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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책방

예술가의 대모, 거트루드 스타인

On Septembe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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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연출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그려낸 풍경은 황홀하다. 주인공이 한밤중에 나타난 차를 얻어 타고 간 과거에는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웃고 떠들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젤다&스콧 피츠제럴드, 루이스 부뉴엘…. 그들이 모인 곳은 전쟁 후 최고의 살롱으로 유명했던 플뤼루스 27번가 ‘스타인의 살롱’이다. 지금은 전설적인 그들을 알아보고 지원하고 키워낸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은 항상 예술가들로 북적였다.

시인, 작가, 극작가, 번역가로 많은 작품을 써냈지만 그는 예술품 수집가로 더 많은 명성을 얻었다. 1874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03년 파리로 건너간다. 유산을 상속받아 부유했던 그는 당시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젊은 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며 야수파와 입체주의 화가들의 대모가 된다. 그는 세잔, 마티스, 브라크, 피카소 등의 초기 작품을 구입하고 그들이 예술적 영감을 키워갈 수 있는 장을 제공하며 가난한 화가들의 후원자가 됐다. 1968년 <뉴욕 타임스>는 그의 살롱을 가리켜 ‘미술사 최초의 현대미술관’이라 평하기도 했다.

미술뿐만 아니었다. 그는 젊고 가난한 작가들의 대모를 자처했다. 그와 특별한 우정을 나눴던 헤밍웨이를 비롯해 존 스타인벡, 피츠제럴드, 헨리 밀러, 에즈라 파운드, 윌리엄 포크너 등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헤밍웨이에게 기자 일을 그만두고 작품을 쓰라 권유했고, 헤밍웨이는 그에게 첫아들 잭의 대모가 돼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당시의 젊은 예술가들을 ‘로스트제너레이션’이라 부르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 계급과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그가 말하고 헤밍웨이가 인용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명칭이 됐다.

그는 59살에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이라는 독특한 자서전을 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반자였던 토클라스가 화자로 등장하는 이 자서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말을 해도 좋다면 내가 평생 만난 천재는 세 명뿐이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처음 본 순간마다 내 안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는 것, 그 소리에는 어떤 실수도 없었다고 말하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세 명의 천재란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다.”

자신을 ‘세기의 창의적·문학적 인재’라며 “나는 천재입니다. 현세대에서 나 같은 천재는 오직 나 하나뿐입니다”라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자서전에서조차 남의 입을 빌려 자화자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세 명의 삶> <부드러운 단추> <지리와 희곡> <미국인의 형성> <우정이라는 꽃이 시들기 전에, 우정은 끝났다네> <마티스, 피카소 그리고 거트루드 스타인, 가장 짧은 두 편의 이야기> <내가 본 전쟁> 등의 책을 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낱말을 사용하며 언어를 해방시키려 하고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실험을 시도했던 그의 글은 당대에도 이후로도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술계에 굵고 인상적인 이름으로 남았다.

그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정말 날마다 오니까”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의 삶은 기적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김연주
박사(북 칼럼니스트)
사진
김정선
2021년 09월호

2021년 09월호

에디터
하은정, 김연주
박사(북 칼럼니스트)
사진
김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