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아레나>가 사랑한 영웅들 PART 2

직쏘

영리한 살인마 직쏘. 나르시시즘에 심취한 직쏘와 나눈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

UpdatedOn March 25, 2021

나의 영웅은 누구인가. 창간 15주년 특집 기사 기획안을 받고 고민했다. 기획은 에디터들이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취향도 말투도 걸음걸이조차 서로 다른 에디터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만의 영웅을 꼽았고, 각 영웅의 면면에서는 그 에디터의 화보와 문체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번 기획은 현재 <아레나> 콘텐츠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기사 진행이 쉽지 않았다. 에디터들은 자신들의 영웅을 영접하고자 메일과 왓츠앱, 전화와 줌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영웅들과 접선했다. 영웅들은 단번에 인터뷰를 승낙하진 않았다.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가 불가능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가까스로 인터뷰에 응해 뒤늦게 답변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뒤에 이어지는 인터뷰이들의 이름을 보면 섭외에 난항을 겪은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평소 우리가 갈망했지만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다. 옷으로 낭만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무뚝뚝한 에디터의 감정을 뒤흔든 사진가, 독일 현대 미술을 이끄는 작가, 방황하는 청춘을 그려내는 영화감독, 남극점과 북극점을 모두 정복한 최초의 인간 등 그들에겐 아직 묻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 있다. 기사는 9명의 실존 인물과 6명의 가상 인물 인터뷰로 구성된다. PARTⅠ에는 실존 인물들과의 감도 높은 대화와 사진이 담겼다. PARTⅡ는 만날 수는 없지만 에디터들이 큰 영향을 받은, 롤모델로 삼기도 한 인물들과의 가상 인터뷰다. 자신이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자아 형성의 토대를 찾아 방황하는 이들에게 <아레나> 창간 15주년 특집 인터뷰가 나침반이 되길 기대한다.

/upload/arena/article/202103/thumb/47609-447371-sample.jpg

탈모가 진행 중인 것 같은데, 샴푸 추천해줄까?
하버드 의학과 탈모 전문 교수에게 선물받은 것을 사용 중인데, 그나저나 첫 질문부터 무례하기 짝이 없군. 게임을 시작하고 싶나?

게임은 나중에 하고, 쉴 때는 뭐 하나?
어떻게 하면 잔인하고 복잡한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까 늘 구상하지. 내 꼭두각시 빌리의 의상 박음질도 잊지 않고.

삶의 가치를 모르는 자, 이를테면 범죄자를 납치한 후 잔인한 게임을 벌이잖아. 그들이 당신의 트랩에 갇히면 기분이 어떤가?
짜릿해. 그들이 고문 기계와 싸우려 들 때면 즐거움은 배가되지. 삶이 얼마나 고귀한지 모르는 자들은 맞아야 한다네. 다만, 난 정당한 게임을 원할 뿐 직접 때리거나 죽이지 않아. 게임의 의도를 간파하고 탈출하는 건 본인들 몫이라네.

정당한 게임을 원한다고 했는데, 당신의 게임에서 이기려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목숨을 파괴해야 하잖아.
내 손으로 직접 죽이지 않는다고 했지 타인의 손으로 훼손하면 안 된다고 한 적은 없지 않은가. 그들은 함정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삶의 가치를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고. 그게 목적이지.

희생자의 인권은? 그들 삶의 가치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게임이잖나. 그들을 결정권자로서 존중해준 거지. 내 작은 배려라고 할 수 있네.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비하면 그 정도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지. 벌 주는 거라고.

납득하기 어렵군. 계획적인 살인을 일삼는 연쇄살인범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살인을 위해 온갖 고문 장치를 설계하고 지금껏 벌어놓은 돈으로 트랩 현장까지 사들이지. 거기에다 내 먹잇감이 될 범죄자들은 얼마나 약삭빠른지, 그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선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해. 연쇄살인범으로 치부하다니 오만하군. 광기로 똘똘 뭉친 살인마들과 나는 다르다고.

가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라는 대사는 직접 생각한 건가?
내가 한 말인데 그럼 누가 생각했겠나?

여러 밈을 만든 명대사이긴 하지만 너무 평범한 것 같아서.
밈이 무엇인가? 아무튼 난 복잡한 수식이 필요한 고난도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 시대의 천재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고깝군. 내 대사에 대해 토를 다는 이는 처음 봤네.

직쏘 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장치가 있잖아. 머리에 씌우면 위턱과 아래턱을 완전히 벌려 박살내버리는 ‘리버스 베어 트랩,’ 만들기 어려워 보이던데 어떻게 개발했나?
내가 대기업 엔지니어이자 건축가였잖나. 장치 구조를 설계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일세. 솔직히 말하면 심리학에도 도가 트여 상대방을 꿰뚫어보는 능력까지 갖췄지. 그러니 희생자들이 제 발로 트랩에 기어 들어오도록 만들 수 있던 게지. 한니발 렉터 따위와 비교하지 말길 바라네.

가학적 변태 같기도 한데…. 게임에 실패한 사람은 직접 죽이잖아.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지?
가학적인 행위를 즐기는 변태라기보단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라네.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군. 누구나 잔인하고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성질은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네.

건강은 괜찮나?
더 이상 함정을 설계하기 힘들 정도로 병세가 악화하고 있다네. 머리가 빠진 것도 항암 치료 때문이지.

몸에 암 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자살 시도했다며.
절벽으로 떨어져 죽으려 했지.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았어. 신이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거지. 떨어지려는 순간 느꼈다네. ‘삶은 소중하고, 삶을 업신여기고 하찮게 생각하는 자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겠다’는 걸 말이야. 첫 살인이 떠오르네. 세실이라는 여자였어. 그녀는 임신한 내 아내를 유산시켰다네. 마약에 미친 여자였지. 그녀에게 보복하기 위해 첫 번째 게임을 시작했네. 첫 시도라 게임은 실패했지만(그녀를 앉혀놓은 의자가 부실했는지 부서져버렸어) 죽이는 데는 성공했어.

말기 암 환자로서 본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저 기다리는 중일세. 하지만 대를 이을 후계자가 나, 존 크레이머 없이도 훌륭하게 살인하도록 하기 위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계획해놓고 떠날 생각이네. 내 설계에 따라 살인할 후계자에 대한 많은 관심도 부탁하네.

후계자가 갖춰야 할 점이 있을까?
치밀한 사람을 원하네. 내가 만든 게임으로 고통을 직접 느껴본 자라면 더욱 적합하겠지. 얼마나 치밀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야 성공적으로 살인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앞서 말한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나?
10년에 걸쳐 이어질 살인을 계획 중이라는 것 외엔 힌트는 줄 수 없어. 어쨌든 아주 잔인할 거야.

희생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하잖아. 테이프를 틀면 당신의 꼭두각시 인형 빌리가 나와 게임에 대해 설명하지.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영감 받았나? 인형 빌리의 디자인은?
딱히 영감이랄 건 없고…. 우선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선 나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선 안 된지 않나. 존 크레이머의 존재를 확실히 숨기기 위해 우리 빌리를 이용했지. 빌리 디자인은 직접 했다네. 굉장한 공포감을 주지 않나?

이 인터뷰를 볼 독자에게 한마디 부탁하네.
난 이만 게임 하러 떠나겠네. 다들 본인들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길 바라네. 그렇다고 나처럼 극단적인 시도를 하란 말이 아니야.

마지막으로 희생자가 될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겠나?
자,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GUEST EDITOR 정소진
ILLUSTRATION 두원

2021년 03월호

MOST POPULAR

  • 1
    권정열, “10CM 음악의 근간은 결핍인 것 같아요.”
  • 2
    BEFORE SUNSET
  • 3
    RE-NEW SNEANKERS
  • 4
    서울의 나무
  • 5
    NEO GENDER

RELATED STORIES

  • LIFE

    연기 없는 저녁

    아이코스는 ‘IQOS Together X’ 이벤트를 통해 어떤 말을 건네고 싶었을까? 그 이야기 속에는 꽤 진지하고 유쾌한 미래가 있었다.

  • LIFE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 4

    한국에서 만나는 미국식 중국의 맛.

  • LIFE

    가자! 촌캉스

    지금 이 계절, 촌캉스를 떠나야 할 때.

  • LIFE

    봄의 공기청정기

    미세먼지가 걱정스러운 계절이라 모아본 오늘날의 공기청정기 4종.

  • LIFE

    꽃구경도 식후경

    눈과 입 모두 즐거운 식도락 봄나들이.

MORE FROM ARENA

  • LIFE

    나의 첫 위스키

    어딜 가도 위스키를 먼저 찾는 위스키 러버들에게 인생 첫 위스키의 기억을 물었다.

  • LIFE

    '프리즈 서울', 그리고 한국의 젊은 작가들

    9월 첫 주에는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한국을 본다. 한국 미술시장이 전 세계의 주목을 이끌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확히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때문이다. 유명 해외 갤러리들이 서울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유명 해외 작가들도 서울을 찾는다. 미술품을 구매하려는 전 세계 투자자들, 미술에 관심 있는 젊은 고객들도 서울에 온다. 예술을 후원하고 지향하는 브랜드들의 마케팅 행사도 있을 거다. 코엑스에서 목격한 해외 스타 작가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나돌 수도 있겠다. 미술품 수집이 취미인 K-팝 스타를 보려는 해외 팬들로 코엑스는 북적일 거다. 미술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미술은 어렵다던 어른들도, 미술품을 종종 구입하는 20대도 아트페어에서 인증샷을 찍을 수도 있고. 미술에 대한 담론이나 가벼운 농담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르내릴 법도 하다. 한 주 동안, 아주 짧은 기간 서울은 미술의 도시가 된다. 전 세계 미술계가 서울을 주목하고, 서울이 해외 유명 작가들을 경청할 때, <아레나>는 한국 젊은 작가들을 돌아본다. 그들의 목소리를 담고, 그들의 작품을 주목하며, 갤러리가 아닌 공공미술관의 한국 작가 전시를 복기한다.

  • LIFE

    누굴 위한 하트 시그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하트시그널3>이 놀라울 정도로 뻔뻔하게 방송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래도 사람들은 본다는 최악의 선례를 남기며 말이다.

  • INTERVIEW

    전설의 입담-이정수

    방송사들은 동계올림픽 중계로 바쁘다. 중계의 꽃인 해설위원을 섭외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KBS는 동계올림픽의 전설들을 해설위원으로 모셨다. 스피드스케이팅에는 이상화와 이강석, 쇼트트랙에는 진선유와 이정수, 피겨스케이팅은 곽민정이 해설을 맡는다. KBS 해설위원들의 출정식을 <아레나>가 함께했다.

  • INTERVIEW

    JAEHYUN’S PRESENT

    NCT 재현은 어느새 자신이 되고 싶던 사람이 되어 있었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