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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이라는 청춘

처음부터 혜정은 당당했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숨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듯이 지긋이 눈을 마주한 채 또박또박, 우리는 방 안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UpdatedOn June 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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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비즈 장식 스웨이드 원피스는 디스퀘어드2, 실버 드롭 이어링은 젤라시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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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게 좋아요. 쉬는 날에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요.”

줄무늬 셔츠는 버버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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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해진 것 같아요. 전에는 ‘이거 할까?’ 생각이 들면 바로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부터 ‘어떻게 해야 더 빨리 습득할 수 있지?’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해요. 
갓 스물이던 때는 무조건 부딪혀보자는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다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빠져드는 눈빛이 있다. 보고 있자면 빠져들어 상대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만 같아 거부할 수 없는 눈빛. 혜정이 그랬다. 강렬하지만 뚜렷한 눈동자에는 혜정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덕분에 몇 번 하려던 질문을 잊을 뻔했지만, 정신을 바로잡고 대화에 집중했다. 그녀에게 의도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잘 몰라서 헤매는 것마저도 ‘나’임을 당당하게 밝히는 혜정의 말에는 그저 20대 중반에 놓인 청춘의 푸릇함만 보일 뿐. 때문에 덧대지 않은 맑음과 청순함이 느껴졌던 걸까. 그녀가 말했다. 아직 보여줄 게 너무 많다고. 그 맑음에서 번질 다채로움이 보고 싶어졌다.

검은색 언밸런스 카디건은 유돈초이, 녹색 브리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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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SNL 코리아 시즌 9〉 크루에 합류했어요. 〈SNL 코리아〉 프로그램 특성상 망가지는 건 기본일 텐데, 걸 그룹 멤버로서 망설이지는 않았나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드라마 미팅에서는 제 이미지에 맞는 역할의 오디션을 보게 돼요. 물론 〈SNL 코리아〉도 이미지에 따라 역할을 분배하지만 본의 아니게 다양한 역을 맡을 수 있잖아요.
이를테면 수령 역할?
(웃음) 그렇죠. 제가 언제 가발까지 써가며 수령 역을 맡아보겠어요. 확실히 코미디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재밌기도 하고 여러 선배와 함께하니 배우는 것도 많아요.
저스틴 비버의 ‘Baby’를 패러디해 투표 독려도 했고요.
프로그램이 시사적인 성격도 있으니까요. 5월은 선거 관련 콘텐츠가 많았어요.
스무 살에 데뷔해 스물다섯에 〈SNL 코리아〉 크루가 됐어요. 정확히 20대 중반이에요.
스물다섯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매번 보는 스태프, 멤버와 함께 일해서 그런가. 그나마 친구를 만나면 좀 체감해요. 이제 대부분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이나 생계 걱정을 하니까요. 스물다섯에 크루가 된 건 확실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스무 살 이후 쭉 아이돌 활동을 했잖아요. 정확히 20대 중반에 돌아보니 지치거나 권태롭지 않나요?
이미 그런 시간을 보내서 괜찮아요. 연습생 때는 연습하느라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데뷔하면서 꿈을 이뤘다는 성취감에 기분 좋은 나날을 보냈고요. 그리고 AOA가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잖아요? 1년 정도 쉬었어요. 쉬면서 ‘열심히 하면 되겠지. 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분명 잘될 거야’라는 당연한 믿음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꾸준히 연습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바빠진 거예요.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한 거죠. 정신없으니까 힘들다고 생각할 틈도 없었어요. 2014년에는 〈짧은 치마〉 〈단발머리〉 〈사뿐사뿐〉 앨범 3장을 냈어요. 그리고 2015년 6월 〈Heat Attack〉 앨범을 내기 전까지 잠시 활동을 쉬었는데 오히려 심란하더라고요. 그간 팽팽하던 긴장감이 확 풀리니까, 또 낯선 여유 시간이 생기니까 어찌할 바를 몰랐던 거죠. 짬짬이 작은 스케줄이 있어서 여행은 생각도 못했고요.
틈틈이 시간 날 때는 뭐했어요?
강아지 세 마리 키우거든요. 강아지랑 시간 보내거나 맛있는 거 먹고. 당시 친구들은 바빠서 못 만났어요. 수다라도 떨었으면 나았을 텐데, 같은 공간에서 반복된 생활을 했으니까요.
강아지 이름이 쭈쭈, 뚜뚜, 뿌뿌던데.
쭈쭈는 샤페이 종이라 쭈글쭈글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쭈쭈’. 뿌뿌는 베들링턴 테리어인데 푸들을 닮아서 털이 뿌글뿌글하거든요. 그래서 ‘뿌뿌’. 뚜뚜는 닥스훈트인데 다리가 짧아요. 뚜벅뚜벅 걷는 것 같아서 ‘뚜뚜’예요.(웃음) 제가 다 지었어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그럼 쭈쭈, 뚜뚜, 뿌뿌와 함께 집에만 있었나요?
외출해도 매일 가는 카페에서 멤버와 커피 마시고. 주로 민아랑 얘기를 많이 했어요. 숙소에서 룸메이트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얘기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민아랑 얘기하면서 마음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어요. 왜, 뭐든 말하다 보면 내 안에 혼란스러운 것들이 정리되잖아요. 많이 힘든 건 아닌데, 막상 일이 없으니까 불안한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맨 거죠. 그래서 저는 바쁜 게 좋아요. 쉬는 날에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요.
혼자 있는 시간은 별로 안 좋아해요?
네. 우울해요. 외로워요.(웃음) 혼자 있으면 생각이 많아져요. 그럼 감정이 지하 세계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요. 되도록 혼자 있지 않으려고 해요. 사람들 만나려고 하고 친구 만나려고 하고. 오히려 여러 사람들과 있는 게 나를 돌보는 시간이더라고요. 별것 아닌 얘기를 하더라도 함께 있는 게 좋아요. 그래서인지 숙소 생활도 일하는 것도 재밌어요.
일과 생활이 뒤섞여 있네요?
그래서 게임을 시작했어요. 오버워치. 시간 날 때 혼자 하려고요.(웃음) 본래 게임을 전혀 안 했는데 시간이 빨리 가더라고요. 재밌고. 집에서 할 때도 있고 PC방에서 할 때도 있어요. 친구들이랑.
레벨 높아요?
아이디가 두 개예요. 이전 아이디가 이백몇이고 지금 아이디가 백몇이에요.
어느 인터뷰에서 체중 관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던데, 게임을 너무 오래 해서 그런 건 아니겠죠? 종일 맛있는 거 먹으며 게임만 한다든지….
그런 건 아니에요.(웃음) 최근 운동을 다시 시작했어요. PT랑 필라테스를 병행해요. 근력 운동을 해도 근육이 잘 안 붙는 게 고민이에요. 전에는 안 그랬는데. 술을 자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음식은 항상 비슷한 양을 먹거든요.
완벽하게 관리하는 것 같은데요?
방심하면 순식간에 몸무게가 불어나요. 차라리 쉬는 날이 정해져 있으면 마음 놓고 안 할 텐데, 〈SNL 코리아〉에 매주 출연하잖아요. 화면에 내 얼굴이 보이니까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방송에서 이상형이 바뀌었다고 했더라고요.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남자에서 프로페셔널하고 섹시하고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은 남자로. 수식어가 더 늘었네요?
(웃음) 이상형은 주기적으로 바뀌어요. 요즘은 섹시하고 깔끔한 스타일?
그런 사람, 그러니까 이상형 만나본 적 있어요?
외적인 이상형은 만나본 적 있죠. 다만 철저히 외적으로만 이상형이었다는 게…. 성격 면에서 이상형은 만난 적 없어요.
앞서 잠깐 얘기했듯이 정확히 20대의 중간 지점이잖아요. 초반과 달라진 게 있을까요?
신중해진 것 같아요. 전에는 ‘이거 할까?’ 생각이 들면 바로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부터 ‘어떻게 해야 더 빨리 습득할 수 있지?’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해요. 갓 스물이던 때는 무조건 부딪혀보자는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다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확실히 겁이 많아진 반면에 다양한 경험 덕분인지 차분해진 면도 있어요.
10대 후반을 치어리더, 홍보 모델과 슈퍼모델 선발대회 그리고 연습생 시절로 보냈어요. 스물에 데뷔해서 걸 그룹과 연기 활동을 하고 현재 20대 중반이에요. 서른쯤 혜정은 뭘 하고 있을까요?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예능, 라디오, MC, 다양한 드라마 역할. 최근 작곡 공부도 시작했어요. 물론 솔로 앨범 욕심도 있어요. 〈SNL 코리아 시즌 9〉 활동을 통해 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만일 20대 후반을 이처럼 알차게 보낸 후에는 서른쯤에는 내가 잘하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하나를 깊게 파고들 거예요. 멋지지 않나요? 이런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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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GUEST EDITOR 김민수
PHOTOGRAPHY 레스
STYLIST 남혜미
HAIR 선애(순수 도산점)
MAKE-UP 강미(순수 도산점)
COOPERATION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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