 진짜 이유는 10년 가까이 같은 구두를 신고 낡은 가방을 드는 동료 박사가 나보다 더 훌륭한 논문을 쓰고, 더 나은 보고서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길은 가방에 있지 않았다. 사실 내 주변에는 이 브랜드의 이름조차 모르는 동료들이 더 많다. 덕분에 나는 이런 오픈런 현상과는 먼 삶을 살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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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장근영 (심리학자)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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