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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수산업자 뇌물 로비 사건

자칭 수산업자의 ‘뇌물 로비’ 의혹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그의 사기에 놀아난 언론· 법조인 그리고 연예인이 한둘 아니다.

On July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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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경북 포항 출신의 재력가이자 수산업자라고 속인 김 아무개 씨(43세)의 사기극에 검찰과 경찰, 정치인, 언론인이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 특히 김 씨 관련 의혹에 유명 연예인 연루설까지 번지고 있다. 가수 겸 배우 손담비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수사 당국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 공직자(검사)가 아닐 경우 금품을 받은 것이 처벌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아무것도 없던 사기꾼의 ‘혀’에서 시작된 이번 사건에 법조계는 “제대로 터졌다”는 평이 나온다.
 

지역 잡범에서 ‘범털’로

1978년생으로, 경북 포항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소재 모 대학교 법대를 다닌 김 씨. 처음 기소돼 처벌받았던 사기 혐의 판결문을 보면 김 씨가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뒤흔드는 사기꾼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의아할 뿐이다.

그가 처음 범죄를 저지른 것은 2008년. 당시 법률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 씨는 ‘사무장’을 사칭하며 피해자 36명에게 공탁 비용을 빌려달라거나 개인 회생 및 파산 절차 비용 등의 명목으로 2008년 3월부터 2009년 4월까지, 1억 6,000만원가량을 가로챘다.

소소한 사기도 서슴지 않았다. 2008년 9월에는 다른 사람의 위임을 받은 것처럼 통신사 2곳에서 각각 휴대전화 1대를 할부로 구입하고, 그의 명의로 휴대전화 이용 서비스 개통은 물론이고 정수기 임차 계약을 신청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고발로 수사기관의 추적이 시작되자, 7년간 도망치기까지 했던 김 씨. 결국 그는 2016년 사기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일부 범행은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며 김 씨를 꾸짖었다.
 

감방에서 만난 동기가 바꾼 삶

첫 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수차례 반성문을 내는 등 “뉘우쳤다”고 얘기했던 김 씨. 하지만 김 씨는 구속된 감방에서 만난 ‘동기’에게 다른 스케일의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범털(돈이 많고 지식 수준이 높은 죄수를 지칭하는 은어)인 척 행동한 것이다.

김 씨가 만난 감방 동기는 언론인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있던 송 아무개 씨. 김 씨는 송 씨에게 ‘포항의 재력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형 선고 1년여 만인 2017년 12월, 특별사면된 김 씨는 포항의 ‘잡사기꾼’이 아니라 전국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치는 범털이 돼 있었다.

송 씨의 소개로 김무성 전 국회의원은 물론 언론인들과 네트워크를 쌓기 시작한 김 씨는 자신이 포항에 기반을 둔 B물산의 대표이사로 ‘슈퍼 카’를 소유한 재력가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슈퍼 카를 타고 국회에 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새롭게 만날 때 ‘1,000억원대 재력가’라고 적극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김 씨는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TV조선 앵커 엄성섭,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 등 다수의 기자와 친분을 쌓았다. 기자들에게 “정치인을 소개시켜달라”는 제안을 하면서, 정치인들과의 인연도 늘어났다. 정봉주 전 국회의원 등도 술자리 등을 통해 만났다. 정치 9단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도 만날 수 있었다. 박 원장 측은 김 씨와의 만남에 대해 “인터넷 언론사를 운영하는 인물로 소개받아 덕담 몇 마디 나눈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김 씨는 정치인을 깍듯하게 대하며 이들에게 명절 등에 포항 명물인 해산물을 선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개해준 언론인들에게도 김 씨는 ‘인사’를 잊지 않고 골프백이나 중고 외제 차 등을 선물했다. 덕분에 박근혜 전 대통령·최순실로 이어지는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도 소개받을 수 있었고, 박 특검은 포항으로 근무를 떠나는 검사도 연결해줬다. 포항에서 법률사무소 사무장이라고 사기치던 김 씨는 어느새 현직 검사와 사립대학교 이사장을 연결해주는 식사 자리까지 만드는 사람이 돼 있었다.

다 ‘선물’을 챙긴 덕분이었다. 박 특검에게는 포르쉐 파나메라 차량을 10여 일가량 탈 수 있도록 제공했고, 이 아무개 부장검사에게는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와 자녀 교육비 명목으로 현금도 챙겨줬다. 포항의 유명 풀 빌라를 빌려, 유명 인사들에게 성 접대를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자연스레 네트워크가 강력해지면서 명함이 많아졌다. 송 씨의 배려로 한 온라인 언론매체의 부회장 직함도 확보했다. 정치권에서 주는 상도 받았다. 이런 배경을 무기 삼아, 2020년에는 생활체육단체의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단체 운영비를 지원해주겠다는 김 씨의 제안이 먹힌 것이었지만, 김 씨는 이를 지급할 자금이 없었다. 이를 위해 포항시장을 소개받아 “단체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김 씨는 실제로 수산업을 하거나, 제대로 된 수입이 없었다. 심지어 회사 주소지는 포항 외진 지역의, 사무실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는 자신이 만든 ‘재력가’ 행세를 계속했다. 그사이 김무성 전 의원의 형 등에게 “내가 포항에서 수산물 사업을 하는데 투자하면 이익금을 제대로 챙겨주겠다”고 제안, 100억원 이상을 가로챘다.

김 씨는 돈이 들어오면 고급 외제 승용차와 슈퍼 카를 구입하는 데 집중했다. 여기에만 80억원 넘게 썼다고 한다. 사기극을 위한 김 씨의 ‘위장 허세’였지만, 재력가 행세 및 네트워크 과시에 대부분이 속아 넘어갔다. 김 씨는 “지금은 내가 부모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사업을 하고 있지만, 언젠간 정치를 할 것”이라며 정치 참여 의사도 드러냈다고 한다.
 

연예계로도 퍼진 의혹

잡사기꾼에서 내로라하는 인맥을 쌓은 범털이 된 김 씨는 연예계로도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관련 의혹을 제기한 것은 유튜버 김용호. 지난 7월 4일 김용호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수산업자의 연인 손담비’라는 제목으로 생방송을 진행하며 “손담비는 회장님(김 씨) 여자친구”라고 언급했다.

김 씨와 손담비의 정확한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김 씨는 연예계 관련 얘기를 하며 “손담비에게 선물도 사주고 연락도 했지만, 손담비가 어느 날 갑자기 ‘남남’처럼 행동해서 서운했다”는 둥 손담비와의 인연과 구체적인 친분을 언급했다고 한다.

실제로 2019년 1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2019서울 평화문화대상 시상식’ 때 김 씨는 한 언론사의 부회장 직함으로 ‘다문화봉사상’을, 손담비는 특별상 부문 ‘외교통일위원장상’을 각각 수상했다. 둘이 함께 정치권에서 주는 상을 받은 것이다.

이 시상식이 있고 5개월여 뒤에는 가수 청하가 김 씨의 행보에 등장한다. 지난해 5월 24일 김 씨가 회장으로 취임한 체육단체 행사에 청하가 홍보 모델로 위촉된 것. 6월 24일에는 청하를 홍보 모델로 위촉하는 행사를 공개적으로 진행했고, 이후 김 씨와 함께 청하는 경기장을 찾기도 했다.

유튜버 김용호는 “김 씨가 유일하게 일을 좀 했던 게 (생활체육단체)”라며 “이 취임식에 보면 청하가 축가도 한다. 저런 데 갈 급이 아닌데 무슨 관계가 있길래 저기 가서 홍보대사를 했을까”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손담비와 청하의 소속사는 아직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 하지만 김 씨는 연예계 사업 진출 가능성도 운운했다고 한다. 몇몇 엔터테인먼트사에 투자 또는 인수를 제안했다. 이들에게도 선물은 빠지지 않았다. 포항 해산물이라며 대게 등을 선물했고, “포항에 여행 등으로 오게 되면 배나 숙박은 알아서 준비해주겠다”며 편하게 연락할 것을 부탁했다.
 

처벌은 공직자만 가능? “의도 입증해야 사기·뇌물 처벌 가능”

현재 경찰의 수사 대상은 언론인 4~5명과 현직 경찰과 검사, 박영수 특별검사 정도다.

일명 김영란법이라고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은 공무원이나 언론인의 경우 동일 인물로부터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면 처벌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이때문에 경찰은 엄성섭 앵커 등 언론인과 현직 검사, 경찰만 일단 입건해 수사 중이다. 대가성일 경우 뇌물 수수죄도 가능하지만 ‘친분 과시 및 소개’ 정도로만 확인되고 있어 김영란법 처벌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정치권은 더 적극적인 처벌이 가능하다. 정치인은 그 누구에게라도 현금 등 금품을 받을 경우 정치자금법으로 기소할 수 있다.

유튜버 김용호는 “경찰이 연예계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이라고 언급했지만, 실제로 포항의 풀 빌라 성매매에 언론인, 공직자가 참여한 게 아니라면 수사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백도, 배경도, 아무것도 없는 사기꾼이라도 ‘있는 척’만 잘하면 기득권층 사이에서 얼마든지 행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기꾼의 행보에 내로라하는 권력가들의 민낯이 드러난 것 아니겠냐”고 평가했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취재
서환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08월호

2021년 08월호

에디터
하은정
취재
서환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