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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10

국립암센터 유방암센터장 이은숙 교수 인터뷰

잘 먹고 잘 살아서 생기는 소위 ‘서구형 질병’의 발병 추이는 이미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그중에서도 유방암은 가장 큰 위험군에 속한다. 20대부터 60대까지 더 이상 유방암의 안전지대는 없어 보인다.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의 첫 여의사이자, 국내 유방암 권위자로 손꼽히는 이은숙 교수에게 그 해답을 들었다.

On June 15, 2014

의대에 진학해 국내 최고의 유방암 권위자로 우뚝 선 지금까지,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는 줄곧 이은숙(52세) 교수를 따라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교수는 고려대학교 의대 수석 졸업을 시작으로 고대 의대 출신 첫 여자 외과의사이며,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의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일찌감치 그 능력을 인정받은 국내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국내에서는 아직 유방암이 주요 질병으로 부각되기 전부터 이 교수는 이 분야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MD앤더슨 암센터 유학 후 그녀는 본격적인 ‘유방암 전문의’로서 환자 치료와 연구에 매진해 지금에 이르렀다.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칼럼에도 이 교수는 첫 여의사로서 바통을 이어받았다.

최초 여자 외과의에서 최고 유방암 명의 되기까지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칼럼에서) 제가 첫 번째 여의사라니, 영광인걸요?(웃음) 물론 모든 여의사 중 제가 가장 첫손에 꼽힌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훌륭하신 분들이 워낙 많고 예전에야 여자 의사, 남자 의사를 은근히 구분하는 문화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도 많이 줄었고요. 제가 나름 주목을 받으면서 의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운이 좋았던 거예요. 1970~80년대만 해도 의대 정원 100명 중 여학생은 10명 남짓이었어요. 제가 80학번인데, 당시 고대 의대에 여학생이 가장 많이 입학했다고 했을 때도 25명 정도였죠. 그만큼 여학생의 비율 자체가 낮았고, 더군다나 그중 외과로 진학하는 경우도 없었고요. 너무도 당연하게 ‘남자 의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분야였으니까요. 그런 중에 어쩌다 수석 졸업을 하게 됐고, 성적이 좋아서 지원하는 과에 비교적 수월하게 진학할 수 있었는데 외과를 선택했어요. 아마 교수님이나 선배, 동기들도 당황했을 거예요.(웃음) 하물며 당장 당직실도 여자 한 명 때문에 따로 만들어야 했으니, 얼마나 불편하고 귀찮았겠어요.”

이 교수는 원래 내과 진학을 희망했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특정 분야의 전문의보다는 몸 전체를 아우르며 볼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고, 그러기에는 내과가 적격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본과 4학년 때 직접 경험한 내과는 여러모로 이 교수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내과에서는 신체 기능의 컨트롤과 균형을 강조하는 반면 즉각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내과 자체가 전체적인 컨트롤 위주의 치료를 많이 하더라고요. 뭔가 경과를 천천히 지켜보며 치료하는 것보다 직접적인 치료를 시행하고 환자가 호전되는 것을 보고 싶은데, 내과의 성격 자체가 저하고는 안 맞더라고요. 그러다 한 선배가 ‘외과는 어떠냐’며 슬쩍 던진 말을 덥석 물은 거예요.(웃음) 물론 그 나이에는 주목받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겠죠. 그렇다고 엄청난 도전 의식이나 목표 의식을 갖고 외과의가 된 것은 아니에요.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선택했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중에 다른 여자 후배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일종의 책임감과 부담을 갖고 매진했어요. 결과적으로 저한테는 가장 잘 맞는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이 교수가 다른 동기 의사들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도 당시에는 드물었던 ‘여자 외과의사’라는 독특한 이력 때문이었다. 어떤 분야든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이 교수는 외과에 하나뿐인 여자 의사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견제를 덜 받았다. 또 조금만 잘해도 남자 동기들에 비해 더 주목을 끌기도 했다. 남자들 특유의 문화가 강한 곳에서 겪은 부침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이 교수에게는 그 모든 시간이 약이 됐다.

“지금은 개인적인 문화가 강해서 자기 일만 하고 집으로 가고, 어울리는 문화 자체가 많지 않은데, 그때만 해도 패밀리십이 굉장히 강했어요. 특히 남자들끼리 우르르 사우나에 몰려가는 건 정말 싫었고요.(웃음) 그래서 농담처럼 ‘내가 치프(chief) 되면 무조건 사우나 금지령 내린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참 재미있네요.”

현재 20~30대 여성 중 유방암에 걸릴 확률 25%로 급증 예상
지금에 비하면 너무도 옛날 얘기다. 현재 서울대를 포함, 대부분의 의대는 전체 정원에서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60%에 육박한다. 특히 유방암이나 산부인과 질환 등 여성 특수 질병을 다루는 분야에는 여자 의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교수가 이끄는 국립암센터의 유방암센터만 보더라도 남자 스태프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이 교수는 자신이 유방암 전문의가 된 것 또한 애초에 계획한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공의를 거쳐 전임의(펠로우, fellow)까지 다 마쳤는데 딱히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자 그녀는 MD앤더슨 암센터로 유학을 떠났다.

“펠로우가 끝났는데 자리를 못 잡았어요. 개인병원보다는 아카데믹 필드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노느니 공부나 하자’는 심정으로 미국으로 간 거죠. 그때가 1994년이었어요. 원래는 대장·항문 쪽 공부를 하려고 했어요. 여자 외과의사로서 특수성을 살릴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 거죠. 인구의 반이 여자인데, 여자 환자 입장에서 남자보다는 여의사가 덜 민망할 테니까요.(웃음) 그래서 MD앤더슨의 대장 쪽 복강경 수술을 하는 분과 얘기를 마치고 갔는데, 그분이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된 거예요. 저로서는 갑작스레 디렉터가 없어지고 붕 뜬 상태가 된 거죠. 돌아갈 직장도 없고, 공부하겠다고 미국에는 왔으니 헝그리 정신이 최고조에 달해서 뭐든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어요.”

그때 찾은 사람이 바로 MD앤더슨에 있던 홍한기 박사다. 홍 교수는 연대 의대 출신으로 당시 MD앤더슨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을 정도로 인정받는 최고의 의사다. 이 교수는 일면식도 없는 홍 교수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유방암센터에 소개를 받아 공부하게 된 것이다.

당시 유방암은 굳이 따지자면 국내에서는 ‘마이너 섹션’으로 분류됐다. 그만큼 발병률이 낮고 환자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유방암 연구나 치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이 교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어마어마한 유방암 발병률로 인해 그 분야의 연구나 치료법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현재 미국의 유방암 발병률은 여성 인구 4명 중 1명꼴이고, 한국 또한 그사이 발병률이 급증해 12명 중 1명이 유방암에 걸린다. ‘잘 먹고 잘 살아서 발병하는’ 전형적인 서구형 암이 바로 유방암이다.

“미국에서는 유방암이 60~70대에 호발하는 반면, 한국의 유방암 발병 추이는 40대 중반부터 50대 사이에 피크를 이룹니다. 하지만 병의 패턴이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나라도 점차 발병 연령이 늦춰지고 있어요. 암은 기본적으로 몸의 유전자 변이가 쌓여 병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결국 암이 잘 발생하는 환경에 얼마나 오랜 기간 노출됐느냐가 관건이에요. 지금 40대들은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고, 그때부터 서구 문명에 빠르게 노출되기 시작한 세대죠. 1950년대에 태어난 60대들은 젊었을 때 상대적으로 암이 잘 발생하는 환경에 노출된 경험이 적기 때문에 발병률이 적은 것이고요.”

전 세대에 걸쳐 어느 정도 환경적 요인이 비슷한 수준에 이르면 자연히 나이가 많을수록 암 발병률은 증가한다. 결국 우리나라의 유방암 발생 추이도 미국과 비슷한 패턴을 보일 것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단순히 호발 연령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병 건수 자체가 급증할 것이라는 데 있다. 아무리 조기 발견과 치료, 예방에 전력을 기울이더라도 발병 자체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 20~30대 여성 중 25% 이상은 나이 들어서 결국 암에 걸린다는 말이에요. 농담 반 진담 반처럼 ‘유방암이 유행병처럼 돌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예측 결과가 이렇다면 예방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사실상 1차 예방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돼요. 이는 유방암이 발병하는 원인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암 치료의 획기적인 도전, 대사 조절 치료법
유방암은 여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잘 걸린다. 이른 초경, 늦은 폐경,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은 유방암 발병의 위험 요인이다. 첫 출산 연령도 중요해 30세 이전에 첫 출산을 하는 것이 좋다. 비만도 위험 요인 중 하나다.

“요즘은 초경 연령이 굉장히 어려졌어요. 그리고 폐경 이후에도 여러 이유를 들어 호르몬 주사를 맞는 사람이 많죠. 출산하지 않으면 유방암 발병률이 증가해요. 첫 출산이 30세 이전이 더 안전하고요. 이렇게 암 발병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컨트롤하면 좋은데, 거의 불가능해요. 이런 것들이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1차 요인인데, 예방하기가 쉽지 않죠. 요즘은 30세 이전에 결혼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유방암을 예방하려고 30세 이전에 임신하고 아이 다섯 명을 낳을 수는 없는 상황이잖아요. 식문화나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서구화되면서 비만 관리도 쉽지 않고요. 그러니 건강검진, 조기 발견 등 2차적으로 병을 예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방암의 경우 40세 이상이면 2년에 한 번씩 무료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나라에서 지원한다. 전문의들은 더 치밀한 예방을 원한다면 35세가 지나면 1년에 한 번씩 받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유방암 치료의 5년 생존율은 90%에 달한다. 병기를 나누지 않고 조사한 데이터이지만, 이 정도면 유방암 치료법이 우리보다 훨씬 앞선 미국 등 선진국에도 뒤지지 않는 수치다. 초기 유방암은 거의 100% 완치한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폐암의 경우 5년 생존율이 2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치료 성과라 볼 수 있다.

학계에서 좀 더 획기적인 암 치료법을 꾸준히 논의 중인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대사 조절 치료법’이다. 이는 유방암뿐만 아니라 암 환자의 항암 치료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현재 항암 치료의 경우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성장인자 등을 찾아내, 이런 특성을 지닌 세포만 공격하도록 하는 이른바 ‘항암 표적 치료’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그렇다고 완벽한 표적·맞춤 치료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궁극적인 ‘항암 맞춤 치료’라고 한다면 환자 개인에게 맞는 딱 하나의 치료법을 쓴다는 의미인데, 현재로서는 ‘개인화 치료’로 가는 과도기 단계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국립암센터는 지난해 그간 학계에서 논의된 항암 치료법의 연구 결과를 점검하고 미래 치료법에 대해 논의하는 ‘차세대 맞춤 항암 치료(Beyond the Personalized Therapy)’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교수는 심포지엄 조직위원장으로 참석해 하버드대학교 암센터 제프리 마이어하르트 박사,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마크 대니엘 피그램 박사, 미국임상암학회·세계폐암학회 전 회장인 폴 번 박사, 도쿄대학교 세이야 이모토 박사 등과 함께 차세대 항암 치료에 대해 활발히 논의했다. 이때 논의된 ‘대사 조절 치료법’은 암 치료의 두 가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비만 관리’로서 신체의 대사 균형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고, 두 번째는 두 가지 이상의 치료제를 섞어 쓰는 일종의 ‘칵테일 치료법’이다.

“기본적으로 ‘대사 조절 치료법’이라는 것은 암도 점점 만성질환처럼 된다는 점에서 접근한 방법이에요.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대사 균형이나 생활 습관을 조절해,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죠. 다이어트를 통해 칼로리를 억제하면 암 치료 성적이 더 좋아진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습니다. 결과는 중구난방 식이지만, 비만 관리는 암 치료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암 치료 후 비만 관리를 하지 않는 환자들은 재발률이 훨씬 높아요. 결국 칼로리를 제한하고 체중을 관리하는 것은 신체 대사를 조절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치료제로 대사를 조절하는 것인데, 당뇨 치료제와 유방암 치료제를 같이 쓰면 효과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방암 환자에게 항암제와 함께 (당뇨가 있든 없든) 당뇨 치료제를 섞어 투여하는 거예요. 현재 임상실험 중인데, 실제로 유방암의 선두 치료제로 손꼽히고 있어요.”

"의술’에 ‘과학’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것이 오래되지 않아 외국의 의사나 박사들을 만나면 사실 자극을 많이 받아요.우리나라 같은 경우 심지어 의사조차도 환자를 임상실험에 참여시키는 데 대해 거부감을 표하는 분들이 계시죠. 옳고 그름보다는 접근 방식의 차이라고 보는데, 좀 더 발전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임상실험이 의사든 환자든 당연히 필요한 절차이고, 거기에 참여하는 데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방암은 신체적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도 병행
이은숙 교수는 일주일에 이틀간의 수술과 외래 진료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방암 치료 연구에 시간을 쏟는다. 치료 성과로는 이미 의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지만, 연구 인프라나 치료 환경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일찍이 유방암과 싸워야 했던 서구의 특수한 환경을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은 길이다.

“위암은 우리나라가 선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방암은 (워낙 연구를 일찍 시작한) 미국 등의 나라가 굉장히 많이 앞서 있죠. 신약 개발도 뒤따라가는 단계이고요. 최근에 국내 신약이 쏟아진다고 하지만, 여전히 외국 약을 받아 쓰거나 외국 약품의 특허기간이 끝나면 약을 카피(Bio-Similar)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연구 인프라나 투자 규모 자체가 차이나기도 하지만, 서양인 특유의 성향도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이 교수는 한국인(동양인)과 서양인은 우선 병과 치료를 바라보는 ‘과학적인 마인드’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치료는 ‘의술’의 개념이 강하지만, 서양인들에게는 ‘과학’의 개념이 더 크다는 것이다. 암 치료의 경우 임상실험이 굉장히 중요하다. 환자를 대상으로 두 가지 약을 사용해 치료하고, 평균적으로 효과가 더 좋은 약을 선택해 ‘표준치료’를 한다. 신약이 개발되면 기존의 표준치료 약과 비교해 더 나은 치료약을 사용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다. 서양의 경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과 연구 결과, 데이터, 수치를 치료의 절대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삼는 것에 비해, 우리의 경우 의학을 객관적·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최근 과학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술’에 ‘과학’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것이 오래되지 않아서 외국의 의사나 박사들을 만나면 사실 자극을 많이 받아요. 환자들의 마인드도 많이 다르죠. 외국에서는 임상실험이 치료에 너무도 중요한 툴이라는 걸 환자들도 당연히 인정해요. 자신이 임상실험에 참여해야 하는 ‘비교군’에 해당한다면 기꺼이 참여하죠. ‘내가 실험실 쥐냐?’라는 거부감이 전혀 없어요. 반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 심지어 의사조차도 환자를 임상실험에 참여시키는 데 대해 거부감을 표하는 분들이 계시죠. 옳고 그름보다는 접근 방식의 차이라고 보는데, 좀 더 발전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임상실험이 의사든 환자든 당연히 필요한 절차이고, 거기에 참여하는 데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했어요. 국내에서 불가능한 치료를 임상실험을 통해 먼저 받을 수 있고, 또 신약을 먼저 접하면서 치료비도 들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의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 상태지만 아직 배울 점도 많이 있죠.”

유방암은 신체적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적 치료도 병행돼야 하는 질병 중 하나다.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외형적인 변화 때문이다. 특히 유방은 여성의 외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교수도 웬만해서는 가슴 절제를 피하려고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는 절제를 하거나, 절제 후 재건 수술을 한다.

유방 절제는 꼭 심각한 전이가 아니어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유방암 중 ‘상피내암’은 초기이더라도 가슴 전체를 절제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는 점막 상피층에 암세포가 퍼져 있는 경우인데, 병이 진행되어 암세포가 퍼진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가듯 여러 군데에 암세포가 퍼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유방암 수술을 한다고 하면 다 절제하는 게 마치 공식인 것처럼 여겨졌는데, 요즘은 외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절제하지 않거나 재건하는 것이 추세예요. 재건하면 거의 정상처럼 만들 수 있고요. 자기 조직을 쓸 때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재건 수술을 할 수 있어요. 한데 이게 ‘뒷담 무너뜨려 앞담 쌓기’랑 비슷하기 때문에 지방을 떼어낸 부분에 남는 흉터는 어쩔 수가 없어요. 그 흉터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보형물로 재건하는 경우도 많죠. 반면 보형물 재건은 아무래도 자연스러움이 떨어지고, 이것도 미용 성형과 다르기 때문에 흉터가 남을 수 있어요. 수술 자국이 거의 남지 않는 자리에 암세포가 있다면 흉터를 잘 숨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흉터는 남죠. 복강경 수술 등을 통해 흉터를 최소화할 수도 있지만, 이는 눈에 보이는 흉터만 작을 뿐, 몸 안의 상처와 흉터가 크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유방암 치료를 할 때는 외형의 변화에 너무 큰 의미를 두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환자들이 유념해야 할 것은 유방암 수술 후 가슴 재건 수술과 미용 수술은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재건 수술은 원래 자신의 가슴처럼만 되어도 굉장히 성공한 수술이다. 보형물 수술의 경우 육안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촉감은 분명 이전과 다르다. 가끔 재건 수술을 통해 더 나은 외형의 가슴을 가질 수도 있다. 작거나 처진 가슴 등을 가진 환자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런 경우 유방암 수술을 하지 않은 반대쪽 가슴도 함께 수술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재건 수술을 할 때는 성형 수술이란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단순히 성형 수술을 할 때와 암 수술 후 재건 수술을 할 때는 마인드 자체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죠. 가령 환자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있어요. 40대 이후 가정도 꾸리고 자녀도 어느 정도 키운 여성이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 ‘내가 이 병으로 죽지는 않을까’ 고민하지만, 20대 미혼인 여성이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 ‘이 병으로 인해 내 외형이 얼마나 망가질까’를 고민하죠.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고, 유방암이 여성에게 육체적·심리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해요.”

이은숙 교수는 일주일에 이틀, 하루 10여 명의 유방암 환자를 수술한다. 또 해외 등을 떠나며 의료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고연령층일수록 유연성 운동 필수
이런 마음을 잘 아는 이 교수는 되도록 환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녀 특유의 호탕하고 친근한 성격은 환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환자를 진료하고 상담할 때는 환자와 의사 사이가 아니라 마치 동네 사랑방에서 담소 나누듯 얘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이 교수는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환자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기 위해 스스로 꾸준히 활력을 유지하는 것도 의사로서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피부과 의사가 피부가 안 좋으면 환자한테 신뢰를 못 주는 것과 마찬가지죠. 환자들한테는 운동하라, 식이조절하고 체중을 관리하라고 하면서 제가 푹 퍼져 있으면 소용없잖아요. 감사하게도 좋은 체력을 타고나서 이제껏 보약 한 재 안 먹고 나름 건강하게 잘 살았는데, 50대에 접어드니까 육체적인 한계가 실감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웃음) 운동을 해도 살이 잘 안 빠지고요. 그래서 요즘은 체중을 조절하려고 일부러 점심을 거르며 1일 2식을 하고 있어요.”

운동할 시간조차 내는 것이 쉽지 않아 이 교수는 평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 위주로 규칙을 정해 되도록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것도 한두 가지, 매우 간단한 원칙들이다. 층을 올라갈 때는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이동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무릎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또 이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근력 운동과 유연성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기초대사량이 줄기 때문에 체중 조절이 어려운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산소 운동보다 근력 운동을 해 기초대사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 관절염이나 오십견 예방을 위해 스트레칭 등을 권장한다. 신체가 유연해야 노화를 늦출 수 있다.

“이미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요. 규칙적인 운동, 하루 권장량 이상 채소 섭취, 비만 관리…. 문제는 이걸 꾸준히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죠. 딱 6개월만 실천하고 지키면 몸에 내성이 생겨 그 이후는 관리하기 쉬운데, 거기까지 가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너무 거창하고 과도한 목표를 세우지 말고, 일상에서 언제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시작해보세요. 몸이 변하는 것을 느끼면 이후에는 저절로 실천하게 될 거예요.”

이 교수의 말처럼 노화를 늦추고 병을 예방하려면 암을 두려워하지만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녀가 지닌 에너지와 활력의 근원은 긍정적인 마인드와 호탕한 웃음에 있는 듯했다.

  • 유방암 진단·예방·관리법

    1. 식이요법과 비만 관리
    유방암 환자에게는 비만이 흔하다. 유방암 급증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생활 및 식사의 서구화인데, 유방암 치료 후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적정량 섭취하고 칼로리 섭취를 줄이면 삶의 질이 증가할 뿐 아니라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 정기검진 통한 조기 발견
    30세 이후에는 매월 유방 자가검진을 하고, 가족력이 있는 경우 35세 이후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는다. 1~2년 간격으로 임상 진찰과 유방 촬영 등을 실시한다.

    3. 유방암에 잘 걸리는 환경 체크
    출산 경험이 없거나 첫 임신이 30세 이후인 여성, 초경이 빠르고 폐경이 늦은 여성, 모유 수유를 하지 않은 여성, 호르몬 요법을 5년 이상 장기 지속한 경우, 유방암의 병력이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는 정기검진을 더욱 철저히 하도록 한다.

    4. 유방암의 증상
    유방에 혹이 만져지거나 통증이 느껴지면 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또 유방의 피부가 오렌지 껍질처럼 변하거나 겨드랑이와 쇄골 부위에 혹이 있는 경우도 의심해볼 것. 유두에서 핏빛의 분비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5. 유방암 자가진단
    유방암 자가진단은 샤워하기 전 거울을 보면서 하는 것이 좋다. 바른 자세를 한 뒤 유방의 상태를 확인하고, 유방과 겨드랑이 부근을 만져보면서 혹이 있는지 ‘촉지’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우먼센스 특별기획 |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10
각종 건강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그렇지만 막상 나와 내 가족이 아프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우먼센스>는 매달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를 릴레이로 만나고 있습니다.

CREDIT INFO

취재
김은향(프리랜서)
사진
양수열, 국립암센터 제공
2014년 03월호

2014년 03월호

취재
김은향(프리랜서)
사진
양수열, 국립암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