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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오의 내일의 공예12

풀로 창조한 예술, 완초장

On August 10, 2021

논이나 습지에서 자라는 흔하디흔한 풀이 장인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물건으로 태어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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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초로 제작한 화병과 컵이 놓인 테이블. 비록 물을 담을 수는 없지만 공간에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풍기는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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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초를 꼬아 실을 만들고 이를 날줄로 사용해 원형으로 엮으면 방석이나 기물을 만들 수 있다.

풀로 만드는 물건의 오랜 역사

우리나라는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짚이나 풀을 원재료로 제작한 공예품이 발달했다. 《삼국사기》에 왕실에서 필요한 자리나 공예품을 만드는 전담 기구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완초(왕골)를 재배하고 공예품을 만들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완초 공예품이 중요한 교역품의 하나였으며, 왕실 진상품으로 화려한 꽃무늬가 특징인 강화 화문석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완초 공예는 강화도의 완초로 만든 자리, 돗자리, 방석, 합을 제일로 평가했는데, 그중 으뜸은 아름답고 화려한 문양이 특징인 화문석이다. 완초 공예품은 올이 균일하고, 광택이 나고, 부스러짐이 없으며 질긴 게 특징. 바닷가 근처 물가에서 자라 염분 성분이 함유된 강화의 완초로 만든 공예품은 부드럽고 습기에 강하며, 보랭 및 보온 효과가 있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완초 공예품의 제작 과정은 비교적 간단한 편. 다 자란 왕골을 쪼개어 건조시킨 후, 이것을 다시 물에 불려 칼등으로 훑어낸 다음 햇볕에 말려서 손으로 꼬거나 기구를 이용해 엮는다. 비교적 손쉬운 제작 과정에 비해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던 완초 공예는 1980년대까지 강화의 농가에서 부업으로 인기가 높았다. 완초 공예품도 일반 가정에서 두루두루 사용되며 쓸모를 인정받았지만, 근대화 이후 쉽고 빠르게 만들어지는 공산품에 밀려 이제는 그 설 자리를 잃은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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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말린 완초는 기본적으로 약간의 미색을 띠며, 염색을 통해 다양한 색상과 패턴을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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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초 공예로 만든 트레이와 뚜껑이 달린 합. 화문석을 비롯해 방석, 함 등 다양한 완초 공예품이 있다.

완초 공예로 만든 트레이와 뚜껑이 달린 합. 화문석을 비롯해 방석, 함 등 다양한 완초 공예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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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초 공예에 필요한 물품들. 완초를 꼬아 만든 실과 형태를 잡아주는 나무망치 등이 전부.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자란 물건

국가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의 허성자 이수자가 완초 공예를 접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허 이수자가 나고 자란 강화는 논이나 습지에 흔하게 자라는 풀이 완초였고, 집집마다 화문석을 짜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 그녀가 어릴 때만 해도 집집마다 완초를 재배하고 채취할 때는 온 가족이 일손을 보탰다. 어른들이 기다란 완초를 뽑아주면 아이들이 줄기를 자르고 쪼개는 일을 맡았다. 여름방학이면 언제나 있었던 가족 행사로 그녀의 어린 시절은 완초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가 완초를 짜고 엮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 어깨너머로 만드는 법을 깨치곤 했지만 완초장의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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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고 유연한 완초는 모양이 쉽게 변형돼 평평한 부분은 망치로 두드려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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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초로 제작한 여러 패턴의 바구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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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자 이수자에게 완초 공예를 배우는 양태오 디자이너.

선생님 안녕하세요! 강화도의 평화로운 자연을 느끼며 작업실로 오는 길이 너무 좋았습니다. 자택에서 작업을 하시는 모습이 뭔가 더 공예스럽게 느껴집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강화도는 옛날부터 집에서 왕골로 물건들을 많이 만들었거든요. 저도 넓고 쾌적한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작업하기에는 집이 제일 편하기도 해요.

집에서 취미로 즐기던 완초 공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2005년에 바로 근처에 화문석문화관이 개관했거든요. 마침 그곳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완초장 선생님들의 공예 체험 수업을 들을 수도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만들던 것이라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낮에는 화문석문화관에서 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아이들 돌보고 모두 잠들었을 때나 왕골을 만질 수 있었는데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완초 공예를 배우면서 숨어 있던 소질을 찾게 되었나 봐요. 사실 소질이 있는 줄도 몰랐고, 일단 풀이 내 손을 거쳐서 어떤 물건으로 완성되는 게 너무 신기하고 좋았어요. 동글동글 예쁘게 생긴 물건들이 나랑 얘기하자는 것 같고요(웃음). 그러게 만들다 보니까 공예품 경진대회 같은 곳에도 출전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았어요. 처음엔 운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참가할 때마다 상을 받게 되니까 저도 좀 놀랐죠. 생각해보니 완초장을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가 젊은 편이어서 조금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또 상을 타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재미가 있어서 만들다 보니 성과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결과가 좋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네요.
힘은 들죠(웃음). 똑같은 자세로 집중해서 해야 하니까 거북목도 생기고, 팔도 많이 아프고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감사한 일이 생겨요. 완초장 전수 장학생이 됐다가 이수자로 선정되면서 선생님께 정말 많은 걸 전수받고, 문화재청이나 예올 같은 단체에서 지원도 해주시니 가문의 영광이고.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웃음).

공예인으로 살아가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요? 저는 좀 늦게 시작해서인지 늘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고요. 또 만들다 보니까 좀 더 쓰임이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그게 쉽게 찾아지지 않아서 고민이에요.

완초 공예에 대해 자랑 해주세요! 완초는 풀로 만든 물건이지만 원재료를 말리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꽤 질기고 강한 소재로 변하거든요. 게다가 겉면이 매끈하고 통풍이 잘돼서 여름에 바닥에 까는 매트로 활용하면 정말 시원하고 좋아요. 그리고 손으로 한땀 한땀 짜고 패턴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고스란히 묻게 되는데, 저는 그 점이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기운을 전달한다고 믿어요. 그게 바로 공예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즐겁게 몰입하시는 모습에 저도 완초 공예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해요. 그동안 작업을 해오면서 개인전을 한 번 열고 싶었는데, 올해 마침 예올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돼 가을에 개인전을 할 것 같아요. 이번 개인전에는 좀 더 현대의 쓸모에 맞는 제품을 내놓고 싶고, 또 왕골 공예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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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만든 작품들을 진열해둔 허성자 이수자의 거실 장.

그동안 만든 작품들을 진열해둔 허성자 이수자의 거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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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감과 패턴이 매력적인 완초 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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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색감과 재질의 완초 공예품은 양태오 디자이너의 한옥에 특히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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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에 약하지만 다른 용기와 믹스 매치하면 더 멋스러운 보관 용기로 쓸 수 있다.

습기에 약하지만 다른 용기와 믹스 매치하면 더 멋스러운 보관 용기로 쓸 수 있다.

완초 공예품은 공기가 잘 통해 색다른 향기 아이템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완초 공예품은 공기가 잘 통해 색다른 향기 아이템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완초 공예품은 공기가 잘 통해 색다른 향기 아이템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흔한 소재의 아름다운 쓸모

허성자 완초장 이수자와의 인터뷰는 전통공예의 긍정적인 면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허성자 이수자께서 자신의 일을 무척 즐겁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공예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어요.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닌, 재미있게 자신의 일을 즐기시는 분들 덕분에 우리의 전통공예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봐요.” 완초 공예의 특징은 풀이라는 소재가 만들어내는 미감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풀을 말리고 엮어서 아름다운 문양이 만들어지고, 일상에서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탄생하는 것이 공예품으로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일상에서 쓸모를 다하고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물건이야말로 요즘처럼 뭐든 넘치고, 빨리 변하고, 소비적인 문화에 답이 되어준다는 게 양태오 디자이너의 생각. ‘내일의 공예’ 연재를 통해 여러 분야의 장인을 만나고 공예품을 접한 양태오 디자이너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곁에 있었던 공예품이야말로 현대인이 직면한 물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일상의 즐거움을 되찾게 해주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했다. 지난 1년간의 연재를 통해 아름답고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장인들을 만나온 양태오 디자이너.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철학이 담긴 물건을 곁에 두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있어요. 이게 바로 공예의 매력이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이롭고 아름다운 공예품이 꾸준히 탄생할 거라고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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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로서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형태와 패턴의 완초 공예품.

<리빙센스>×디자이너 양태오×예올
‘내일의 공예 프로젝트’ 열두 번째 이야기- 완초장
<리빙센스>가 디자이너 양태오, 재단법인 예올과 함께 한국 전통공예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기획한 ‘내일의 공예’ 프로젝트. 전통문화를 바르게 이해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일에 힘쓰는 단체 예올, 우리의 전통을 토대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동시대적 미감을 구축하고 있는 디자이너 양태오,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의 품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는 매거진 <리빙센스>가 의기투합해서 한국의 전통공예 장인들을 찾아갑니다.

논이나 습지에서 자라는 흔하디흔한 풀이 장인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물건으로 태어나기까지.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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