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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슬리먼의 '슬린느(Sline)'

사람들은 피비의 모습을 그리워함과 동시에 에디 슬리먼의 행보에 반기를 들었다.

UpdatedOn November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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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느의 새로운 디렉터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은 전임자였던 피비 파일로(Phoebe Philo)가 이전 셀린느의 느낌을 지우고 재탄생시켰던 것처럼 피비 파일로의 유산을 전부 없애버렸다. 그리고 에디만의 새로운 셀린느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é 악센트를 지우고(그가 ‘이브 생 로랑’에서 보여준 행보와 비슷하게), 모노톤 느낌으로 새 단장을 마쳤다. 그리고 드디어, 9월 28일 그의 컬렉션이 공개됐다. 에디 슬리먼의 계획에 따라 옛 셀린느의 모습이 지워지기 전인 9월, 올드 셀린느(Old Celine)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등장했다.

패션 에디토리얼에 큰 관심을 보이며 활동하던 가브리엘 부키냐(Gabrielle Boucinha)는 9월 3일, 시대적인 아이콘이 된 셀린느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서 2008년부터 2018년도까지의 아카이브를 다루는 올드 셀린느 계정을 론칭했다. 그리고 <리파이너리29(Refinery29)>와 가진 인터뷰에서 에디 슬리먼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그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임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가 1980년대 그런지, 글램 록에 뿌리를 둔 ‘똑같은 옷’을 다른 패션 하우스에 들이는 건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 그의 데뷔전에서 보여준 셀린느 옷들은 그의 생 로랑 마지막 컬렉션에서 본 듯한 느낌이다.”

‘새로운 여성성’을 만들어낸, 우아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젠틀 우먼(Gentle Woman)’의 모습을 보여준 피비 파일로가 남긴 영향력을 생각해본다면, 이번 셀린느에 대한 반발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기존 하이패션의 전형성을 깨트리는 행동을 보여주며 셀린느를 여성 패션의 주류로 만들었다. 기존 하이패션의 행보와는 반대로 현대적으로 가장 모던하고 유려한 실루엣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글래머러스 캐주얼(Glamourous Casual)’ 즉, 우아한 캐주얼웨어를 유행시킨 그녀는 패션계에서 일종의 ‘해방’을 만들어낸 존재였다.

올드 셀린느를 만들어낸 가브리엘과 비슷하게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에 반발하는 이들은 많았다. 적어도 그의 팬이었거나, 피비 파일로의 팬이었다면 이번 컬렉션에 거는 기대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 기대에 에디 슬리먼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스타일과 분위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에디 슬리먼의 새 컬렉션에 대해 <할리우드 리포터(Hollywood Reporter)>는 그를 패션계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라고 칭했으며, ‘생 로랑 2.0(Saint Laurent 2.0)’이라고 혹평을 날렸다.

문득 프랑스 신문사 <르 피가로(Le Figaro)>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에디 슬리먼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셀린느의 새로운 챕터는 피비 파일로를 포함한 전임자들의 진정성을 보존하는 방향을 유지함과 동시에 그의 특색을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가 했던 말에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고스란히 무너졌다. 피비 파일로는 셀린느와 동일어였지만, 이제 그녀가 떠난 셀린느는 피비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셀린느가 에디 슬리먼도 아니지 않은가.

패션은 계몽운동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표현력과 힘이 있다는 것이 이번 셀린느 컬렉션에 대한 반발로 증명됐다. 셀린느가 아니라 차라리 ‘에디 슬리먼’의 이름으로 컬렉션을 선보였다면 어땠을까? 이번 컬렉션은 모두의 기대감을 한 번에 앗아간 안타까운 컬렉션이 되어버렸다. 왜 그는 그만의 브랜드를 내지 않았을까? 그가 말하던 역동적인 아틀리에와 흥미진진한 패션 세계는 96여 개의 생 로랑 박제 컬렉션에 있던 것일까.

새로움을 기대하는 자리에서, 고전을 답습하며 뻔하고 재미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같은 시기에 새로운 버버리(Burberry)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Ricardo Tisci)는 자신의 방식대로 버버리를 재조합해냈다. 그가 잘하는 스트리트웨어, 고딕 등의 요소를 영국 서브컬처와 잘 어우러지게 하는 방식을 택함과 동시에, 버버리의 헤리티지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해서, 멋들어진 컬렉션과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하지만 에디 슬리먼이 17세기 파리의 호텔로 하우스를 옮기면서 그가 가져온 프렌치 헤리티지는 무엇일까? 그리고 피비가 지킨 ‘진정성’은 어디 있을까. 그가 자기 자신을 답습하는 게 아니었다면, 적어도 ‘그’가 담긴 새로운 창조를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해마다 전적 갱신을 해내는 패션 하우스들 사이에서, 브랜드의 디폴트 값을 바꾸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이는 최근 하이패션계의 흐름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동시에 기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건드리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내포한다. 무엇보다 의도가 잘못 흘러갔을 경우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충격은 더 크다. 기존 아카이브를 그리워하는 모습과 슬리먼에 걸었던 기대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대중의 시선은 부정적으로 변했다.

에디 슬리먼은 자신에 대한 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프랑스의 채널 TMC에서 세간의 비난에 대해 입을 열었다. “폭력은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대중을 흔드는 소셜 네트워크는 유용한 기능보다도 한계를 모르는 증오를 증폭시키며 모든 걸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결국엔 이 컬렉션이 예상치 못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프랑스의 순응하지 않는 저항심과 셀린느의 자유주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짧은 인터뷰를 통해서 바라본 그는 자신을 향한 비평에 대해서 같은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그의 생각대로 그가 이끄는 셀린느는 과거 생 로랑처럼 명암이 뒤바뀌는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물론 그의 예전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셀린느를 좋아하겠지만, 셀린느와는 아마도 한참 동떨어진 행보를 걷는 것으로 보여 진정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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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서동현
WORDS 김수호(패션 칼럼니스트)
ILLUSTRATOR HeyHoney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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