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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러시아 문학 기행 ⑦

시베리아의 도스토옙스키

On December 08, 2017 0

시베리아 중심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밤기차로 8시간 반 만에 옴스크에 도착했다. 2017년 10월 5일 아침 6시 30분. 플랫폼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로의 한 구간인 630km를 달려온 것이다, 기온은 영하 1°C. 우리나라의 추석 다음 날이다. 연휴를 이용해 이곳에 온 이유는 도스토옙스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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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스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건물 왼쪽 검은 부분이 도스토옙스키 부조.

옴스크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건물 왼쪽 검은 부분이 도스토옙스키 부조.

 

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옴스크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실. 실물 크기의 도스토옙스키 사진을 세워놓았는데 키는 크지 않았다.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실. 실물 크기의 도스토옙스키 사진을 세워놓았는데 키는 크지 않았다.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실. 실물 크기의 도스토옙스키 사진을 세워놓았는데 키는 크지 않았다.

노보시비르스크로부터 서쪽으로 600km가량 떨어져 있는 옴스크의 인구는 약 118만 명(2017년 현재). 이르티시강과 옴강이 만나는 합류 지점에 18세기 초 군사 요새가 세워지면서 서시베리아 개척의 중심지로 발전했는데 현재 시베리아에서 노보시비르스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이곳에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이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곳에서 1850년부터 1854년까지 꼬박 4년간 족쇄를 찬 채 유형 생활을 했다. 그가 생애 최악의 시간을 보낸 끔찍한 곳이다. 그는 옴스크에서의 유형 생활을 종종 지옥에 빗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훗날 "그 기간이 나 자신의 혼의 구제를 위해 중요하고도 유익했던 때"라는 실로 훌륭한 말을 남겼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유형지에서의 체험을 『죽음의 집의 기록』(1862)이란 책으로 펴냈다. 최고의 작가답게 수용소의 모습을 당국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그려냈다. 제3자의 수기 형식으로 썼지만 실은 그 자신의 이야기다.

나는 옴스크에서는 만 하루 머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이튿날 오전 9시 30분경에 다시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도스토옙스키 박물관부터 가기로 했다. 박물관이 10시에 문을 연다고 해 역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택시를 탔다. 10시 조금 지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 도착했다. 정식 명칭은 '도스토옙스키 옴스크 국립 문학박물관'. 박물관은 요새 사령관의 관사로 쓰던 단층 건물이다. 1983년부터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이 된 요새 사령관의 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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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전시되어 있는 당시 유형수의 의복. 우_박물관의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는 크세니아 양.

좌_전시되어 있는 당시 유형수의 의복. 우_박물관의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는 크세니아 양.


건물 외벽 한쪽 끝에는 도스토옙스키 전신상이 주철로 부조되어 붙어 있었다. 눈은 조금 잦아들었으나 잔뜩 흐린 날씨에 부조가 검정색이어서 미리 알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란 나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동행한 동포 김준길 교수다. 김 교수가 사전에 박물관 측에 이런저런 문의를 하면서 방문 예정 시간을 알렸기 때문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물관은 도스토옙스키 한 사람만을 위한 박물관은 아니었다. 이 지역 출신 다른 문인들의 전시물도 있었지만 건물 한편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조금씩 전시해놓은 정도여서 사실상 도스토옙스키 1인 박물관이나 다름없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첫 번째 전시실에 도스토옙스키의 실제 크기의 사진을 세워놓아 누구나 그 옆에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서양인치고는 키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사진으로 보아서는 170cm 정도나 될까?

박물관의 도스토옙스키 관련 공간은 4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었다. 각종 도스토옙스키 관련 사진과 그가 유형 생활 중 발목에 찼던 것과 같은 모양의 막대형 족쇄(기다란 쇠막대가 연결된 이 족쇄에 대해서는 후에 설명할 예정이다), 등에 흰 원이 그려진 죄수의 의복, 사형수들에게 처형 직전 입혔던 모자 달린 흰 수의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크지 않았으나 많은 자료들을 모아놓기 위해 정성을 쏟은 것 같았다.

박물관 직원 크세니아 양이 우리를 안내하며 1시간 반가량 전시물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크세니아 양은 설명을 모두 마친 후 우리를 박물관장실로 안내했다. 관장 빅토르 솔로모노비치 바이네르만 박사는 관장실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기다렸다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관장실로 들어가 그와 약 40분 정도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옴스크에는 도스토옙스키 옴스크 국립 대학교가 있고, 도스토옙스키 도서관이 있으며, 동상이 두 곳에 있다고 했다. 동상 하나는 박물관 인근 큰길가에 있고, 다른 하나는 옴스크 드라마 극장 옆 공원에 있다고 했다.

내가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한 솔제니친이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의 사진이 있다고 들었다"고 했더니, "사진은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관장에게 "이르티시 강변에는 도스토옙스키와 관련된 흔적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동상이나 상징물 같은 것이 없느냐는 의미였다.

내가 그렇게 물어본 이유는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에 유형 생활 중 힘든 노역을 하면서도 기분 전환이 되는 곳으로 이르티시강이 자주 나올 뿐만 아니라 이 강 건너편을 '자유의 초원'으로 동경하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죄와 벌』(1867)에도 전당포 주인 자매를 죽인 죄로 시베리아 유형을 간 라스콜리니코프가 강변의 통나무에 걸터앉아 햇빛을 듬뿍 받으며 강 건너편에 펼쳐져 있는 유목민의 천막이 보이는 광야를 '완전한 자유가 있는 곳'이라며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죄와 벌』에서 그리고 있는 강이 바로 도스토옙스키가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말한 이르티시강인 것이다.

관장은 내게 강변에 있는 '토볼스크의 문'에 가보라고 했다. 지난 시절 유형수들이 옴스크로 들어올 때 그곳을 통해서 왔으며, 그때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죄수들이 강을 건너와 그곳에서 족쇄를 찼고 후에 형기를 마치고 나갈 때도 그곳에서 족쇄를 풀었다는 것이다.

작별을 하기에 앞서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푸시킨, 안톤 체호프 등이 들어 있는 나의 책 『시베리아 문학기행』을 김준길 교수가 관장에게 소개했다. 관장은 책에 '러시아 옴스크 도스토옙스키 국립 문학박물관에 기증한다'라고 써달라고 했다. 그렇게 써서 관장에게 전달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 관장은 나와 김 교수에게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쓴 자신의 저서를 선물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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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옴스크 드라마 극장 옆의 도스토옙스키 동상. 우_옴스크 역 앞에 선 필자.

좌_옴스크 드라마 극장 옆의 도스토옙스키 동상. 우_옴스크 역 앞에 선 필자.

 

감옥 밖은 환상적 이야기 속의 세계

박물관에서 나와 인근에 있다는 도스토옙스키 동상을 찾았다. 박물관 바로 옆은 아니었다. 인근에 있는 공원을 지나면 나오는 큰길 건너편에 있어서 한참 만에 찾을 수 있었다. 또 다른 동상이 있다는 옴스크 드라마 극장까지는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 이때부터는 택시를 대절했는데, 한 시간에 350루블(약 7천원)을 달라고 했다.

옴스크 극장이 있는 자리가 과거에 요새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유형자들을 가두는 수용소는 이 요새 한구석에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을 세운 모양이다.

도스토옙스키가 4년간의 유형 생활을 마치고 쓴 『죽음의 집의 기록』은 이렇게 수용소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우리들의 감방은 요새 끝, 장벽 바로 옆에 있었다. 담장 틈새로 혹시 무엇인가 보이지 않을까 해서 신이 창조한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여기서는 단지 하늘의 가장자리와 굵은 잡초가 자라고 있는 높다란 토성(土城)과 밤낮 그 위를 오가는 보초들만 볼 수 있을 것이다. (…) 울타리의 다른 한쪽은 늘상 잠긴 채, 보초들이 밤이고 낮이고 지키고 서 있는 견고한 출입문이 달려 있다. 이 문은 일터로 나가기 위해, 요구에 의해서만 열리곤 했다. 이 출입문 너머에는 여느 누구와 다름없는 보통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광명과 자유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울타리의 안쪽에서는 그곳을 마치 환상적인 이야기 속의 세계처럼 상상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 이덕형 옮김, 열린책들, 2010)

이 같은 요새 안 감옥에 대한 묘사는 수년 후에 쓴 『죄와 벌』에 다음과 같이 다시 나온다.

"시베리아! 광막하고 황량한 큰 강 기슭에 러시아 행정 중심지의 하나인 도시가 펼쳐져 있다. 여기에는 요새가 있고 그 안에 감옥이 있어, 우리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제2급 유형수로서 이미 만 9개월 동안 이곳에 유폐되어 있었다. 범행을 저지른 날로부터 벌써 1년 반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죄와 벌』, 채수동 옮김, 동서문화사, 2015)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옴스크 드라마 극장 앞에 도착해 또 다른 도스토옙스키 동상을 찾았다. 동상은 극장 바로 옆 공원 한가운데에 있었다. 여기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동상은 다른 일반 동상들과 달리 철물을 이용해 다소 추상적 형태로 만들어졌다. 알고 보지 않는 한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으로 인식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동상을 사진에 담은 후 대절한 택시로 토볼스크의 문이 있다는 이르티시 강변으로 향했다. (다음 호에 계속)
 

▶ <우먼센스>에서는 바이칼BK투어(주)와 함께 2018년 2월 16일부터 23일까지 7박8일 일정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가는 얼음 왕국 바이칼 탐방 여행'을 진행한다. 문의 및 신청은 바이칼BK투어(주) 02-1661-3585, 관련 내용은 우먼센스 2017년 12월호 98쪽 참조. 

시베리아 중심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밤기차로 8시간 반 만에 옴스크에 도착했다. 2017년 10월 5일 아침 6시 30분. 플랫폼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로의 한 구간인 630km를 달려온 것이다, 기온은 영하 1°C. 우리나라의 추석 다음 날이다. 연휴를 이용해 이곳에 온 이유는 도스토옙스키 때문이었다.

Credit Info

취재·사진
이정식(<우먼센스> 발행인)

2017년 12월호

이달의 목차
취재·사진
이정식(<우먼센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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