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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공연기획사 대표 노혜원

JAZZ 읽어주는 여자

릴 컬쳐 앤 소사이어티의 노혜원 대표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녀의 왼쪽 눈은 아예 시각을 잃었고, 오른쪽 눈으로만 빛과 어둠 정도를 감지한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볼 수 없기에 더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고. 그녀의 확신은 사랑, 그리고 음악이다.

On December 23, 2014


“안녕하세요. 노혜원입니다.”
그녀의 첫인상은 밝아 보였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확하게 기자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눈치는 빨라요. 보이지 않아도 귀를 쫑긋 세우면 그 사람이 어디에서 내게 말을 건네는지 알 수 있죠.”

공연기획사 ‘릴 컬쳐 앤 소사이어티’ 노혜원(40세) 대표가 앓고 있는 병은 망막세포변성증이다. 작년 종영한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극중 인물 오영(송혜교 분)이 앓았던 질환이자, 국내에선 방송인 이동우가 앓고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시력이 멀쩡하던 사람도 병이 진행될수록 점차 시력을 잃어가며, 아직까지 뚜렷한 치료 방법은 없다.

노 대표가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것은 지난 2003년이었다. 그녀는 예원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재원이었다.
“병원에서 병명을 진단받았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남자와도 파혼했고요. 그때 충격 때문인지 그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드문드문해요. 한 마케팅 회사에서 번역 일을 했었는데 눈이 점점 보이지 않아서 그마저 그만둬야 했죠.”

그녀에게 닥친 병은 가혹했다. 시각장애를 앓고 있었지만 돈을 벌면서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만은 누구보다 열렬했다. 하지만 점차 시력을 잃어가면서 우두커니 집에만 있어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녀의 병은 가족들에게도 큰 상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국내 굴지의 시장조사기관 한국리서치 노익상 대표다. 노익상 대표가 지난 2011년부터 한국장애인부모회의 회장직을 맡게 된 것도 큰딸 혜원씨 때문이다. 자수성가로 성공한 사업가인 그 역시 예쁘고 밝았던 딸의 병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었다.

“저를 두고 가족들이 심하게 다투는 날이 많았어요. 제 병을 알기 전까지 저희 가정은 완벽해 보였어요. 아버지의 사업 성공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고 어머니와 여동생, 남동생까지 다섯이서 참 화목했죠. 저도 저지만, 가족들 역시 제 병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어요. 병을 진단받고 1년간 저는 침대에만 누워 있었고 가족들은 저의 병에 대해 외부에 일절 말하지 않았죠. 이 병을 진단받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친척들이 제 병에 대해 알게 된 건 불과 1, 2년밖에 안 됐을 정도니까요.”

멀쩡했다가 장애를 얻은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그녀를 보며 가족들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때 전 제 자신이 ‘식충이’처럼 느껴졌어요. 하고 싶은 건 많았는데 할 수 없었고, 그렇게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됐죠. 하루는 아버지가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아무도 너를 도와줄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처음에 전 ‘어떤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면서 반항했어요. 현실을 받아들일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죠. 결국 나중에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강남의 한 빌딩에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어요.”

전공이나 적성을 고려한 일은 아니었지만 샌드위치 가게를 열고 조금씩 병에 적응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치 운명처럼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들은 4년간 열렬히 사랑했고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은 IT회사를 다니고 있던 미국 교포예요. 저는 병 때문에 남자들에게 늘 차이기만 했어요. 심지어 ‘셔터맨을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지금의 남편은 그런 저를 사랑으로 받아준 유일한 사람이에요. 시아버님이 의사라 남편 역시 의학 저널을 읽는 걸 좋아했는데, 저를 만나기 전부터 제 병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연애할 때 ‘내 병에 대해 알고 있어? 그런데도 나랑 결혼할 수 있어?’ 하고 물었을 때 그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어요. ‘It just happened to you(그건 단지 너에게 일어난 일일 뿐이야)’라고요.”


결혼 후 그녀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삶은 분명 행복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이 완전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분명히 저의 가장 좋은 친구예요. 하지만 남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너무 싫었죠. 미국에선 운전을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일조차 혼자서 할 수 없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가끔 남편과 다투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울감이 너무 심해서 견디기 힘들었어요.”

항간에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자살률이 일반인의 세 배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다. 노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 역시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몸이 지독히도 살고 싶어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저는 제 자신이 정신적으로 튼튼하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숨을 못 쉬겠는 거예요. 심장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심장내과와 폐의학과를 가봤어요.
그런데 멀쩡하다면서 정신과에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가봤더니 저더러 공황장애라고 하더군요. 그 진단을 받고 더 좌절했던 것 같아요. 그리곤 약을 먹었죠.”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미국으로 달려온 아버지를 따라 그녀는 한국에 돌아왔다. 그 후로도 그녀는 극심한 정신적 공허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몇 번 더 자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죠. 참 웃기는 게 그렇게 죽고 싶은 마음인데도,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면 제 몸의 어딘가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해 간절하게 살고 싶어 해요. 응급실에서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제가 의사에게 ‘위세척을 하려면 어떤 걸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병상을 지키고 있는 친구에게 ‘지하 1층 편의점에 가서 먹을 것을 사달라’고 했대요. 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말이죠.”

그녀는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도, 역할도 없다는 사실이 극심한 슬픔과 우울감을 몰고 왔던 것이다.

올해로 마흔. 시각장애가 있는 그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단정짓곤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그녀는 의사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저에게 병원에서 자선 음악회를 열어보라고 추천해주셨어요. 중고등학교 때 피아노를 쳤으니까 이번에는 기획자가 되어 일을 한번 해보라는 거였죠. 대학 때 전공을 바꾼 이후로 피아노는 늘 취미로만 했거든요. 음악회에 들어갈 곡을 선정하고 친구들을 초대했어요. 그리고 음악회가 열리는 날,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제가 기획한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어요. ‘혜원씨 덕분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큰 위로가 되네요’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제 가슴이 다 찡하더라고요.”

그녀에게 찾아온 두 번째 스무 살이었다. 그날의 벅찬 감동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그날 이후 복용하던 약도 절반가량으로 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한 공연이었어요. 새로운 나를 찾은 기분이었죠.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을 되찾은 것 같아요.”

그녀는 좀 더 용기를 냈다. 지난가을엔 고등학교 동창 세 명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여는데 거기서 곡 해설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친구들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데, 어려운 곡이라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것 같다며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내가 곡 해설을 해줄까?’하고 물었어요. 그렇게 친구들이 연주하는 곡을 제가 해설해주는 형식으로 무대에 섰어요. 공연 전날까지 스크립트 쓰고 연습하느라 몸은 고단했는데 가슴은 어느 때보다 설레었어요. 객석 반응도 좋아서 정말 기뻤죠.”

그녀는 본격적으로 공연기획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녀의 미국 이름인 ‘Arielle(아리엘)’에서 딴 이름으로 기획사를 차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릴 컬쳐 앤 소사이어티’다. 그리고 오는 12월 13일, 그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한 첫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그녀가 공연기획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자 주변의 지인들도 많은 도움을 줬다. 그녀의 지인은 콘셉트에 맞는 밴드를 소개해줬고, 그녀 아버지의 친구는 필요할 때 언제든지 쓰라며 공연장을 기꺼이 내주었다.

“제가 공연기획사를 설립하면서 마음먹은 일이 몇 가지 있어요. 첫째는 무대에 선 사람에게 무조건 수익이 돌아가게 할 것. 주변에 음악 하는 친구들을 보면 공연자는 아무리 멋진 무대에 서도 얻는 수익이 없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오히려 공연료를 내고 무대에 서는 식이죠. 이런 시스템에서는 그 어떤 훌륭한 뮤지션도 키워낼 수 없어요. 20~30대 친구들이 생활고 때문에 음악을 그만두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둘째는 관람료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할 것. 재즈 공연 같은 경우는 비싼 관람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즐길 수가 없어요. 저는 더 많은 사람이 음악 공연을 즐기고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티켓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할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린이도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여는 것이 목표예요.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 공연이 없어요. 아이들이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 다른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한다는 생각 때문이죠. 하지만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잖아요?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예요. 제가 기획한 공연에선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길 바라요.”

혜원씨가 기획한 첫 번째 무대는 2`0~30대 단원 20명가량으로 구성된 밴드 JBeeS(제이비즈, Jazz Big Band)의 공연으로 꾸며진다. 이들이 연주하는 곡은 총 9곡으로, 대중이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캐럴로 구성했다. 여기에 혜원씨는 직접 곡 해설을 덧붙여 관객들이 재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제가 공연기획사를 설립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한국에는 왜 엘튼 존 같은 사람이 없어?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많은데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아. 그런 사람을 한번 키워봐’라고요. 남편 말처럼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전 알아요. 이 일이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이면서 나 자신을 살리는 일이라는 걸요.”

노 대표와의 인터뷰가 끝날 때쯤 무대에서 연습하던 밴드의 연주곡도 끝이 났다. 이미 공연장은 사랑과 음악, 그 두 가지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 공연 정보

    Once upon a time in Christmas 그 시절 크리스마스
    일시_2014년 12월 13일 토요일 오후 2시, 8시
    장소_서울 강남구 청담동 86 킹콩빌딩 3층 설악홀
    관람요금_2만5천원, 3만5천원
    문의_릴 컬처 앤 소사이어티 02-3014-0063, www.rcns.co.kr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
2014년 12월호

2014년 12월호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