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식탁 사이에는 구분 선이 없다. 우리네 할머니의 찬장에서 본 그릇에 ‘복 복(福)’ 자와 ‘목숨 수(壽)’ 자가 새겨진 그릇이 유난히 많았던 이유는 국물과 밥에 삶의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먹거리를 가르치는 음식 선생님 전혜선 씨와 그의 며느리 이은혜 씨는 수행자처럼 음식을 대한다. 기도하듯 고요히, 일상에 평온함을 가져다 줄 식탁을 살핀다.
서울의 구룡산과 성남의 대모산 자락 사이, 조선조의 왕릉인 헌인릉 인근에 위치한 내곡동은 마치 산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꼬불꼬불한 비탈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하나 넘고, 강아지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반기며 왕왕 짖어대는 골목을 지나자 비로소 ‘꽃씨봉지’ 팻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당에 장독대가 뭉게구름처럼 한가롭게 모인 이곳은 산 아래 여느 시골집처럼 보였다. 마당을 넘어 결이 잘 드러난 나무 문에 이르자, 멋진 백발의 여인이 마중을 나왔다. 이 공간의 주인 전혜선 씨다. 콧날이 곧고 웃을 때는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을 지닌 그에게서는 단단함과 온화함이 함께 느껴졌다. 그의 안내를 따라 집 안쪽으로 들어서자 높은 층고를 지닌 다이닝 룸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그의 며느리인 이은혜 씨와 만났다. 희고 작은 얼굴을 지닌 그가 단아한 몸짓으로 기분 좋은 달그락 소리를 내는 얇은 도자기 찻잔을 냈다. 층고 높은 지붕선을 따라 나 있는 창문으로 꽃나무가 보이고, 햇살이 가득히 드는 이곳은 두 사람의 작업실 겸 부엌이다. 창가 반대편 벽면에는 전혜선 씨가 수십 년간 모은 전국 팔도의 소반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나무로 만든 오래된 스피커에서는 클래식 채널 방송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릇은 반드시 쓰는 사람이 선택해야 해요. 맘에 안 들어도 남이 주는 거니까,
좋은 거니까, 하고 썼다간 결국 오래 간직하지 못해요.

세대를 이어온 24절기 음식
전혜선 씨는 음식 선생님들의 선생님 같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21년간 서울의 아파트에서 이천의 작은 한옥으로, 또 내곡동의 농막으로 거처를 옮기는 내내 학생들에게 음식을 가르쳐왔다. “아이고, 저를 요리 연구가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저는 셰프도, 연구가도 아니에요. 경주에 있는 과수원집의 막내딸로 태어났어요. 식구며 일꾼이며 챙겨야 할 식솔이 많았던 집이라 할머니와 어머니가 하던 걸 기억해서 음식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음식은 레시피가 아니라 절기와 기억을 따른다. 그래서 그는 봄에는 달래, 가을에는 움파, 늦가을에는 버섯을 넣고 1년 열두 달 다른 된장찌개를 끓여내는 걸 당연히 여기고, 시할머니로부터 받은 100년 된 씨간장을 지켜온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렇게 부모나 조상 대대로 전해지는 음식은 보통 ‘내림 음식’이라고 부른다. 그의 음식에서 중요한 건 사실 ‘내림’ 그 자체의 가치다. 며느리 이은혜 씨는 그런 시어머니의 뜻에 공감하고, 이를 이어받기 위해 지난 5년간 함께 음식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재료의 승리
고부는 차를 한 잔 마시고는 곧바로 손님상에 낼 잣국수와 수삼튀김을 준비했다. “삼은 풍기에서 가져와요. 고랭지라 구근식물이 맛있게 익는 지역이에요. 오랫동안 거래한 농부가 있는데, 내 취향을 알아서 이렇게 뿌리가 날개처럼 많이 뻗어 나온 걸 보내줘요.” 두 사람은 수삼을 4분의 1로 뚝뚝 썰고, 찹쌀가루에 끓는 물을 조금 부어 만든 익반죽을 살살 펴 바른 다음 그대로 뜨거운 기름에 넣어 튀겨냈다. 냄비에서 나온 수삼은 정말 날개를 지닌 것처럼 이리저리 뻗은 예술적인 모양새로 그릇에 담겼다. 씻은 잣과 물을 넣고 믹서로 살짝 간 국물에 설설 삶아낸 소면을 넣어 먹는 잣국수도 뚝딱 완성됐다. 직접 담근 물김치와 함께 내자 배 대신 마음이 부른 점심식사가 완성됐다. 부러 간을 맞춘 적이 없는데도 입에 붙는 맛. 전혜선 씨는 이것을 ‘재료의 승리’라고 부른다. “다섯 살배기 손자가 다 크고 나면 우리 음식이라는 게 남아 있을까 싶어 걱정이에요. 음식은 결국 정체성이니까요. 정체성은 기억과 추억으로 이어져야만 하는 건데. 이 아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원칙을 지켜 먹거리를 만드는 농부와 전문가를 찾겠어요. 누군가는 기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에 따르면 계절마다의 된장찌개 맛을 아는 사람은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다. 식당과 인플루언서가 우리 의식주의 모습을 만드는 요즘, 그는 ‘추억하는 사람’의 자리에서 고요히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다.
내곡동 줄리 & 줄리아
이은혜 씨의 인스타그램 계정(@julie_and_juliaa)에는 내곡동 꽃씨봉지 가족의 일상이 고스란히 보인다. 콩이 보드라워질 때까지 끓이고, 메주를 띄우고, 오래된 장에 첨장하고, 고랭지 배추를 잔뜩 절여 이웃과 김장하고, 더운 여름날 3대가 모여 오이 송송 썰어 고명으로 올린 잣국수를 뚝딱하는 가족의 시간들. 은혜 씨는 시어머니가 14년에 걸쳐 땅을 일구고 꽃나무를 심어 둔 이곳 농막에서 대개의 주말을 보낸다. 어머니의 음식 준비를 보조하고 하나하나 배우는 동안 그 역시 음식에 대한 추억을 지닌 사람이 되어간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음식을 대하며 느끼신 것들이 저에게 다 들어오는 중이에요. 시어머니보다는 멘토라고 여기고 있어요. 영화 <줄리 & 줄리아>처럼, 몇십 년의 간극을 음식으로 채우는 중이죠.” 두 사람이 보내는 시간이 내곡동의 농막에 차곡차곡 쌓인다. 은혜 씨의 다섯 살배기 아들인 도하가 그 시간을 먹고 자란다. “할머니의 백김치는 달고 시원하”고, “햄버거 말고 인절미가 먹고 싶”은 마음을 기억하는 이 아이가 자라, 또 다른 이에게 내림의 미학이 있는 식탁을 차려줄 것이다.
전혜선 씨의 별명은 예바라기다.
예전에는 대접, 잔, 그릇을 다 아울러 ‘예바라기’라고 했다.
스님이 쓰는 밥그릇을 이르는 말 ‘바루’가 이 말에서 나왔다.
그래서 스님들은 예바라기를 생명 끈이라고 여겼다.
내림 식탁을 차리는 그는 이 별명을 감사히 여기며 생활한다.
삶과 식탁 사이에는 구분 선이 없다. 우리네 할머니의 찬장에서 본 그릇에 ‘복 복(福)’ 자와 ‘목숨 수(壽)’ 자가 새겨진 그릇이 유난히 많았던 이유는 국물과 밥에 삶의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먹거리를 가르치는 음식 선생님 전혜선 씨와 그의 며느리 이은혜 씨는 수행자처럼 음식을 대한다. 기도하듯 고요히, 일상에 평온함을 가져다 줄 식탁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