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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히어로 봉준호를 만나다

봉준호 감독은 칸의 영광을 누린 뒤에도 여전했다. 늘 입던 어두운 계열의 재킷을 걸치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장했다.

On July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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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빈자와 부자, 결코 만날 일 없던 두 가족이 모여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았다. 잠시 그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보자. 중산층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담은 <살인의 추억>, 골프장 개발이 이뤄지는 소도시에 사는 여성의 비극을 그린 <마더>, 계급사회를 열차로 풀어낸 <설국열차>와 공장형 축산업에 반대하는 <옥자>를 지나 <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은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세공해왔다. 물론 꾸준히 장르적 재미를 보여주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선물을 주듯, 황금종려상을 들고 온 그에게 “수상을 하고 돌아오니 기분이 어떠냐”는 의례적인 질문을 건네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시차 적응에 실패했어요. 잠을 못 자서 상태가 안 좋아요. 적응됐다 싶으면 역습이 시작됩니다. 허언을 하거나 방언이 터질 때가 있으니 잘 정리해주세요. 언론 시사회 때 스포일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놓고, 제가 먼저 얘기를 하네요.(웃음)”

약간 상기된 봉 감독은 온몸에 쾌활한 에너지가 흘렀고 그의 이야기는 다른 때와 같이 밀도가 높았다. 8분간 기립박수를 받은 뤼미에르 극장 상영의 후일담을 시작으로 기자들의 칭찬이 쏟아졌지만 그는 이런 말로 자신을 향한 호평의 온도를 낮췄다.

“박수는 원래 다 치는 거죠. 서양인들은 제스처가 큰데, 우리는 처음에는 열심히 치다가 나중에는 리액션이 떨어져 버벅거렸어요. 박수를 칠 때 제가 ‘배고프다’고 말한 입 모양이 카메라에 찍혔다면서요? 밤늦은 시간이라 정말 배가 고팠거든요.”

폐막식 당일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호명됐을 때 봉 감독은 영화 제작자인 곽신애 대표와 그의 페르소나이자 오랜 동료인 송강호와 함께 무대에 섰다. 수상 소감에서는 송강호에게 마이크를 넘겼고, 포토콜에서는 그에게 무릎을 꿇고 영광의 상을 바치는 포즈로 화제를 모았다. 유쾌함도 유쾌함이지만, 배우와 스태프에 대한 존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자세처럼 보였다.

“몸이 너무 동글동글해서 자세가 안 나왔어요. 날렵하게 각이 딱 잡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제작자나 프로듀서, 배우가 함께 무대에 올라가는 게 특별한 사례는 아닌 것 같아요. 과거에는 고교생 배우들 수십 명이 감독과 같이 올라간 적도 있으니까요. (송)강호 형님과 올라갔는데, 이 위대한 배우가 병풍이 되면 안 되니까 제가 뒤로 갔어요. 원래 전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강호 형님 얘기도 들어보고 싶었어요. 홍경표 촬영 감독도 현장에 있었다면 같이 올라가고 싶었을 거예요. 그 외에도 같이 오르고 싶었던 사람이 참 많아요.”

쏟아지는 외신의 호평 중에서 봉 감독은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의 “봉준호 스스로 장르가 되었다”는 평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에요. <옥자>를 개봉하고 ‘내 영화의 장르는 봉준호’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스스로 말하고 다니는 것과 남이 해준 것은 다르잖아요. 열심히 인용하고 다닐 계획이에요.”
 

우리 삶에 장르는 없다

봉준호 영화에는 요동치는 ‘난장판’의 순간들이 등장한다. <기생충>에서는 ‘박 사장(이선균 분)’ 가족이 캠핑을 떠난 빈집에서 술판을 벌인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갑작스럽게 ‘박 사장’ 가족이 집에 돌아오니 ‘짜파구리’를 끓여놓으라는 사모님 ‘연교(조여정 분)’의 연락을 받고 소란스럽게 정리 정돈을 하고 ‘짜파구리’를 끓여 내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용의자를 쫓는 ‘박두만(송강호 분)’이 논두렁에서 넘어지는 시퀀스가, <괴물>에서는 정체를 모르는 괴물이 나타나 한강 일대를 뒤집는 시퀀스가 등장한다.

한바탕 난장판이 휩쓸고 간 자리는 대체로 파국이지만 애석하게도 곧 일상이 찾아온다. 이러한 ‘카오스’는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장르적 재미와 사회적인 관점이 버무려지는 지점이 된다. 그의 영화는 이렇게 코믹, 서스펜스, 호러, 가족 등 다양한 장르가 소용돌이치며 파국을 향한다. 이에 대해 그는 “사건과 이야기를 따라갈 뿐 영화의 장르를 계획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우리 삶을 살펴보면 상황과 감정은 수시로 바뀌고 하나로 통합되지 않아요. 직장 상사와 공포의 시간을 겪고 퇴근하면, 애인과 로맨스의 시간이 기다릴 때가 있잖아요. 슬프면서도 웃기고 무서우면서도 애잔한 게 인간의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한 감정으로만 이야기를 설명하는 게 더 힘들 것 같아요.”

봉 감독은 ‘카오스’를 자신의 분야라고 설명했다. 혼동과 혼란, 무질서의 상태를 음악과 함께 풀어내는 것은 감독의 특권이라며, 그런 장면을 찍을 때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 든단다. 영화에는 그의 실제 경험이 녹아 있기도 하다. 친구의 권유로 ‘박 사장’ 딸 ‘다혜(정지소 분)’의 과외를 맡는 ‘기우(최우식 분)’가 그들의 집에서 느낀 것들이다.

“대학 시절 고급 빌라에 사는 남자 중학생의 수학 과외를 맡은 적이 있어요. 철문이 ‘찌그덕’ 소리를 내며 열리던 집인데 대리석 바닥이었고 2층에 사우나실이 있었죠. 부잣집 동네가 원래 조용한 건지, 이중창 덕분인지 몰라도 적막했고요. 아는 선배가 학생의 성적을 올려야 오래 일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학생을 놀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과외가 끝나고 불안한 마음에 공부를 한다는 기적의 논리였죠. 조언을 따랐다가 두 달 만에 해고당했어요.”

극에서는 ‘박 사장’의 집에서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기택’의 집에 도달할 수 있다. 하염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수직적인 장면으로 계급을 그리는 <기생충>을 보고 계단으로 부의 격차를 드러낸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충녀>를 떠올린 이들이 많다. 부르주아의 욕망에 대한 감각도 김기영 감독의 시선과 비슷하다.

“케이블 TV가 개국한 1990년대 중반 저는 영화 학교를 갓 졸업한 가난한 영화인이었어요. 아주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고 생활비도 없었죠. 그런데도 ‘나는 영화를 하는 사람이니까’라며 호기롭게 유료 영화 채널을 결제했는데, 마침 채널 프로그램 기획자가 김기영 특별전을 기획한 거죠. <하녀> <충녀> <이어도>를 연이어 본 저는 광분했어요.”

봉 감독은 1998년 작고한 김기영 감독이 <기생충>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했다. 또 <하녀>와 <기생충>을 동시 상영하면 재미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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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냐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불안한 사람이에요.
신경정신과 의사도 제게 약을 먹으라던데 먹지 않고 있어요.
약을 먹으면 멍해져 글을 쓸 수 없거든요. 불안해야 글이 써져요.
시나리오는 칸에서 돌아오는 순간부터 계속 쓰고 있어요.
칸은 이제 과거예요.

아버지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대화는 봉 감독을 만든 원천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그의 아버지는 1세대 그래픽디자이너 봉상균 씨고, 외할아버지는 <천변풍경> 등을 집필한 세태주의 소설가 박태원이다. 그가 예술을 하는 것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이산가족이라 외할아버지는 북한에서 돌아가셨고, 만난 적이 없어요. 유명한 소설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만 제겐 동화 속 인물 같죠. 그러다 고등학교 국어 수업 때 교과서에 ‘구인회’가 나오니까 신기하더군요. 외할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나?’라고 스스로에게 묻곤 했죠.”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2017년 별세한 그의 아버지는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 시각디자인 교수와 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을 지낸 1세대 그래픽디자이너로, 항상 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의 서가에 들어가면 신기한 책이 많았어요. 1970년대에 해외 출장을 다니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비교적 자주 해외로 출장을 가셨던 아버지는 그래픽 디자인 북이나 사진집을 사 오시곤 했어요. 자연스럽게 외국 예술을 접하면서 자랐죠.”

그는 가방에서 태블릿PC를 꺼내 흑백사진 속에 담긴 아버지를 보여줬다.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 실장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영화 관계자들과 함께 고심하며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영화를 한다니까 ‘영화 하지 마라’라고 하셨죠. 영화 하는 사람들은 기가 세다면서요. 1960년대에는 미술인에 비해 영화인이 기가 셌을 거예요. 영화 대신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만들라고 하시기도 했죠. 그런데 나중엔 단편영화 <백색인>의 제작비 일부를 지원해주시기도 했어요. <기생충>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나오는데 프랑스 배급사의 한 친구가 영화에 아버지에 대한 헌사를 넣은 것이냐고 묻더군요. 시나리오를 쓸 때 의식했던 것은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흐르자 그의 영화 속 ‘딸’들에 관한 생각이 스쳤다. <마더>에서 시체로 등장하는 10대 소녀 ‘문아정(문희라 분)’은 누구의 딸도 되지 못한 사회 최약자이자 피해자로 그려졌다. 하지만 <옥자>에서 슈퍼 돼지 친구, ‘옥자’를 구하기 위해 낯선 나라로 날아가는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 분)’나 <괴물>에서 달리고 또 달리는 ‘현서(고아성 분)’, <기생충>에서 남다른 문제 해결력을 가지고 있는 딸 ‘기정(박소담 분)’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봉 감독이 소녀, 혹은 딸로 말하고 싶은 것이 궁금했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를 소환했다.

“<괴물>의 해외 포스터에는 얼굴에 하수구의 검은 때가 묻은 고아성 씨의 옆모습이 담겼어요. 그 이미지를 보고 다이내믹한 미야자키의 소녀들이 떠올랐죠. 그리고 <옥자>를 촬영할 때 미야자키의 소녀와 같은 캐릭터를 본격적으로 그렸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의 헤로인 ‘라나’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단다. 작은 소녀처럼 보여도 파워풀하고 파괴력이 있는 그런 소녀 말이다.

“중학교 때 열광하면서 봤던 만화예요. KBS에서 특집 코너를 내보내고 <미래소년 코난>을 결방하면 화가 나서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기도 했죠. 10대 때 본 애니메이션이나 개성 있는 할리우드 영화가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의 말이 끝나자 헤어스타일이 ‘코난’과 닮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에 봉 감독은 자신의 헤어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스타일은 세팅을 해야 되는데…. 저는 방치예요. 감는 것과 빗는 것 외에 다른 행위가 없죠. 심지어 턱시도를 입을 때도 세팅을 하지 않아요. 헤어 제품을 바르면 물에 젖은 개털 같더군요. 유일한 선택지는 삭발인데, 2~3년 주기로 한 번씩 해요. 삭발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해서 편해요.”

만화 대신 시사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방송국에 편지를 쓰던 10대 소년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사회문제를 집요하게 극에 녹이는 영화감독이 됐다. 그리고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에 최초로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니 행복함을 만끽하고 있을 테다.

“지금 행복하냐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불안한 사람이에요. 신경정신과 의사도 제게 약을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약을 먹으면 멍해져 글을 쓸 수 없더라고요. 불안해야 글이 써지거든요. 시나리오는 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지금도 쓰고 있어요. 칸은 이제 과거예요.”

12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던 소심하고 어수룩한 영화광은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됐다.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두 편의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봉준호의 시대가 열렸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취재
유청희(<텐아시아> 기자)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2019년 07월호

2019년 07월호

에디터
김지은
취재
유청희(<텐아시아> 기자)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