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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테토의 아트스페이스

영원을 새기는 오채현 작가의 '해피타이거'

On March 22, 2022

영원을 간직한 소재인 돌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오채현 작가. 그의 ‘해피타이거’와 함께하는 임인년은 웃음이 가득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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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의 기와지붕을 배경으로 서 있는 오채현 작가의 ‘해피타이거’.

용맹하기도 하고, 천진한 동물

호랑이는 우리 전래동화에서 빠지지 않는 주인공으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용맹함을 상징하지만 동화 속 호랑이는 천진하고 순박하기도 하다. 토끼한테 잘 속아 넘어가거나 곶감을 더 무서워하는 호랑이는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친근한 존재. 오채현 작가의 호랑이는 그런 정감 어린 존재다. 입을 활짝 벌리고 환하게 웃는 호랑이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근심은 잠시 잊힌다. 돌 조각가 오채현은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조각 스타일을 따르는 것에 반감을 느끼고 우리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서 전통 소재와 한국적인 방식을 사용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주로 경주 부근에서 채취할 수 있는 화강암을 사용해 전통 방식인 망치와 정으로 한땀 한땀 조각물을 만들어낸다. 단단하고 거친 화강암은 두루뭉술하고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거친 미감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경북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조소과에서 수학한 그는 국내는 물론 뉴욕 및 상하이 등 해외 갤러리에서 여러 전시를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5년에는 주 교황청 한국대사관의 성모마리아상을 제작해 화제가 되었고, 국내 유수의 사찰에는 그가 조각한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다. 종교와 지역을 넘어서 많은 이들에게 편안하고 푸근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오채현 작가의 작품은 올해 좀 더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임인년 호랑이해인 만큼 그의 웃는 호랑이 작품 ‘해피타이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2월 초에는 한국의 예술을 사랑하는 마크 테토가 살고 있는 가회동 한옥에서 작은 전시도 마련했다. 평안하고 행복한 집을 뜻하는 평행재에는 ‘해피타이거’들의 행복한 에너지가 가득했다. 평행재에서 전시 후 작가의 작업실을 탐방하며 마크 테토와 오채현 작가가 나눈 허심탄회한 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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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주 작가의 조각보와 잘 어울리는 ‘해피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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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부처 위를 날아가는 새를 표현한 액자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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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가 살고 있는 ‘평행재’에서 전시를 연 오채현 작가는, 한옥과 석조각의 조화가 정말 좋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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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외에 작가가 가장 많이 제작하는 동물은 바로 새. 호기심이 많아 앞만 보고 날아가는 모습이 자신의 분신 같다고 생각한다.

호랑이 외에 작가가 가장 많이 제작하는 동물은 바로 새. 호기심이 많아 앞만 보고 날아가는 모습이 자신의 분신 같다고 생각한다.


호랑이는 용맹스럽기도 하지만 전래동화에서처럼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거나
곶감이 무서워 도망가기도 하는 순박한 면도 있어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정감 어린 동물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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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기와지붕, 전통 창살의 문양과 어우러질 때 ‘해피타이거’는 더욱 돋보인다.

한옥의 기와지붕, 전통 창살의 문양과 어우러질 때 ‘해피타이거’는 더욱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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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전시된 다이닝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마크 테토와 오채현 작가.

작품이 전시된 다이닝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마크 테토와 오채현 작가.

열중해서 돌을 조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돌에 따뜻한 피가 돌고 살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평행재에서의 전시는 정말 좋았습니다.
좋은 기회에 마크 씨의 집에서 전시를 할 수 있어 저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한옥과 저의 돌 조각들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고 집 덕분에 제 작품이 돋보이더라고요.

돌 조각이라는 분야가 흔치 않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제 고향이 경주인데 석굴암 근처에서 태어나 안압지, 황룡사 옛 터 근처에서 자랐어요. 천 년 묵은 돌 조각이나 기와 조각 같은 게 흔했죠. 어릴 때부터 봐왔던 것들이 제 뇌리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나 봐요.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무역학과를 중도 포기하고 다시 미대에 진학했는데, 여러 전공 중에서도 자연스레 돌 조각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돌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어요.

그 매력은 어떤 것이에요?
저는 평면 작업보다 입체 작업이 훨씬 더 재미있더라고요. ‘차원이 다르다’는 농담도 하는데 입체 조각은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희열 같은 게 있어요. 저는 거기서 매력을 느껴요. 조각 소재 중에서도 돌은 가장 단단하기 때문에 조각하기가 어려워요. 어렵지만 한 번 새기면 거의 영원히 남죠. 묵직하고 다루기 힘들지만 나하고는 잘 맞았어요.

돌 조각으로 가장 먼저 만들었던 작품은 어떤 스타일이었어요?
초반에는 여인상을 주로 제작했어요.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서양의 조각 방식을 바이블처럼 생각했던 시절이었거든요. 인체 비율이 8등신, 9등신이에요. 그런데 사실 한국인들의 몸은 그렇지 않잖아요. 비록 다리가 좀 짧고 엉덩이가 크더라도 우리만의 정서와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건강하고 생활력이 강한 우리네 어머니들이요. 그게 더 현실적이고 진짜 우리의 모습이니까요.

어떤 반발심 같은 것이었나 봐요?
저는 남들이 8등신 만들 때 일부러 4등신, 5등신 인체 조각을 만들었어요. 한국 조각에 더 관심이 많았고요. 우리의 조각은 서양하고는 완전히 달라요. 선사시대부터 그려진 암각화나 신라시대 토우에도 사람 얼굴이나 형상을 조각한 것들이 있는데 둥글둥글하고 단순하잖아요. 종교가 발전하면서 조각도 함께 발전하고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왔는데 서양의 것만 따라 하는 건 별로잖아요?

한국의 조각 스타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물 조각도 우리 생긴 대로 둥글둥글, 자연 조각도 자연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자연 속에서 어우러지는 정도예요. 건축물도 그렇고요.

‘해피타이거’는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작품이에요. 호랑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존재를 찾다가 만났어요. 전래동화 속 호랑이는 위협을 가하기도 하지만 결국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거나 곶감이 무서워 도망가는 순박한 동물이거든요. 그렇지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용맹스러운 동물이기도 하고요. 호랑이만큼 정이 가는 동물이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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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기와지붕, 전통 창살의 문양과 어우러질 때 ‘해피타이거’는 더욱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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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자리한 오채현 작가의 작업실 마당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모여 있다. 그중 가장 큰 돌에 다음 작품을 위해 스케치하는 작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크 테토.

자연석으로 작업하신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떻게 돌을 구하세요?
네. 저는 큰 돌산을 깎아서 작업하진 않습니다. 좋은 돌을 찾으러 전국을 다니기도 하고, 또 자연석 돌을 전문으로 파는 분들이 연락을 주기도 하세요. 제가 주로 사용하는 돌은 경주석입니다. 약간 붉은색을 띠고 있고, 구멍이 송송 뚫려 있기도 해요.

그럼 그 돌을 어떻게 작품으로 만드는지 과정도 궁금합니다.
우선 저는 돌을 계속 들여다봐요. 보다 보면 그 속에 있는 어떤 모습이 보입니다. 일부러 정교한 호랑이를 스케치해서 그린다기보다는, 그 돌이 갖고 있는 존재의 생김새를 찾아내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따라 돌 위에 스케치를 하고 툭툭 깎아 내려가면 자연스러운 모습이 만들어져요. 제 손의 행위는 좀 줄이고 나머지는 재료에 양보하는 거죠.

절제의 아름다움인가요?
원래 돌의 모양을 크게 해치지 않고, 그 돌을 최대한 활용한다고 봐야죠. 예를 들어 호랑이를 만들 때 돌의 모양에 따라 일단 눈, 코, 입 자리를 만들고 꼬리와 다리는 어디에 두면 좋을지 구상하죠. 그러면 나머지 부분은 어색해도 이미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호랑이가 완성돼요. 서양이나 중국은 세밀한 게 특징이라면, 우리는 돌의 원래 모양이 잘 드러나는 스타일이에요.

무거운 돌을 가지고 작업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돌은 무겁고 단단해서 다루기가 쉽지 않아요. 하나를 만드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죠. 커다란 작품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해요. 만들어도 무게가 무겁다 보니 일반 컬렉터가 소장하기도 어려워서 큰 인기도 없어요(웃음). 일이 힘드니까 젊은 사람들도 돌 조각은 이제 거의 안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돌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죠.

작업 중 희열을 느끼실 때는 언제예요?
오랫동안 열중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망치질을 하다 보면 돌에 따뜻한 피가 도는 것 같고 살결처럼 느껴져요. 그건 내가 돌에 부여한 게 아니라 돌이 원래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내가 알아보는 거죠. 그 순간에는 돌이 정말 사랑스럽고 정겹게 느껴지고 몸에 전율이 느껴져요. 신비로운 시간이죠.

말씀을 듣다보니 돌이 정말 특별한 소재처럼 느껴져요. 작가님에게 돌 조각은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작업할 때 돌의 시간을 늘 떠올리곤 해요. 분출한 용암이 땅속에서 압력을 받아 돌이 되고, 지각이 이동하면서 산이 생기면서 바깥 세상을 보고요. 그러면서 비바람에 깨지고 구르면서 바닷가의 조약돌, 모래가 될 텐데.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수억, 수십억 년의 시간이 걸리겠죠. 그에 비하면 우리가 지금 사는 70~80년은 아무것도 아니고. 천 년 전에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조각도 우리는 오래됐다고 하지만 그 시간이 돌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 정도일 거예요. 그런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돌을 다루다 보면 겸손해지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죠. 지금 현실의 관념도 과감히 깨어버리고,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만들어온 본래의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 찾아가는 구도의 길을 가게 되더라고요.

작품을 해오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저는 고정관념을 깨나가는 게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죠. 제가 처음에 5등신 6등신 여인상을 한 것도 서양 조각 스타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현상을 비판하고 싶었어요. 누구도 주목하진 않았지만, 제 작업은 누구보다 치열했거든요. 교황청 한국대사관의 성모마리아상도 처음엔 논란이 좀 많았어요. 불상을 제작하는 작가가 성모마리아상을 만들면 안 된다는 얘기부터, 한국인 성모마리아의 모습에서 가슴이 드러난다고 말이 많았죠. 하지만 저는 성모마리아라는 존재가 모두의 어머니 같은 존재라면, 제가 어릴 때 보고 자란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잘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국에는 바티칸 교황청이 나서서 작품도 검사하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긴 했지만 잘 마무리되었고, 반대했던 분들도 제 의도를 이해해주셨죠.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으세요?
그동안 탐구해왔던 것을 계속하는 거죠. 새는 날아가면서 절대 뒤를 안 돌아본다고 하더라고요. 제 작품에서도 새를 많이 다루는데, 그 새가 제 분신인 것 같아요. 나의 궁금증을 향해 계속 나아갈 것 같아요. 전 아직도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우리 민족의 근본적인 심성, 모습, 원천 등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것들을 새처럼 날아가서 탐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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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눈으로 튀는 걸 방지하는 고글과 장갑, 망치, 정. 석조각을 위한 도구는 단촐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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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본격적으로 조각하기 전 흰색 분필로 스케치한 후 먹으로 다시 한번 그 위에 밑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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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망치로 돌에 호랑이 얼굴을 조각하는 오채현 작가.

돌을 조각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일이다.
 억겁의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돌을 다시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망치질을 해야 한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

마크 테토(Mark Tetto)

JTBC〈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2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영원을 간직한 소재인 돌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오채현 작가. 그의 ‘해피타이거’와 함께하는 임인년은 웃음이 가득할 것만 같다.

CREDIT INFO

에디터
심효진
포토그래퍼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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