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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 프로동안러 박정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포스트 이병헌’으로 불릴 만큼 연기 하나로 충무로를 평정한 34살 청춘 배우의 이야기.

On February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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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그는 작품의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스크린 속에서 한 번도 관객을 실망시킨 적이 없다. <파수꾼>(2010), <동주>(2015), <그것만이 내 세상>(2018), <사바하>(2019)를 거쳐 노랑머리 반항가가 된 영화 <시동>까지 늘 그랬다.

특히 <시동>(감독 최정열, 제공·배급 NEW, 제작 외유내강)은 그의 전매특허인 생활 연기는 물론이고, 흥행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박정민의 영화 인생에 또 다른 의미를 남겼다. 상업 영화를 하는 배우들에게 '흥행'은 성적표다. 성적에 따라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시동>은 그에게 배우로서 본격 '시동'을 걸게 한 계기가 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정체불명 단발머리 주방장 '거석이 형(마동석 분)'을 만난 어설픈 반항아 '택일(박정민 분)'과 무작정 사회로 뛰어든 의욕 충만 '상필(정해인 분)'이 진짜 세상을 맛보는 유쾌한 이야기를 그린다. 2014년 연재를 시작해 평점 9.8점을 기록하며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펭수에게 위로와 용기 받는 중

<시동>도 연말 개봉이었고, 이전에 출연한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등 주연 작품 대부분이 성수기 개봉이었어요.
영화라는 건 과거에 내가 했던 연기를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는 것이잖아요. 보면서 평가를 받아야 하다 보니 늘 마음이 무겁죠. 그런 과정을 극복해나가면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선배님들이 대단하다는 걸 느끼는 중입니다. 저도 겪어보면서 마음을 좀 비우게 됐어요. 부담을 갖고 기대하면 내상이 심해지더라고요.

<시동>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시나리오에 반한 게 첫 번째 이유였어요. 개인적으로 원작인 웹툰을 재미있게 봤어요. 예상을 벗어나면서 감정이 일어나는 만화였는데, 시나리오로 어떻게 옮겼을지 무척 궁금했고요. 그런데 감독님이 덜 것은 덜고 우리가 해야 할 것만 시나리오로 옮겼더라고요. 그 말은, 준비를 그만큼 철저히 했다는 말이죠.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사람'이에요. 시나리오를 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시동>은 <사바하> 촬영 당시 함께 작업했던 제작진에게 대본을 받았어요. 생각해보면 그때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웠고, 제작진도 좋았기에 망설임 없이 출연을 결심했어요.

30대인데 10대 연기를 했어요.
촬영 전부터 (최정열)감독님께 괜찮겠냐고 수차례 여쭤봤어요.(웃음) 예전에 <파수꾼>(2010)을 찍을 때 감독님이 실제 고등학생보다는 그 시기를 겪고 난 배우가 표현하는 게 더 풍성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시동>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고, 일상 연기라 내가 잘 표현하면 되겠지 싶었어요. 그래서 밀고 나갔는데, 막상 화면에 찍힌 모습에서 크게 이질감이 안 느껴지더라고요.

분명 노력했을 거예요. 어떤 노력이었나요?
너무 걱정스러워 제가 사는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 앞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을 유심히 관찰했어요.(웃음) 그리고 요즘 친구들이 입는 옷을 보면서 도움을 받기도 했죠. 학생들이 쓰는 말도 찾아봤어요. 줄임말 같은 걸 써볼까 했는데 애쓰는 느낌이 오히려 더 나이 들어 보이더라고요.(웃음) 체중 관리도 신경을 썼어요. 아무래도 고등학생들은 활동량이 많아 마른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실제 박정민의 10대는 어땠나요(그는 명문 기숙학교로 알려진 고등학교(한일고)를 졸업한 뒤 고려대 인문학부에 입학했다가 자퇴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다양한 모습이 있었죠. 기본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사춘기가 고등학교 때 와서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하면서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어요. 기숙학교였는데 학교에서 사고도 치고 그러다가 결국 부질없다는 걸 알았어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간혹 내가 중학교 때 독서실만 다니고 엄마 말만 잘 들을 게 아니라, 싸움질도 해 보고 담배도 피워봤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좋은 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가끔 해봅니다. 아, 1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연애를 해보고 싶어요. 10대 땐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웃음)

<시동>을 본 정민 씨 어머니가 "이제 맞는 역할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어요. 극 중 맞는 장면이 꽤 있어요.(웃음)
이제는 내성이 생기시지 않았을까요?(웃음) 유독 이 영화에서는 맞는 것 자체가 하나의 소재가 돼서 그렇게 보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맞는 연기도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유독 실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많이 맡아왔어요. 모범생보다는 조금 엇나간 반항아 역할도 많았던 것 같고요.
의도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아직은 제가 지닌 특별한 이미지가 없잖아요. 뭐랄까,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사람의 느낌이죠. 그렇게 평범하게 자기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세상에 불만도 좀 많아 보이는 느낌이 드나 봐요.(웃음)

오랜만에 주특기인 생활 연기를 했어요.
이전 작품들은 인간 박정민을 숨기고 캐릭터를 많이 입어야 하는 역할이었어요. 그때는 이 대사, 이 행동이 맞는지 계속 고민하며 연기해야 했어요. 그에 비해 <시동>은 촬영 현장에 갈 때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었어요. 다른 작품보다 고민을 덜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민을 한다고 되는 영화도 아니었고 상대 배우가 어떻게 받아칠지 전혀 예상이 안 되는 영화였거든요. 마동석 선배를 비롯해 상대 배우들이 내 예상대로 연기를 안 해줄 게 뻔했어요. 실제로도 그랬어요.(웃음) 대부분 생활 연기라 순간순간 나오는 대로 연기했어요. 또 그런 것이 재미있기도 했어요.

메소드 연기의 비결이 있나요?
영화 <파수꾼>(2010)으로 데뷔했어요. 그 전까지는 연기가 뭔지 잘 몰랐어요. 학교에서 연기를 배우고, 우리끼리 연기 얘기를 하며 지내다가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님을 만나면서 배운 것이 많아요. 뭐랄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많이 배웠죠. 이후 연기를 계속하면서 만난 선배님들에게 리얼한 연기를 배웠어요. 말하듯이 해보기도 하고, 저렇게 해보기도 하고…. 평소 영화도 많이 보는 편이에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무슨 역할이든 내가 하는 거니까 평상시 사람들의 말과 감정을 많이 관찰하죠.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여전히 낯간지럽다고 했죠?
좋은 말이니 고마운 마음인데 오글거리기도 해요.(웃음) 반면에 '어디 어디가 이상해요'라는 말은 가슴속에 담아놓고 다음부터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부담감요? 앞으로 제가 영화배우로 계속 남으려면 저만 생각할 수는 없으니 연기에 대한 부담감은 늘 있죠. 다른 사람들이 나라는 배우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눈치는 봐야 하는 것 같고 그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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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를 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실제로 아무것도 안 했어요. 게임하고, 책 보고 그러다가 잤어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제작진도 놀라더라고요. 사실 뭔가 작위적으로 하는 것도 불편했어요. 가짜처럼 보이잖아요.
사실 촬영 후에 많이 슬펐어요. '쟤 왜 저러고 있나' 싶어 내 자신이 한심하더라고요.(웃음)

배우로서 현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뭘까요?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거기에 지쳐서 잘하지 못하면 무슨 의미겠어요. 저는 여유로움을 얻어가는 과정에 있어요. 영화는 리얼이 아니에요. 유연한 것에서 오는 게 있더라고요. 이병헌, 황정민, 류승범, 마동석 등 선배들의 연기와 태도를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열심히 준비해 오면서도 현장에서 유연하게 맞춰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어요.

극 중 단발머리를 한 마동석을 처음 대면했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극 중 '거석이형'으로 나오는 마동석은 단발머리와 핑크색 운동복, 머리띠까지 착용한 채 걸 그룹 '트와이스'의 춤을 추는 파격 변신으로 오라를 뽐냈다)?
예상은 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충격적이었어요.(웃음) 극 중 동석 선배는 대체 불가였고, 모두가 좋아하는 캐릭터였어요. 특유의 순발력으로 매 신에 활기를 불어넣었죠.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덕분에 장면이 풍성해졌죠. 촬영하면서 의지가 많이 되는 선배이기도 했어요. 절 보면서 아이템을 구상해봐야겠다고 하시던데, 지나가는 말씀이겠지만 기분이 좋았어요.

함께 출연한 정해인은 박정민의 '덕후(팬)'라고 자처했어요.
자기가 더 잘나가면서….(웃음) 해인이가 예전에 내가 출연한 영화 <파수꾼>(2010)을 좋아했다고 해요. 우연히 해인이랑 통화를 한 번 한 적이 있기도 하고, 현장에서 잠깐 본 적도 있어서 처음 촬영을 같이 하는 건데도 많이 어색하지 않았어요. 해인이는 애드리브를 자주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잘 받아주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형이라고 부르면서 잘 따라주고 다 받아주니 나도 좋아하게 됐죠. 게다가 현장만 오면 신이 나서 하고 싶었던 걸 다 해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연기를 잘하는 건 다 알지 않나요? 해인이와 또 다른 걸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해인이 박정민의 덕후라면 박정민은 펭수의 덕후예요.(웃음)(그는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펭수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연예계 펭덕(펭수 덕후)'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처음에 봤을 땐 '이거 뭐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 깊게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펭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돼요. 위로를 받고 있는 느낌이 든달까요. 요즘 펭수 유튜브는 습관처럼 보고 있어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 사생활 공개를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니라 공개할 게 진짜 없었거든요. 아마 <나 혼자 산다>를 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실제로 아무것도 안 했어요. 게임하고, 책 보고 그러다가 잤어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제작진도 놀라더라고요. 사실 뭔가 작위적으로 하는 것도 불편했어요. 가짜처럼 보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게 됐는데…. 저는 배가 안 고프면 밥도 안 먹는 스타일이거든요. 사실 촬영 후에 많이 슬펐어요. '쟤 왜 저러고 있나' 싶어 내 자신이 한심하더라고요.(웃음)

극 중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나요?
"하다 보면 어울리는 일이 될 것"이라는 대사가 있어요.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내 인생의 화두인 문제이기도 해서 슬프고도 용기가 되는 말이었어요. 우리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해 계속 고민하면서 살잖아요. 저 역시 평생 연기를 하고 싶어서 하는데, 이게 나랑 잘 어울리는지,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 맥락에서 기억에 남아요.

박정민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존감이 없는 사람. 그래서 남의 것을 가지고 오는 걸 좋아해요.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것들을 구사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지금의 박정민이라는 인간이 만들어졌어요. 저는 늘 누군가를 동경해요. 어렸을 때는 설경구 선배를 동경했어요.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계속 연기를 보게 되고 따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너무 따라 하면 다시 뒤를 돌아보길 반복했죠.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왔어요.

요즘 고민이 있나요?
저는 도약을 꿈꿔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은 운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략을 가지고 일하는 게 오히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다 보면 되겠지 싶어요. '운이 되면 하겠지' 그런 생각이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지난 몇 년간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엄청 열심히 일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작품에 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박정민은 고민 중이다. 도약 중이다. 향후 5년, 그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NEW 제공
2020년 02월호

2020년 02월호

에디터
하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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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