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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의 작가 이광수의 흔적을 찾아

러시아 문학의 뿌리 시베리아를 가다

On October 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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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의 집 내부.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옙스키의 집 내부.


“한국인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극동과 사할린을 문학에 담아낸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를 사랑한다. 이 지역은 한국문학의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한국의 근대 소설가 이광수의 작품 <유정>은 시베리아와 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얼마 전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연설 내용 중 일부분이다. 또한 김영하 작가는 무인도에 가지고 가고 싶은 유일한 책으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선택했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 채사장은 자신의 인생의 책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꼽았다.

왜 이처럼 한국 작가들은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을 좋아하며 추천 도서로 꼽을까? 명사들 역시 러시아의 도시들을 꼭 가보라고 권한다. 사실 러시아는 사람들이 여행지로 쉽게 선택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유럽이나 아시아 말고 시베리아, 바이칼, 몽골을 중심으로 러시아 지역으로 떠나려는 여행자가 느는 걸 보면 그곳의 매력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듯하다.

『시베리아 문학기행』은 이런 욕구를 반영한 듯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멜리호보, 사할린, 바이칼 호수 등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그곳의 유명 여행지를 소개하는 단순한 여행서가 아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푸시킨 등 러시아 대문호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대 작가 이광수의 흔적을 찾아가는 문학 기행을 담은 에세이다. 저자 이정식은 러시아 문학 전문가나 여행 전문 작가는 아니다. 그는 평생을 정치부 기자로서 언론인으로 살아왔지만, 오랜 세월 시베리아와 러시아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수차례 러시아 곳곳을 여행하며 점점 더 그곳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그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문학 기행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찍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평소에 시베리아 지역이나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러시아 문학의 핵심은 바로 ‘데카브리스트’를 이해하는 것으로 비롯된다. 데카브리스트는 1825년 12월에 러시아 혁신을 위해 혁명을 일으킨 귀족들을 일컫는데, ‘12월 당원’이라고도 한다. 혁명은 당일 진압되어 실패했고 혁명에 가담한 수많은 귀족이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져 처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데카브리스트는 대문호와 대작을 탄생시키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도스토옙스키는 차르 체제를 비판하는 독서 모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혹독한 환경의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끔찍했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의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만나지 못했으리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역시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다. 또한 유형을 떠난 데카브리스트의 뒤를 따라 시베리아로 간 데카브리스트 아내들의 헌신적인 삶은 감동적인 이야깃거리로 많은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이렇듯 이 책은 시베리아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데카브리스트들과 그의 헌신적인 아내들, 그리고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떠올리게 만든다.

 

 

1 체호프 동상 앞에 선 지은이 이정식. 2 시베리아 설원, 자작나무 숲 앞의 말들. 3 바이칼 호수 풍경. 4 안중근 의사 5 톨스토이 6 도스토옙스키 7 이광수

 

그렇다면 우리의 이광수는 1930년대 일제 점령기에 왜 그토록 쓸쓸하고 황량한 시베리아로 떠났을까?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이광수와 그의 대표작 『유정』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게 전개된다. 『유정』은 1933년 <조선일보>에 76회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이 소설은 이광수가 개인적으로도 가장 자랑스러워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광수가 시베리아에 가게 된 것은 톨스토이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톨스토이에 깊이 빠져들었고 톨스토이의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어쩌면 그가 문학을 하게 된 것도 톨스토이의 영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톨스토이가 죽은 지 4년 후에 시베리아에 가게 되지만 그에게 톨스토이는 곧 석가이자 예수였다. 친일파로 알려졌지만 이광수는 처음에는 독립투사들과 함께했다. 또한 여장부 의사 허영숙과의 결혼에서부터 이혼까지, 그리고 6·25전쟁 후 납북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이야기는 그의 불행한 삶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시베리아 문학기행』은 단순히 그곳을 여행하는 즐거움을 전해줄 뿐만 아니라 종종 잊고 마는 우리의 시대사적 아픔을 들춰낸다.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떠났던 곳,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떠났던 곳, 많은 애국지사들이 학살당했던 곳, 그리고 수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이주해 고통스럽게 살았던 곳이 바로 시베리아가 아닌가. 저자는 긴 시간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며 우리의 역사를 한 번쯤 되돌아보길 바랐다.

저자의 모든 바람을 제쳐두고라도 ‘여행’이란 그저 즐거운 것이 아닐까? 화려한 볼거리가 많은 유럽 같지도, 먹거리가 많은 아시아 같지도 않지만 엄청난 면적을 자랑하는 광대한 러시아 땅이 궁금하긴 하다. 러시아 전체에는 11개의 시간대, 즉 11시간의 시차가 있을 정도니, 이것만으로도 러시아 대륙의 스케일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다. 예술과 문화, 혁명의 도시로 알려진 상트페테르부르크, 동시베리아의 무역과 행정 중심지였던 이르쿠츠크 등의 도시와 유명한 체호프의 산책로가 있는 멜리호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바이칼 호수 등을 여행하며 광활하게 펼쳐진 대자연을 만끽해보면 어떨까? 다른 여행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얼음 위의 식사는 또 어떤 기분일까? 지금 당장 떠날 여유가 없다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책으로나마 잠시 시베리아 여행을 떠나보길 권한다.

『시베리아 문학기행』, 서울문화사, 이정식, 15,800원, 432쪽

지은이 이정식


지은이 이정식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 졸업
홍콩대 중국어문 과정 수료
현 서울문화사 사장
현 예술의전당 및 충무아트센터 비상임이사
전 CBS·KBS 기자
전 CBS 사장, CBS 노컷뉴스 회장
전 사단법인 월드하모니 이사장
수상 2009년 서울대 언론인 대상
음반 <이정식 애창가곡> 1·2·3·4집
저서 『북경특파원』(1985, 토담), 『기사로 안 쓴 대통령 이야기』(1992, 동학사), 『워싱턴 리포트』(1995, 동학사), 『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2011, 한결미디어), 『가곡의 탄생』(2017, 반딧불이)

CREDIT INFO

신수경(서울문화사 출판팀장)
사진제공
이정식(<우먼센스> 발행인)
2017년 10월호

2017년 10월호

신수경(서울문화사 출판팀장)
사진제공
이정식(<우먼센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