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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국대' 김연경

모두의 캡틴, 모두의 식빵언니 김연경 선수가 배구 국가대표팀을 떠났다. 그녀의 부재가 아쉽지만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해야 할 때다.

On October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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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에서 가장 화제가 된 종목을 꼽으라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여자배구를 꼽을 수 있다. 때론 우리의 삶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여자배구팀의 경기가 그랬다. 예선전에서 치른 한일전에서 여자배구팀은 패배 직전까지 몰렸던 경기를 극적인 역전승으로 마무리하며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써냈다. 지상파 3사 중 단 한 곳도 여자배구 경기를 처음부터 중계하지 않을 만큼 홀대받았지만, 여자배구팀은 실력 하나로 스포트라이트를 자신들에게 되돌렸다.

그 감동의 중심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식빵언니 김연경이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은 지난 2005년 만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그녀의 세 번째 올림픽이었다. 지난 두 번의 올림픽에서 여자배구팀은 메달의 문턱에서 아쉽게 좌절을 맛본 바 있다(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하며 4위에 머물렀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네덜란드에 패해 8강 탈락으로 마무리했다). 다시 한번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무대에 오른 김연경의 마음은 남달랐을 것이다. “최대한 늦게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던 그녀는 매 순간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으로 온몸을 던졌다.

“올림픽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순간이 필름처럼 머릿속에 떠올라요. 올림픽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다시 한번 느꼈죠. 스포츠는 결과로 보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열심히 했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아도 받아들이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만큼 모든 것을 쏟아냈어요. 다시 도쿄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이상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김연경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하나만 잡으면 기회가 온다”고 선수들을 격려했고, 반대로 분위기가 좋을 땐 “할 거 하자”고 들뜬 마음을 바로잡았다. 도미니카공화국과 경기 중 작전타임 때 “해보자, 해보자, 후회 없이”라고 말하는 모습은 그녀의 남다른 투혼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이번엔 코로나19 때문에 올림픽이 5년 만에 열렸지만 본래 4년에 한 번씩 열리잖아요. 그래서 더 중요했어요. 경기를 하다 보면 후회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번만큼은 모든 경기가 끝났을 때 후회 없이 했다는 감정을 느끼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제가 느낀 것을 다른 선수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어서 후회 없이 해보자고 말했던 것 같아요. 이슈가 될 줄 몰랐는데 큰 주목을 받아서 얘기만 들어도 손발이 오그라들어요. 사실 경기 중에는 제가 그렇게 얘기했는지도 몰랐어요.”

자서전 <아직 끝이 아니다>에서도 포기를 모르는 김연경의 성향이 언급된다. 그녀는 지난날을 가시밭길 같았다고 설명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김연경 선수를 알게 된 많은 사람은 그녀의 성과를 보고 데뷔 후 탄탄대로를 달리며 승승장구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한 번도 쉬운 적 없었다고.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벽을 만나는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고 부딪치며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라고. 김연경은 앞에 놓인 역경에 온몸으로 맞서며 결국에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단단한 계단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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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자격

도쿄 올림픽에서도 매 순간 치열했다. 석연치 않은 심판의 판정에 직접 나서서 항의했다. 터키와 8강전에서 판정 문제로 항의하는 과정에 레드카드를 받기도 했다(배구에서 레드카드를 받으면 상대 팀에게 1점과 서브권을 줘야 한다). 경기 후 레드카드를 준 하미드 알루시 주심에게 찾아가 악수를 청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김연경의 모습은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매 순간 당찬 그녀지만 한일전을 앞두고 긴장과 부담을 느꼈단다.

“한일전에서 지면 모든 경기에서 다 패한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서 부담감이 커요. 저 스스로도 ‘왜 그렇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죠. 그런데 이번엔 ‘이것도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점만 내면 우리가 지는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이길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왔어요. 질 거란 느낌이 들지 않더라고요. 역전승했을 때 느꼈던 짜릿함은 잊히지 않을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했죠. 한일전에서 승리한 후 모든 사람이 좋아했던 그 분위기를 잊을 수 없어요.”

브라질과 맞선 4강전에서 패하고 모든 선수가 경기장을 떠난 뒤, 김연경은 비어 있는 코트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 순간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장 어려운 질문이 나왔네요.(웃음) 사진 촬영하시는 분이 그 모습을 어떻게 찍었는지 신기해요. 사실 경기마다 내가 국가대표팀으로 뛰는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순간의 감회가 새로웠죠. 지금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예요.”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한 여자배구팀에게 라바리니 감독은 “한국에 동메달을 안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눈물을 흘렸다. 진정성 있는 모습에 김연경 역시 오열했다. 이어 라바리니 감독은 “코트 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슬퍼할 필요 없다. 너희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실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바리니 감독의 말은 사실이었다.

“여자배구팀이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해요. 많은 분이 제게 ‘고생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TMI이긴 하지만 어제 보쌈을 먹었는데 어느 분이 대신 계산을 해주셨더라고요. 이 사랑에 대한 감사함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응원해주신 덕분에 힘든 순간에도 하나가 돼 싸울 수 있었어요.”

김연경표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18명의 선수가 하나가 돼 시너지를 발휘한 데는 그녀의 리더십이 상당 부분 역할을 했다. 김연경을 보면서 “김연경 같은 리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팀원이 잘했을 때 칭찬보다 충고를 하며 “더 잘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쓴소리도 하는 리더라고 말했다. 그런 김연경을 두고 ‘좋은 리더’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좋은 리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좋은 리더라….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지만 솔직함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잘됐으면 ‘잘됐다’, 안 됐으면 ‘안 됐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거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도 마음을 열죠.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게 중요해요.”

라바리니 감독은 김연경을 좋은 선수이자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리더의 훌륭한 본보기라며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연경은 “부담스럽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저를 겪은 사람들이 저에 대해 좋게 말해줘서 감사해요.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모든 사람이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잖아요. 주변에 더 잘해야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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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위해 준비했던 순간이 필름처럼 머릿속에 떠올라요 열심히 했기 때문에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모든 것을 쏟아냈어요. 다시 도쿄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이상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16년 만에 내려놓은 태극마크

‘교회에선 성경, 불교에선 불경, 배구에선 김연경’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김연경은 올림픽 직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2005년 태극마크를 단 이후 16년 만의 이별이었다.

“언제 국가대표선수를 은퇴할지 고민해왔어요. 배구 시즌이 겨울과 봄이고, 대표팀 시즌이 여름과 가을이라 1년 내내 톱니바퀴처럼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로는 버거운 감정도 느꼈죠.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이젠 운동선수로서 어린 나이가 아니라 지금이 알맞은 시기라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제가 2022년에 열릴 아시안게임에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요.”

한국 여자배구의 핵심으로 통했던 김연경의 은퇴는 순식간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대부분의 국민이 “은퇴하지 말라”고 김연경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싶다고 했을 정도. 이와 같은 반응에 김연경은 웃으며 “국가대표선수로서 은퇴이지 선수 생활 은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선수 생활은 이어갈 거예요. 제 목표는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는 것이에요. ‘김연경은 나이가 들어도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몸 관리도 열심히 할 거예요.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현재 국내에 머무르며 개인 운동과 휴식을 병행하고 있는 김연경은 곧 중국으로 출국해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팀 훈련에 합류한다.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와 단년 계약으로 두 달간 짧은 리그를 지낼 그녀의 다음 행선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올림픽 이후 행보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국내에서 활약하는 것도 생각했고 유럽 진출도 고려했어요. 중국에서 제안이 왔을 때 두 달 정도 짧은 시즌을 치를 것이라고 설명하더라고요. 올해 대표팀 시즌이 힘들 것이란 걸 알아서 짧은 리그 일정을 소화하면 지금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중국 리그를 마치고 나면 이후 유럽 리그 이적 시장이 열린다. 김연경은 유럽뿐만 아니라 새로 출범한 미국 무대까지 폭넓게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미래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어요. 최근 미국에 배구 리그가 생겼는데, 도쿄 올림픽에서 MVP를 받은 조던 라슨 선수가 미국에서 뛸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어요. 유럽의 몇 구단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정지은 것은 없어요. 만약 유럽으로 돌아간다면 경험해보지 못한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어보고 싶어요. 우선 중국 리그를 잘 마무리 짓고 결정하겠습니다.”

배구계에서는 ‘포스트 김연경’이 누군가에 이목이 집중됐다. 김연경은 한 선수를 찍어 말하기 어렵다면서 모든 선수가 각자 책임감을 갖고 한국 배구를 이끌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선수가 이번 시즌에 “씹어 먹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도 남겼다.

“강성형 감독(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배구단)님에게 조용히 정지윤 선수(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배구단)가 레프트(공격수)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는데, 한 인터뷰에서 공개하셨더라고요. 정지윤 선수는 국내 선수들이 갖지 못한 파워풀한 공격력을 갖고 있어서 그 부분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레프트는 수비도 잘해야 해서 쉽진 않을 거예요. 기량을 100% 발휘하려면 더 노력해야 하지만 잠재력이 충분한 선수예요.”

또 김연경은 청소년 국가대표선수들의 육성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배구계에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녀는 대한민국 배구 역사 최초로 해외 진출을 한 경험자로서 해외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져와 선수를 육성하고 싶다는 지도자로서의 꿈을 갖기도 했었다. 그런데 최근엔 행정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현장에서 무엇인가 이뤄질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하는 게 행정이라고 생각해서 행정가도 고려하고 있어요. 또 방송인 김연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배구만 했는데 방송을 하다 보니까 새로운 것을 경험해서 좋더라고요. 여러 방면으로 가능성을 열고 있어서 저도 제 미래가 궁금해요. 지도자, 행정가, 방송인으로서 모두 활동하면 되지 않겠냐고요? 제 몸이 3개는 돼야 할 것 같은데, 노력해보겠습니다.”

김연경은 인터뷰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안녕, 다 끝났어. 이제”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국가대표로서 갖는 마지막 인터뷰의 시간, 그녀의 목소리엔 시원섭섭함이 담겨 있었다.

“Sicut erat in principio.” ‘처음과 같이’를 의미하는 라틴어다. 그녀가 처음으로 몸에 새긴 타투의 문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국가대표팀은 떠났지만 김연경은 늘 그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식빵언니’ 김연경은 영원하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도서출판 가연 제공
2021년 10월호

2021년 10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
도서출판 가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