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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정인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에 캐스팅된 순간부터 모든 촬영을 마친 지금까지도 정인선의 요즘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다.

On January 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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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는 미달이 옆에서 쫑알거리던 귀여운 소녀,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에서는 마수리의 여자친구…. 정인선에 대한 기억은 이 정도다. 아역 배우로 활동하다 사라지다시피 했던 그녀가 2010년 영화 <카페 느와르>에서 임신한 소녀 역으로 다시 대중 앞에 섰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정인선은 상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단이 있었다. 드라마 <빠스껫 볼> <12년만의 재회 : 달래 된, 장국> <마녀보감> <맨몸의 소방관> 등에서 역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연기했다. 지난해 초엔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이하 <와이키키>)에서 싱글맘 '한윤아' 역을 맡아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최근 종영한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이하 <내뒤테>)에선 여섯 살배기 남매 쌍둥이를 키우는 경력 단절녀 '고애린' 역을 맡아 소지섭과 호흡을 맞췄다. 컴백 8년 만에 여주인공 자리를 꿰찬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시청률도 물론 좋았지만 연기력으로 승부한 그녀의 한 방이 제대로 먹혔다. '정인선의 재발견' '성인 연기자로 안착'이라는 호평과 함께 앞으로는 여주인공을 맡아도 된다고 안심을 시켰다. 부족함 없이 꽉 찬 한 해를 보낸 정인선을 만났다. 그녀의 표정은 자신이 이룬 성과만큼이나 밝았다.


"지난해 출연한 두 작품 모두 '엄마' 역할이었어요. 스물여덟 살의 한 해를 엄마로 살아본 결과, 앞으론 못할 연기가 없을 것 같아요. 아기를 안거나 데리고 연기하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제 연기에 별로 만족하지 못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좋은 평가는 꿈도 못 꿨는데 광고까지 찍게 됐죠. 여러모로 기분 좋은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정인선은 <내뒤테>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미니시리즈 여주인공이기도 했고, 모두의 우려를 이겨낸 작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려의 아이콘이었죠. '정인선이 누구야?' 하는 반응이 가장 많았어요. '쟤가 뭔데 소지섭의 상대역이냐'는 말도 있었죠. 저 스스로도 (소)지섭 오빠 이름 옆에 제 이름이 있다는 게 납득이 안 됐는데 시청자들은 오죽했겠어요. '대체 내가 왜?'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감독님 미팅을 갔던 순간에도 '이번엔 어디로 여행을 가볼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숱한 우려 속에서도 저를 믿고 캐스팅해주신 감독님과 작가님께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했어요. 결과적으론 만족스러워요. 좋은 사람들과 좋은 분위기에서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아요."

스물여덟 살인 그녀에게 프로 엄마와 아내, 경력 단절녀라는 특징은 강력했다. 여섯 살배기 남매 쌍둥이를 뒤로 업고 앞으로 안는 억척스러움, 남편이 죽은 후 생계를 책임지게 된 고달픈 상황, 잘나가던 커리어 우먼에서 한순간에 경력 단절녀가 되어버린 여자라는 설정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와이키키>에서 이미 '엄마'를 경험해봤다고는 하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육아맘'을 연기하기 위해 결혼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친구들과 키즈 카페나 플레이 카페를 찾아다니며 옆 테이블의 엄마와 아기를 관찰하고 캐릭터를 연구했죠.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맘 카페와 비실명 커뮤니티 '네이트판'이었어요. '엄마'들에게 자유로운 공간이라 그런지 눈물 나는 상황과 문장이 많더라고요. '내 삶에서 더 이상 내가 우선이 될 수 없다'는 글을 보고 '말도 안 돼~' 하면서 소리쳤어요. 제가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삶이 그곳에 있더라고요. 고애린의 답답하고 서글프고 우울한 감정을 그곳에서 많이 배웠어요."

정인선이 인터넷과 연기를 통해 체험한 육아는 어땠을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깐 아이를 안고 연기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는 엄마들은 오죽할까 싶더라고요. 인터넷에서 말하는 '내 삶이 없는 삶'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죠. 쌍둥이는 더 힘들던데요?(웃음) <와이키키> 때 겪어봐서 잘할 줄 알았는데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그래도 아주 어린아이보다 의사소통이 되는 6세 아이가 좀 더 수월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어리든 큰 아이든 육아는 힘들다는 겁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첫 방송 전날까지도 그녀는 속 앓이를 하느라 힘들었다. 첫 대본 리딩 현장에서 선배 배우 서이수의 "인선 씨, 열심히 하면 안 돼요. 잘해야 돼요"라는 말에 한 번, 상대 배우 소지섭의 "진짜 잘해서 사람들의 우려를 뒤집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에 또 한 번,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제가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이에요. 꾹 참고 있다 어쩌다가 한 번 크게 울음이 터지는 성격인데, 이번처럼 연기하면서 많이 운 적도, 또 연기를 마치고 집에서 운 적도 처음인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 그리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 잘하고 싶은 욕심까지, 모든 게 저를 힘들게 했죠."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잘하고 있다"는 제작진의 격려, "잘 보고 있다"는 지인들의 인사,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 배우 소지섭의 배려가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연기할 수 있었다.

"(소)지섭 오빠는 배려가 몸에 밴 분이에요. 근데 절대 앞에서 티를 내지 않아요. 알고 보면 저를 위한 배려인 경우가 많았죠. 이를테면 감정 신에서 제가 먼저 촬영한다거나, 클로즈업을 찍을 때 저를 위주로 찍는다거나 하는 것들요. 차라리 대놓고 배려해주시면 좋았을 것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뒤늦게 감사하고 죄송했어요. 오빠에게 가장 감사한 건 저 기분 좋으라고 입에 발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힘내라고 격려와 칭찬을 해주시는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해주셨거든요. 작품을 관통하는 눈을 지닌 분이에요.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죠."

'오빠'라는 호칭이 어색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고 할까. 소지섭은 "평생 선배님으로 깍듯하게 모시겠다"는 정인선의 말에 "오빠라고 불러라"라고 했단다. 데뷔 연도가 같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층 가까워졌다.

"오빠는 친한 척하는 거 안 좋아할 것 같아 처음엔 '선배님'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연기를 위해서라도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았죠. 너무 멀게 느껴져 '오빠'라는 호칭을 선택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캐스팅된 걸 누구보다 좋아했던 게 오빠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유가 아직도 의문이에요.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죠. 연기 외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저는 사실 가늘고 길게 연기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가늘고 길게는 아니더라도 굵고 길게 가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무덤덤하게. 그런데 뒤에서 열심히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빠가 데뷔 후 지금까지 조금의 이탈도 없이 톱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됐어요."

가장 힘들 때 SNS에서 본 글귀 한 줄도 그녀의 마음에 닿았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걸 가지려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녀의 휴대폰 배경화면이다.

"그동안 너무 무소유로 살았나 봐요. 달려나가야 하는데 끌어다 쓸 원동력이 없더라고요. 처음엔 저를 믿어준 사람들의 믿음으로 달렸고, 나중에는 대중의 칭찬으로 달렸어요. 칭찬받으니 더 칭찬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촬영 중·후반부엔 그 욕심으로 달렸던 것 같아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니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났다. 캐릭터의 탄생부터 디자인, 그걸 연기로 표현하기까지의 과정을 스스로 해볼 수 있었던 건 그녀에게 아주 값진 경험이었다.

"심적인 압박감을 내려놓고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총체적으로 봤을 땐, 캐릭터의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다 만들어냈다는 게 뿌듯해요. '와,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하는 마음이랄까요? 그런 부분에선 스스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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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때 쉬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방전됐을지도 몰라요.
하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해야 하니까 했겠죠. 쉬고 돌아오니 더 재미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하길 잘한 것 같아요.

정인선은 2004년 드라마 <영웅시대>를 마치고 은퇴하다시피 했다. 간간이 MC를 보긴 했지만 드라마에 출연했던 그녀를 기억해내기엔 임팩트가 없었다. 컴백하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 공백엔 이유가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그런지 언제부턴지 습관적으로 연기하고 있더라고요. 주위에선 늘 '넌 공인이니까 조심해야 해'라고 말했죠. 저의 주체성을 떠나 대중의 시선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있나?'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면서 제 안의 뭔가가 텅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 순간엔 아역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한 사람의 '정인선'으로서의 삶이 절실했어요. 그때 제가 중2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중2병이 제대로 온 거죠.(웃음)"

전학간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복도 창문으로 자기를 보겠다고 찾아오는 다른 반 친구들, 화장실에선 만져보려는 친구들과의 실랑이, 남자아이들의 짓궂은 장난. 단순히 중2병으로 치부하기엔 소녀에게 벅찬 스트레스였다. 학교이고 놀이터였던 촬영장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특별할 것 없는 친구들과의 일상이었다.

"생생하게 기억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어떤 여자애가 저를 만지다가 목에 상처를 낸 적이 있어요. 중학교 땐 수학여행지에서 저를 본 다른 학교 학생이 '마수리다!'라고 소리쳤고 학생들이 몰리기도 했어요. 그 친구들에겐 제가 신기했나 봐요.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엄마한테 '복도를 걸어 다니는 게 무서워'라고 했대요. 그 후로 엄마는 저를 매일 추리닝만 입혀 학교에 보냈어요. 조금이라도 덜 눈에 띄게 하려고요. 그런 벅찬 일상이 계속되던 중 '내가 아역 배우가 아니라면 이 아이들이 나와 친구가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항상 연기, 촬영장, 스케줄이 우선되어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주말에 친구들과 실컷 놀고 싶은 갈증 같은 것이었죠."

"떠나는 건 마음대로 될지 몰라도 돌아오는 건 마음대로 안 될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경고에도 그녀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 후 또래와 같이 마음껏 놀고, 마음껏 즐긴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녀는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쉬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방전됐을지도 몰라요. 하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해야 하니까 했겠죠. 쉬고 돌아오니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정인선의 배우 인생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 장점과 단점을 들여다볼 적절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

"그동안은 제 장점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단점만 보였죠. 저는 처진 눈이 싫었는데 사람들은 제 눈빛이 좋대요. 작은 체구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올 줄 몰랐다며 신기해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단점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해요. 제 삶과 연기의 균형을 맞추면서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어요. 올해요? 사실 아무런 계획이 없어요. 템포도 느리고, 멀티태스킹도 안 되고, 한 작품 끝나면 진득하게 쉬어야 하는 스타일이라 올 한 해 동안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 계획이 없죠. 다만 분명한 건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가 있다면 겁이 난다는 이유로 뒷걸음질하지는 않을 거예요. <으라차차 와키키키>와 <내 뒤에 테리우스>를 통해 한계를 뛰어넘는 법을 배웠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며 정인선은 이렇게 말했다. "연기하길 잘했다"고.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오길 잘했다"고.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
2019년 01월호

2019년 01월호

에디터
이예지
사진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