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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보스톤>으로 돌아온 천만 감독, 강제규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 영화 산업에 한 획을 그은 강제규 감독이 돌아온다. 8년 만이다.

On September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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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의 신작 <1947 보스톤>이 올 추석 관객을 만난다. 영화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제2의 손기정으로 촉망받는 제자 서윤복과 함께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배우 하정우·임시완·배성우, 김상호가 역사 속 감동의 순간을 연기한다.

기획부터 개봉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강제규 감독이 시나리오를 처음 접한 시기는 2017년, 촬영은 2020년 1월에 마쳤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주연배우 배성우의 음주 운전으로 1년, 총 3년간 개봉이 연기됐다. 분명 답답한 시간이었지만, 강제규 감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후반 작업을 거듭했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손보는 시간으로 삼았다. 그렇게 <1947 보스톤>이 탄생했다.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영화”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입니다.
응급실에 다녀올 정도로 긴장했어요. 영화에 대한 반응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때도 됐는데 여전히 떨립니다. 우선 예기치 않게 개봉 연기가 길어지면서 굉장히 답답했죠. 영화는 개봉돼 관객과 만나야 비로소 완성되는데, 개봉이 미뤄지니까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당시엔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좋았던 거 같아요. 작품을 보다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문제점을 찾아낼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후반 작업을 원 없이 했어요. 결론적으로 어떤 후회도 남지 않습니다.

음주 운전으로 물의를 빚었던 배성우의 출연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거 같아요(배성우는 지난 2020년 11월 음주 운전으로 적발됐다. 배성우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8% 이상으로 면허취소 수준이었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비슷한 일을 겪었던 감독들과 만나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웃음) 영화의 원형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출연분을 최대한 덜어냈어요.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작품에 대한 욕심보다 관객들이 느낄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1947 보스톤> 제작 보고회 전, 배성우 배우와 긴 시간 통화를 했어요. 스스로 굉장히 괴로워하더군요. 작품에 함께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에게 다시 한번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일단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졌어요. 굉장히 매력적이었죠. 굳이 지금 이 시점에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언급할 이유가 있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과거를 돌아봐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팍팍한 세상에서 손기정·서윤복 선생님의 성공 일화가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일각에선 ‘국뽕’, ‘신파’를 우려하기도 합니다.
없는 사실을 만들었다면 국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1947 보스톤>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요. 그래도 국뽕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궤가 다른 국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신파는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어요. 보스턴 마라톤 대회로 가는 여정과 서윤복 선생님이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의 실제 과정이 감동적이고 영화적이에요. 실화를 그대로 옮기기만 해도 충분했죠. 뭘 더 얹을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서 고증에 충실했고, 넘친다는 생각이 들 때는 과감하게 잘라냈어요. 절대 감동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컸으니까요.

관객들이 극장을 안 찾는 게 아니라 엄격해진 거죠.
결국 관객이 팝콘을 사 와도 못 먹고 나가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해요.
몰입도가 높은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하정우, 입에 발린 말 못 하는 배우”

배우 하정우와 임시완을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실화를 다루다 보니 일체감이 가장 중요했어요. 손기정 선생님을 생각했을 때 저절로 하정우 배우가 떠올랐죠. 그만큼 외형적으로 닮은 부분이 많았어요. 임시완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서윤복 선생님과 외적인 조건이 부합했어요. 사실 캐스팅과 관련해선 큰 고민이 없었어요. 떠오르는 두 배우가 명확했거든요.

하정우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입에 발린 말을 전혀 하지 않는 배우예요. 그래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할 때는 하정우 배우에게 물어보곤 했죠. 하정우 배우가 말하길 이번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대요. 하정우 배우가 영화에 만족해서 기쁘더군요.(웃음)

임시완 배우는 이번 작품을 위해 체지방률을 6%대까지 감량했다면서요?
캐스팅 과정에서 임시완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무엇보다 진짜 마라토너처럼 보이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의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고 말했고, 임시완 배우도 공감했어요. 마라토너가 가져야 하는 자세와 체중 감량을 통해 최상의 신체 조건을 만드는 데도 동의했죠. 임시완 배우는 촬영 3개월 전부터 외형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서윤복 선생님과 같은 몸을 만들어오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촬영 기간 5개월 동안 그 체형을 유지했어요. 굉장히 혹독한 과정이었죠. 임시완 배우 덕분에 촬영장에서 쾌감을 느꼈어요. 실제 마라톤 선수처럼 동작 하나하나가 살아 있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마라톤 대회 장면을 촬영할 때는 진짜 서윤복 선생님이 달리는 느낌이었어요.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 장면에서 임시완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라는 평단의 호평이 이어져요.
하트브레이크 언덕에서 촬영할 때 가장 미안했습니다. 경사가 높아 코스의 난도가 상당했거든요. 날씨까지 무더워 촬영 자체가 힘들었을 거예요. 심지어 호주에서 로케이션 촬영이라 스케줄까지 타이트했어요. 하루가 밀리면 제작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배우들이 군말 없이 촬영에 임하고, 심지어 욕심을 내서 잘 찍어줬어요. 특히 임시완 배우에게 고마워요. 서윤복 선생님의 정신으로 달리는 모습에 감탄했어요. 여러모로 대단한 배우예요.

400여 명의 외국 배우가 함께했다고 들었습니다.
국내·해외 캐스팅 디렉터가 함께 움직였어요. 외국 배우들은 1차로 영상으로 오디션을 거쳐 발탁했어요. 실제로 마라톤을 경험해본 배우로 캐스팅을 진행했죠. 그 과정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보스턴 마라톤 대회 장면에서 임시완 배우와 함께 순위를 앞다투는 선수로 독일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뛰는 폼이 너무 특이했어요. 오디션 영상에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점이었죠. 촬영 직전에 리허설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에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어요.(웃음) 안타깝게도 해당 배역은 다른 외국 배우로 교체됐어요. 작품을 위해 먼 길을 와준 독일 배우와는 따로 만나 식사를 하면서 미안함을 전했어요. 정말 아찔한 하루였습니다.(웃음)

특별 출연으로 함께한 박은빈 배우의 눈부신 활약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대스타가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평소 모니터링해주는 지인에게 대본을 보여줬는데 떠오르는 배우가 있다면서 박은빈 배우를 추천해줬어요. 배역을 마음에 들어 할지 확신하지 못했는데, 대본을 보고 연락이 왔어요. 원래는 출연자 명단에 올랐는데 막바지에 박은빈 배우의 팬들을 의식해 ‘특별 출연’으로 바꿨어요. 귀한 배우에게 작은 역할을 준 거냐고 야단맞을 거 같았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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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부담감 때문에 방황했어요. 나름 아픔의 시간이 있었죠.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지금은 가벼워졌어요.

“<태극기 휘날리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에 방황했다”

1996년 영화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한 강제규 감독은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 한국 영화사에 남을 대작을 연출한 주인공이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는 강제규 감독에게 ‘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유의미한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들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영화사에서 강제규 감독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어요.(웃음)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10%일 때 연출을 시작했어요. 많은 명암을 보고 경험했죠. 그 시기의 저는 ‘한국 영화가 뭘 극복해야만 진화할까’, ‘할리우드 콤플렉스를 어떻게 벗어날까’를 늘 고민했어요. 독립투사도 아닌데 말이죠.(웃음) 다행히 그런 생각들을 거듭하면서 성장했어요. 후배 감독들 덕분에 한국 영화 자체도 엄청난 성장을 했고요. 하지만 성장과 동시에 영화 산업이 또 다른 위기와 마주하게 됐어요. 다 같이 슬기롭게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 산업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허들이 높아졌어요. 관객들이 극장을 안 찾는 게 아니라 엄격해진 거죠. 결국 관객을 극장에 찾아오게 만들 영화가 필요해요. 최근에 비슷한 질문을 받아서 “관객이 팝콘을 사 와도 못 먹고 나가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어요. 그만큼 몰입도가 높은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러닝타임 동안 영화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요. OTT, 드라마에 견줄 수 없는 영화의 압축미를 되살리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이후 영화 산업에 일어난 변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1947 보스톤>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상황들을 마주하게 됐죠. 과거엔 ‘볼만한 영화’ 정도면 어느 정도 관객을 모을 수 있다는 룰이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룰이 부서졌어요. 관객의 성향과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면 절대 선택을 받을 수 없게 됐죠.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영화, 극장가에 일게 된 변화 또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됐습니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이를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요?
한동안 부담감 때문에 방황했어요. 미국에서 지평을 확장하겠다는 꿈을 꿨지만,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나름 아픔의 시간이 꽤 있었어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 제가 23살에 영화계에 입문했어요. 저 자신과 싸우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쟁취하는 데 대한 성취감이 컸죠. 그때 ‘죽을 때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을 정도로 만족감이 컸어요. 그 마음을 한때 잊었더라고요. 지금은 눈에 보이는 싸움에 의미를 두지 않아요. 단지 더 깊이 있고, 밀도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감독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누군가 인생 영화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꼽거나 영화계에 입문한 계기가 된 작품이 <쉬리>라고 말할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또 미국에서 한국사를 가르칠 때 제 작품을 교본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뿌듯했죠. 그런 순간을 만나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실패해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요.

감독님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영화를 만든다는 건 여전히 도전이에요. 저 자신과 싸우고 있죠. 인간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두 아이가 영화감독을 안 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웃음) 하지만 힘들어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부심을 느낄 만한 순간을 만나고, 영화를 통해 용기를 얻어요.

다음 작품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웃음)
하고 싶고, 생각하고 있는 작품은 많아요. 어떤 작품이 먼저 나올진 모르겠어요. 작품을 보여줄 플랫폼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서사에 따라 극장이 아니라 OTT로 선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끝으로 <1947 보스톤>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가 되길 바라나요?
너 나 할 것 없이 사는 게 힘든 시대예요. 우리 영화를 보고 같이 달리면서 위안을 얻고 용기가 생기길 바랍니다. 올 추석에 관객과 같이 달릴 수 있는 영화는 <1947 보스톤>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영화 산업이 전반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이번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게 되면, 후배 감독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김태이(프리랜서)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2023년 10월호

2023년 10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김태이(프리랜서)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