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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테토의 아트스페이스 13탄

3인치의 예술, 강익중 작가

On August 03, 2020

한국의 아름다움을 다정한 시선으로 관찰해온 미국인 마크 테토가 <리빙센스>와 한국의 예술가들을 만나 나누는 깊은 이야기. 이번 호에는 가로세로 3인치(7.62cm)의 캔버스 안에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해온 강익중 작가를 만났다. 작은 캔버스를 통해 큰 세계를 만나는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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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내가 아는 것’ 앞에 선 강익중 작가. 한글이 써진 3인치짜리 캔버스들을 달항아리 모양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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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우연히 탄생한 한글 작품들. 우주 만물을 뜻하는 오방색을 사용했다.

‘달항아리’, ‘3인치의 예술가’ 하면 떠오르는 이름 강익중 작가. 현재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홍익대학교 서양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드에서 공부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던 그는 집과 일터를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작은 수첩에 도시의 일상을 그리며 고단함을 달랬다.

그렇게 그린 수천 장의 그림이 모여 작품이 됐고, 이를 계기로 가로세로 3인치짜리 정사각 캔버스에 그린 작품 시리즈가 탄생했다. 1994년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 메인 홀에 작품이 설치됐고, 같은 해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 <멀티플 다이얼로그>를 열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지난 6월 말 광화문광장에 달항아리 설치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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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광화문 아리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마크 테토와 강익중 작가.

6.25전쟁 70주년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광화문 아리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마크 테토와 강익중 작가.

광화문광장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마크 테토의 집을 방문한 강익중 작가. 마크 테토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가의 달항아리 시리즈를 보여주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마크 테토의 집을 방문한 강익중 작가. 마크 테토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가의 달항아리 시리즈를 보여주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마크 테토의 집을 방문한 강익중 작가. 마크 테토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가의 달항아리 시리즈를 보여주었다.

오방색으로 채색한 강익중 작가의 달항아리 작품과 마크 테토의 한옥이 잘 어울린다.

오방색으로 채색한 강익중 작가의 달항아리 작품과 마크 테토의 한옥이 잘 어울린다.

오방색으로 채색한 강익중 작가의 달항아리 작품과 마크 테토의 한옥이 잘 어울린다.

M 작가님 안녕하세요! 예전부터 정말 뵙고 싶었는데 계속 뉴욕에 계시는 바람에 기회가 없었어요. 이렇게 서울에서 뵐 수 있게 돼 정말 기쁩니다.
저를 이렇게 반겨주셔서 감사해요. 마크 씨처럼 한국 예술을 사랑해주는 분을 만나게 돼서 저도 영광입니다.

M 평소 작가님의 팬이라 저희 집에도 작가님의 작품 한 점이 있거든요. 이따가 보여드릴게요! 이번 인터뷰는 얼마 전 지나가다가 광화문광장에 작가님 작품이 설치된 것을 걸 보고 작가님께서 서울에 오셨을 것 같아 연락드린 거였는데, 제 예감이 딱 맞았네요!
제 작품을 아껴주셔서 고마워요.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작품은 6.25전쟁 70주년을 기리기 위해 만든 ‘광화문 아리랑’이에요. 6.25전쟁 때 UN군에 소속돼 참전한 나라의 어린이 1만2000명이 참여한 작품이에요.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면 아이들 그림을 하나하나 다 볼 수 있는데, 각자의 그림과 사연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몰라요.

M 작가님은 아이들과의 작업을 참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작가님의 어린 시절도 궁금한데요. 어릴 때부터 아티스트가 장래 희망이셨나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나, 증조할머니 사진을 보고 연필로 똑같이 따라 그린 적이 있는데 큰아버지께서 잘 그렸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신 기억이 나요. 그때부터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죠.

M 가족의 응원 덕분에 작가로 성장할 수 있으셨나 봐요.
네,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런 경험 덕분에 어릴 때부터 칭찬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아이도 칭찬을 많이 해주면서 키웠고, 혹시라도 나중에 선생님이 된다면 아이들에게 칭찬이 후한 선생님이 될 거예요(웃음).

뉴욕의 설치 현장에서 작업 중인 강익중 작가.

뉴욕의 설치 현장에서 작업 중인 강익중 작가.

뉴욕의 설치 현장에서 작업 중인 강익중 작가.

M 학창 시절은 거의 그림 그리기가 전부였을 것 같습니다.
너무 좋아했죠. 밤새 그림을 그린 적도 많았고,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서 자다가 일어나서 그린 적도 많아요.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그림을 포기할 뻔했어요. 수업을 두 번 정도 들었는데 친구들이 다 그림을 너무 잘 그리는 거예요. 저는 제가 세상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다고 생각하고 미대에 진학했는데, 현실은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던 거죠. 그때부터 미술로 먹고살 수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당시 저희 아버지께서 사업이 기우는 바람에 건강도 잃고 집안 형편이 안 좋았어요. 그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큰돈을 벌어오겠다는 목표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갔죠.

M 학교도 다니고 돈도 벌어야 했던 상황이었나요?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학교는 형식적으로 다니는 정도였죠. 교수님이 제 얼굴을 못 알아보실 정도였으니까요. 주중엔 델리에서 일하고, 주말엔 플리 마켓에서 장사를 했어요.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일하러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작은 수첩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거든요. 첫해에 1000장 정도 그렸더라고요. 후에 친구 소개로 그때 그린 작품들을 모아 전시를 하게 됐는데, 한 평론가가 <빌리지보이스>라는 뉴욕 로컬지에 제 전시를 소개했어요. 제가 지하철에서 그림 그리는 걸 본 적이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알음알음 연락이 와서 소규모 전시들을 하게 됐어요.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광화문 아리랑’. 1만2000명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모아 제작한 작품으로 상하가 분리되어 회전하면서 달항아리가 갈라지고 만나는 과정이 반복된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광화문 아리랑’. 1만2000명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모아 제작한 작품으로 상하가 분리되어 회전하면서 달항아리가 갈라지고 만나는 과정이 반복된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광화문 아리랑’. 1만2000명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모아 제작한 작품으로 상하가 분리되어 회전하면서 달항아리가 갈라지고 만나는 과정이 반복된다.

M 그 후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활동하신 거군요.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 선생님과 2인전을 했을 때예요. 그 해에 샌프란시스코국제공항의 메인 홀을 장식할 벽화를 제작하기도 했고요. 그때도 옷가게에서 일을 했는데, 그림으로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죠(웃음).

M 백남준 작가와의 만남은 어땠어요?
전시 오프닝을 마치고 선생님과 식사를 하는데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고 질문하시더라고요(웃음). 그때 깨달았죠. 이분은 낮에 별을 볼 수 있는 무당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낮에 별을 못 보잖아요. 그런데 그분은 그런 걸 꿰뚫어보는 능력을 갖고 계셨던 거죠. 보통 사람의 그릇은 지름이 작은데, 선생님은 30세기의 미래까지 내다보는 큰 그릇의 주인이었나 봐요. 저에게도 넓은 그릇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고요. 그 대화 이후 저도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후에 아이들과 작업할 때 먼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해요.

M 백남준 작가와의 만남이 개인적인 작업에서 공공미술 작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건가요?
내가 갖고 있는 그릇의 지름을 넓히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1997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해서 상을 받았을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았거든요. 한편으로는 좀 아쉽기도 했어요. 한국을 대표해서 상을 받았는데 사실 한국은 남한, 북한 둘로 나뉘어 있잖아요. 그래서 언젠가 이 두 한국이 세계로 나와서 함께 전시를 하면 좋겠다, 내가 작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림으로 남북한을 이어보자고 생각하게 됐고, 1998년부터 먼저 남한 아이들의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평양에 가서 아이들의 그림을 모으고 남한 아이들의 그림과 합쳐 임진각에 다리를 만드는 꿈을 꾸면서요. 그런데 여러 여건 때문에 지금까지 큰 진전은 없고, 대신 다른 작업들을 계속해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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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빌딩에 설치된 ‘아름다운 강산’.

흥국생명빌딩에 설치된 ‘아름다운 강산’.

2007년 광화문 복원 현장에 가림막으로 설치한 ‘광화문에 뜬 달’과 광화문 광장 전경.

2007년 광화문 복원 현장에 가림막으로 설치한 ‘광화문에 뜬 달’과 광화문 광장 전경.

2007년 광화문 복원 현장에 가림막으로 설치한 ‘광화문에 뜬 달’과 광화문 광장 전경.

M 전 세계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달항아리 작품을 만들게 된 스토리도 궁금해요.
2004년에 일산의 호수공원에 커다란 둥근 달 모양의 작품을 설치하고 있었어요. 전 세계 아이들이 그린 14만 장의 그림을 모아서 만들었는데, 밤에 조명을 설치하고 오픈하려는데 한쪽이 터져서 기울어지더라고요. 다시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달항아리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완벽하지 않은 비정형이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더라고요. 한 번에 다 만들지 못하고 아래쪽, 위쪽을 따로 만들어서 붙이는 과정이 남한과 북한을 이어보자는 것하고 의미가 맞아떨어지거든요. 그래서 그 후로 달항아리 작업을 많이 했어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요.

M 달항아리 작업에 어려움이 많으셨다는 건 의외네요! 달항아리에 꽂히니까 똑같이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나 봐요.
정말 누가 봐도 달항아리처럼 그리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아리의 정신과 마음을 담아야지 항아리의 피부를 닮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모든 걸 감싸 안은 하늘을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모양은 달항아리지만 하늘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그래도 뭔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들었어요. 그러다 제 자신을 좀 내려놓고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죠. 원래부터 똑떨어지는 스타일보다는 좀 어눌한, 하다 만 것 같은 그런 것에 더 애정이 갔거든요. 작업도 마찬가지로, 자연을 그릴 때 내가 이기려고 하지 말고 지는 쪽을 택했어요. 작업이 10이라면 4만큼 열심히 하고 6은 그냥 맡기는 거죠.

M 그게 바로 절제의 미학인 것 같네요. 그런데 아이들의 그림을 작품에 활용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우리들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현재를 이해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과거가 별로 없어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상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아이들의 그림을 빌려오는 거예요. 아이들은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더라고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아이들의 그림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한글 작품은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자음은 파란색, 모음은 빨간색으로 구별하면서 아이에게 알려주었는데, 그 방식이 발전해 오방색을 사용하는 것으로 진화했다고. 작가의 한글 작품은 외국에서 인기가 많다.

한글 작품은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자음은 파란색, 모음은 빨간색으로 구별하면서 아이에게 알려주었는데, 그 방식이 발전해 오방색을 사용하는 것으로 진화했다고. 작가의 한글 작품은 외국에서 인기가 많다.

한글 작품은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자음은 파란색, 모음은 빨간색으로 구별하면서 아이에게 알려주었는데, 그 방식이 발전해 오방색을 사용하는 것으로 진화했다고. 작가의 한글 작품은 외국에서 인기가 많다.

마크 테토와 강익중 작가가 갤러리현대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크 테토와 강익중 작가가 갤러리현대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크 테토와 강익중 작가가 갤러리현대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크 테토가 소장하고 있는 달항아리 작품은 다양한 모양의 달항아리와 풍경이 그려진 3인치 캔버스를 모은 것이다.

마크 테토가 소장하고 있는 달항아리 작품은 다양한 모양의 달항아리와 풍경이 그려진 3인치 캔버스를 모은 것이다.

마크 테토가 소장하고 있는 달항아리 작품은 다양한 모양의 달항아리와 풍경이 그려진 3인치 캔버스를 모은 것이다.

M 작가님의 작품은 남한과 북한, 한국과 주변 국가의 관계를 회복하고 연결하려는목적이 분명해 보이네요.
저는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국, 일본, 중국이 모두 나무라면 나무는 다 뿌리가 있잖아요. 나무가 다르니까 모두 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같은 나무이기 때문에 뿌리는 모두 땅으로 통해 있어요. 바람도 통하고요.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져 있는데 우리가 왜 싸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의 그림을 모으면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더 강력하게 느끼게 됐어요.

M 작가님에게 ‘연결’은 굉장히 중요한 단어인 것 같네요. 광화문광장의 작품도 상하가 따로 돌면서 만나도록 되어 있더군요.
네,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죠. 예술과 철학이 자신이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안테나를 자신을 향해 세웠으면 좋겠어요. 내가 나를 들을 때 세계가 나를 들으러 오거든요. 다른 것을 보고 따라 하는 것보다는 어눌해도 자기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돼요.

M 얘기를 듣다 보니 제가 소장한 작가님 작품이 떠올라요. 달항아리로만 채워진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다른 그림이 있어요. 저는 달항아리 사이에 끼어 있는 그림들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어떤 그림은 제가 살던 고향의 산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랬군요! 마크 씨의 고향에 있는 산을 보고 그린 건 아니지만, 제 그림을 보고 그 산을 떠올린 건 아마 우리가 타국에 사는 경계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일 거예요. 제 그림이 마크 씨에게 간 건 의미 있는 인연이라고 봐요. 경계인은 연결자예요. 가운데 끼어 있다고 소외된 게 아니라 가운데에서 다리를 놔주는 사람이죠. 문화는 연결자에 의해 발전하고 변화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M 특별한 인연으로 해석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후배나 어린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정직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기본이죠. 정직하지 않으면 창의성이 안 나와요. 성공하려면 정직을 바탕으로 굉장히 창의적이어야 해요. 캔버스 앞에 있다고 창의적은 인생은 아니더라고요. 아티스트들이 모두 창의적이진 않습니다. 어디서 무얼 하든 창의적인 사람이 진짜 성공하는 거죠.

M 오늘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뉴욕에서 뵐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저도 오늘 마크 씨와 함께 인터뷰해서 정말 즐거웠어요. 집에도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꼭 또 만나요!

마크 테토(Mark Tetto)

마크 테토(Mark Tetto)

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0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 〈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중.

한국의 아름다움을 다정한 시선으로 관찰해온 미국인 마크 테토가 <리빙센스>와 한국의 예술가들을 만나 나누는 깊은 이야기. 이번 호에는 가로세로 3인치(7.62cm)의 캔버스 안에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해온 강익중 작가를 만났다. 작은 캔버스를 통해 큰 세계를 만나는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왔을까.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강익중 작가(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