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인스타그램 네이버포스트 카카오 스토리 유튜브 네이버TV캐스트 블로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FEATURE

방치된 구옥을 문화공간으로, 의식주 클럽 '보야주'

On August 19, 2021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음식을 나누는 모든 일상이 시(詩)가 될 수 있을까? 의식주를 탐닉하는 세 청춘의 하모니, 보야주의 여정을 따라서.

/upload/living/article/202108/thumb/48865-463630-sample.jpg

‘보야주’라는 여정의 세 주인공. 왼쪽부터 이보미, 강재윤, 박나래 씨.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만, 각자의 미감을 존중하고 100% 신뢰하는 게 보야주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나의 미감을 알아주고, 또 믿고 물어볼 수 있다는 존재가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해요.
 

종로구 서촌에 위치한 오래된 단층 건물을 개조한 이곳이 세 사람의 아지트 보야주다.

종로구 서촌에 위치한 오래된 단층 건물을 개조한 이곳이 세 사람의 아지트 보야주다.

종로구 서촌에 위치한 오래된 단층 건물을 개조한 이곳이 세 사람의 아지트 보야주다.

중앙에 놓인 원목 스툴은 스웨덴에서 왔다. 작가 파트리크 킴 구스타프손(Patrick Kim-Gustafson)의 작품.

중앙에 놓인 원목 스툴은 스웨덴에서 왔다. 작가 파트리크 킴 구스타프손(Patrick Kim-Gustafson)의 작품.

중앙에 놓인 원목 스툴은 스웨덴에서 왔다. 작가 파트리크 킴 구스타프손(Patrick Kim-Gustafson)의 작품.

지난 4월, 산책하기 좋은 필운동 길가에 문을 연 의식주 클럽 ‘보야주ʼ. 오래되어 보이는 빨간 벽돌 건물에 아치 모양의 긴 창이 나 있고 빨갛게 녹이 슨 계단까지, 그 조합이 낯설고 신선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더 장관이다. 길게 드리운 투명한 비단이 펄럭이고, 샬로트 페리앙 체어, 선이 고운 꽃과 화병, 벽마다 작가 캐스퍼 강의 캔버스가 툭툭 놓여 있다. 보야주는 오래도록 방치되었던 낡은 구옥을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게 점령했을까? 보야주라는 이름은 하나, 둘도 아닌 세 여자의 것이다. 박나래, 이보미, 강재윤 씨는 각각 보야주의 푸드, 리빙, 텍스타일 디렉터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패션을 전공했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생활하거나 공부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서로를 알기 시작한 세 사람은 종종 만나고 함께 일도 하면서 지내다가 작년, 코로나19를 계기로 한데 모였다. 록다운으로 파리와 암스테르담에 갇혀 있던 재윤과 보미가 서울로 돌아왔다. 니트 디자이너인 재윤은 작업실이, 가구와 오브제를 소개하는 보미에게는 쇼룸이 필요했다. 7년째 의류 회사 한섬에서 일을 하던 나래, 그녀는 ‘탈 패션ʼ 하고 싶었다. 그러던 이들 앞에 한때 피자집이었고 이후엔 닭갈비집이었다가 한동안 방치된 지금의 건물이 나타난 것이다. 단기 임대가 가능하다는 말에 당분간 함께 놀아볼까? 세 사람은 힘을 모았다. 함께하는 여정인 만큼 이름은 보야주(voya3e)로 정했다. 알파벳 g 대신 셋을 뜻하는 3을 쓴다.

/upload/living/article/202108/thumb/48865-463633-sample.jpg

쪽염색을 한 원단 너머로 보이는 백남준의 드로잉 판화.

/upload/living/article/202108/thumb/48865-463634-sample.jpg

보야주의 테이블 스타일링. 한지와 마로 직조한 원단으로 조명을 감싸고 숯과 양파 등으로 천연 염색한 테이블 매트를 이용해 감성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의식주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 아름답고 좋은 방식을 소개하되 그 방식이나 재료가 인위적이지 않아 자연스러웠으면 좋겠고, 환경도 적극적으로 고려하려고 해요. 나아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우리의 것들을 해외로 알리는 게 저희의 궁극적인 미션이 될 것 같아요.
 

/upload/living/article/202108/thumb/48865-463635-sample.jpg

예약제로 운영하는 보야주의 원 테이블 디너에서는 요리와 잘 어울리는 내추럴 와인 페어링을 함께 즐길 수 있다.

/upload/living/article/202108/thumb/48865-463636-sample.jpg

김 페스토로 버무린 면에 전복장과 내장 소스를 곁들이고 잘게 썬 오이로 산뜻하게 입맛을 돋우는 여름 메뉴 전복 카펠리니.

요즘 구옥을 고친 카페와 매장들이 핫해요. 보야주 또한 러스틱하고 독특하네요. 나래 여기가 애초에는 ‘대장장이 화덕피자’라는 맛집 자리였는데 최근 1년간 빈 채로 방치되어 있었어요.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낡은 공간이었지만 저희는 이곳의 잠재력을 보고 결정을 했어요. 처음 이곳을 만든 분이 철물 공예를 하셨다는데, 정성스럽게 고친 흔적이 보였거든요. 천장 구조와 문틀, 곳곳에 독특한 금속 디테일이 있어요. 재윤 안과 밖의 분위기가 또 달라요. 보미는 창문이나 벽돌 건물이 네덜란드스럽다고 했는데, 내부에는 한옥의 모습이 남아 있어요. 1970년대에 사용되었던 유리를 패치워크 형식으로 가공한 부분도 보이고,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창문도 볼수록 근사해요.

방치되어 있던 구옥을 어떻게 손봤나요? 나래 잔뜩 쌓여 있던 먼지랑 폐기물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페인트도 직접 칠하고, 화장실은 저희가 타일을 직접 붙이고 미장까지 새롭게 했어요. 그다음에 보미의 가구와 오브제가 들어오고, 재윤이가 만든 원단이 들어오니까 이 공간이 따뜻하고 활기가 생긴 거예요. 동네 분들도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냐면서 반가워하세요.

봄에 시작된 보야주가 한여름을 맞이했네요. 3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나래 공간을 정비하고 있던 중에 대관 요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4월 초 ‘프로젝트 아카이브’라는 책 론칭 행사를 시작으로 보야주를 처음 공개하고, 5월에는 ‘윈비노’와 함께 내추럴 와인 시음회를 진행했어요. 이후에도 패션 브랜드 팝업 행사도 두 번 하고, 지금은 구상희 작가의 개인전을 겸하는 중이라 그림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요. 애초에 저희 셋이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려고 기획한 공간이라서요. 평소엔 가구랑 소품을 둘러볼 수 있는 쇼룸으로 개방하고 있고 목, 금, 토요일 저녁에는 원 테이블 디너를 열어요. 주기적으로 원데이 클래스도 여는데요. 생면 파스타, 포카치아와 그린 페스토를 만드는 클래스를 했고, 발효 감물을 활용해서 테이블 매트를 만드는 천연 염색 클래스도 열었어요. 이 공간의 무드를 좋아해서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저희끼리는 패션 필드에서 한 발짝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연습하는 과정이라 여기고 있어요.

보야주를 ‘의식주 클럽’이라고 설명했는데,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는 거죠? 나래 입고, 먹고, 사는 일을 가치 있게 만들어가고 싶어요.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그래서 ‘의식주 클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됐어요.

패션을 전공하고, 각자 다른 나라에서 살던 세 분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신기해요. 그것도 패션 브랜드를 론칭한 게 아니고, ‘의식주 클럽’이잖아요. 보미 코로나19가 저희를 묶어줬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에 록다운이 떨어져서 재윤이는 계속 재택근무를 하고, 저도 암스테르담에 갇힌 신세라 서로 메신저로 연락을 자주 했어요. 그러는 동안 패션에 관한 생각도 달라지게 됐고요. 세계적으로 큰 위기를 맞아서 집에 갇혀 있는데, 옷 한 벌 더 만든들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이 시대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일은 뭘까? 재윤 전부터 저희 셋 다 피로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패션을 너무 사랑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 세상의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고요. 아름다움이 가장 위대한 것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점은 이 시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가치를 두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다루고 싶은데, 그러려면 품질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물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는 걸 보야주에 녹여내고 싶어요.

기본적인 생각은 같지만 관심 분야는 조금씩 다른데 ‘보야주’로 뭉쳤네요. 나래 재윤이는 작업실이 필요했고, 보미는 가구를 판매할 생각이라 쇼룸을 원했고, 저는 음식을 좀 더 진지하게 해보고 싶었어요. 세 명 다 궁극적으로는 공간이 필요했죠. 이제 방황을 멈추고, 하더라도 이 안에서 방황을 해보자! 이런 저희 모습이 <브레멘 음악대>의 동물들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름을 지을 땐 거창한 후보들도 많았지만 ‘우리 여행하는 거잖아!’ 이러면서 보야주로 정리됐죠. 

/upload/living/article/202108/thumb/48865-463637-sample.jpg

마로 만든 발 너머로 보이는 네덜란드 디자이너 하이스 바커(Gijs Bakker)의 의자.

/upload/living/article/202108/thumb/48865-463638-sample.jpg

니팅 머신이 놓인 창가가 니트 디자이너 강재윤 씨의 작업 공간이다.

매주 강원도에 있는 이성만 천연 염색 명인의 공방을 찾아 직접 천연 염색을 실습하고 배워온 강재윤 씨의 작업물과 수집한 원단들.

매주 강원도에 있는 이성만 천연 염색 명인의 공방을 찾아 직접 천연 염색을 실습하고 배워온 강재윤 씨의 작업물과 수집한 원단들.

매주 강원도에 있는 이성만 천연 염색 명인의 공방을 찾아 직접 천연 염색을 실습하고 배워온 강재윤 씨의 작업물과 수집한 원단들.

파리에서 일을 하던 이보미 씨는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도예가와 협업으로 이 오브제를 만들었고, 오묘한 색감을 따서 ‘파타고니아’라고 부른다.

파리에서 일을 하던 이보미 씨는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도예가와 협업으로 이 오브제를 만들었고, 오묘한 색감을 따서 ‘파타고니아’라고 부른다.

파리에서 일을 하던 이보미 씨는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도예가와 협업으로 이 오브제를 만들었고, 오묘한 색감을 따서 ‘파타고니아’라고 부른다.

보야주에서는 어떤 가구들을 만날 수 있나요? 보미 하나밖에 없는 내 공간을 꾸미고 싶어서 가구를 모으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물려줄 수 있을 만큼 변함없는 걸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 가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어요. 파리에서는 샬로트 페리앙의 의자를 두고 썼는데, 네덜란드에 살면서 만났던 가구는 더 튼튼하고 질리지 않는 타입이었어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이 나라에서 내 것으로 가져와야 할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모으다 보니 소재도 형태도 다 달라요.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는 일본 작가와 협업해서 만든 도자기는 너무 아끼는 거라 절대 팔지 못할 것 같아요.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방에서는 ‘테스타 디 모로’라는 머리 모양의 화병을 가져왔어요. 큰 가구는 제가 배치했지만 재윤이의 천이 없었다면 이런 무드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재윤 씨는 아크네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로 일을 하셨는데 보야주에서는 천연 염색 워크숍도 하시네요? 재윤 지속적이고 오래갈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드는 일, 패션보다는 오브제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네요.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귀하고 값진 원단이 많았고, 천연 염색도 활용도가 높아요. 저희가 조명 갓으로 쓰고 있는 건 한지와 마를 직조한 원단이고요, 천연 염색으로 직접 만든 매트로 테이블 스타일링을 하고 있어요. 지난달에는 보야주에서 천연 염색 클래스를 열었거든요. 손으로 직조한 전통 원단 위에 꽃잎을 올려서 스텐실 기법처럼 문양을 새긴 테이블 매트를 만들었어요. 현대 생활에 맞는 디자인을 제안하고, 천연 염색의 매력을 알릴 수 있어서 너무나 갚진 시간이었어요.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네요. 이곳에서 맞이하는 식사도 뜻깊을 것 같은데 어떤 요리를 선보이나요? 나래 영국은 전 세계 많은 나라의 음식들을 세련되고 재밌게 경험할 수 있는 도시였어요. 유학 생활을 하면서 요리를 본격적으로 즐기게 됐는데, 요리에 진지하게 임하면서부터는 엄마의 요리와 재료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보야주에서는 신선한 제철 재료로 저의 경험을 아름답게 풀어내려고 해요. 여름을 맞아 선보이는 전복 카펠리니는 김 페스토에 카펠리니 면을 비벼서 전복 내장 소스, 전복장과 함께 내고 마지막에 들기름을 뿌려요. 저희 어머니가 횡성에서 재배한 들깨를 사용해 황금빛이 나도록 섬세하게 로스팅해서 짠 들기름이 포인트예요. 애피타이저로 나가는 김부각에는 묵은지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로 만든 소스를 곁들이고요. 아름답고 창의적인 조합을 만들어가는 이 과정 자체가 패션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7월 초부터 8월까지 예약이 다 찰 만큼 나래 씨 요리가 인기라면서요? 보미 저는 한국을 포함에서 다섯 나라에서 살았지만 나래 언니 요리랑 재윤이의 디저트가 제일 맛있어요. 그래서 제가 꼭 같이 해야한다고 설득했어요.

보야주의 다음 여정은 어떻게 될까요? 재윤 포카치아와 페스토를 만드는 쿠킹 클래스, 천연 염색 클래스는 8월까지 계속됩니다!
보미 저희가 경험해온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재밌게 소개하고 싶은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할지, 언제까지 이어갈지는 아직 저희도 몰라요. 이 여정을 지켜봐주세요!

/upload/living/article/202108/thumb/48865-463641-sample.jpg

박나래 디렉터의 카메라에 담긴 보야주의 아름다운 순간들.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음식을 나누는 모든 일상이 시(詩)가 될 수 있을까? 의식주를 탐닉하는 세 청춘의 하모니, 보야주의 여정을 따라서.

CREDIT INFO

기획
김의미 기자
사진
정택,박나래(보야주)
촬영협조
보야주(@voya3e)

LIVINGSENSE STUDIO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