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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한국의 페미니즘

쇼트커트를 한 여성은 페미니스트일까? 집게손가락 표현은 남성을 비하하는 행동일까? 2021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페미니즘에 관하여.

On October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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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현주소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국민에게 큰 위안을 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씌워진 페미니스트 프레임, 선거를 앞두고 특정층의 표를 인식한 정치권의 젠더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발언들,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는 여성 혐오 범죄 등 다양한 형태로 페미니즘(feminism)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유래한 말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해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이나 운동을 가리킨다.

폭넓게는 성차별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이 페미니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남녀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통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나 여성 혐오도 그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역사상 첫 3관왕의 영예를 안은 안산 선수는 ‘쇼트커트’ 헤어스타일을 했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혀 비난을 받았다. 일부 남성 커뮤니티에서 안산 선수의 쇼트커트 헤어스타일과 여대 출신이라는 점, 과거 소셜 미디어에 쓴 특정 표현 등을 지적하며 악플을 달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져갔다. 안산 선수가 과거 ‘웅앵웅’이라는 급진 페미니스트가 쓰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웅앵웅은 일부 커뮤니티에서 ‘남성들이 말할 때 논리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대표적 남혐 단어로 알려져 있다. 안산 선수가 여성 팬이 많은 걸 그룹 ‘마마무’의 팬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라는 억지에 가까운 주장까지 나왔다. “페미니스트라면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공격도 있었다.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안산 선수를 보호해달라는 게시물이 달렸고, SNS상에서는 안산 선수를 응원하는 ‘쇼트커트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배우 구혜선 등 유명인들도 자신의 쇼트커트 사진을 공개하며 응원에 힘을 보탰다.

외신들도 안산 선수의 페미니스트 논란에 주목했는데, BBC는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한국 여성 수천 명이 쇼트커트 인증을 통해 ‘나의 여성성이나 페미니즘은 헤어스타일과 무관하다’고 했다. 한국 여성들은 오랜 기간 차별과 혐오에 대항해 싸워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여성 임금 근로자의 평균 소득이 남성의 63%에 불과한 점,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유리천장지수’(직장 내 여성 차별 수준을 평가해 발표하는 지수)에서 한국이 OECD 회원 29개국 중 9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점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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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비하가 된 집게손가락

유튜브 웹예능 <문명특급> PD이자 방송인인 재재도 페미니스트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5월 13일에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 레드 카펫에서 초콜릿을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집어 먹는 퍼포먼스를 한 후 남혐 논란에 휩싸인 것. 이 모습이 한국 남성의 주요 부위 크기를 비하하는 의미라며 일부 누리꾼들이 <문명특급> 측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문명특급> 측은 “스타일리스트님께서 간식 봉투와 닮은 주머니가 달린 의상을 소개해주시면서 ‘여기에서 (간식을) 꺼내 드세요’라고 아이디어를 주셨다”라고 해당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특정한 손동작이나 모양과는 분명히 다를 뿐 아니라 전혀 관련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재재에 대한 비난은 계속됐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지난 8월 30일 재재는 “온갖 욕을 다 먹었다. 당시에는 굉장히 우울했지만 금방 잊었다. 방송을 접을 게 아니면 굳이 조심스러워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빠가 무소의 뿔처럼 가라고 했다”고 의연하게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재재 논란에 앞서 GS25 편의점 캠핑용품 광고 포스터에 집게손가락 모양이 등장해 불매운동으로 번진 사례도 있었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소시지를 잡는 듯한 이미지가 남성 혐오라는 비난으로 이어진 것. 이 손 모양이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GS리테일 측은 해당 포스터를 수정하고 대표이사가 직접 사과까지 했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홍보물에서 특정 손 모양을 찾아내 ‘남성 혐오’로 몰아가고 있고,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해결하기에 앞서 기업과 정부 기관 등은 내용을 수정하고 사과하기에 바빴다. 대표적으로 행정안전부의 경우 홍보물 이미지에 사용된 ‘집게손가락 모양’이 논란이 되자 “남성 혐오 논란을 불러온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성급한 공식 사과를 했다.
 

정치권에 불어온 찬반 논란

페미니즘 이슈는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도쿄 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의 페미니스트 논란에 정치권이 가세하며 정치적 공방을 벌였다.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이 SNS에 “논란의 시작은 허구였으나 이후 안산 선수가 남혐 단어로 지목된 용어들을 사용한 것이 드러나면서 실재하는 갈등으로 변했다”고 하며 “핵심은 ‘남혐 용어 사용’과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폭력의 원인을 안산 선수에게 돌리고 있다”고 맞섰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건강한 페미니즘’ 발언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난 8월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 모임 ‘명불허전 보수다 시즌 5’ 초청 강연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된 것. “페미니즘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 “페미니즘은 (국가와 국민에 도움이 되도록) 건강해야지 선거나 집권 연장에 악용돼선 안 된다”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페미니즘과 저출생을 연결했다는 자체가 낮은 수준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젠더 갈등에 편승한 정치적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캠프의 전용기 대변인은 “저출생 문제의 본질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큰 요인이다. 국민을 편 가르기 해서 서로 증오하게 하고, 대중의 지지를 위해 소수에 대한 차별도 서슴지 않는 행태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격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도 “여성을 출산 기계로만 여기는 전형적인 전근대적 발상의 전형이다. 도대체 그동안 과외는 무슨 과외를 했다는 건지, 그 과외에 젠더에 관한 공부는 없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남녀 간 교제에 성평등이 없다면 건전한 교제이기는커녕 폭력과 차별로 얼룩진 관계일 것이다. 우리는 ‘윤석열이 허락한 페미니즘’을 별로 원치 않는다”며 “건강한 페미 구분 짓는 감별사 자처하며 훈계하지 마시고, 여성들의 현실과 목소리를 먼저 공부하십시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반발과 비판이 잇따르자 “페미니즘이 좋은 뜻으로 쓰이면 되는데, 정치인들 입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이면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는 것보다 갈등을 유발하는 면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월 “여성이라고 꽃처럼 대접받기 원한다면 항상 여자는 장식일 수밖에 없다. 페미라는 것에 반대한다”고 발언했다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으로부터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가 아니다. 대한민국 모든 여성의 삶이 곧 페미니즘이고, 모든 성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많은 국민은 평소 젠더 문제에 관심이 없던 정치권에서 선거철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 특정층의 표를 의식해 젠더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불쾌감과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 논리에 따라 젠더 갈등을 이용만 하고 있는 정치권 탓에 더 큰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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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아닌 공존 방법 모색해야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윤성 사건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공용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무참하게 흉기로 찔러 살해한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났다.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힌 가해자.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를 수면 위로 끌어낸 사건이자,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된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와 성폭력 사건, 특히 불특정인을 향한 이른바 ‘묻지 마 범죄’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이 피해자가 됐을 때 여성 혐오에 집중하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혐오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가 아닌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혐오가 범행 동기가 되지 않도록 예방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본질은 여성 우월주의가 아닌 양성평등,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차별 없는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보호”라고 말한다. 특히 최근의 젠더 갈등은 청년들에게 더욱 크게 와닿는 ‘공정’에 관한 문제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구조적 불평등을 겪으며 이러한 불만이 상대방 성에 대한 혐오로 표출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적 어려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코로나 블루와 같은 심적 고통과 스트레스로 인해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 사회가 갈등의 본질적 원인을 찾아 관련 정책을 마련하는 등 함께 고민하며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서로에 대한 혐오가 아닌, 남녀가 가족과 사회 안에서 평등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앙케이트

한국 페미니즘, 어떻게 생각하나요?
9월 2일부터 8일까지 <우먼센스> 독자 208명이 응답했다.

1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나?
YES 44.4% / NO 55.6%

2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
YES 27.8% / NO 61.1% / 잘 모르겠다 11.1%

3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50%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폭력이 없어지는 것
22.2% 여성과 남성이 동등해지는 것
11.1% 모두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11.1% 여성을 피해자로 생각하는 것
5.6% 여성 우월주의

4 페미니즘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33.3% 페미니즘은 시대적 흐름
27.8% 피해 의식이 있는 사람들
27.8% 여성 우월주의
11.1% 피곤하게 만드는 복잡한 이야기

5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61.1% 평등하다는 인식 
16.7% 성차별을 막는 제도
11.1% 여성 범죄 처벌 수위 조절
11.1% 기타

6 여성 혐오 이슈에 분노한 적이 있나?
YES 88.9% / NO 11.1%

7 어떤 여성 혐오 이슈에 분노했나?
19.1% 쇼트커트 논란
19.1% 공중화장실 몰카
17.6%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
17.6% 버닝썬 게이트
17.6% 전자발찌 훼손 살인범
7.5% 미투 운동
1.5% 없다

8 다음 중 가장 나와 관련 있다고 느끼는 이슈는?
27.3% 여성 노동자 처우 개선
20.5% 성범죄 방지 대책
15.9% 탈코르셋 운동
15.9% 가부장적 사고 탈피
11.4% 보디 포지티브 운동
6.8% 낙태죄 폐지 후 보안 입법
2.2% 없다

9 최근 당신이 겪은 성차별 에피소드가 있나요?
32.1% 육아와 가사 노동을 여성이 전담한다
28.6% 결혼 후 여성이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
17.9%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다.
10.7% 남녀 임금격차
10.7% 없다

10 성차별 문화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27.8% 대중문화 속 여성 캐릭터가 다양해졌을 때
22.2% 남녀가 육아와 가사 노동을 함께 할 때
16.7% 남자들이 외모 평가에 대해 조심할 때
11.1% 미투 운동 후
11.1% 기타
11.1% 없다.

11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애쓴 ‘한국의 여성 아이콘’은 누구인가?
_"여명숙_잘못된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_"권인숙_국가권력·성폭력에 당당하게 맞섰다. 용기가 대단하다."
_"이이효재_한국 최초의 사회학자이면서 여성의 인권을 위해 앞장섰다."
_"잘 모르겠다, 올바른 페미니즘을 보여주는 페미니스트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젠더 갈등을 유발하는 것 같다."
_"없다, 한국의 여성 아이콘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일 리 없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박현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10월호

2021년 10월호

에디터
김지은, 박현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