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인스타그램 네이버포스트 카카오 스토리 유튜브 네이버TV캐스트 블로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FEATURE

홍안의 용감한 라이프6

아이는 초등학교에 나는 미용학원에 갑니다

On April 26, 2021

어떤 것들을 생각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생각을 하는 즉시 행동부터 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적당히 생각하고 적당한 시점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보다 훨씬 현명한 인간이 되었을 텐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후자다. 어딘가를 가려고 마음먹었다면 일단 비행기표부터 끊어야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계산이 디테일하지 않으니 종종 손해도 본다. 그러나 지금껏 했던 모든 시작이 그랬다. 머릿속에 스위치가 켜진 순간 그 기세를 몰아 다른 세계에 성큼 발부터 들이미는 식이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노숙자의 머리를 잘라주는 ‘이상하고 재밌는 꿈’을 꾼 뒤 무엇에라도 홀린 듯 미용학원에 등록을 해버렸다. 분명 상담만 하러 간 것인데 코로나19로 인해 미용사(일반) 국가기술자격증 과정의 수강료를 할인해준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카드를 내밀고 말았다. 봄부터 새로운 마케팅 프로젝트를 맡은 데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개인적으로 중차대한 이 시점에 나도 새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아이의 신학기 용품에 이름표를 붙이며 내 이름표 스티커도 20개쯤 뽑으니 아이가 눈이 동그래져 묻는다. “엄마도 학교 가?” 미용학원에서도 다른 수강생의 미용 재료와 헷갈릴 수 있으니 신입생들은 먼저 이름표부터 붙이라고 알려준다. 분무기, 가위 케이스, 민두 홀더, 헤어 마네킹, 롤빗 세트 등 미용학원 수강생이라면 다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실습한다.

새벽 1시까지 아이와 내 이름표를 붙이며 생각했다. ‘앞뒤로 계산을 좀 더 치밀하게 해봤더라면 프로젝트가 끝나는 일정에 맞추거나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한 뒤 미용학원에 등록을 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러나 또 모른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아이가 학교생활을 능숙하게 하게 될 즈음에는 ‘이상하고 재밌는 꿈’을 향한 내 스위치가 꺼져버렸을 수도.

얼떨결에 이 세계에 발을 내디딘 지 7주째가 되었다. 시간과 공간과 만나는 사람을 바꾸면 사람이 바뀐다고 했다. 조금은 바뀌었을까? 그동안 내가 ‘미용사’라는 직업에 대해 얼마나 큰 편견에 사로잡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모든 기술이 그렇겠지만 미용 역시도 보이는 멋보다 성실함과 능숙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수업의 시작은 내가 ‘봄의 기쁨’, 일명 춘희(春喜)라는 별명을 붙인 마네킹의 헤어에 정성스럽게 린스를 하는 일로 시작한다. 수업 전 반지는 물론이고 목걸이와 팔찌 등 모든 액세서리는 빼놓는다. 미용은 신체 부위를 다루기 때문에 ‘공중위생관리법’의 적용을 받아 액세서리는 착용할 수 없다. 모든 것엔 나름의 이유와 규칙이 있다. 이를테면 커트를 할 때 절대로 빗과 가위를 손에서 떨어뜨리면 안 된다. 쓰지 않는 롤빗이나 도구들은 트레이 안에 가지런히 정렬해야 한다는 룰도 있다. 몇 년 동안 셀프로 머리카락을 잘라왔던 터라 가위질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위 잡는 방법에서부터 이미 팔꿈치가 저려왔다. 지휘자가 양팔을 들어 지휘를 하는 모양새가 바로 커트의 정석.

미용사들 중에 디스크 환자가 많다더니 그럴 만한 자세였다. 편하게 의자에 앉아 자르는 것도 금지다. 선생님은 한쪽 무릎을 꿇는 자세를 취해 보였다. 왜 다들 검정색 바지만 입는지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버건디 니트 스커트를 입고 커트 연습을 했더니 머리카락들이 스커트에 들러붙었다. 머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만나는 머리카락은 불결함의 상징이었지만 미용학원에서 만나는 머리카락은 희안하게도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커트 수업이 끝나고 나면 각자의 자리엔 열정의 흔적인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이는데 교실 뒤의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꼼꼼하게 치우면 그만이다. 이제는 집 화장실에서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모아 맨손으로 훔쳐낸다. 정확한 계획 없이 미용의 세계에 발을 담갔더니 한 달이 지나도 일상은 허둥지둥 흘러가고, 재미는커녕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에도 급급한 형편이다. 그래도 어찌저찌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아이가 가는 건지 내가 가는 건지 모를 학원도 다니며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
 

글쓴이_이홍안

오랫동안 패브릭 브랜드의 마케터로 일했고, 지금은 마케팅 컴퍼니를 운영하며 현재 잘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있다. 여덟 살짜리 아이의 엄마로 여행과 캠핑을 좋아하는 그녀는 지난해 아이와 단둘이 남미 캠핑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제주에서 1년씩 살아보기도 하면서 용감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중이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글·사진
이홍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