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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아트스페이스 6탄

색채의 마술사 김봉태 작가

On January 20, 2020

한국의 아름다움을 다정한 시선으로 관찰해온 미국인 마크 테토가 〈리빙센스〉와 한국의 예술가들을 만나 나누는 깊은 이야기. 그 여섯 번째 인터뷰는 컬러풀한 색감의 작품으로 한국 미술계에 큰 획을 그은 거장 김봉태 작가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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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MARK TETTO)
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1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 〈리빙센스〉와 함께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할 예정이다.

 

원색의 색채와 기하학적 조형이 두드러지는 작품 세계를 펼쳐내며 한국 미술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김봉태 작가. 다채로운 색상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캔버스 위에서 색채의 예술을 보여온 작가는 어느덧 여든이란 나이를 넘어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늘 밝고 위트가 넘치는 작가의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 충분했다. 쓸모없는 상자들을 모아 색을 입히고 동작을 만든 ‘춤추는 상자’ 시리즈는 보는 이의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유머를 지니고 있고, 일상에서 만나는 상자들을 모티프로 해 제작한 ‘축적’ 시리즈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희망을 얘기했다. 그저 그림이 좋아 가열 차게 달려온 작가는 이제 쉬엄쉬엄 할 때도 되었건만 매일 오전 화실로 출근해 작업하는 일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작가의 모습에서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라는 유행가 가사가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여느 날처럼 작업실 출근을 앞둔 김봉태 작가를 마크 테토가 만났다. 분홍색 셔츠를 차려입고 같은 컬러의 양말을 곱게 신은 여든 넘은 작가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축적’ 시리즈. 플렉시 글라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혔다.

‘축적’ 시리즈. 플렉시 글라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혔다.

‘축적’ 시리즈. 플렉시 글라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혔다.

M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집을 갤러리처럼 꾸미셨네요! 정말 멋집니다. 어서 오세요. 좋아하는 마크를 만나게 돼서 나도 기뻐요. 이 집은 특별히 화실과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함께 설계했어요. 규모가 큰 작품도 설치할 수 있도록 층고를 높였죠. 이 공간이 마크의 마음에 들었다니 나도 기분이 좋네요.

M 이렇게 멋진 집에서는 언제부터 사신 건가요? 1998년부터 이곳에서 살았어요.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올 때 지인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지은 건물이에요.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 힘도 들었지만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기에 제일 편한 곳이죠.

M 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도 하셨는데 처음 어떻게 외국에 나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다녀와서 스물여섯 살에 뉴욕의 유네스코 국제조형예술협회에서 뽑는 청년 작가에 선정돼 미국으로 가게 됐어요. 그김에 LA에 고모님이 살고 계셔서 그쪽 학교를 알아본 거죠. 당시는 학교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어서 신문을 읽다가 발견한 학교에 무작정 찾아가서 입학할 수 있냐고 물어봤답니다. 그 학교에서 석사 과정이 있는 오티스 예술대학교를 소개해서, 본격적으로 미국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M 학교생활은 어떠셨어요? 재밌었어요. 그때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던 시기였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영어도 배울 수 있었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작업실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날도 많아서 한국어도 서툴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거든요. LA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도 사귀고 새로운 것도 많이 배웠어요.

M 그림은 한국에서 시작하신 거죠? 미술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도 미술부에서 그림을 그렸고, 미술대회도 나가서 상도 많이 받았어요. 그때는 멋도 모르고 그림을 그렸는데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그러니까 내가 잘 그리나 보다 했어요.

김봉태 작가의 초기작품인 ‘그림자’ 시리즈.

김봉태 작가의 초기작품인 ‘그림자’ 시리즈.

김봉태 작가의 초기작품인 ‘그림자’ 시리즈.

스테인리스 스틸에 산업용 페인트를 칠한 ‘춤추는 상자’.

스테인리스 스틸에 산업용 페인트를 칠한 ‘춤추는 상자’.

스테인리스 스틸에 산업용 페인트를 칠한 ‘춤추는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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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태 작가의 자택 거실. 창밖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높은 층고와 양쪽 벽에 걸어둔 작품 덕분에 갤러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김봉태 작가의 자택 거실. 창밖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높은 층고와 양쪽 벽에 걸어둔 작품 덕분에 갤러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 김봉태 작가의 자택 거실. 창밖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높은 층고와 양쪽 벽에 걸어둔 작품 덕분에 갤러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김봉태 작가의 자택 거실. 창밖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높은 층고와 양쪽 벽에 걸어둔 작품 덕분에 갤러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 마크 테토가 작가의 작품 중에 최고로 꼽은 ‘축적’ 시리즈 앞에 앉아 두 사람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한국적인 색감이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게 마크의 감상평. 마크 테토가 작가의 작품 중에 최고로 꼽은 ‘축적’ 시리즈 앞에 앉아 두 사람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한국적인 색감이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게 마크의 감상평.

 

M 보통 다른 작가님들은 부모님이 화가가 되는 걸 많이 반대했다는데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우리 부모님은 하고 싶으면 하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었어요. 아버님은 나보다 예술을 더 사랑하셨던 분이었거든요. 그 옛날에 사진도 하고 영화도 제작할 정도였어요. 우리 집에 문인, 음악인, 화가들이 자주 드나드셔서 자연스럽게 그런 분들을 보고 자랐지요. 아버지 친구 중에 오영수 선생이라고 음악과 그림을 가르치다가 나중에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신 분이 있거든요. 그분이 나한테 사용하던 화구를 주기도 하셨고요.

M 작가님은 1937년생이시니 박서보, 김환기 작가님들과 함께 활동하셨겠네요? 서로 많이 친했죠. 나보다 선배들이신데 그분들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대학교 다닐 때 안국동에 박서보 선생 지인의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거든요. 그때 김창열 화백하고 가까워졌어요.

작가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 화실 벽. 곳곳에 작은 작품들이 포진해 있는데 모두 제자리에서 열심히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작가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 화실 벽. 곳곳에 작은 작품들이 포진해 있는데 모두 제자리에서 열심히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작가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 화실 벽. 곳곳에 작은 작품들이 포진해 있는데 모두 제자리에서 열심히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춤추는 상자’ 시리즈. 버려진 상자를 재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종이 상자에 색도 칠해보고, 다양한 재질로도 만들어 보고, 평면에 그림도 그리면서 상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춤추는 상자’ 시리즈. 버려진 상자를 재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종이 상자에 색도 칠해보고, 다양한 재질로도 만들어 보고, 평면에 그림도 그리면서 상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춤추는 상자’ 시리즈. 버려진 상자를 재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종이 상자에 색도 칠해보고, 다양한 재질로도 만들어 보고, 평면에 그림도 그리면서 상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김봉태 작가와 함께 ‘축적’ 시리즈에 색칠을 하고 있는 마크 테토.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나름 정교한 붓질이 필요한 일이다.

김봉태 작가와 함께 ‘축적’ 시리즈에 색칠을 하고 있는 마크 테토.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나름 정교한 붓질이 필요한 일이다.

김봉태 작가와 함께 ‘축적’ 시리즈에 색칠을 하고 있는 마크 테토.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나름 정교한 붓질이 필요한 일이다.

M 롤 모델이 되었던 작가가 있었나요? 많았어요. 김환기 선생은 우리가 전시를 열면 꼭 와서 “수고했다, 잘했다”고 격려하고 갔어요. 그런 한마디가 큰 힘이 됐죠. 박서보 선생은 누가 봐도 정말 열심히 그렸거든요.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는 자극이 되었고요. 나는 그중에서도 장욱진 선생을 가장 존경했어요. 그분은 우리를 스스로 설 수 있게 만드신 분이에요. 그래서 더 자유롭게 나만의 그림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장욱진 선생하고는 사제 관계라기보다는 친구처럼 지냈죠. 저녁에 술 한잔 기울이면서 주고받은 말들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됐고요.

M 한국 현대미술계의 1세대이니, 오랫동안 구축되어 전해 내려오는 전통이 없어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나간다는 게 쉽지는 않으셨죠? 나는 대학 졸업 후에 해외에서 공부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그 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됐던 것 같아요. 다만 한국의 현대미술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봐요. 사람들이 서양에서 영향을 받아 한국의 현대미술이 시작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M 저도 한국에 와서 ‘서양미술학과’의 존재를 알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서양미술’과의 교수들이 모두 한국의 작가들인데 서양미술을 한다는 표현이 어색하다고 할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냥 ‘회화’라고 하면 좋을 텐데 굳이 서양미술, 동양미술이라고 나누는 기준이 이해가 안 가더군요. 동양화에서는 한국화로 또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제 이런 어색한 구분은 고쳐야 할 때가 됐죠.

M 그동안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그려왔던 산수화, 서예, 수묵화 등과는 달리 새로운 한국적인 그림체를 만드셨다고 느꼈는데,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아프리카 조각들에 관한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지구의 모든 원시인은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예술을 표현해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한국의 철학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그게 ‘한 사상’이에요. 여기서 의미하는 한은 슬픔이 서려 있는 한(恨)이 아니고 하나인 것은 모든 것이며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게 핵심이에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철학에 대해 알게 된 거죠. 그 덕분에 나의 백그라운드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요.

M 작가님이 당시에 이해하신 한국의 미는 어떤 개념이었나요?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죠. 아주 예전에는 궁중에서 화려한 색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공자 사상이 들어오면서 색은 수준 높은 사람이 쓰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염료가 비싸서 가난한 서민들은 색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웠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궁중에서 쓰는 색, 양반이 쓰는 색 등이 정해지기 시작하고 나머지 서민들은 염색을 하지 않은 흰옷을 입게 된 거죠. 백의민족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원시시대부터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 걸 좋아했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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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 지하에 마련된 김봉태 작가의 화실 전경. 오랜 세월 흩뿌려진 물감들이 만들어낸 흔적이 하나의 예술 작품 같다. 매일 아침 이곳으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게 작가의 낙이라고.

자택 지하에 마련된 김봉태 작가의 화실 전경. 오랜 세월 흩뿌려진 물감들이 만들어낸 흔적이 하나의 예술 작품 같다. 매일 아침 이곳으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게 작가의 낙이라고.

M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은 단색화를 많이 하시는데 작가님은 색을 많이 사용하셨더라고요. 그림에서 내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아요. 나는 늘 밝게 웃는 걸 좋아해요. 성격도 긍정적인 편이고요. 그게 내 그림에 표현되는 것 같아요. 그림이라도 보고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요.

M 그런 거군요? 오늘 의상도 핑크색 셔츠와 양말까지 작가님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색을 좋아했어요. 남들이 봤을 때 튀는 색깔의 옷도 많이 입었고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학교에서 나의 그런 패션을 그리 좋게 보진 않았는데 그런 것에 구애받고 싶지 않았어요. 더 자유롭고 싶었답니다.

M 어떤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수행이 되기도 하고, 그림은 그 수행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작가님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것이 특징이고 오방색이 많이 보이는데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해요. 작가는 과정이 중요하기도 하고, 관객은 그림 자체를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죠. 어떤 작가만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수행인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도 수행이 될 수 있겠죠. 나는 색을 사용할 때 좋아하는 색 위주로 작업한 건데 그 색이 오방색과 맞아떨어졌어요.

  ‘창문’ 시리즈 앞에 선 김봉태 작가. 여든을 넘긴 노장에게서 위풍당당한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창문’ 시리즈 앞에 선 김봉태 작가. 여든을 넘긴 노장에게서 위풍당당한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창문’ 시리즈 앞에 선 김봉태 작가. 여든을 넘긴 노장에게서 위풍당당한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철사로 만들어낸  ‘춤추는 의자’ 시리즈.

철사로 만들어낸 ‘춤추는 의자’ 시리즈.

철사로 만들어낸 ‘춤추는 의자’ 시리즈.

M 선생님만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구축하게 되셨어요? 미국에 갔을 때 1년 정도 서체 작업을 했어요. 굉장히 행위적인 작업이었는데 그건 내 자신만 만족하는 정도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명확하게 타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단순하고 강력한 뭔가를 찾았죠. 뭔가 응축된 것을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M 작가님의 작품에는 그림도 있고 조각도 있는데 항상 2가지를 동시에 하셨나요? 작품의 재질이나 작업 방식은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했던 것 같아요. 항상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집으로 배달돼온 택배 상자나 약봉지 같은 걸 활용해서 작품을 만들기도 했죠. 얼마 전에 눈이 아파서 선을 똑바로 그리는 게 어려웠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는 싫어서 철사 조형물을 만들었어요.

M 작가님이 사용하는 색깔은 외국인인 저에게 한국적이면서 매력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작품의 스타일이 달라져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색들 위주로 다양한 작업을 하려고 노력해왔어요. 색깔이라는 건 오묘해서 빛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고, 반투명 패널의 뒷면에 칠하면 같은 색이라도 달라 보이죠. 그런 효과를 활용하면 입체감도 생기고 재미있어 보이고요.

M 오늘 대화 정말 즐거웠습니다. 요즘은 어떤 작업을 주로 하세요? 지금도 이것저것 합니다. 얼마 전에 몸이 안 도와줘서 원하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속상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좀 느슨하게 해보려고 해요. 예상했던 것과 달라도 그대로 둬보기도 하면서요. 그래서 더 자유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나도 마크씨와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앞으로도 자주 만나서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거장의 신발과 바닥이 만들어낸 장관과 화실을 가득 채운 붓과 물감들. 작업실 바닥이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거장의 신발과 바닥이 만들어낸 장관과 화실을 가득 채운 붓과 물감들. 작업실 바닥이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거장의 신발과 바닥이 만들어낸 장관과 화실을 가득 채운 붓과 물감들. 작업실 바닥이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거장의 신발과 바닥이 만들어낸 장관과 화실을 가득 채운 붓과 물감들. 작업실 바닥이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거장의 신발과 바닥이 만들어낸 장관과 화실을 가득 채운 붓과 물감들. 작업실 바닥이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거장의 신발과 바닥이 만들어낸 장관과 화실을 가득 채운 붓과 물감들. 작업실 바닥이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다정한 시선으로 관찰해온 미국인 마크 테토가 〈리빙센스〉와 한국의 예술가들을 만나 나누는 깊은 이야기. 그 여섯 번째 인터뷰는 컬러풀한 색감의 작품으로 한국 미술계에 큰 획을 그은 거장 김봉태 작가와 함께했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 유진갤러리 제공

2020년 01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 유진갤러리 제공