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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호흡에 대하여

시대가 바뀌면 질병의 양상도 바뀐다. 예측하기 어려운 폐암의 패턴을 파악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방법을 연구해온 전상훈 교수(분당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를 만났다.

On January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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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암 사망 원인 1위인 폐암. 그만큼 초기에 발견하기 어렵고 악성도가 높은 위험한 암이다. 자각증상도 없고 일반 엑스레이 촬영으로도 찾아내기 힘든 것은 물론 진행 속도가 비교적 빠르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전상훈 교수는 시대가 바뀌면서 폐암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이 필터 없는 거친 담배를 피웠지만 요즘은 주로 필터 담배를 피우잖아요. 또 자동차 배기가스와 음식을 조리할 때 나오는 오염 물질의 영향도 있고요. 산업이 바뀌면 사회 환경이 바뀌고 질병의 양상도 변화합니다. 우리나라가 고도의 산업사회가 되면서 암의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죠.”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비흡연 여성의 폐암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간접흡연이나 환경적 영향 등 광범위한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폐암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폐암 환자 중 5~15%는 일생 동안 담배를 피운 적이 없으나 환경이나 유전적 요인으로 발병합니다. 환경적인 부분을 조금만 신경 쓰면 폐암 발병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가령 요리할 때 가스레인지 후드를 항상 작동시켜 환기를 철저히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휘발성 강한 물질은 피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죠. 40세 이상의 남녀는 정기적으로 CT 검진을 받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흡연이 폐에 나쁘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중년 남성이 흡연하는 경우 평균수명이 10년가량 단축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건강한 폐를 위해서는 담배를 멀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금연하기로 마음먹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분이 많죠.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흡연은 단순한 기호 습관이 아니라 치료가 가능하나 쉽게 재발하는 만성질환’이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식단은 어떤 게 있을까? 전상훈 교수는 상식적으로 아는 정도만이라도 잘 챙겨 먹으라고 귀띔했다.

“특효 밥상이나 약 같은 것은 없습니다. 좋다고 하면 꼭 그것만 드셔서 되려 병을 만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제가 늘 말하는 건 ‘너무 걱정하는 게 병을 만든다’는 겁니다. 심지어 폐암 수술을 받고 난 후에도 특별한 식단을 알려드리지 않아요. 마음 편하게 드시고 싶은 것 맘껏 드시라고 하지요.”

전상훈 교수는 그간 폐암의 완전 정복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폐암 재발 예측 앱’을 개발한 것. 1기 폐암 환자의 재발 요인을 분석해 자동으로 재발률을 계산하는 원리다.

“외과 의사들은 1기 폐암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을 하면서 사례들을 살펴보니 같은 1기 환자라도 어떤 환자는 재발하는 반면 재발하지 않는 환자도 있더라고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고 폐암 수술을 받은 환자의 재발률을 예측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전상훈 교수 연구팀은 2000년에서 2009년까지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아산병원, 연세대학교세브란스병원, 국립암센터 등 대형 병원 네 곳에서 수술 받은 1기 폐암 환자 1천7백여 명을 대상으로 자료를 분석했다. 분석한 자료로 지표를 만들고 제대로 적용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삼성병원과 화순전남대학교병원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한 결과 그 유용함을 입증했다. 재발 확률이 높은 환자일 경우 예방적으로 항암 약물 치료를 하는 등 좀 더 세밀하게 경과와 위험 요소를 살피며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이미 암의 관리 지표나 지침은 존재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따르는 지표가 서양 지표라는 것이죠. 서양인의 암과 아시아인의 암은 다를 수 있는데, 그동안 우리의 데이터가 없어 서양 데이터를 따를 수밖에 없었죠. 그게 안타까워 우리에게 맞는 데이터를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아 연구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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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훈 교수는 미국 ‘후즈후(Who’s Who)’사가 발행하는 세계 인명 사전인 <마르퀴스 후즈후(Marquis Who’s Who)> 2004~2005년판(지난해 8월 발간)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폐암과 폐 이식 분야에서 많은 연구 업적을 이룩한 공로를 인정받아 ‘의학 및 보건분야’에서 우수 과학자로 등재된 것이다. 지난여름에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흉부외과학회 학술 대회에 팀을 이끌고 참여해 우승하기도 했다. ‘흉부외과학 마스터스 컵’이라고도 불리는 이 학술 대회는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의 세 팀이 흉부외과학 관련 임상 사례에 대한 문제를 서로 내고 풀며 승부를 가리는 토너먼트 형식의 경합으로 진행된다. 흉부외과학 분야에서는 명성이 높은 대회다.

전 교수는 흉강경수술 권위자로도 유명하다. 예전에는 폐암 수술을 할 때 가슴을 크게 절개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작게 구멍을 낸 후 내시경을 넣어 수술하는 흉강경수술을 많이 하고 있다. 흉강경을 이용한 폐암 수술은 절개 부위가 작아 수술 후 환자의 통증이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환자의 불안감이 덜하고 병원에 머무르는 기간이 짧다. 폐 기능의 회복도 빠른 편이라 암 수술을 받고 3일이면 퇴원이 가능하다.

“병원에 머무르는 기간이 짧다는 것은 수술 후 합병증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입원비도 줄어드니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훨씬 덜하죠.”

아시아흉강경수술교육단 회장으로서 전 교수는 아시아의 젊은 외과의들의 교육에도 남다른 책임감을 갖고 있다. 그의 교육을 수료한 젊은 의사만도 2백 여 명이 넘는다. 국적이 다양한 이들은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환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잃지 않는 그에게 의사가 된 계기를 물었다.

“집안에 의사가 여럿 있어 낯설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희 집안 대장이신 할머니께서 ‘상훈이는 의사가 되는 것이 좋겠어’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어린 제게 할머니는 하늘 같은 분이셨기에 ‘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흉부외과는 힘들다고 손꼽히는 분야다. 심장과 폐를 담당하기에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들을 수없이 마주해야 한다.

“옛날에는 응급실에서 흉부외과 의사들이 지나가면 다른 과 의사들과 직원분들이 전부 길을 비켜줄 정도였어요. 철없는 마음에 ‘폼 좀 난다’고 생각했죠.(웃음) 심장과 폐를 지키는 흉부외과는 사람을 살리는 의술 행위의 가장 중심부에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명감과 자부심 덕분에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힘든 만큼 의사로서의 보람과 가치가 크니까요.”

 

요즘 젊은 의사들은 흉부외과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전 교수. 하지만 그중에서도 흉부외과를 선택하는 제자들을 보면 마냥 예쁘고 대견하단다.

“흉부외과 의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에요. 심하게 다친 환자가 병원에 실려 왔어요. 퇴근하려다 달려와 환자를 살펴보니 칼이 심장을 관통해 거의 사망 직전의 상황이었어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어려운 수술을 마쳤어요. 수술을 하고서도 환자가 의식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기적처럼 그 환자가 회복된 겁니다. 그때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가르침을 얻었어요. 바로 ‘사람의 생명이라는 건 아무리 가능성이 적어 보여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지요.”

다양한 사례의 폐암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다 보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환자를 수없이 만난다. 그러나 큰 가르침을 얻은 그날 이후, 전 교수는 실낱 같은 가능성이라도 찾아내 치료에 힘쓰게 됐다.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던 환자가 살아나는 순간, 전 교수는 한없이 겸허해진다고 했다.

“우리 외과 의사들은 수술을 수없이 많이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매 수술에 기계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사들에게는 수없이 많은 수술 중 하나일 뿐인지 몰라도 수술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단 하나뿐인 내 생명이 달린 문제잖아요.”

인터뷰 도중 갑자기 전상훈 교수가 일어섰다. 내일 오전 일찍 수술하는 환자를 잠깐 만나고 오겠단다. 잠시 후 돌아온 그에게 환자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는지 물었더니 그저 손을 꼭 잡아주고 왔다고 한다.

“걱정 많은 환자에게 말을 많이 해서 뭐하겠어요. 그저 마음을 담아 손잡아드리고 왔죠. 제 손이 좀 따뜻한 편입니다.(웃음) ”
 


폐암 분야에서는 이제 최고라는 명성을 얻은 전 교수가 매 순간 항상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어떤 의사로 남을 것인가’다.

“의사로 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연구와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는 의사, 그리고 항상 환자와 공감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회복되지 않은 환자들을 보며 늘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는 그런 의사요.”

전 교수가 몸담은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는 ‘숨소리회’라는 국내 유일의 폐암 환우 모임이 있다. 전 교수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삶의 희망을 놓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산에도 오르고 마라톤 대회를 여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더 좋은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은 열망이 더욱 커진다고.

“아기가 태어났을 때 첫 숨을 쉬면서 삶을 시작하잖아요. 마지막 죽는 순간을 우리는 ‘숨을 거둔다’는 표현을 쓰고요. 호흡은 결국 생명이고, 그만큼 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모든 분이 2016년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호흡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CREDIT INFO

기획
정지혜 기자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신빛
2016년 01월

2016년 01월

기획
정지혜 기자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신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