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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7단 "바둑과 함께 한 순례길, 아름다웠어요"

16세에 프로 입단 '바둑 여제' "바둑 외엔 갈 길이 없더라" 10대에서 20대까지가 전성기

On December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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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7단. / 김현우 기자 촬영

김채영 7단. / 김현우 기자 촬영

여자 나이 27살. 빠르면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다. 친구들과 예쁜 카페 찾아 수다 떨기 좋아할 때다. 알콩달콩 연애도 하면서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재밌을 때. 그런데 이 모든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조금은 지루할 법한 길을 선택한 소녀가 있다.

일곱살 나이에 바둑을 시작해 열여섯에 프로의 길을 걷게 된 김채영 7단은 이제 어엿한 10년 차 바둑 여제가 됐다. 그가 걸어 온 길은 평범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오전 수업을 마치면 남들 학원갈 때 '기원'이라고 불리는 바둑을 두는 장소로 달려가 한 게임에 최대 6시간이 걸리는 바둑에 '올인'했다.

아는 친구라고는 오로지 바둑을 두는 동료들. 그렇게 바둑만 보고 달린 그는 만 18세 나이에 여류 국수 정상에 올랐다. 국내 최고기전과 세계대회 우승 트로피도 한두 개가 아니다. "다른 진로?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그를 왕십리에 위치한 한국기원에서 여성경제신문이 만났다. 


여자 바둑 프로기사 김채영 7단. 독자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김채영 7단이라고 한다. 7살 때 바둑을 시작해서 16살에 프로가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쭉 바둑 프로기사 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엔 국가대표팀에서 매일 훈련하고 있다.

바둑, 조금 생소한 게임이다.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두 사람이 검은 돌과 흰 돌을 나누어 가지고 바둑판 위에 번갈아 하나씩 두어 가며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내가 검은 돌이면, 바둑판 위 그어진 선에 두고 에워싼다. 이를 통해 집을 많이 차지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두뇌 스포츠다. 머리를 많이 쓰는 게임이다. 장점으로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바둑을 두게 되면 제한 시간을 준다. 무제한으로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 걸리는 대국은 각자 세 시간씩 주어진다. 이럴 경우 최대 6시간~7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아버지도 프로 바둑 기사라고 들었다. 바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해인 1996년에 프로 입단한 김성래 6단이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프로 기사이기 때문에 집에 바둑판·바둑알이 항상 있었다. 자연스럽게 바둑을 접하게 됐다. 사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부터 바둑에 꽂히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 나이였는데도 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다.

어린 나이엔 바둑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바둑을 하고 싶었는지?
이상하게 바둑으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사실 모두가 그렇듯, 어릴 때 어머니가 여러 가지를 시키기도 했다. 피아노도 배우고 영어도 배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머니가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그때 망설임 없이 바둑을 선택했고 나머지는 다 그만두겠다고 했다. 바둑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바둑을 하게 되면 남들과는 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학교도 오후 수업은 듣지 못했다고?
평범한 학교생활은 하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는 4교시까지만 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바둑 도장으로 가서 저녁 9시까지 바둑 공부를 했다. 중학생부터는 바둑 특기생을 받아주는 학교로 진학했다. 예를 들면 야구부처럼 체육 특기생 신분으로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참여를 많이 못 했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바둑 공부하는 것을 눈감아 주고 인정해 주었다.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지금도 어울리는 친구들 대부분이 나와 똑같이 바둑을 두는 친구들이다. 동창이라 할 만한 친구는 거의 없다. 사실 바둑 이외에 다른 분야의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게 조금 아쉽다.

여성 바둑 기사로서 생활하다 보면 대부분 은퇴 연령대라는 게 있을 것 같다. 일반 직장인과 차이가 클 것 같다.
보통 바둑 기사는 10대가 가장 전성기다. 이후 20대까지 전성기가 이어진다. 30대가 넘어가면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무래도 머리를 쓰는 게임이다 보니 두뇌 회전이 빠른 젊은 나이일수록 유리하다. 여성 바둑 기사의 경우 대체로 30대가 넘어가면 시합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 같다. 결혼 등의 이유에서다. 다만 바둑은 은퇴 제도가 없다. 따라서 은퇴할 필요는 없지만 결국 성적이 안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승부에 뜻이 있는 프로들은 30대가 넘어도 20대 때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어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의지에 따라 달린 것 같다.

대국 중인 김채영 7단. / 한국기원

대국 중인 김채영 7단. / 한국기원

대국 중인 김채영 7단. / 한국기원

바둑 외에 다른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사실 바둑 기사로서 한창인 10대 때 입단 준비를 하는 시기가 있다. 프로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이 시기 초창기에는 성적이 잘 안 나올때 힘든 기간이 있었다. 바둑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물론 있었다. 그런데 지금껏 바둑만 보고 살아왔는데 당장 그만둘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바둑이었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엔 막막하기도 해서 참고 버텨냈다. 지금도 꾸준히 노력해서 오래오래 밀려나지 않고 승부를 이어가고 싶다.

아무리 그래도 유년기부터 프로 입단을 목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본인은 바둑을 좋아해서 버틸 수 있었는지 아니면 노력형인지 묻고 싶다.
노력해서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정말 바둑이 좋아서 하는 기사들도 많다. 노력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걸 참을 만큼 바둑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바둑 기사라고 하면 점잖고 재미없을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도 그런지?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내향적이다. 요새 MBTI 성격 테스트가 유행인데 바둑계엔 내향적인 성격을 뜻하는 I가 많다. 대체로 조용하고 차분하다. 그래도 다들 놀기도 하고 연애도 하고 그렇게 산다.

본인은 연애 경험이 있는지?
27살인데 없을 리가 있나? (웃음)

K팝처럼 바둑도 K바둑 시대인 것 같다. 과거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프로부터 지금은 박정만 변상일 프로까지 글로벌급 기사들이 세계 대회를 휩쓸고 있다. 그런데 사실 관심도는 다른 분야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MZ세대 등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을지?
사실 과거부터 한국 바둑 기사들의 국제대회 성적을 보면 좋았던 적이 훨씬 많다. 국가대표전 성적 면에서는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둑이 아무래도 어렵고 친숙한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바둑이 어렵지 않은 게임이란 것을 어필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바둑인이 대중의 눈높이를 먼저 알아야 한다. 쉽게 다가가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바둑은 집중하는 부분에 있어서 굉장한 매력을 가진 게임이다. 안 풀릴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일명 '수'를 찾았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두뇌 훈련에도 도움이 되는 게임이다 보니 이런 면을 쉽게 대중들에게 어필하면 좋겠다.

다른 게임 해 본 적 있는지?
리그오브레전드(롤)를 즐겨했다. 요새는 잘 안 하지만 PC방도 많이 갔었다.

바둑은 장시간 집중해야 하는 게임인데 아무리 프로 기사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꿀팁 있을지?
바둑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많은 분이 체력이랑 별로 관계가 없을 거로 생각하는데 사실 오랜 시간 앉아 있다 보니 체력과도 연관이 많다고 생각한다. 체력이 중요한 것 같다. 평소에 잘 먹으려고 하는 게 팁이다. 집중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도 한다.

프로 입단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수능의 경우엔 단 하루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매년 입단 테스트가 있기 때문에 매해가 수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어릴 때부터 바둑에만 올인했기 때문에 '입단에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압박감이 상당하다. 입단에 실패하면 물론 바둑계의 다른 일을 하면 되지만 사실상 프로 생활은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압박감을 이겨내는 것이 성패 요인이라고 본다. 입단하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을 덜어주었으면 한다. 탈락하더라도 일단 부딪혀봐야 탈락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러니 압박감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본인의 바둑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소 거창한 표현이지만 순례의 길을 걸어 온 것 같다. 바둑에 온 몸을 던져 살았을 때는 힘들었지만 그 길을 돌아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나는 바둑을 너무 사랑한다. 많은 분이 바둑을 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다만 워낙 어렵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많은 분이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 같다. 프로 기사들이 이 이미지를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또한 바둑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바둑,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CREDIT INFO

에디터
김현우(여성경제신문)
사진
김현우, 한국기원 제공
월간 우먼센스

디지털 매거진

에디터
김현우(여성경제신문)
사진
김현우,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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