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인스타그램 네이버포스트 카카오 스토리 유튜브 네이버TV캐스트 블로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FOOD

어떤 날의 피클

On May 17, 2022

/upload/living/article/202205/thumb/50993-487780-sample.jpg

피클. 채소나 과일을 식초, 설탕, 소금, 향신료를 섞은 물에 절여서 만든다. 물과 설탕, 식초의 비율은 2:1:1만 기억하면 되는데 맑고 투명한 피클을 원할 땐 소금으로, 진한 맛의 피클을 원할 땐 간장으로 간을 하면 된다. 나에게 피클은 신묘한 음식이다. 생당근은 먹지 못하는데 어쩐지 피클 속 당근은 아삭아삭 입맛을 돋우고, 냄새도 맡기 싫은 셀러리도 피클로 만들면 느끼함을 잡아주는 식탁의 감초가 된다. 소금과 설탕, 식초가 만나 이루어낸 환상의 궁합에 못 먹던 식재료까지 먹게 만드는 신비로운 힘이라도 들어 있는 걸까? 갓 수확해 신선함이 뚝뚝 묻어나지만 지금 당장 먹고 싶지는 않은 채소를 보면 피클로 담가 맛이 배어날 때까지 묵혀두고 싶은 저장 본능이 샘솟는다. 제철을 맞은 싱싱한 채소를 먹기 좋은 크기로 뚝뚝 썰고 있자면 경쾌하게 울리는 도마 소리와 함께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된다. 아름다운 자연의 빛깔을 담고 있는 채소의 색을 감상하며 차분한 시간을 보내면 꿀꿀하던 기분도 금세 좋아진다. 피클용 병을 끓는 물에 소독하고 가지런히 말릴 때면 일종의 숭고한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렇게 만든 피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정도 피클처럼 오래 담아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간직하는 것을 넘어 담아두는 것만으로 언젠가 더 깊고 진한 맛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기쁨은 담아둘수록 배가되고, 슬픔은 담아둘수록 옅어지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먹기 싫던 셀러리가 맛 좋은 피클로 변신하는 신비로운 과정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소중한 감정도 시간이 흐르면 흩어져버린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슬픈 감정까지도 말이다. 2:1:1의 비율을 기억해두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감정은 채소와 달라서 담아둘수록 본연의 맛을 잃고 마니 오늘의 감정은 오늘 당장 맛보는 것이 좋다. 여름날의 아삭한 오이, 절이지 않은 갓 썬 무가 때로는 더 기분 좋은 맛을 내기도 하니까.  

Tip
피클을 만들 때 비트를 함께 넣으면 아름다운 핑크색 피클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무나 래디시, 콜리플라워처럼 흰색 채소와 함께 넣으면 더 선명한 색을 감상할 수 있다. 단, 비트를 넣을 땐 투명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간장보다 소금으로 간을 맞출 것.

 

CREDIT INFO

에디터
장세현
포토그래퍼
정택

LIVINGSENSE STUDIO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