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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드라마나 보자

나는 드라마를 본다. 에어컨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손에 꼭 쥐고.

On August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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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없다. 더위에 정면으로 맞서거나 더위에 즉시 꼬리를 내리는 방법인데 눈치챘겠지만 나는 고민 없이 후자다.

집에 들어오면 일단 에어컨을 켠다. 그리고 욕실로 향해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다. 씻고 나오면 시원한 바람이 온 거실을 감싸고 있다. 천국이 있다면 딱 이 거실의 온도와 습도일 것이다. 커피를 내린다. 진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켠다. 이놈의 ‘아아!’ 온몸에 전해지는 시원함이다.

TV를 켠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다시 정주행 중이다. 박해영 작가의 세계관에, 천호진 선생님의 연기에, 이민기의 심미안에(이민기는 작품 보는 눈이 어마어마하다. 그가 출연한 작품은 대부분 재미있다), 손석구의 오글거림에(‘구씨’의 팬들이 어마하게 많다지만, 인간적으로 마지막 2회는 연기가 너무 ‘나갔다’) 감탄하며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온다. 막걸리에 얼음 2개를 동동 띄운다. 아, 좋다.

한 모금 마시며 TV를 주시한다. 그 찰나 구씨가 염미정에게 말한다. “너 무서워.” 해석하자면 ‘넌 내가 본 적 없는 본능적인 여자라서, 네가 좋아져서, 그런 너에게 더욱 빠질까 봐 무서워’쯤 된다. 방방 뜨는 사랑이 아니라서 더 스며든다.

그 와중에도 TV 리모컨을 손에 꼭 쥐고 있다. 에어컨 리모컨도 내 손이 닿는 범주에 있어야 한다. 걸려오는 전화도 한 통 받는다. 친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40분이 훌쩍 지난다. “야, 끊어. 구씨 봐야 해.”

다시 TV에 집중한다. 이민기가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던 여자친구(전혜진 분)에게 말한다. “우리 서로 축복해주며 헤어지자. 시간이 흘러서 그때도 내가 안 잊혀지면 다시 찾아와. 그때 내가 혼자면 받아줄게. 그렇게 쉬다가 또 내가 질리면 그때 다시 떠나.” 아, 박해영 작가의 세계관은 이토록 아름답다. 일상적인데 깊다. 그래서 정말 정말 아름답다. 화면이 바뀐다. 이민기가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으로 출근한다. 유난히 햇살이 빛난다. 내리막길을 거침없이 내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주저앉는다. 그제야 꾹꾹 눌러온 감정이 폭발한다. 한 방울, 그러니까 딱 한 방울의 눈물이 포착된다. 먼 산을 바라본다. 아, 이민기가 연기를 저렇게 잘했던가.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켜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SNS를 슬쩍 뒤져본다. ‘좋아요’도 누르고, 영상도 보고, 염탐도 하고 키득키득 웃기도 한다. 간혹 “골 빠진 X”라며 혀를 차기도 한다. 마흔이 넘어간 꼰대에겐 인생사 골 빠진 것이 많아 보인다. ‘라떼시절’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란다. 불을 끈 채 염탐이 계속된다. 슬슬 잠이 든다.
나의 여름날 밤이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08월호

2022년 08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