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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인생 50년, 최인호가 남긴 마지막 말

“감사합니다!”

작가 최인호가 문학 인생 50년을 끝으로 9월 25일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자신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고 싶다던 작가 최인호. 그가 병상에서 정진석 추기경에게 활짝 웃으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감사합니다”였다.

On November 22, 2013


작가 최인호는 독자들에겐 영원한 청년 작가요, 후배들에겐 닮고 싶은 선생이었다. 5년 전, 희귀암인 침샘암 4기를 선고받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무척이나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작품을 집필할 때 그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대신 펜으로 원고지에 꾹꾹 눌러 썼다. 항암 치료를 받아 빠진 손톱엔 골무를 끼우고 빠진 발톱엔 테이프를 칭칭 감았다. 독한 약 기운에 구역질이 날 때면 얼음을 씹었다.

매일 밤 그렇게 원고지 20~30매를 쓰며 두 달 만에 장편소설 한 권을 완성하기도 했다. 문학에 대한 작가의 열정은 그 정도였다. 최인호에게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의 책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서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굳게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설은 최인호 작가의 마지막 유작이 됐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자’,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
작가 최인호는 1970년대 한국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왕성하게 소설을 출간하며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책 표지에 사진이 실린 최초의 작가’라는 굵직한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작가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특히 각별했다. <샘터>지에 장장 34년 6개월 동안이나 ‘가족’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연재한 것만 봐도 그 사랑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6년간의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그는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데 아낌이 없었다. 그의 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도 평생 동안 스승이자 벗이자 수호신인, 사랑하는 아내 황정숙 아나스타샤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의 큰딸은 다혜, 아들 이름은 도단이다.

‘가족’을 연재하는 동안 어느새 작가에겐 외손녀가 생겼고 친손녀도 생겼다. 커가는 딸과 아들 사이에서 언제까지나 아빠 역할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을 것 같았던 작가도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독자들은 ‘가족’이라는 그의 수필을 읽으며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환기할 수 있었다. 결국 그의 수필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시대의 가정의 모습과 생활상을 보여준 셈이다. 연재 수필의 주인공이 된 덕에 그의 가족은 이미 스타나 다름없었다. 특히 작가는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는데, 그의 소설 <겨울 나그네>의 여자주인공 이름도 다혜일 정도였다.

그가 애정을 가졌던 또 다른 연재물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보에 실린 ‘말씀의 이삭’이었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1993년 연재를 시작해 1994년 교통사고를 당해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주보 기고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주님 만세!’라는 글에서 교통사고 상황을 묘사하며 사고가 나고서 제일 걱정한 것은 주보에 실리는 ‘말씀의 이삭’이었다고 고백했다. 중간에 잠시 연재를 멈춘 적도 있지만 작년 9월까지 그의 글은 주보에 꾸준히 실렸다.


암이 최인호에게 가져다준 것들
그는 2008년 5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덜컥 ‘침샘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살면서 병원 문턱을 넘어본 적이 거의 없는 터라 충격은 더욱 컸다. 같은 해 6월, 그는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연재해온 수필 ‘가족’도 중단한 채 치료에 전념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순간부터 병을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환자로 살겠다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내와 아들 내외를 빼놓고는 형과 누나, 심지어 딸 다혜씨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엔 비밀이 없는 법. 그의 암 투병 소식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의 아내는 한동안 전화를 받느라 고생했고, 그는 더 은둔하기로 했다.

연재를 다시 재개한 건 이듬해 3월. ‘새봄의 휘파람’이라는 부제로 “수술 후 약물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그 무더운 더위를 어떻게 견뎌내었을까 할 정도로 병치레를 하였고, 아직까지도 완전하지 못해 하루하루 환자 노릇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지금까지 몸에 칼을 대본 것은 포경수술을 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도로 몸은 튼튼했다. 병원은 자주 갈 데가 못 되는 재수 없는 곳, 운이 나쁜 사람들이나 가는 저주받은 곳,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격리되는 감옥과 같은 수용소로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내가 막상 환자로서 병원을 출입하게 되니… 아아, 세상에는 참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병실에서, 복도에서 환자들을 만나면 가슴속 깊이 칼로 찌르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며 뭔가 아는 척 떠들고 글을 쓰고 도통한 척 폼을 잡았지만 한갓 공염불을 외우는 앵무새에 불과하였구나.”

그는 그의 책 <인생>에서 암 투병이 축복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죽음 앞에서 인생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암을 겪은 그에게 삶은 더욱 소중했고, 투병 중에도 산길을 걸으며 삶을 누렸다.


가슴 속에 남은 영원한 청년 작가
지난 9월 25일, 그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문학 예술계 전반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렁였다. 서울 성모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는 배우 윤여정, 윤유선, 강석우, 가수 이장희 등 그를 사랑하는 연예인들이 다녀갔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계 인사 이어령,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진룡을 비롯해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 <정글만리>의 조정래 작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28일 오전, 그의 발인식은 비교적 조용하게 치러졌다. 누구보다 눈에 띈 것은 최인호 작가의 가족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었다. 그의 영정사진을 들고 장례식장을 떠날 무렵, 가족을 비롯한 추모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전에 가족을 유달리 애틋하게 아꼈던 최인호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오전 9시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최인호 작가를 추모하기 위한 장례미사가 열렸다. 평소 그의 작품을 사랑한 배우 안성기와 같은 교회 신도였던 피아니스트 노영심을 비롯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팬들도 눈에 띄었다. 정진석 추기경은 최인호 작가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지난 월요일 나는 병실을 찾아가 선생에게 마지막 병자성사를 주었습니다. 선생은 병자성사를 마치고 활짝 웃으면서 무언가 이야기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때 비로소 하신 말은 ‘감사합니다’였습니다. 나는 그분의 평생의 사람에 대한 응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최인호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이어진 고별사는 배우 안성기가 낭독했다. 안성기는 최인호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하면서 작가와 인연을 쌓았다. 그는 최인호 작가를 추억하며 그를 ‘별들의 고향’으로 떠나보냈다.

  • 최인호를 추억하다

    나이가 들면 체력도 떨어지고 꾀도 생기게 마련인데, 저는 정면 승부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지금 이 생에서도 끝까지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요. 문학상의 심사위원도,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강의하는 사람도 아닌, 글 쓰는 사람으로 사는 일. 저는 창작이 제 남은 삶을 채우길 바랍니다.
    최인호의 <대화> 中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이 신의 섭리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른다. 이 인연이 소중한 것은 반짝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서 되쏠 수 있을 때 별들은 비로소 반짝이는 존재가 되는 것. 인생의 밤하늘에서 인연의 빛을 밝혀 나를 반짝이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삼라와 만상에게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최인호의 <인연> 中

    무엇보다도 먼저 네 마음의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아무도 네가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다.
    최인호의 <달콤한 인생> 中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최인호의 <상도> 中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인생이란 신이 내려준 정원에 심은 찬란한 꽃들이 아니겠는가. 살다 보면 눈물도 한갓 호사스러운 사치이며 살다 보면 그리움도 중독된 쾌락이다.
    최인호의 <꽃밭> 中

    아내. 이 세상에서 아내라는 말같이 정답고 마음이 놓이고 아늑하고 편안한 이름이 또 있겠는가. 천 년 전에 영국에서는 아내를 피스위버peace-weaver라고 불렀다. 평화를 짜는 사람이란 말이다.
    최인호의 <가족> 中


최인호의 인연들

정진석 추기경
거친 삶 속에서도 위로와 희망을 건네시던 선생님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픔을 감출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삶을 통찰하는 혜안과 인간을 향한 애정이 녹아 있는 글로 많은 국민에게 사랑을 받은 이 시대 최고 작가였습니다.

소설가 이문열
2년 전에 작가를 마지막으로 만났습니다. 투병 중임에도 건강해 보여 ‘다시 최인호의 문학을 만날 수 있겠구나’ 기대했는데, 갑작스레 비보를 듣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염수정 대주교
최인호 베드로 작가님은 자신의 아픔까지도 주님께 내어드리고 글로써 이를 고백했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셨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작가이자 모범적인 가톨릭 신자였던 작가님이 선종하셔서 안타깝습니다.

배우 안성기
문학뿐 아니라 영화 쪽에도 상당히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셔서 편히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고 개인적으로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영화감독 배창호
시나리오 쓰는 법을 가르쳐주신 분으로 같이 일할 땐 호흡이 잘 맞아서 즐거웠고 삶에 위안을 주신 분이셨습니다.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
2013년 11월호

2013년 11월호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