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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니얼이 온다

집의 즐거움, 김진순 할머니

On December 29, 2021

할머니의 찬장은 보물 창고다. 운이 좋으면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델몬트 주스 병이라던지, 88올림픽 기념 맥주잔이나 귀여운 꽃무늬 접시 같은 것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오래되고 낡았지만 오랜 시간 정성스레 사용하고 매만진 옛날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성의 매력을 풍긴다. 그래서인지 요즘 할머니 감성을 좋아하는 밀레니얼세대가 늘어나고 ‘할매니얼’이 트렌드가 됐다. 여기 취향이 확고한 할머니들이 있다. 종갓집 맏며느리부터 정리의 여왕, 도예가, 여행 마니아까지! 각각 스타일은 다르지만 우리네 할머니의 찬장 속에서 진짜 ‘할매니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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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순 할머니

“주방이 편해야 하고, 침실이 편해야 하고. 그럼 됐지 뭐. 억지로 규칙을 만들면 남 보여주려는 것밖에 안 돼요.”


허브와 식물 튼튼하게 키우기 / 초근목피와 가까이 지내기 / 등산의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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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별명은 ‘부암동 살구선생님’이다. 살구나무가 테라스에서 비죽 자라나는 언덕배기 집에 살기 때문이기도, 종종 동네 그로서리나 그릇 가게에 들러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걸어오는 모습이 꼭 살구 열매의 빛깔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날엔 멋진 셔츠 드레스에 볼드한 선글라스 차림이었다가 어느 날엔 자신의 몸보다 커 보이는 등산 짐을 메고 나타나고, 또 어느 날엔 위아래로 ‘청청 패션’을 선보이는 그는 동네의 소문난 멋쟁이 할머니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외국 한 번 나가기 어려웠던 1980년대부터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쌓은 견문,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미국에서 10년을 살며 체득한 그의 감각 덕이다. 차림보다 더 멋지다고 동네에 소문난 건 그의 집이다. 나무로 마감한 박공지붕 천장, 셰프의 주방을 연상케 할 만큼 커다랗고 멋진 주방, 창가에 놓인 새 모양 오브제와 이국적 정서의 빈티지 식기들까지. 북향이라 해가 썩 잘 드는 집이 아니라는 그의 집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연상케 할 만큼 온갖 허브와 식물이 포동포동하게 잘만 자라고 있다. “순무와 콜라비는 샐러드로 해 먹으려고 수경재배를 해요. 그리고 저기 뿌리가 오동통한 건 고구마… 생명력을 지닌 게 없으면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어쩌다 호텔에 가게 될 일이 있어도 꼭 풀포기 하나를 꽃병에 꽂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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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없는 공간은 웬지 살벌해요. 마당에, 집 안에 식물들을 가까이 두고 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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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IN-SUN

나뭇가지로 집 꾸미기 / 에어비앤비로 집 활용하기 / 돌멩이 수집하기

그릇 하나, 추억 둘
“1980년대에 비행기를 타려면 대공 정신교육을 받아야 했어요. 형사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 조사를 하는 것도 공항에서 비행기 타기 전 꼭 거치는 과정이었고요. 그래도 미제 그릇을 머리에 잔뜩 이고 몰래 동네를 도는 아줌마가 있어서 다들 살림은 미제였지(웃음).” 1960년대 빌레로이앤보흐 그릇과 1970년대 로얄코펜하겐 빈티지 그릇과 깨질 듯 얇고 고운 영국산 찻잔과 소서, 100년은 족히 된 러시아의 사모바르까지…. 빈티지 애호가라면 한 번쯤 ‘직구’를 열망해보았을 법한 그릇이 차곡차곡 쌓인 그의 찬장은 거의 추억 바구니나 다름없다. 그는 그릇 하나를 살 때마다 있었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엄마와 책과 초근목피
그의 자랑인 특유의 유쾌함과 긍정력은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라고. “우리 엄마 정말 멋있었어요. 예쁨 받는 고명딸인 내가 밥을 안 먹겠다고 떼를 쓰면 단호하게 밥상을 물렸고, 서른아홉에 내가 이혼을 선언했을 때는 ‘그까짓 거, 예전엔 법이 없어 못 헤어졌지, 요즘 세상에. 잘했다’ 그러셨죠.” 그의 기억 속 어머니는 여전히 삶의 지표이다. 지금은 딸과 아들이 그 성격을 이어받았다고. 그가 대대로 이어나갔으면 하는 것 중엔 자연을 가까이하는 습관도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산에 올라요. 대자연을 마주 보면서 ‘욕심 없이 살아야지’ 늘 생각해요.” 오래전 마련해 아껴 사용하는 미제 패브릭과 산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장식한 액자, 하나씩 모은 거친 돌멩이, 오래된 핑크색 대문…. 그의 집은 마치 안분지족을 미덕으로 아는 선비의 마음이 녹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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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혼자 즐기기 좀 그래서, 같이 나누지' 하는 게 진짜 집의 즐거움이에요.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누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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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찬장은 보물 창고다. 운이 좋으면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델몬트 주스 병이라던지, 88올림픽 기념 맥주잔이나 귀여운 꽃무늬 접시 같은 것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오래되고 낡았지만 오랜 시간 정성스레 사용하고 매만진 옛날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성의 매력을 풍긴다. 그래서인지 요즘 할머니 감성을 좋아하는 밀레니얼세대가 늘어나고 ‘할매니얼’이 트렌드가 됐다. 여기 취향이 확고한 할머니들이 있다. 종갓집 맏며느리부터 정리의 여왕, 도예가, 여행 마니아까지! 각각 스타일은 다르지만 우리네 할머니의 찬장 속에서 진짜 ‘할매니얼’을 만났다.

CREDIT INFO

에디터
심효진, 박민정, 장세현
포토그래퍼
이지아, 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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